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9 10:44:17

리일규


<colbgcolor=#000><colcolor=#fff> 리일규
Ri Il-kyu
파일:리일규(1).jpg
출생 1972년 ([age(1972-01-01)]세)
평양시[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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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1기)
가족 배우자, 자녀
학력 평양외국어학원 (프랑스어과 / 졸업)
쿠바 아바나대학 (프랑스어과 / 졸업)
평양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 졸업)
경력 쿠바 북한대사관 3등(대외직급 1등) 서기관
북한 외무성 정책종합국 과장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겸 당세포비서[3][4]

1. 개요2. 생애
2.1. 탈북2.2. 한국에서의 활동
3. 경력4. 언론 보도5. 여담6. 방송 출연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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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전직 외교관.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정무참사로 재직하던 2023년 11월 무렵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입국했고,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로 탈북 사실이 공개되었다. 대한민국 입국 이후에는 언론·방송 인터뷰를 통해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2. 생애

파일:2013년리일규.jpg
2013년 청천강호 억류 당시 파나마로 파견된 리일규 (왼쪽)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고, 김정일의 프랑스어 통역원을 하고 조선중앙통신 방송기자를 하다가 통일전선부 산하 무역회사에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알제리쿠바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평양외국어학원과 쿠바 아바나대학, 1995년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1999년 외무성에 입부했다.

2011년 첫 해외 근무지로 쿠바 대사관의 3등서기관(대외직급은 1등서기관)으로 발령받았다.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지대공 미사일과 MiG-21 전투기 부품을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가 미국 정보당국에 포착되어 대북제재 위반으로 압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5] 리일규 본인이 밝힌 바로는, 자신은 쿠바에 청천강호가 온 줄도 몰랐고 첫 해외 발령지에서 이런 사건의 수습이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을 뒤집어 쓰고 앞길이 막힐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건 처리를 맡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수습을 맡아 각종 관련 법을 공부하여 파나마 당국과 법리를 다퉈 1년 뒤 재판에서 승소하고 청천강호의 억류를 해제, 선원과 선장을 석방시켜 김정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평양외무성에서 2016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정책종합국(1국) 과장, 이후 2019년까지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로 근무했다. 2018년 9월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이사회 위원장방북 행사 등을 총괄하며 이때 처음으로 김정은과 대면했다.

2019년, 쿠바 대사관의 정무참사(정치 담당 참사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맡았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한국-쿠바 수교의 저지였다. 물론, 임무는 실패했고 쿠바는 한국과 수교를 했다.

2.1. 탈북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BBC코리아와의 인터뷰

탈북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노력에 대한 불평등한 평가, 그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 때문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주로 권세 있는 집안 출신이 많다. 일반적으로 노동계급, 군인계급, 사무원계급, 농민계급으로 나뉘는데 리일규 본인은 사무(事務) 출신으로 사회성분이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해 최하위 직급으로 입직하여 성실히 노력해 고위직에 올랐다고 밝혔다.

북한 엘리트 외교관 이일규의 망명을 위한 쿠바 탈출기🔥🧳🛫ㅣ이만갑 684회
2019년 8월, 리일규는 대사관의 자금사정에 보탤 목적으로 쿠바북한식당을 개업하고자 허가를 받기 위해 평양으로 들어가 후배였던 외무성 대표부지도과[6] 부국장을 만났다. 부국장은 개업 허가를 위해 뇌물을 요구했지만 리일규는 당장 자금 여력이 없어 추후에 꼭 줄테니 참아달라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후배 부국장은 앙심을 품고 실적 평가에 불이익을 주고 정치적인 누명을 씌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등 리일규를 4년 동안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한다. 2023년 과로로 인한 목디스크로 오른팔 마비 증상이 생겨 의료 사정이 열악한 쿠바가 아닌 멕시코의 병원에서 치료받고자 외무성 대표부지도과에 출국 허가를 요청했으나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거부당했다. 불과 몇주 전 다른 외교관이 치료목적 출국을 허가받았고 보통 답신이 오는데까지 2주가 걸리는데 자신의 요청은 하루만에 칼같이 거부당했으니 후배 부국장이 배후에 있음을 짐작한 리일규는 격분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와 장인, 장모가 모두 사망한 것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결심에 일조했다고 한다.

