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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엔리케/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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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스 엔리케의 지도자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FC 바르셀로나 B

2004년 은퇴 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등 축구와는 거리를 두고 개인 생활을 보내다가 2007년 6월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마침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길을 택한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B의 감독직을 원해 임명이 취소되었다.[1]

2008년 6월 바르셀로나 1군감독으로 임명된 펩 과르디올라의 후임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맡게 된다. 2008-09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팀과의 연장 계약을 맺었다. 이후 2009-10 시즌 3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 11년만에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2010-11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팀 창단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2]

3. AS 로마

시즌 종료 이후 아직 구단과 2년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구단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그 해 6월 AS 로마로 팀을 옮기는 데 합의했다.[3] 계약 조건은 160만 유로의 연봉과 2년의 계약 기간이며, 자신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이반 데라페냐를 임명했다.[4] 그러나 시즌 초반 유로파 리그에서 예선 탈락을 하면서 안좋은 출발을 보인 루이스 엔리케는, AS 로마에 바르셀로나식 4-3-3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성적이 부진하자 12시즌 종료 이후 자진 사임했다. 후임 감독으로는 2-8 포메이션의 장인 즈데넥 제만이 취임했다. 로마에서의 실패는 당시 열병처럼 불었던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적용하는데 대한 실패였다. 엔리케는 덕분에 감독수업을 제대로 하게 되고 로마는 망했어요

4. RC 셀타 데 비고

이후 한 시즌을 야인으로 보내다 13-14 시즌부터 전시즌 극적으로 라 리가 잔류에 성공한 셀타 비고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감독으로서는 라 리가 데뷔하며 바르셀로나 B시절 호흡을 맞췄던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불러 모으며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는데 시즌 시작 직전 건강 문제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루이스 엔리케를 믿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데려온 셀타 비고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하지만 단지 루머였는지 바르셀로나 감독으론 타타 마르티노가 영입됐다.

그렇게 맡은 셀타 비고 감독 첫 시즌은 리그 9위를 기록. 그동안 강등권을 겨우 벗어나는 수준이었던 팀을 생각하면 괜찮은 성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5.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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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아무리 무전술이니 선수빨이니 뭐니해도 트레블을 달성했다는 업적 덕분에 17-18 시즌부터 그를 데려오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가장 강력히 링크가 뜨고 있는 팀은 첼시 FC로 벌써 18-19 시즌 때 오기로 사전협의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첼시 팬들 입장에선 "무전술 엔리케보다는 그래도 콘테가 낫다" 라는 입장과 "그래도 트레블을 해본 감독이고 선수단과 불화만 일으키는 콘테는 하루빨리 경질해야 한다" 라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 외에도 파리 생제르맹 FC아스널 FC와도 링크가 났다.

2018년 7월 9일 페르난도 이에로의 후임으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기사 협상이 급진전되어 엔리케가 후임감독으로 내정되었으며 발표만 남았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 그리고 얼마 안 지나 2년 계약으로 유로 2020까지 스페인 대표팀 감독을 맡기로 했다는 공식 발표가 떴다. 기사 팬들 사이에서는 무전술이라는 오명은 둘째 치더라도 16-17 시즌 때 바르사 세대 교체를 말아먹었던 엔리케가 스페인 국대의 세대 교체[5]를 잘 수행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본인의 말로 깜짝 선발이 있을 예정이라고.

레알 마드리드에 있다가 바르셀로나에서 주장 및 감독직까지 해본 사람이라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이나 지역감정에 의한 엔트리 차별 논란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본인은 이에 대해 자신은 히혼 출신이라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정치적인 의견은 표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9월 A매치 때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만 6명을 차출해가고 오히려 스페인 주전이였던 바르셀로나의 선수인 조르디 알바를 차출하지 않으면서 전혀 다른 쪽으로 논란이 생겼다.[6]

첫 A매치를 앞두고 스페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방탈출 카페로 데려갔다고 한다.#

첫 A매치 2연전을 전부 이기며 기분좋은 출발을 알렸다. 특히 월드컵 준우승을 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젊은 선수가 주축인 된 스쿼드를 사용해서 6:0으로 대승했는데, 이는 크로아티아에게 A매치 최다 점수차 패배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나 2019년 6월 19일, 갑자기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직을 사임했다. 이유는 개인 가족 문제. 사임하기 전에도 가족 문제로 인해 경기에 나오지 못 한 적이 있었다.

