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3:17:41

도란스 내려

1. 개요2. 유사한 농담3. 유사 사례4. 관련 문서

1. 개요

당시 대학의 학과들이 통폐합되면서 학부제로 바뀔 때였다. 인서울인 모 대학의 통폐합 관련학과 교수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학과장들은 자신의 입지가 줄어드는 까닭에 애가 많이 탔다.

그 학교의 공대 중에서 전자공학과, 전파공학과, 전기공학과 이렇게 세 학과도 하나의 학부(전기전자전파공학부)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날이면 날마다 세 학과 학과장들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차후 대책을 논의했다. 세 학과장이 내심으로는 자신의 학과장입지가 어떻게 될지를 가장 궁금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학과장이 나란히 강단에 서서 특강을 하게되었다. 맨 처음 강단에 선 전자공학과장이 자신의 강의 말미에, 때는 이 때다 싶어 전자공학과의 존재 이유와 자신이 학부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지금은 바야흐로 전자의 시대입니다. 요즈음 일렉트로닉스라는 말을 빼고 말이 되는 게 거의 없습니다. 거의 많이들 사용하는 핸드폰만 해도 그렇습니다. 에... 만일,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의 핸드폰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조그만 기계에 들어가는 전자회로 설계와 구성을 누가 했겠습니까?"

그는 전자공학과 학생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강단을 내려왔다.

다음으로 강단에 선 전파공학과장은 강단에 서자마자 침을 튀기며 반론을 제기했다.

"여러분, 핸드폰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요, 아무리 회로구성이 되었다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핸드폰이라는 기계구실을 하려면 전파 등 통신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잘 설계된 전자회로의 핸드폰이라도 통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잘 만들어진 기계 아니,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그는 전파공학과 학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오후에 시작한 강의. 두 번의 강연을 거치면서 날은 어둑어둑 해졌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각 학과장들의 열변의 목소리가 커져가면서, 어느새 강의실 전등도 환하게 켜졌다.

마지막으로 강단에 오른 백발의 노 교수인 전기공학과장, 앞의 두 학과장처럼 열변을 토하는 대신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한창 술렁거리던 강의실이 점점 조용해지다가 급기야,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참 후에 전기공학과장이 버럭 소리쳤다.

"야, 조교! 가서 도란스 내려!"
-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일화 中에서.

도란스 내려(Off The Grid)는 변압기를 내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도란스(トランス)는 변압기, 즉 트랜스포머(Transformer)의 줄임인 트랜스(Trans)를 일본어 식으로 읽은 것으로, 80년대에 한창 110V에서 220V로 물갈이하던 시기에는 두꺼비집이나 바로 옆에 110V로 내려주는 변압기가 달려 있었고, 지금도 빌딩에는 고압을 수전해서 저압(220V/380V)으로 내려주는 변압기가 있다. 110V 변압기가 더 이상 설치되지 않는 현재는 누전차단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란스를 내리면 모든 전기가 꺼지는 "누전차단기의 스위치를 내려라" 같은 이야기와 동의어가 된 것이며, 나아가 전자 설비 인프라가 마비되거나 없어지면 전기에 의존해야만 하는 모든 것이 발전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풀이될 수 있다. 통신 장비이든 뭐든 전자기기라면 일단 전기가 반드시 필요하고 변압기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기공학과장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전기 자동차나 전구 등은 전자회로로 동작하긴 하지만 그 구조가 관련분야를 전공했다면 비전공자도 충분히 다룰 수 있을만큼 간단하다. 결국은 인뿌라 타령

또한 당시 유머코드는 전기과의 갑질(?)보다는 다른 과는 영단어를 섞어가며 청산유수처럼 읊지만 정작 전기공학과는 '도란스'라는 일본어를 쓰면서 앞뒤 설명 없이 "도란스 내려!"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는 당시 전기과가 공대에서 무식하기로 토목과, 기계과와 삼대 트리오를 이룬다는 정서 때문이었다.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토목과는 안전모 쓰고 삽질이나 하고, 기계과는 개과라 불리며 손에 기름칠하며 스패너나 돌리고, 전기과는 전봇대 올라가 '뺀찌'질 한다는 것. 물론 구전되는 유머답게 내용 자체도 본문처럼 장황한 묘사는 없었다.[1] 즉, "영어 읊어대며 엘레강스하게 굴어봤자 전기과한텐 못 이겨" 라는 정서가 짙은, 어찌 보면 자조적인 농담이다.

영어권으로 대응될만한 표현으로는 상술했듯 'Off The Grid' 가 있는데, 본래는 '현대적인 설비 없이 자족적으로' 라는 의미이지만 Two Point Hospital의 확장팩 이름으로 쓰이면서 '도란스 내려'로 현지화되었다.[2] 마침맞게 'off'가 '~ 없이'(without) 뿐만 아니라 '꺼라'(turn off)라는 의미로도 통하는데다 'grid'가 전력망 등의 인프라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서, '전력망 꺼라'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문명하셨습니다(Stay Civilized) 처럼 게임의 주제를 관통하는 표현 중 하나.

2. 유사한 농담

20세기 버전에선 전기통신공학부는 전파공학과였고, 핸드폰이 아니라 홈오토메이션 같은 주제를 썼다. 이유야 다른 거 없고, 90년대 당시 용어가 그랬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교에 존재하는 전자통신공학부의 옛 이름이 전파공학과였고, 홈 오토메이션(HA)는 그냥 요즘의 스마트홈 같은 것이다.[3]

이와 비슷한 유머가 다른 학과 버전도 존재한다.
제목: 신의 전공은 무엇인가?

철학자: 신은 철학자일 것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니까.
생물학자: 아니오, 신은 그 이전에 인간을 만들었소. 따라서 생물학자임이 틀림없소.
건축가: 하지만 신은 인간을 만들기 이전에 혼돈으로부터 이 세상을 만들었소. 따라서 신은 건축가요.

그러자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경제학자: 그럼 그 혼돈은 누가 일으켰을까요?참고아카이브 링크
변호사정치인 등의 버전도 있다. 공산주의 유머 중에도 있다. 도란스니스트리아

3. 유사 사례

인프라 문서의 마비 사례 참고


2021년 10월 ~ 11월 들어 일어난 인프라 마비 사태에 대한 YTN의 보도, 인프라 마비의 위험성을 엿볼 수 있는 보도이기도 하다.

상술했듯, 기술이 의존하는 인프라가 마비되면 '도란스 내려'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으며, 인프라 마비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소요사태로도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유머는 단순 농담이 아닌 블랙 코미디로 받아들이는 게 적절하다.

4. 관련 문서



[1] 가령, 끝까지 듣고만 있던 전기과 교수가 벌떡 일어나 "야. 가서 도란스 내려!" 라고 말하며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는 정도.[2] 원래 의미에서 확장되어 잠수, 잠적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3] 데이터마이닝에 몇 가지 개념과 발전요소 첨가해 빅데이터란 새 이름으로 마케팅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장 자동화(팩토리오토메이션)란 자매품도 있었다.[4] "도란스 내려" 처럼 "잠가라 밸브"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