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23:49:26

리일규


<colbgcolor=#000><colcolor=#fff> 리일규
Ri Il-kyu
파일:리일규(1).jpg
출생 1972년 ([age(1972-01-01)]세)
평양시[1]
가족 배우자, 자녀
학력 평양외국어학원 (프랑스어과 / 졸업)
쿠바 아바나대학 (프랑스어과 / 졸업)
평양외국어대학 (에스파냐어과 / 졸업)
경력 쿠바 북한대사관 3등(대외직급 1등) 서기관 (2011. 9 ~ 2016. 1)
북한 외무성 1국 과장 (2016. 4 ~ 2016. 12)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 (2016. 12 ~ 2019. 2)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겸 당세포비서 (2019. 3 ~ 2023. 11)[2][3]
소속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2023)

1. 개요2. 생애
2.1. 탈북
3. 언론 보도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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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前 외교관.

2023년 11월경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고, 이후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로 공개되었다.

2. 생애

파일:2013년리일규.jpg
2013년 청천강호 억류 당시 파나마로 파견된 리일규 (왼쪽)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고, 통일전선부 산하 무역 회사에서 대남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알제리쿠바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평양외국어학원과 쿠바 아바나대학,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1999년 외무성에 입부하였다.

쿠바 대사관의 3등서기관(대외직급은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던 2013년, 파나마에서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지대공 미사일과 MiG-21 전투기 부품을 싣고 통과하려다가 압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리일규는 파나마와 교섭을 벌여 청천강호의 억류를 해제시키고 선원과 선장을 석방시켜 김정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평양외무성에서 2016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국(방침집행국) 과장, 이후 2019년까지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로 근무하였다.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이사회 위원장방북 행사 등을 총괄하며 여러 차례 김정은과 대면하기도 했다.

2019년, 쿠바 대사관의 정무참사(정치 담당 참사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맡았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한국-쿠바 수교 저지였다.

2.1. 탈북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BBC코리아와의 인터뷰
탈북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노력에 대한 불평등한 평가, 그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 때문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주로 권세 있는 집안 출신이 많은데, 본인은 사무(事務) 출신으로 사회성분[4]이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해 최하위 직급으로 입직하여 성실히 노력해 고위직에 올랐다고 밝혔다.

2019년 8월, 쿠바북한식당을 내기 위해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지도과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는데 리일규는 자금 여유가 부족해서 미뤘다. 이에 대표지도부과 부국장은 앙심을 품고 그를 소환하려 했고, 업무평가에도 불이익을 주었다. 2023년 목디스크로 오른팔 마비 증상이 생겨 멕시코로 이동해 치료하게 해달라고 외무성에 요청했으나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거절당했고, 이때 격분하여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가 모두 돌아가신 것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결심에 일조했다고 한다.

2023년 7월 중순부터 탈북을 준비해 11월경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쿠바를 떠나 제3국을 거쳐 탈북했으며, 구체적인 탈북 방식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사전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추후에 탈북할 다른 외교관들을 위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여권이 발급되자마자 비행기표를 사놓고, 탈북 6시간 전인 밤 10시에 아내와 아이를 불러 "외국에 나가 살자"는 말로 탈북할 결심을 밝혔다. 자가용을 대사관 건물 주차장에 두었기에 차를 가지러 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새벽 2시에 택시를 불렀다. 당시 앞집에 다른 북한 외교관 가족이 살고 있어서 밤에 나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길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모아둔 달러를 비롯한 소지품도 다 못 챙기고 급하게 탈출했다.

미국 국무부 파텔 부대변인은 2024년 7월 18일 브리핑에서 리일규의 한국 망명과 관련한 논평 요청에 대해 "북한 정권의 참혹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3. 언론 보도