2019년 8월 29일 그의 딸이 어린 나이에[7]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투병으로 인해 스페인 감독직을 일찍 내려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엔리케의 사임 이후, 스페인 감독을 맡은 수석 코치 로베르트 모레노"엔리케가 돌아오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뜻을 밝혔으며, 그 후 마음을 다시 추스렸는지 2019년 11월 19일에 복귀 선언을 했다.

하지만 복귀 이후 스페인 대표팀을 유로 본선에 올린 모레노와 복귀한 엔리케 사이에 갈등이 생겨 논란이 되고 있다. 모레노는 유로 본선에서도 계속 스페인 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는데 엔리케는 그걸 배신 행위로 받아 들인 모양인지 모레노를 수석 코치로도 복귀시키지 않고 내보내버렸다.[8]

6.1.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

그렇게 로베르트 모레노 없이 UEFA 네이션스 리그을 시작했으며 독일, 스위스, 우크라이나를 따돌리고 팀을 최종 결선에 진출시켰다. 특히 독일과의 경기에서 6대0이라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며 요아힘 뢰프 감독에게 비수를 꽂았다.[9]

그러나 지난 유로 때와 마찬가지로 선수 소집에 대하여 현지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주된 공격 대상은 가비세르지 로베르토로, 유로 2020부터 레알 마드리드 선수를 발탁하지 않는 것과 맞물려서 FC 바르셀로나 유망주에게 과도하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엔리케 감독은 이러한 주장에 인터뷰에서 자신이 축구를 더 잘 안다는 발언으로 응수했다.

2021년 10월 6일 네이션스리그 4강을 치렀다. 당시 이탈리아가 유로우승에 무패를 달리는데다가 이탈리아의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이기에 쉽지않을 전망이 많았으나, 37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던 유로 우승팀 이탈리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탈리아의 무패 행진을 마감시켰으며 유로 2020 4강전 승부차기 패배를 설욕했다. 경기내용에서도 원정팀인 스페인이 특유의 점유율 축구로 이탈리아를 압도했으며 2010년대 이후부터 이탈리아에게 상대전적에서 크게 우위를 보이는 분위기도 이어나갔으며, 이탈리아 원정에서 두 골이나 넣은 것은 1998년 친선전 2:2 무승부 이후 처음이다.

결승전에서는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와 맞붙었는데, 팀 고유 스타일대로 스페인은 점유율, 프랑스는 역습을 활용한 경기가 이어졌다. 스페인이 선취득점을 먼저 올렸으나 이어 벤제마, 음바페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며 접전끝에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다.

6.2. UEFA 유로 2020

UEFA 유로 2020 본선에 나초 페르난데스를 뽑지 않고 에릭 가르시아를 뽑았고, 리그에서 13골 14도움을 한 이아고 아스파스를 거르고 파블로 사라비아, 아다마 트라오레를 뽑았다는 이유로 현지에서 엄청나게 까였다. 또한, 역사상 최초로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가 단 한 명도 소집되지 않았다.

조별리그에서 2경기 연속 무를 캐며 위기에 빠졌다. 점유율은 두 경기 모두 70% 넘게 가져갔지만 결정력이 부족한 모라타만 주구장창 최전방에 박아놓음으로서 조별리그 탑시드 국가 중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도 최종전 상대 슬로바키아를 5대0으로 부숴버려 16강 진출은 성공했다.

16강 상대 크로아티아와의 대결에서는 서로 8골이나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5대3[10]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는 한 명이 퇴장당한 스위스를 상대로 1:1로 혈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심각한 결정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다만 승부차기에서 스위스가 무려 3명이 연속으로 실축하며 9년만에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4강에서는 이탈리아와 맞붙었고 경기력은 우위에 있었다는 평을 받았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결승에서 대회를 마쳤다.

전력이 아래로 평가받는 팀 상대로 무승부나 신승을 거두는 등 경기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지만, 2012년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세대 교체에 실패했다는 평을 받던 스페인을 이끌고 어린 선수로 팀을 완전히 개편하여 4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엔리케의 지휘 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냉정히 말해 스페인의 스쿼드는 우승권이 아니었다. 주장이자 수비의 핵심인 세르히오 라모스가 부상으로 명단에 들지 못했고 월드클래스 라이트백 다니엘 카르바할도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부상으로 빠진 선수가 워낙 많았던 데다가 핵심 센터백이던 이니고 마르티네스도 휴식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차출을 거부했고, 팀내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불어나 급하게 예비 명단을 짜야했다. 이러한 악재 속에서 어린 선수들과 베테랑을 잘 조화시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냈으며 특히 19살의 어린 선수인 페드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페인의 마에스트로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했다. 즉 어려운 상황 속에서 3년째 대표팀을 지휘하면서 어린 선수들로 리빌딩에 성공하여 좋은 성적까지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6.3.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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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예선에서 스웨덴에게 패하는 등 불안한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도 자국을 12회 연속 본선에 진출시켰다. 특히 본선 직행 여부가 달린 스웨덴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17세 유망주 가비를 선발로 내세우는 신의 한 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

