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03:15:54

등양

등현무에서 넘어옴

鄧颺
(? ~ 249)
1. 개요2. 생애3. 평가4.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이며 자는 현무(玄茂)로 후한의 개국공신 등우의 후손이다. 촉나라의 등지도 등우의 자손이라 기록되어 있다.

친구로는 제갈탄하안이 있고 기록에서 함께 자주 나오는 정밀은 오히려 하안과 등양을 싫어했다고 하며, 반대로 이를 싫어하는 자로는 원패의 아들인 원량이 있다.

그가 내린 평으로는 유엽의 아들 유도를 보고 이윤, 여상이 재림이라며 칭찬했던 것이 있다.

2. 생애

형주 남양군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수도에서 선비로서 명성을 얻어 조예 때 상서랑이 되었고 낙양령에 제수되었으며, 그 후 어떤 사고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가 중랑에 임명되고 중서랑을 겸했다. 등양은 하안, 정밀, 이승, 필궤 등과 더불어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놀았는데, 중서성에 재직할 때 조예가 사치스러운 것을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화사를 일으키자 동소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예는 말류의 우두머리인 제갈탄과 그를 내쫓으니 그는 조예의 대에는 다시 임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조예가 죽고 나서 조상이 권력을 잡자 정시 연초(240 ~ 248년)에 영천태수로 임명되고 대장군 장사로 전임했다가 시중, 상서로 관직이 올랐으며, 등양은 재물을 좋아해 내직에 있을 때 장애에게 높은 관직을 주자 장애가 부친의 첩을 등양에게 주는 패륜 행위를 저질렀다. 등양은 이를 받아들이자 수도에서 사람들이 말하길 "등현무는 관직으로 쉽게 장가들었구나"라고 했으며,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매번 관직을 추천할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친구 하안마저 참지 못하고 대신 선거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재를 얻지 못해 등양이 얼마나 공평하고 충직하지 못했는 지를 알 수 있다.

한 번은 규태라는 자가 조상의 심기를 거스르니 등양이 그를 무거운 형벌에 처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사마기가 여러차레 말하길
당신은 국가의 정치를 움직이는 대신이고, 왕실의 보좌를 맡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실의 교화를 돕고 도덕을 완성해 옛날 사람과 아름다움을 견줄 수 없으며, 마음 내키는 대로 당신의 사사로운 분한을 발설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억지로 형벌을 정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위급하다는 마음을 갖게 했으니 이것이 그르지 않다면 또 무엇이겠습니까?
라고 하자 등양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오히려 화를 내고 물러가자 사마기는 겁에 질려 관직에서 물러나 얼마 안되어 죽는다.

244년에는 조상이 공을 세우길 바라는 마음에 이승과 함께 사마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촉 정벌을 추진해 흥세 전투이 발발했지만 대패했으며, 247년에는 정밀, 하안과 함께 꾀를 써서 조상 일파는 태후를 영녕궁으로 옮기고 금군을 장악한 뒤에 제도를 멋대로 바꾸면서 조정을 전횡한다.[1] 248년에 하안의 집에서는 관로가 그들의 멸망을 예언했는데 과연 249년 고평릉 사변으로 조상 일파는 완전히 몰락하면서 하안, 이승, 필궤, 정밀, 환범과 함께 삼족이 멸해졌다.

3. 평가

위략에서 평하길 마침내 하안 등과 그 죄를 함께 뒤집어썼으니 아마도 교우하는 것은 그의 재질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으며, 한 방서에는 정밀, 하안과 함께 세 마리의 로 비유되었다.

4. 미디어 믹스

삼국전투기에서는 흰머리에 눈에 눈동자가 없는 인물로 등장했다. 동료 제갈탄의 패러디를 볼 때 케이블(마블 코믹스)이 유력해 보이지만 흉터가 없는 등 세세한 차이점이 많아 확실하지는 않다. 기산 전투 (3)편의 타이틀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는 재능은 있되 그릇이 없다고 서술되어 있다.

기산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제갈탄 등과 함께 실속없는 이들은 당장 파면시키겠다는 조예의 말에 시대에 뒤쳐진다고 반박했다가 제갈탄 등과 함께 면직됐다고 언급되었다.

전투외편 2편에서는 조상이 대장군이 되면서 복직한 것으로 묘사된다. 기산 전투 편에서 나왔듯 본래 제갈탄 등과 같이 관직에 있다가 면직된 쪽이었지만, 하안, 정밀 등이 있는 백수파 쪽이 제대로 된 돈줄이라는 걸 파악하여 그쪽으로 붙었다고 묘사된다. 어쨌든 이후 하안, 정밀과 함께 상서 관직을 받았으며 그 둘과 작당하여 사마의를 태부로 승진시켜 치워버린 뒤 셋이서 함께 자기 입맛대로 관직을 배치하고 세력을 형성하는 등의 전횡을 부렸다고 묘사된다.

낙곡 전투 편에서는 조상의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아 골머리를 썩던 조상 일파에게 크게 전쟁을 한 판 벌이면 지지율이 오르게 된다고 말하며 전쟁을 벌일 것을 제안한다. 하안과 정밀이 그것도 이겨야 성립되는 거라고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자 이승과 함께 현재 한중에 병력이 거의 없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설명하여 나머지 일당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한중 공략의 사령관을 맡을 만한 인물이 없어 고민하는[2] 일당들에게 경험은 없지만 똑똑한 인물이라며 하후현을 추천했다.

그런데 그렇게 추천했던 하후현이 흥세에서 막혀서 시간만 보내자 이승과 함께 서로를 탓하며 싸우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전투외편 3편에서는 다른 일당들과 합심해 패전 책임을 전부 하후현에게 떠넘기고 당당하다는 듯 폭주를 시작했다. 등양은 땅 욕심을 부리는 다른 일당들을 보고 널린 게 땅인데 무슨 땅 욕심이냐고 비웃으며 본인은 뒷돈을 받아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류 전투 편에서는 다른 일당들과 함께 고구려를 이기고 돌아온 관구검을 크게 띄워 줬다.

전투외편 4편에서는 다른 일당들과 놀아제끼는 모습이 잠깐 나오기도 했고, 고평릉 사변 이후에는 역사대로 다른 일당들과 잡혀서 죽었다.
[1] 이 때 일식이 일어나 장제가 이에 관해 상소를 올렸다.[2] 당시 위에서 싸움 좀 하는 인물이라 한다면 문흠, 손례, 관구검, 제갈탄 등이 있었으나, 각각 국경지대인 여강, 양양, 요동, 수춘 방면을 수비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마의를 보내면 단물만 싹 빨릴 게 뻔하니 당연히 논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