4. 여담

  • 김정은과 여러 차례 대면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혈압이 굉장히 높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다고 한다. 김정은은 연회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얼굴이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새빨갛고 대화를 하면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고 한다. 리 참사의 이와 같은 증언이 이제 만나러 갑니다 662회에서도 김정은의 건강 문제에 대한 주제에서 또 인용되었다.
  • 북한 외무성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월급이 3000북한원(약 0.3달러)[5]였으며, 쿠바에서 참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월급으로 500달러(약 69만 원)를 받았다. 월급이 너무 적어 외교행낭을 이용해[6] 불법 시가 담배 밀수를 해서 부족한 돈을 보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리일규는 북한 외교관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로 표현했다.
  •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리일규에게 "참 잘 왔다"면서 함께 통일을 꼭 이뤄 언젠가 다시 평양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태영호와는 평양외국어학원 동문이고, 예전에는 탁구 라이벌이었다고 밝혔다.#
  • 태영호가 탁구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번도 못 이겨봤다고 한 것처럼 북한 외무성 내에서 탁구를 잘 치기로 유명했던 모양인지, 2024년 4월 7일자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2015년에 탈북한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 출신인 한진명이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에게 외무성 6국에서 탁구 잘 치기로 유명한 리일규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장면(3:56~) 류현우 대사대리는 리일규와 평양외국어대학 동창으로, 같은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에서 15년 동안 일했다고 밝혔다.
  • 북한에서 먹던 국수는 밍밍한 맛이었지만 남한의 마트에서 파는 봉지에 든 평양냉면은 맛있어서 매일 사서 먹는다고 한다.#
  • KBS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쿠바인들이 "노스에서 왔냐, 사우스에서 왔냐"고 물을 때마다 북한이 창피해서 사우스라고 답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7] 북한은 가난한 것도 모자라서 온갖 불량 행위를 다하는 불량 국가라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차라리 못살기만 했으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외교관의 긍지는 자신의 국가라는 말과 함께 북한 외교관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 탈북하기 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임무는 한국-쿠바 수교 저지였다. 수교 준비 과정에서 북한의 쿠바 전문 외교관이 탈북했으니 대한민국으로서는 외교전에서 완승을 거둔 셈이다.[8] 이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북한으로 소환되었으니, 만약 탈북하지 않았다면 리일규도 한국-쿠바 수교에 대한 책임을 졌을 것이다.
  • 해외에 나갈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초상휘장부터 떼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9] 이와 함께 북한 고립의 가장 큰 이유는 '3대 세습'이라고 비판했으며, 정권이 바뀔수록 외교력이 더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또 친북 성향 국가들[10]조차도 북한과 같은 취급을 받는 걸 꺼렸으며,[11] 가장 가슴 아프게 외교 고립을 느낀 것은 주재국 주민들의 시각이었다며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는 것을 외교관들이 가장 싫어했고, 국적을 물을 때 '노스(north)'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치욕스러운지 몰랐다며 "내 국가가 창피스러운데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 김정은 시대 북한 대외정책의 특징은 “김정은의 권위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김정은이 자신의 '위대함'에 대해서 각인시키려고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있다 보니 외교관들이 김정은에 대한 외부 비판에 대응해 싸우는 것이 충성심을 평가하는 척도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김정일 시대에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을 이른바 악마화하는 여론이 있어도 일체 반응하지 않는 외교를 구사했는데,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외부에서 김정은의 권위에 대해 비판을 가해올 경우 적극 반박하는 태도로 전환했다고도 밝혔다. #
  • 영국 BBC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북한이나 북한주민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내심 바라며 트럼프가 북한에 더 이득이라고 밝혔다.
  • 민주평통 청사를 방문하여 강연을 하였다. 김관용과 접견하기도 하고, 태영호가 자신의 사무실을 둘러보게 하였는데 태영호를 대하는 모습이 직장 상사 대하는 모습과 같다. 외교관 후배이자 학교 후배로서 깍듯하게 모신 듯. #
  • 탈북 후 국회에서 열린 '북한 그리고 통일 포럼'에서 참석했을 때, 북한 외교관들이 외국에 나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초상휘장을 떼서 주머니에 숨기는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 초상휘장의 북한 내에서 위상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덧붙여 북한 외교관들은 외국에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질문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며, 자신도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치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5. 관련 문서


[1] 대한민국 헌법과 국적법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주민과 후손들은 외국 국적을 따로 취득하지 않은 이상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보유하게 된다. 북한에 행정권이 미치지 않음에 따라 북한주민은 남한 국적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남한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표기를 하지 않는다. 대법 96누1221 판결[2] 리일규 프로필 참조[3] 정무참사의 경우, 대한민국의 공무원 급수와 대응하면 2급 공무원으로 취급된다.[4] 일반적으로 노동계급, 군인계급, 사무원계급, 농민계급으로 나뉜다.[5] 북한의 시장 환율이 2024년 7월 기준 '1달러 = 12,000북한원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약 0.25달러, 공식 환율(1달러 = 100북한원)로는 30달러(한화 약 41,200원)이다.[6] 외교행낭은 비엔나 조약에 의해 당사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가 내용물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7] 채널A 인터뷰에서는 쿠바인이 "¿Corea bueno? ¿Corea malo?(좋은 한국인이야? 나쁜 한국인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좋은 한국은 어디고 나쁜 한국은 어디냐"고 되묻자 노스는 나쁜 한국, 사우스는 좋은 한국이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고 한다.#[8] 한국과 쿠바는 2024년 2월 14일 수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유엔 회원국 중 2개국이던 단독 수교국이 시리아 1개국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참관국인 팔레스타인까지 포함하면 2개국이다.)[9] 국제적으로 북한의 이미지가 '깡패국가'로 각인되었기에 북한의 고위층임을 숨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0]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 등이 대표적이다.[11] 친북 국가의 사례는 아니지만, 실제로 북한은 2016년 UN 총회에서 모크위치 마시시 보츠와나 부통령에게 "악당국가", "UN 회원국 자격도 없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 실제로 보츠와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경제, 정치 모두 가장 건실한 국가인 만큼 2014년 UN이 작성한 북한 인권 보고서를 읽고 북한의 인권 실태와 안보 위협에 분개하여 북한과 단교할 정도였는데, 이때 북한은 보츠와나에게, 그것도 UN에서 검둥이(black bastard) 운운했다. # 이후 2015년 이안 카마 대통령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부가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 아프리카 약소국에게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보츠와나는 겉보기에만 약소국일 뿐 내실은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탄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