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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 학과 | 전공 |
1. 개요
학부(學部/Faculty[영국식영어]/ College[미국식영어])란 유사한 전공 학과를 모은 대학의 하부 조직이다. 사실상 단과대학과 학부는 같은 역할을 하지만, 한국의 대학 제도 상에서는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 혼란을 거치면서 단과대학과 학부가 병존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단과대학 문서 참조.학부제(學部制)란 학부를 기준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제도로 여러 학과의 정원을 통폐합해 학생을 모집한 후 1년 간의 전공탐색기간을 거친 뒤 2학년 진급과 함께 학부 내 세부전공에 진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학과제는 신입생들이 단일 전공만 가르치는 개별 학과에 입학하여 신입생 때부터 전공 수업에 집중한다.
2. 학부제
2.1. 제국대학: 강좌제
일제강점기 조선에 최초이자 유일한 근대 구제대학이면서 제국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될 당시는 일본 제국이 영국·프랑스·독일에서 받아들인 유럽식 학제를 기반으로 운영되었고, 특히 제국대학은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에서 수입한 강좌제를 채택하여 대학(University)-학부(Faculty)[3]-강좌(Course)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강좌제란 쉽게 말해 모든 지식을 교수 한 사람에게서 도제식으로 전수받는 중세 장인 길드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각 강좌마다 강좌담임을 맡는 교수가 있고, 교수 휘하에 조교수-준교수-강사-조수를 두고 학생을 가르치며, 그 중 뛰어난 학생이 조수가 되고, 조수에서 강사로, 강사가 조교수로, 조교수가 교수로 올라가는(직위를 물려받는) 위계 체제이다. 강좌제의 전형으로 꼽히는 제국대학에서는 교수에게 강좌담임 직무급으로 교수 봉급 수준을 지급했기 때문에 조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면 봉급이 3~4배가 되었고, 교수 직위에 부와 명예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강좌제는 구식 시스템 같지만 현대에도 유지되고 있다. 강좌제는 교원당 학생수가 매우 적어서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 깊은 인적 유대감이 형성되고 교수가 학생의 성취를 주의깊게 관찰하며 체계적으로 지도해줄 수 있다. 그래서 서구권에선 국제기독교대학(ICU) 같이 엄청난 학비를 자랑하는 리버럴아츠 대학에서는 하직도 강좌제와 유사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영향으로 일본에는 해외유학도 가지 않고 특정 교수 문하에서 평생 연구를 이어가다 선임 교수가 퇴직하면 빈 자리를 물려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몇몇 일본 대학에서는 학부생이 3학년부터 교수마다[4] 개설하는 세미나, 일명 제미에 소속되어 학교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또한 강좌제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講座制에 관한 상세설명은 일본어 위키백과 참조.
한국에는 이 강좌제의 흔적이 의과대학의 교실[5]에 남아있다. 현재는 1인의 교수가 아닌 복수의 교수가 한개의 교실(대강좌)에 소속되어 각자 소강좌장이 되어있는 상태라 교실은 사실상 타 전공의 학과와 마찬가지가 되었으나[6] 학부생이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일반 학과와는 다르다.
2.2. 미군정: 학과제
국립 부산대학 설립 인가서
경상남도지사 전(殿)
서기 1946년 5월 10일부의 귀 제안에 의한 "釜山의 大學設置"에 관하여는 그 후 5월 15일에 貴道 한인 및 미인 양 학무과장과 본 문교부 관계관이 합석하에 하기(下記)와 같이 결정하였음으로 이에 회시(回示)함.
(1) 부산에 釜山大學을 設立하고, 同 大學에 인문학부, 수산학부를 설치하는 동시에 현 수산전문학교는 이를 同 大學의 수산학부로 개편하기로 함.(부산수산전문학교 개편의 건)
(2) 同 大學 인문학부에 설치하게 되는 학과의 종류는 대학설립 관계당국자와 도학무당국자와의 협의에 의하여 이를 결정하되 문교부의 승인을 얻어 실시하기로 함.
