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22:13:20

루이즈 드 케루알

<colbgcolor=#E6E6FA><colcolor=#000000> 포츠머스 여공작
루이즈 드 케루알
Louise de Kérouaille, Duchess of Portsmouth
파일:Louise de Kérouaille.jpg
이름 루이즈 르네 드페낭코에 드케루알[1]
(Louise Renée de Penancoët de Kérouaille)
출생 1649년 9월 5일
프랑스 왕국
사망 1734년 11월 14일 (향년 85세)
프랑스 왕국 파리
자녀 찰스
아버지 기욤 드 페낭코에
어머니 마리 드 플로외 드 티머
형제 앙리에트
1. 개요2. 생애3.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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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국왕 찰스 2세의 정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재치를 자랑한 넬 그윈과 같이 찰스 2세의 임종을 지킨 정부 2명 중 하나다.

2. 생애

원래는 프랑스 브르타뉴귀족 집안 태생이었다. 찰스 2세의 왕비인 브라간사의 캐서린의 시녀였는데, 원래 프랑스에서는 집안 형편상 출세할 가능성이 없는 처지였다. 즉위 후 찰스 2세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눈에 띄면서 그의 정부가 되고, 총애를 받아서 포츠머스 여공작(Duchess of Portsmouth)의 작위까지 받는다. 하지만 케루알은 가톨릭 신자였어서 당시 잉글랜드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프랑스 스파이라는 의혹을 받고 수차례 죽거나 쫓겨날 위기도 겪었다. 반 가톨릭 여론으로 잉글랜드 내 가톨릭 신자들이 공격받을 때 찰스 2세의 왕비인 브라간사의 캐서린이 케루알의 신변을 보호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잉글랜드- 프랑스 간의 비공식적인 외교업무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잉글랜드에서도 귀족들은 같은 귀족 출신인 케루알을 선호했다. 서민들이 좋아했던 넬 그윈은 신분이 너무 낮았고, 찰스 2세의 나머지 정부들은 국정 개입과 사치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

케루알은 찰스 2세에게 가장 사랑받은 정부로 여겨진다. 1663년에 케루알은 찰스 2세로부터 포츠머스 여공작, 페어햄 여백작, 피터스필 여남작으로 봉해졌다. 또한 찰스 2세는 프랑스에 요청해 케루알이 프랑스의 오비니 여공작에 임명되도록 했는데, 자신이 죽은 뒤에도 케루알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찰스 2세가 죽은 뒤에 케루알은 가끔 아들인 리치몬드 공작을 만나는 것 이외에는 고향인 프랑스로 가서 살았다. 제임스 2세가 혁명으로 쫓겨난 뒤 찰스 2세에게 받은 지위와 영지가 인정되지 않아 말년에 빚에 시달렸다. 그러나 루이 14세 사후 루이 15세의 섭정이 된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가 연금을 주고 보살펴주면서 채권자들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케루알은 1734년에 85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3. 일화

같이 찰스 2세의 정부로 살았던 넬 그윈과 경쟁하기도 했는데, 사이가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고 사적으로는 그럭저럭 친근한 모습도 보였다. 나이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둘은 거의 나이가 비슷하다.[2] 주로 재치 있는 넬 그윈이 케루알을 놀려먹었지만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의지하기도 하며 도박장 같은 궁정의 카드놀이 친구이기도 했다고 한다. 넬이 케루알의 징징거리는 성격을 비꼬아 수양버들(weeping willow)[3]이라 부르거나, 왕 앞에서 케루알의 프랑스식 억양을 따라하며 놀려먹기도 했지만 왕이 또 다른 정부에게 정신이 팔리자 실의에 빠진 케루알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고. 티격태격하지만 어느 정도 동질감도 느끼는 악우 비슷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케루알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태생부터 귀족(그것도 당대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이어서 성격이 서민과 맞지 않았다는 의견이 정설이다. 다만 애시당초 왕의 정부라는 존재가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은 사례 자체가 극히 드물다. 같은 찰스 2세의 정부였던 넬 그윈이 서민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넬이 하층민 출신이라 평민들과 공감대가 있었던 데다 재치와 유머감각이 매우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일. 영국 서민들이 프랑스 귀족 출신 가톨릭 신자인 케루알을 싫어하면서, 그녀와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넬 그윈(영국인, 하층민, 개신교 신자)이 반사이익을 누린 점도 있을 것이다.

왕립학회를 지원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찰스 2세에게 그리니치 천문대의 건립을 후원하도록 조언했는데, 나중에 이게 경도의 기준점이 된 것을 생각하면 과학사적으로도 상당한 업적을 남긴 셈.

후손인 리치몬드 공작은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으며 제11대 리치몬드 공작인 찰스 고든레녹스가 그녀의 직계 후손이다.

영국 특유의 사회계층 분리 때문에 흔한 사례이긴 하지만 다이애나 스펜서,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공통 조상이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루이즈는 1649년 9월 5일, 넬은 1650년 2월 2일 출생으로, 나이를 심하게 따지는 한국에서도 대충 넬을 빠른 50년생으로 쳐서 그냥 친구 먹기 충분한 나이다.[3] weep은 '울다'라는 뜻.(weeping angel을 생각하면 된다) 한국어로 빗대자면 징징댄다고 징징이라고 놀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