본선에서는 일본, 독일, 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E조에 편성되었다. 애초 죽음의 조라고는 보기 힘들었던 게 이 그룹은 대회 전까지 내외 평가 모두 극단적인 2강 2약으로 정확히 나뉘었다. 스페인과 독일에겐 서로만 조심하면 문제없는 무난한 조 편성이였던 반면 이들에 비해 변방이나 다름없는 코스타리카나 일본의 입장에선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던 셈. 허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스페인, 독일은 자만심을 비롯해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 한 반면 짜임새 있는 수비 전술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일본이 사우디와 함께 대회 최대의 이변을 일으켜 버리며 혼돈의 조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같은 조에 속한 독일 대표팀의 감독 한지 플릭도 엔리케와 같이 2010년대에 클럽팀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다. 그야말로 두 명장이 만나는 셈이다.

한편 마지막 월드컵을 하는 세르히오 라모스를 최종 명단에 발탁시키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치른 요르단과의 평가전은 3대1로 완승했다.

그 후 조별 1차전 코스타리카를 7대0 대파했다. 점수도 점수지만 상대인 코스타리카가 슈팅은 커녕 코너킥조차 한번 시도하지 못한 것으로 1차전이지만 엔리케의 스페인이 빈틈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독일과의 2차전은 1대1 무승부로 경기를 끝냈다.

3차전 일본전에서는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고 우세를 이어갔지만 후반에 들어서자마자 일본의 텐백과 게겐 프레싱 전술에 밀려 2:1로 역전당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진행되는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경기에서 코스타리카가 잠시동안 독일에 앞서면서 조별리그 탈락 직전까지 갔었다. 그나마 얼마 가지 않아 독일이 동점골을 넣어 한시름 돌렸고, 경기 막판에는 독일이 역전골에 추가골까지 넣으면서 코스타리카의 패배가 유력해지자 조 1위로 진출할 경우 8강에서 만나는 브라질을 피하기 위한 브라질 탈압박 축구(?)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일본에 2:1로 패했고 조 2위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16강에서 모로코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8강 대진을 바라본 브라질 탈압박 축구가 무색하게 모로코의 수비벽에 막히며 90분 동안 한 골은 커녕 유효슈팅이 고작 1번밖에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11], 이어진 연장에서도 유효슈팅을 1개 추가하는데 그쳤다. 120분 패스 1050회를 기록할 동안 유효슈팅은 고작 2개를 기록한 것. 결국 승부차기에서도 한 골도 넣지 못하며 16강전에서 탈락하여, 지난 월드컵에 이어 두 대회 연속 16강전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 노출한 패스는 기록적으로 많지만 실속은 전혀 없는 스페인식 축구의 문제점을 여전히 고치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결국 탈락 직후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은 (엔리케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쓸쓸하게 대표팀을 떠났다. 후임은 2020 도쿄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스페인을 준우승시킨 루이스 데 라 푸엔테.

6.4.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스타일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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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백기 (2022~2023)

이후 디에고 시메오네의 뒤를 이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차기 감독으로 고려중이라고 한다. 기존 계속해서 링크가 있어왔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고려하였으나, 이는 거절하였다고 한다. 또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도 고려중이라고 한다.

런던에 도착해 그레이엄 포터 감독 후임을 찾는 첼시 FC의 감독직 후보 최상위로 언급되고 있으며, 런던에 방문해서 PPT를 포함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개 면접을 봤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감독직 후보군인 율리안 나겔스만과 아이디어에서 큰 차이를 보여서,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의하면 이사회에서 이 아이디어를 비교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엔리케 본인도 여름에 부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결국 첼시에서 램파드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시즌 중도 부임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최종적으로 첼시는 엔리케를 후보에서 제외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엔리케의 요구 조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던데다가 국가대표 감독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엔리케 사단의 코치들이 여러 클럽으로 흩어진 상태였고, 이 코치들의 계약 문제로 인해 사가가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서 엔리케를 최종 후보에서 포기했다고 한다.

토트넘 홋스퍼 FC의 차기 감독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5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의 차기 감독 후보 1순위라고는 하지만, 파리 생제르맹 FC도 엔리케를 원한다고 한다.