(3) 釜山大學 設立基金(천만원)의 조달에 관하여는 道당국이 조속히 이를 이행하기로 함. (이하 생략)
단기 4279년 5월 20일 (서기 1946년 5월 20일)
조선미군정청 문교부장 유억겸
조선미군정청 문교부장 Aubrey O. Pittenger
【출처】 부산대학교 50년사 p24 참조
【주석】 이렇게 해서 부산에 신설되는 국립종합대학교의 정식명칭은 "부산대학"으로 확정되고, "인문학부"와 "수산학부"의 두 학부가 개설되었다. 이때의 "학부"라는 것은 오늘날의 한 단과대학(Faculty)으로써 그것은 일본 학제의 한 명칭이었다. 1946년 3월 7일에 공포된 대학령 제2조 후단에는 인문계 학부와 자연계 학부가 병설될 때는 두 개 이상의 학부로써 종합대학교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대학명칭과 학부칭호는 1946년 6월 19일에 '국립 서울대학교안'이 발표되고, 1946년 8월 22일에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령'이 공포된 이후부터는 그에 준하여 '국립 부산대학 인문학부'는 '국립부산대학교 인문과대학'으로, '국립 부산대학 수산학부'는 '국립 부산대학교 수산과대학'으로 개칭되었다. 미군정기의 문교부장은 지금의 교육부장관을 말하며, 이 당시는 조선인 문교부장 1명(유억겸)과 미국인 문교부장 1명(Pittenger) 등 양인(兩人)이 있었다.
경상남도지사 전(殿)
서기 1946년 5월 10일부의 귀 제안에 의한 "釜山의 大學設置"에 관하여는 그 후 5월 15일에 貴道 한인 및 미인 양 학무과장과 본 문교부 관계관이 합석하에 하기(下記)와 같이 결정하였음으로 이에 회시(回示)함.
(1) 부산에 釜山大學을 設立하고, 同 大學에 인문학부, 수산학부를 설치하는 동시에 현 수산전문학교는 이를 同 大學의 수산학부로 개편하기로 함.(부산수산전문학교 개편의 건)
(2) 同 大學 인문학부에 설치하게 되는 학과의 종류는 대학설립 관계당국자와 도학무당국자와의 협의에 의하여 이를 결정하되 문교부의 승인을 얻어 실시하기로 함.
(3) 釜山大學 設立基金(천만원)의 조달에 관하여는 道당국이 조속히 이를 이행하기로 함. (이하 생략)
단기 4279년 5월 20일 (서기 1946년 5월 20일)
조선미군정청 문교부장 유억겸
조선미군정청 문교부장 Aubrey O. Pittenger
【출처】 부산대학교 50년사 p24 참조
【주석】 이렇게 해서 부산에 신설되는 국립종합대학교의 정식명칭은 "부산대학"으로 확정되고, "인문학부"와 "수산학부"의 두 학부가 개설되었다. 이때의 "학부"라는 것은 오늘날의 한 단과대학(Faculty)으로써 그것은 일본 학제의 한 명칭이었다. 1946년 3월 7일에 공포된 대학령 제2조 후단에는 인문계 학부와 자연계 학부가 병설될 때는 두 개 이상의 학부로써 종합대학교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대학명칭과 학부칭호는 1946년 6월 19일에 '국립 서울대학교안'이 발표되고, 1946년 8월 22일에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령'이 공포된 이후부터는 그에 준하여 '국립 부산대학 인문학부'는 '국립부산대학교 인문과대학'으로, '국립 부산대학 수산학부'는 '국립 부산대학교 수산과대학'으로 개칭되었다. 미군정기의 문교부장은 지금의 교육부장관을 말하며, 이 당시는 조선인 문교부장 1명(유억겸)과 미국인 문교부장 1명(Pittenger) 등 양인(兩人)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미군정의 실시로 한국의 대학들에도 학과제가 도입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미군정은 구제고등학교(교양)-제국대학(전공학문연구) 및 구제전문학교(전문실업교육)의 복선식 학제가 아닌 다수에게 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미국식 대학 시스템을 도입하였다.[7] 이에 따라 각 교수가 많은 학생을 가르칠 수 없는 강좌제를 폐지하고 분과학문별 학과(Department)를 설치하고 이를 대학 중앙에서 이사회를 통해 직접 통제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개편과 맞물려 학년제도 학점제로 변경되었다. 학년제는 매 학기마다 소속 강좌에서 개설된 강의들을 중심으로 학생마다 필수/선택 강의를 듣고 강의마다 시험을 통과하여 단위를 취득한 뒤 상급 학년으로 진학하는 시스템으로 현대 한국의 의과대학 시스템과 비슷한 것이었다. 즉 단위를 취득하지 못하면 유급되어 1년 더 공부하게 되는 부담감이 상존하며 특정 학년에 수업을 몰아들을 수 없는 체계였다.
