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비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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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비 3대 국왕 Rechila | 레칠라 | ||
제호 | 한국어 | 레칠라 |
라틴어 | Rechila | |
생몰 년도 | 미상 ~ 448년 | |
재위 기간 | 438년 ~ 4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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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에비 왕국 3대 국왕.2. 행적
수에비 왕국 초대 군주 헤르메리크의 아들이다. 438년 중병에 시달리던 아버지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그 직후 바이티카에서 약탈 원정을 벌였고, 그해 3월 초 과달키비르 강의 지류인 싱길리온 강 인근에서 안데보트를 무찌르고 그에게서 많은 금과 은을 탈취했다. 안데보트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바이티카에 남아있던 반달족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39년, 레칠라는 루시타니아의 수도 메리다를 공략하고 그곳을 자신의 거주지로 삼았다. 440년 과디아나의 메르톨라 시를 상대로 공방전을 벌인 끝에 항복을 받아내고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관이었던 켄소리우스를 붙잡았다. 441년 바이티카 지방의 수도 세비야를 공략한 뒤 바이티카와 카르타고헤나 일대의 여러 지역을 공략했다. 이리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서부, 중부 일대가 수에비 왕국에게 직접 지배되거나 그들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다만 서로마 제국을 따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의 도시들은 완강히 저항하여 수에비 왕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이베리아 반도 북동쪽의 히스파니아 타라코니아는 서고트 왕국과 서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446년 마기스테르 밀리툼을 맡은 비투스가 로마군을 이끌고 바이티카 지방으로 진군했다. 그는 서고트족과 연합하여 레칠라가 이끄는 수에비군과 맞붙었다. 그러나 서고트족은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을 이탈했고, 비투스는 참패한 뒤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떠났다. 445년, 반달족이 대서양 연안으로 항해하여 갈리시아 도시들 중 하나인 투루니아를 약탈하여 상당한 노예와 전리품을 챙긴 뒤 귀환했다. 일부 학자들은 서로마 제국의 의뢰에 응했을 거라고 추정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반달 왕 가이세리크가 자금과 노예 마련을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였을 거라고 본다.
448년 8월. 레칠라는 메리다에서 사망했다. 사후 아들 레치아르가 왕위에 올랐다. 히다티우스에 따르면, 그는 "이방인으로서 사망했다"고 하며, 세비야의 이시도르는 히다티우스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표현은 레칠라가 이교도로서 삶을 마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는 가톨릭을 받아들인 레치아르와 그를 비교하고자 쓰인 표현일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레칠라가 교회와 좋은 관계를 행성해 현지인들이 지배에 순응하게 하기 위해 아들을 가톨릭 신자로 삼았을 거라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