5월 들어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 후임으로 SSC 나폴리가 노리고 있었으나 결국 접는 수순이며, 여전히 엔리케는 토트넘이나 다른 PL팀 진출을 더욱더 선호한다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월 1일, PSG의 각 ITK들의 소식에 의하면 파리 생제르맹 FC의 부임이 유력하다고 하며, 계약 기간은 2+1년이라고 알려졌다.

토트넘은 엔지 포스테코글루마르코 실바를 엔리케보다는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후 토트넘은 엔지 포스테코글루를 선임하였고 PSG도 나겔스만과 합의가 가까워졌으나 협상에서의 이견 차이로 인하여 결국 나겔스만이 PSG와의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토니 후안마르티의 언급에 따르면 엔리케와 티아고 모타 중 한 명이 PSG의 감독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PSG 관련 1티어급 기자인 로익 탄지가 PSG는 엔리케를 선임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고, 파브리지오 로마노도 PSG와 엔리케가 협상 중이라는 보도를 하면서 엔리케의 PSG행이 기정사실화됐다. 현재 PSG는 미켈 아르테타, 샤비 알론소 등의 옵션들도 검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위에 언급된 감독들은 모두 소속팀이 있기 때문에 부임이 어려워 보인다.

결국 6월 19일 르퀴프에 따르면 PSG 감독 부임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한다.

6월 30일 파브리지오 로마노HERE WE GO를 띄우며 PSG 부임이 거의 확정되었다. 2년 계약. 파리 보드진이 영입한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르코 아센시오, 뤼카 에르난데스, 이강인, 셰르 은두르, 마누엘 우가르테를 잘 사용해서 챔스 우승에 성공하는것이 관건이다.

8. 파리 생제르맹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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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5일, PSG 감독 부임 오피셜이 떴다.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

8.1. 2023-24 시즌

8.1.1. 프리시즌

부임 전, 리오넬 메시가 인터 마이에미로 이적하였지만, 여러 선수들이 영입되었다.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르코 아센시오, 이강인, 마누엘 우가르테, 뤼카 에르난데스가 영입 되었고, 추가적으로 셰르 은두르가브리 베이가의 영입도 유럭한 상황이다. 이러한 영입들로 미드필더 진과 수비진을 재개편하여 이번 시즌 과연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 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프리시즌 경기에서는 전반적으로 엔리케의 단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는 아쉬운 모습이 연이어 벌어졌고, 결국 4경기에서 단 1승[12]만 거두면서 걱정거리를 낳고 있다. 그래도 네이마르까지 나온 전북 현대 모터스전은 3:0 승리를 거뒀다.

이후 우스만 뎀벨레를 50m, 곤살루 하무스를 80m에 영입한다는 로마노의 보도가 떴다. 비록 음바페의 이적이 유력하긴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을 쓰고도 챔스 우승에 실패한다면 파리 감독으로써의 위기에 놓일것으로 보인다.

8월 4일 파리가 루이스 캄포스와 엔리케 등 보드진들을 자를것이라는 몇몇 보도들이 있었으나 본인이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8월 8일 프리시즌까지의 모습을 보면 한쪽 측면은 직선적인 윙어를 배치하고 반대쪽은 풀백이 높게 올라오고 윙어는 안쪽으로 들어와서 하프 스페이스에서 플레이하는데 이 때 직선적인 윙어를 배치한 쪽의 풀백이 좁혀 들어오면서 변형 백3를 만든다. 문제는 가장 공격적인 풀백인 하키미는 오른쪽에서 뛰고 하프스페이스에서 플레이를 하는 롤에 가장 어울리는 네이마르는 왼쪽에서 뛰는데 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였는데 결국 그냥 단순하게 하키미를 왼쪽에 배치했다. 좋게 말하면 굉장히 강한 전술적인 신념을 보여준 것이고 나쁘게 보면 굉장히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

8월 9일 곤살루 하무스의 영입 오피셜이 떴다. FFP 때문에 1년 임대 이후 80m 필수 바이옵션을 통해 이적한다. 또한 아르나우 테나스사비 시몬스[13]를 영입하면서 미래를 대비했다.

8.1.2. 전반기

그리고 1R FC 로리앙와의 경기에서도 이러한 고집스러운 모습이 또 나타나며 의미없는 패스만 하다가 공격 찬스도 제대로 못 만드는 상황이 또 발생했고, 결국 그렇게 90분을 내내 허비하다가 홈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는 졸전을 펼쳤다. 감독으로서 전성기였던 바르셀로나 시절에도 세부 전술에는 약점이 있다는 평가였는데 세부 전술의 중요도가 더 커진 현재에 와서는 그 단점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전형적인 옛날 감독 테크를 타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다음 경기인 2R 툴루즈 FC와의 경기에서도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며 PSG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반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면 전임자들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크리스토프 갈티에보다도 더 평가가 안 좋아질 전망이다.