반면 학점제는 개인이 선택에 따라 수업을 골라 들으면서 대학 재학기간 4년 동안에 졸업에 필요한 총 이수학점 기준만 취득하면 되는 미국식 학제였다. 그러나 종전의 학년제에서 주간 배당시간 수를 학점수로 고친 학년학점제로 개편된 것이 현실이었다.
이와 함께 구제도에서 교양과정을 담당하던 구제대학의 예과 등을 폐지하고 필수교양교육을 대학 과정 중에 실시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양교육 60년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9. pp.21~27.
- 강명숙,「미군정기 고등교육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2.3. 학과제 비판
미군정 시대에 도입된 학과제는 대중교육의 확대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으나, 50년간 실시되어오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노정하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학과제와 함께 도입된 학점제 하에서 대학들은 해방 직후에는 170~180학점, 1990년대까지는 150~160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요구하였기 때문에 4년 8학기 동안 내실있는 교육이 이뤄지기는 커녕 주입식으로 단기 암기가 이뤄질 뿐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2000년대에는 120~140학점 수준으로 학사과정 졸업이수학점이 감축되었다.또한 대학(University)-학부(College)-강좌(Course) 구조의 구제대학(특히 제국대학)을 대학교(University)-학과(Department)-개별 교원의 위계로 구성된 미국식 신제대학으로 개편하려던 당초 의도는 대학 연합 성격을 가졌던 서울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이러한 분쟁을 거치며 단과대학의 권한이 막강해져, 기존 구제대학의 학부와 강좌만 각각 단과대학과 학과로 바뀐 채 사실상 강좌제의 3단 구조가 바뀌지 못했고 개별 교원의 지위는 강좌제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져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간강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구제고등학교 3년의 고등예비교육 기간에 여러 외국어와 문사철/물화생지 등 빡센 교양교육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후 전공교육을 받았던 구 학제가 대학교 4년간 교양 교육과 전공 교육을 병행하는 식으로 바뀌면서 학부생들은 170~180학점에 달하는 과중한 졸업학점의 압박 속에 타 학과의 전공을 수강/이수하기 어려웠고, 교양 교육 역시 졸업 필수학점 이수에 의의를 두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질 뿐이었다.
게다가 개별 학과 이기주의에 학제간 연구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으니 이러한 학과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학부제를 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고 1990~2000년대에 교육학계에서는 경성제국대학을 포함한 과거 일제의 교육제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2.4. 학부제 도입
1987년 서울대학교는 '서울대학교 발전 장기계획'에서 학문의 대학, 민족의 대학, 세계의 대학을 추구하면서 유사학과를 통합한 학부(Division, School)를 중심으로 학제를 개편하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 학과의 강력한 반발을 뚫고 학부제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제어계측공학과의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1991년에 통합에 합의한 후 92년도에 ‘전기전자제어공학과군’ 으로 신입생 215명을 모집하게 되었다. 이후 전기전자제어공학과군은 1995년 전기공학부로 개편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이 주목을 받으면서 서울대의 타 학과들과 다른 대학들도 학부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나중에는 교육부도 BK21 사업 등 고등교육지원 사업 선정 기준에 학부제 실시 여부를 포함하여 각 대학들이 학부제를 실시하도록 정책적으로 장려하였고, 서울대학교가 2002학년도 학부 신입생 선발에 모집단위 광역화및 제2전공 의무화를 실시하는 것을 기점으로 전국 대학에 이른바 '학부제'의 도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다만 이 당시 대학들이 도입하던 모집단위 광역화는 대개 학부 산하에 기존 학과들이 '전공'의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고 전공진입을 통해 학생들이 각 학과 소속이 되는 방식이었던지라 학부제 도입론에서 주장한 학부제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과 간 경계가 없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학과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학과 이기주의나 학과간 칸막이도 극복되지 못했다. 또한 세부전공이 없어 사실상 학과와 차이가 없는 학부들도 양산되었다. 앞서 언급된 서울대학교의 경우도 처음 입학 할때의 학부가 그대로 전공이 되는, 속칭 전공진입이 따로 없는 경우가 있는데 자연대 지구환경과학부에 입학했으면 졸업할 때까지 '지구환경과학부 지구환경과학전공'이다. 사회대의 경영/경제학부와 자연대/공대에서 학부제를 할 경우 이런 경우가 많다. 다만 정치외교학부, 소비자아동학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물리천문학부, 기계항공공학부[8] 등 학부 이름 부터가 여러 전공이 섞인 듯한 이름을 쓰는 경우는 대개 전공진입이 있다고 보면 된다.
