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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선수 경력/마이애미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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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즌3. 수상4. 둘러보기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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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 시절 활약상을 모아놓은 문서이다.

2. 시즌

첫 시즌에 파이널에서 매우 안좋은 경기력으로 파이널에서 크게 부진하며 큰 위기를 맞았으나 그래도 그 다음 시즌부터 리핏에 성공하며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시즌 3-peat와 통산 3회 우승에 실패하게 된다. 사실 2회라는 파이널 우승은 당시 멤버의 이름값에 비해 적다는 평가가 있으며[1], 이때부터 동부의 지배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때 등번호를 캐벌리어스 시절 23번에서 6번으로 교체했는데 당시 히트는 마이클 조던의 위대함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뛰지도 않은 조던의 등번호 23번을 영구결번 처리했기 때문이다.[2]

2.1. 201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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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트로의 이적 후 첫 시즌이다.
  • 디시전 쇼를 통한 빅3 결성 및 이적, 독감에 걸린 상대 에이스를 조롱한 행위, 그럼에도 2011 NBA 파이널에서의 업셋 패배와 개인적인 부진, 리얼월드 발언까지 맞물려 르브론의 안티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긴 시즌이였다.[3]

2.2.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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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최악의 패배를 당한 르브론과 히트는 각각 포스트업 장착과 전력 보강을 통해 한층 더 강해졌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진출하였다.
  • 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은 라존 론도의 각성모드를 앞세운 보스턴에게 밀렸고 실제로 엘리미네이션에 몰리며 큰 위기를 맞는 듣 했으나... 그때부터 르브론이 대각성해 말도 안되는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결국 2012 NBA 파이널에서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때 동부 결승 6차전에서 보여준 경기를 보스턴 침공이라고 부르며 르브론에 커리어의 전환점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으니.[4]

2.3.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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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에 이어, 아니 작년보다 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야투 성공률이 경외감을 들게 할 정도로 높아졌다. 결국 시즌 MVP를 거의 만장일치로 달성하며 시엠 리핏에 성공했다.
  • 플레이오프는 1,2라운드의 경우 비교적 수월하게 뚫었지만, 컨파부터는 정말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폴 조지와의 쇼다운에서 이겨내고 2013 NBA 파이널에서는 2승3패까지 몰리며 리핏은 힘들까 했으나, 6차전 막판부터의 대활약과 조력자의 도움으로 결국 파엠 리핏도 성공했다.
  • 르브론의 최전성기 시즌이다. 3점 성공률이 40.6%인것만 봐도 설명이 필요없어 보인다.[5]

2.4.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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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자 3-peat에 도전했던 시즌이였다. 정규시즌 샬럿과의 경기에서 61점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플옵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 파이널에서 2년 연속으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났다. 하지만, 그간 쉼없이 달려온 탓에 르브론을 제외한 다른 마이애미 선수단들이 집단 부진에 빠졌고 반면 샌안토니오는 선수단 전체가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2014 NBA 파이널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3. 수상

4. 둘러보기

{{{#ffffff [[르브론 제임스|르브론 제임스]]의 클럽 커리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마이애미 히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ffffff [[마이애미 히트|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6번}}}
마리오 찰머스
(2009~2010)
르브론 제임스
(2010~2014)
결번

5. 관련 문서


[1] 실제로 마이애미 BIG 3 결성 당시 반응은 3-peat와 10년의 기간 안에 4회 이상 우승은 당연히 여겨졌다. 그리고 전력마저도 역대 왕조라 평가받은 1990년대 시카고 불스, 2000년대 초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9년부터 2007년까지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보다 훨씬 좋다는 평가마저 받았다.[2] 6번으로 바꾼 이유는 2×3=6라는 이유와 우연히 첫째 아들 브로니 제임스가 2004년 10월 6일 생, 둘째 브라이스가 2007년 6월 14일 생인지라 자신의 삶과 항상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레이커스 시절에 다시 등번호를 변경하며 밝혔다.
[3] 이 시즌에서의 르브론의 행적들은 지금까지도 안티팬들에게 가장 큰 조롱거리이며, 독감에 걸리고 개인적인 모욕까지 당했음에도 묵묵히 팀의 파이널 우승을 이끈 디르크 노비츠키는 NBA의 영웅이 되었다.[4] 당시 컨파 6차전에서 르브론은 3쿼터 중반에 이미 40점을 넘긴 상태였다. 플옵에서 40점을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보면 정말 경이로운 득점 페이스를 보인 것이다. 르브론 커리어에 가장 위대한 경기 셋을 꼽으라고 하면, 2007년 동부 결승 5차전(통칭 디트로이트 침공), 2018년 파이널 1차전(50점 넣고 그 역주행으로 패배)과 함께 반드시 회자된다.[5] 르브론 같은 선수가 3점을 이정도로 넣는다면 리그 파괴 수준이다.[6] 시즌 MVP와 우승, 파이널 MVP를 동시에 리핏했는데, 이는 1991년-1992년 마이클 조던 이후 최초이며 2번 이상 같은 해에 시즌 MVP와 파이널 MVP를 동시 석권하는데 성공한 선수는 마이클 조던(4회)과 래리 버드, 르브론 단 3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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