그나마 이후에 2연승을 거두면서 체면치레는 했으나 5R에서 심각한 졸전 끝에 OGC 니스에게 2:3으로 패배해 벌써부터 첫 패[14]를 쌓으면서 시즌 초반부터 좋지 않은 흐름을 또 이어가기 시작했고 이 경기 후에 팀의 경기력에 만족한다는 망언을 하면서 또 까이고 있다. 그나마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뒀고, 비록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는 감독이 공석인 상태이긴 했지만 6R 르 클라시크 홈 경기에서는 최전방의 개인 기량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전술의 골자를 수정해서 4:0으로 대승을 거두는 등 시즌 초반에 비하면 급한 불을 많이 끄긴 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2차전 뉴캐슬 원정에서 4-2-4 포메이션으로 중원에 미드필더 성향의 자원을 겨우 2명만 놓는 중원 삭제 축구를 함과 동시에 압박에 취약한 수비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며 졸전 끝에 4:1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뉴캐슬을 대놓고 무시해 음바페와 뎀벨레 등의 개인 기량으로 털어먹을 것을 믿고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가 안일한 수비 전술로 얻어터지고 만 셈. 감독 본인은 비판 여론에 전술 문제라기보단 아직 시즌 초라 선수들의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꾸준히 반복하다보면 경기력이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럴지 아닐지는 지켜볼 일.

리그앙 9라운드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와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다. 다만 아직은 여전히 팀 조직력보단 몇몇 선수들의 개인기로 득점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아있다. 여담으로 이강인도 국대 일정 이후 오래간만에 팀에 복귀해 선발로 나와 풀타임을 소화했다.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이강인과 음바페의 골에 힘입어 툴레즈를 2:0으로 꺾고 파리에서의 첫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8.1.3. 후반기


[1] 과르디올라의 평전 승리의 길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하자면 펩이 당시 4부리그에 있던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원하자 클럽의 수뇌부들은 펩을 바르사B 감독으로 임명하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를 4부리그로 보냈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것을 우려해 펩을 만류했으나 펩의 고집대로 결국 바르셀로나 B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2] 3위에 올랐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1부 리그로 승격되어야 하겠지만, A팀과 B팀은 같은 리그에 소속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승격하지 못했다.[3] 당초 AS 로마는 AC 키에보 베로나의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를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US 팔레르모의 지휘봉을 잡자 루이스 엔리케로 목표를 바꾸었다.[4]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데 라 페냐가 이전에 AS 로마의 더비 라이벌 팀인 SS 라치오에서 2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5] 당장 이니에스타가 월드컵 직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피케, 실바도 은퇴를 선언했고 남아공 월드컵 ~ 유로 2012 세대들도 대부분 30이 넘어서 세대 교체를 어느정도 단행해내야 할 때다.[6] 바르셀로나 시절, 제레미 마티유를 고집하면서 조르디 알바를 스쿼드에서 배제하면서 불화설이 있었는데, 이 불화설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정작 꾸레들은 레프트백 백업도 없는데 바르셀로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알바를 쉬게 해준다고 좋아했다 다만 그 이후 UEFA 유로 2020 본선에서도 정상적으로 차출되면서 그저 해프닝으로만 남긴 했지만.[7] 만으로 9살의 어린 아이다.[8] 사실 앤리케는 모래노가 수석코치 하기에는 너무 컸고 감독으로서 이미 준비되어있다고 평가한적이 있다.[9] 유망주들과 베테랑들의 완벽한 활약이 빛나 독일의 공격을 유효슈팅 0개로 완전히 묶어버렸고 점유율 70대 30으로 중원 역시 무너뜨리며 짓밟았다. 노이어에게 프로 경력 최다 실점을 선사한 것은 덤.[10] 연장전 스코어나 승부차기 스코어가 아닌 120분 정규 스코어다.[11] 심지어 전반전에 기록한 슈팅수는 1개였다.[12] 일본투어에서는 1무 2패로 아예 1승도 거두지 못했다.[13] 영입 이후 RB 라이프치히로 임대 이적[14] 참고로 갈티에 체제였던 지난 시즌에는 17R RC 랑스전에서야 리그에서 첫 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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