3. 문제점
인기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며,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학교들이 성적을 기준으로 전공선택을 제한하게 되면서 인기학과로 가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학부제의 도입취지까지 무색해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쇼! 음악중심의 연출을 맡았던 박진철 PD의 경우 당시 연세대학교의 학부제 하에서 1학년 성적이 좋지 않아 신소재공학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게다가 인문학 및 일부 사회과학 학과들의 경우[9] 전공 학생 수가 격감하면서 존폐의 기로에 놓이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때문에 학부제를 폐지하고 다시 학과 단위 모집을 도입하거나, 아예 비인기학과를 인기학과로 흡수 통합해버는 경우도 있다. [10]
학교생활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은데, 학부제로 모집된 신입생들은 전공진입 전까지 소속이 불명확해 반학생회 혹은 가전공[11] 등을 통해 적절히 소속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신입생과 2~4학년 학생들 사이에 학회비 납부나 학생회장 선거권 부여 등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방 모 국립대학의 1학년 학부생은 '우리는 권리는 없고,[12] 의무만 있는 노예[13]나 다름없다'고 자조하기도 했다.[14] 또한 학생회 소속과 실제 전공이 다른 경우도 굉장히 많이 발생했다.
또한 학부제를 위에 써놓은 본래 목적이 아닌 입결 조작이나 대학평가 점수 올리기 용으로 쓰이는 일도 허다하다.[15]
이 외에도 학부제의 경우 1학년에는 제대로 된 전공을 배우지 않고 전공탐색만 하다가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공과목을 배우는 시스템이다 보니 정작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 전공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4. 국내 사례
- 전술했듯 학부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여 일정 기간의 전공탐색 기간을 가진 후 세부전공으로 진입하는 형태의 학부제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 사실상 학과와 큰 차이가 없는 경우: 공식적으로는 학부로서 운영되고 있지만 세부전공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전공진입 등의 절차가 없는 경우, 명칭만 학부일 뿐 학과와 똑같다. 다만 학부 모집인원이 많을 경우 학부 산하에 분반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 자유전공학부: 1학년 동안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수업을 듣고 2학년부터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학마다 조건, 전공 선택 범위, 정책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걸쳐 많이 생겨났다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점차 폐지하는 학교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지만 2025년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정원 확대 정책 도입으로 인해 다시 늘어나고 있다.
- 과학기술원 및 포항공과대학교: 과학기술원 및 포항공대는 모든 신입생들이 자유전공으로 입학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만은 4학년까지 기초학부에서 교육을 받고 대학원 이후에 전공이 나뉜다.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은 과거 정시에서 사회과학계열 단위로 선발하였다. 현재도 인문대학은 정시에서 인문계열로 통합선발하고 있다.
-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 학부(UD, HASS, ISED) 단위로 모집한 뒤[16] 2학년 진급과 함께 각 학부에서 본인이 원하는 세부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UIC 내의 복수전공과 부전공 역시 자유로운 편이다.
- 태재대학교: 모든 신입생들이 단일 학부인 혁신기초학부에 소속되고, 이후 4개의 전공학부인 인문사회학부, 자연과학부,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 비즈니스혁신학부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자기설계 전공과목을 통한 개인특화전공 설계를 할 수 있다. 사실상 과학기술원들과 유사한 방식이다.
