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리치 Добрич | |
국가 | 불가리아 |
인구 | 83584명 (2019년 기준) |
주 | 도브리치주 |
면적 | 109.018㎢ |
해발 | 225M |
1. 개요
불가리아어 | Добрич |
루마니아어 | Bazargic (바자르직) |
튀르키예어 | Hacıoğlu Pazarcık (하즈오을루 파자르즉) |
불가리아 도브리치주의 주도. 오스만 제국 시기에 세워져 19세기에 빠르게 발전했고, 1913-40년에는 루마니아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인민 공화국 시절에는 전 소련군 집단사령관 표도르 톨부힌의 이름을 딴 톨부힌(Толбухин)으로 불렸다.
2. 역사
기원전 4세기 무렵 마을이 형성되었고, 로마 제국 시기 아브리툼 (Abrittum)이라 불리며 모이시아 속주에 속했다. 3세기 무렵 마르키아노폴리스 대주교구 산하 주교구가 될 정도로 발전했지만, 북방 유목 민족의 침공으로 쇠퇴했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 시기에도 마을이 있었지만, 11세기 페체네그 족의 침공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러다 16세기 오스만 제국 지배를 받던 중에 튀르크 상인 하즈오을루 파자르즉이 도시를 세웠다. 17세기 중반 무렵 주택 1천 채, 상점 1백개, 여관 3개, 목욕탕 3개, 모스크 12개, 마드라사 12개를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또한 수공예품, 곡물, 직물, 납 공예품 등을 생산해 각지로 판매했다.19세기 초엽 러시아-튀르크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모여들며 인구는 1만 2천에 이르렀고, 1843년에는 첫 정교회 성당이 세워졌다. 1878년 1월, 러시아 제국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1882년 도브리치로 개칭했다. 불가리아 공국에 속하던 도시는 1913년의 부쿠레슈티 조약으로 남부 도브루자 전역과 함꼐 루마니아 왕국에 넘겨졌고, 바자르직이라 개칭되었다. 다만 2차 대전 중인 1940년 9월, 나치 독일의 압력 하에 루마니아가 크라이오바 조약을 통해 남부 도브루자를 반환하며 일대는 다시 불가리아 령이 되었다. 1949년에는 소련 장군 표도르 톨부힌의 이름을 따 톨부힌 (Толбухин)으로 개칭되었다가 1990년 9월에 원 지명으로 환원되었다.[1]
[1] 다만 차량 등록번호는 여전히 톨부힌 시절인 TX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