출국을 거부당한 후 일주일 만에 탈북을 실행하게 되었는데, 원래라면 외교관이어도 여권을 본인이 소지하지 못하고 대사관에 맡겨놓아야 했다. 때마침 코로나19 봉쇄로 오랜 기간 여권이 방치되어 유효기간이 만료되었고 새 여권을 신청해 의도적으로 수령을 미루다가 탈북 실행일 저녁에 받아 여권을 수중에 확보할 수 있었다. 새벽 5시행 비행기표를 미리 예매해놓고, 탈북 6시간 전인 밤 10시에 아내와 아이를 불러 "외국에 나가 살자"는 말로 탈북할 결심을 밝혔다. 자가용을 대사관 건물 주차장에 두었기에 차를 가지러 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새벽 2시에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당시 앞집에 다른 북한 외교관 가족이 살고 있어서 밤에 나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길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모아둔 달러를 비롯한 소지품을 챙겨둔 가방을 가져오는 것도 잊고 급하게 탈출했다.

일가족은 쿠바를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해 제3국으로 이동했고, 그 국가에 주재한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제3국의 공항 경찰이 리일규의 정치적 망명을 거부하면서 쿠바로 송환하겠다고 통보하고 리일규와 가족을 공항에 억류했다. 다행히 해당국의 대한민국 대사가 도착하여 문제는 해결되었으며[7] 2023년 11월경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미국 국무부 파텔 부대변인은 2024년 7월 18일 브리핑에서 리일규의 한국 망명과 관련한 논평 요청에 대해 "북한 정권의 참혹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2.2. 한국에서의 활동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로 탈북 사실이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다수의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북한 관련 포럼 및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년 8월 2일, 영국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북한주민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국에 더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8월 27일, 민주평통 사무처를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했다. 강연에 앞서 수석부의장 김관용과 접견하고 차담 시간을 가진 후 사무처장인 태영호가 자신의 사무실을 둘러보게 했는데, 태영호를 대하는 모습이 마치 직장 상사를 대하는 부하 직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외교관 후배이자 학교 후배로서 선배인 그를 깍듯하게 모신 듯하다.#

2024년 9월 26일, 민주평통 제21기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2024년 11월 15일, 통일부-인권위-권익위 북한인권 공동토론회에서 북한 외무성과 재외공관이 2016년부터 2023년 사이에 주고받은 북한 인권 관련 외교전문 12건을 공개했다. 해당 전문은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할 당시 직접 입수해 탈북할 때 가져온 것으로, 다른 전문의 추가적인 공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5년 2월 9일, 16일, 이제 만나러 갑니다 684, 685회에 前 북한 외교관 자격으로 출연하여 자신이 왜 탈북을 하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김정은에 대해 증언했다.

3. 경력

  • 쿠바 북한대사관 3등(대외직급 1등) 서기관 (2011. 9 ~ 2016. 1)
  • 북한 외무성 정책종합국 과장 (2016. 4 ~ 2016. 12)
  •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 (2016. 12 ~ 2019. 2)
  •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겸 당세포비서 (2019. 3 ~ 2023. 11)[8][9]