- 한동대학교: 모든 신입생들이 무학과/무전공으로 입학하며 2학년 1학기부터 전공을 선택한다. 다만 사범대, 교직이수나 의치한약학계열 등 자격증 관련 학과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 홍익대학교: 정원의 62%가 학부단위로 입학한다.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59%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은 수치이다. 이는 학교당국이 학부제 시행에 강제성을 띠지 않고 상당한 재량권을 개별학과 교수나 학생들에게 위임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홍익대가 내세우는 학부제 시행 제1원칙은 '궁합 중시'로, 공과대학 내의 건축공학, 기계공학, 금속재료공학 등과 같이 여타 학과와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학과를 대상으로는 학부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5. 해외 사례
- 하버드 대학교 : 모든 학생들이 '하버드 칼리지'에 소속되어 문리학부와 공학부에 설치된 강의들을 자유롭게 이수한 뒤 2학년 가을학기 11월에 세부전공을 선택한다.
- 도쿄대학 : 문과 1,2,3류, 이과 1,2,3류의 6개 학류로 학생들을 모집하여, 학생들은 전기과정 2학년을 이수한 후 3학년 때 세부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17] 단 문과 1류는 대부분 법학부로, 이과 3류는 대부분 의학부로 진학한다.
제국대학 시스템(폐지됨) : 오늘날 의과대학의 의예과(2년)처럼 대학예과 개념의 구제고등학교 3년간 교양 교육으로 대학 공부에 필요한 영어/독일어/프랑스어/라틴어 등 각종 외국어와 문학/철학/역사 등 인문학, 그리고 물리/화학/생물/지질학 등 자연과학을 공부한다. 이후 학부로 진학하여 오늘날의 세부전공 개념에 비견되는 講座를 택해 3년간 학년제(매 학년말에 진급을 하지 못하면 유급이다)로 전공에 집중한다. 소속 강좌외에 다른 강좌 수업도 일부 이수하도록 되어있다.[18]
[영국식영어] [미국식영어] [3] 유럽식 영어이다.[4] 세미나를 갖고 있는 교수 한정[5] 해부학교실 등[6] 실제로 교실을 영어로 번역할 때는 학과와 마찬가지로 Department라고 한다.[7] 이는 일본 내지에 해당하는 것이고 조선에는 구제고등학교가 없었고 대신 경성제대 예과가 있었다가 폐지되었다.[8] 각각 정치학전공/외교학전공, 소비자학과/아동가족학과, 일본/인도/동남아시아/서아시아언어문명전공, 물리학전공/천문학전공, 기계공학전공/우주항공공학전공[9] 문사철이 특히 심하다.[10] 한국교통대학교의 전기전자로봇통신공학부는 비인기전공인 정보통신. 로봇공학전공을 전자공학전공과 통폐합하여 18학번부터는 전자공학과로 학과 모집하게 되었다.[11] 학부제로 모집된 학생들의 학생사회 소속을 위해 부여되는 '가짜 전공'을 뜻한다.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12] 학생회장 선거권 없음, 전체학생총회에서 발언권 없음[13] 타 전공학과로 배정된 학생에 대한 학생회비 반납거부, 1학년 학부생에 대한 학생회비 납부강요, 학과행사에 인원 동원[14] 이 학교는 2008년도 신입생까지 학부제를 유지하다가 2009학년도부터 거의 모든 학부를 분리하여 다시 학과제로 복귀하였다.[15] 일례로 한국교통대의 경우에는 대학구조평가에서 D등급이 나오자 등급을 올리기 위해 2017학년도부터 학부제를 도입해 기어코 C등급을 받아냈다. 학교 측은 다양한 전공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돌아가는 모양새는 개판 5분 전이다. 특히 구 철도대학이었던 의왕캠퍼스의 경우 문과계열인 철도경영물류학과와 이과계열인 컴퓨터정보공학과를 철도경영물류데이터사이언스학부로 합쳐버리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학부제에 대한 반발이 상당히 큰 편이다.[16] UD 생명과학공학전공과 HASS 아시아학전공은 별도의 모집단위가 존재한다.[17] 이게 바로 구제고등학교 중 예과 시스템이다.[18]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경우 법과(법률학과/정치학과) 학생은 문과 전공 2단위, 문과(문학과/사학과/철학과) 학생은 법과 전공 2단위를 이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