4. 언론 보도

5. 여담

  • 성명의 한자 표기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한국 언론의 중국어, 일본어 뉴스나 중국 및 일본의 언론에서는 李日奎로 표기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해당 한자로 표기했다.
  • 김정은과 여러 차례 대면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혈압이 굉장히 높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다고 한다. 김정은은 연회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얼굴이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새빨갛고 대화를 하면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고 한다.
  • 북한 외무성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월급이 3,000 북한원(약 0.3달러)였다. 북한의 시장 환율이 2024년 7월 기준 '1달러 = 12,000 북한원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약 0.25달러, 공식 환율(1달러 = 100북한원)로는 30달러(한화 약 41,200원)이다. 쿠바에서 참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월급으로 500달러(약 70만 원)를 받았다. 월급이 너무 적어 외교행낭을 이용해 쿠바산 시가 담배를 밀수[10]해서 부족한 자금을 보충했다고 한다. 외교행낭은 비엔나 조약에 의해 당사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가 내용물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 이 외교행낭을 이용한 밀수때문에 리일규는 북한 외교관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11]로 표현했다.
  • 같은 북한 외교관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리일규에게 "참 잘 왔다"면서 함께 통일을 꼭 이뤄 언젠가 다시 평양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태영호와는 평양외국어학원 동문이고, 예전에는 탁구 라이벌이었다고 밝혔다.#
  • 태영호가 탁구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번도 못 이겨봤다고 한 것처럼 북한 외무성 내에서 탁구를 잘 치기로 유명했던 모양인지, 2024년 4월 7일자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2015년에 탈북한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 출신인 한진명이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에게 외무성 6국에서 탁구 잘 치기로 유명한 리일규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장면(3:56~) 류현우 대사대리는 리일규와 평양외국어대학 동창으로, 같은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에서 15년 동안 일했다고 밝혔다.
  • 평양랭면이 남한의 냉면보다 맛있다는 남한 내 인식과는 달리 북한에서 먹던 평양랭면은 밍밍한 맛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남한의 마트에서 파는 봉지에 든 평양냉면은 맛있어서 매일 사서 먹는다고 한다.#
  • 탈북하기 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임무는 한국-쿠바 수교 저지였다. 수교 준비 과정에서 북한의 쿠바 전문 외교관이 탈북했으니 대한민국으로서는 외교전에서 완승을 거둔 셈이다. 한국과 쿠바는 2024년 2월 14일 수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유엔 회원국 중 2개국이던 단독 수교국이 시리아 1개국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참관국인 팔레스타인까지 포함하면 2개국이다.)
  • KBS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쿠바인이 "노스에서 왔냐, 사우스에서 왔냐"고 물을 때마다 북한이 창피해서 사우스라고 답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채널A 인터뷰에서는 쿠바인이 "¿Corea bueno? ¿Corea malo?(좋은 한국이야? 나쁜 한국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좋은 한국은 어디고 나쁜 한국은 어디냐"고 되묻자 노스는 나쁜 한국, 사우스는 좋은 한국이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고 한다.# 북한은 가난한 것도 모자라서 온갖 불량 행위를 다하는 불량 국가라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차라리 못살기만 했으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외교관의 긍지는 자신의 국가라는 격언과 함께 북한 외교관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 외교관들이 해외에 나갈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초상휘장을 떼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 고립의 가장 큰 이유는 '3대 세습'이라고 비판했으며, 세습이 진행될 때마다 외교력이 더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같은 친북 성향의 국가 조차도 북한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것을 기피했으며,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가장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 주재국 주민의 시각이었다고 한다. 북한의 외교관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는 것을 가장 싫어했고, 국적을 답할 때 '노스(North)'라고 답하는 게 치욕스러웠다며 "내 국가가 창피스러운데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귀순 당시 잠시 들렀던 제3국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대한민국 외교관과 북한 외교관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느꼈다고 술회하였다.
  • 김정은 시대 북한 대외정책의 특징은 "김정은의 권위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김정은이 자신의 '위대함'을 각인시키는 데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있다 보니 외교관들이 김정은에 대한 외부 비판에 대응해 싸우는 것이 충성심을 평가하는 척도였다고 한다. 아울러 "김정일 시대에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을 이른바 악마화하는 여론이 있어도 일절 반응하지 않는 외교를 구사했는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외부에서 김정은의 권위에 대해 비판을 가해올 경우 적극 반박하는 태도로 전환했다"라고도 밝혔다.#
  • 외교관으로서 격식을 차려서 대외업무에 나서지만 내심 장난기 있는 성격인 듯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날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입소해 잠을 청했는데, 곤히 자고 있는 아내에게 '오늘 토요일이다. 생활총화 가야지?'라고 깨웠다가 아내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고 한다.

6. 방송 출연

7. 관련 문서


[1] 대한민국 헌법과 국적법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주민과 후손들은 외국 국적을 따로 취득하지 않은 이상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보유하게 된다. 북한에 행정권이 미치지 않음에 따라 북한주민은 남한 국적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남한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표기를 하지 않는다. 대법 96누1221 판결[2] #[3] 리일규 프로필 참조[4] 정무참사의 경우, 대한민국의 공무원 급수와 대응하면 2급 공무원으로 취급된다.[5] 사실 무기 거래는 아니었고 쿠바가 자국의 전투기를 북한에 위탁수리를 맡기기 위해 보낸 것이었다고 한다.[6] 해외 북한 대사관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이다.[7] 대사가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니 우리 대한민국에서 보호하겠다고 말하니까 자신의 외교관 신분과 근거를 밝혀도 들은 척도 안 하던 공항 경찰들이 전부 물러났다고 한다.[8] 리일규 프로필 참조[9] 정무참사의 경우, 대한민국의 공무원 급수와 대응하면 2급 공무원으로 취급된다.[10] 시가 120~150갑을 중국으로 밀수하는데 한 달에 15,000~30,000달러를 벌 수 있었다고 한다.[11] 이 별명은 2000년대 초반 외교관을 일컽는 말로 평양에서 유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