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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bgcolor=#bc0021,#222222><colcolor=white> 설립 | 1948년 |
외무상 | 최선희 |
상위 조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
주소 | 외무성 청사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1] |
[clearfix]
1. 개요
북한의 내각기관. 외교업무를 총괄하는 정부기관이다.대부분의 내각기관은 반드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전문부처와 협의 후 여러 절차를 거쳐야 김정은에게 보고할 수 있지만, 외무성은 국제부라는 당 전문부서와 사전 협의 없이 외무상이 '직보'라는 직접 보고를 할 수 있는 조직 중 하나이다.
2. 특징
북한의 성급 정부기관 중에서 매우 중요한 부서이다. 내각의 지휘를 받지 않으며, 북한의 5대 권력기관에 속한다.[2]외무성은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외교적 고립과 대북제재 속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이용한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기관이다. 친북 국가들과의 협력 및 이익을 증진하는 데 있어서도 외무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일의 지시로 1980년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의 정책 협의와 지도 없이 직접 보고 할 수 있는 4대 특수기관[3]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공산국가는 외교 전반을 총괄하는 국제부가 있고, 또 공산주의 국가와의 당대당 외교는 연락부를 두던가 아니면 국제부가 외교 전반을 총괄하던가 하지만, 북한의 경우 연락부가 대남 공작부서였고 국제부가 당대당 외교, 외무성/외교부가 대서방 외교를 담당하는 시스템이 김일성 말기에 정착하게 된다. 이를 두고 외교부의 부상을 시기한 국제부가 딴지를 걸어 한때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이 혁명화를 다녀오기도 하였으나, 김용순이 주도한 90년대 대미, 대일외교가 모두 처참한 실패로 돌아간 반면 강석주가 주도한 제네바 합의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김정일은 대미 외교에 있어 외교부/외무성을 확실히 신임하게 된다. 그리고 90년대 핵 협상과 식량지원 외교 전권을 위임받으며 내각과의 권력관계가 역전되었다.[4]
외무성의 위상은 김정일 시기에 최고조를 달려 6자회담 등 대미 협상의 전면에 나섰으며 제1부상 강석주는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내각부총리를 거쳐 정치국 위원에 선출될 정도였으나 김정일 말기에 지나치게 강력해진 외무성을 시기한 조직지도부와의 알력으로 타격을 좀 입게 된다. 리제강의 주도로 강석주는 외무성에서 내각으로 전출되었고, 좀 더 고분고분한 김계관으로 제1부상이 교체되었는데, 외무성도 인맥이 강력한 만큼 조직지도부와 엎치락 뒷치락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정일의 뒤를 이은 김정은의 경우 외무성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통전부를 더 총애했다. 이 때문에 주요 협상에선 국제비서로 조동된 강석주와 대남비서 김양건이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2018년 대미협상 때도 대남 부위원장 김영철이 주도적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외무성에서도 리수용, 리용호, 최선희가 잇달아 기용되면서 어느 정도 위상을 발휘하였다. 리수용 외무상 시절까진 중앙위원에 그쳤으나 후임 외무상인 리용호가 정치국 후보위원을 거쳐 정치국 위원에 선출되었고, 제1부상 김계관과 그 후임 최선희도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에 외무상과 외무성 제1부상이 모두 위원으로 소속되면서 국방성과 사회안전성, 국가보위성과 더불어 내각 총리가 아닌 국무위원장의 직할 명령을 받는 성급 기관으로 격상되었다.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최선희가 국무위원회에서 방출되고 외무상이 정치국 위원에서 후보위원, 외무성 제1부상이 중앙위원에서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강등되는 등 한때 위상에 큰 타격을 받기도 했으나 북러밀월이 시작되면서 최선희가 다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 국방상과 더불어 정부의 양대 기관으로 큰 예우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사는 김일성광장과 바로 접하여 있는 단독 건물로, 내부에 별도의 회의장까지 갖추었다. 김일성광장에는 외무성을 포함해 총 5개의 정부청사가 있는데, 보통 청사 건물 하나를 적어도 예닐곱, 많으면 열 개 이상의 성급 기관들이 함께 사용한다. 외무성이 단독 청사를 사용함은 북한에서 외무성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5]
2.1. 소속 인원
외무성의 인원은 대략 1300~1400명 정도로, 약 20~30%가 해외 대사관이나 대표부로 파견되어있다. 특수기관인데다가 자력갱생하라는 지시에 따라 후방부서도 크게 조직하여 운영하기 때문에 외무성 관리들이 모두 외교관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외무성에도 로동당 파견 당비서가 존재하며, 이들이 인사·생활지도·검열 권한이 있기 때문에 당 국제부의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로동당의 우위와 통제는 강력한 편이다.평양에서 근무하는 외무성 직원들은 북한의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 없는 액수의 월급을 받는다. 리일규 전 쿠바 참사가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국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할 때 받았던 월급이 3000원(약 0.3달러)이었고, 외무상 조차도 월급으로 5000원을 받는다. 그래서 북한 외무성 사람들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거지)’로 비유를 하였다.# 그럼에도 다른 직장과 비교해 장점이 있다면 외무성 자체 사업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자체적인 배급소를 운영하여 시장가격이 아닌 국정가격으로 쌀 배급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배급도 주지 않고 무임금 노동을 강제받는 다른 직장과 비교하면 안정적인 쌀 배급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라고 한다. 그래서 외무성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쌀 배급이 끊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한 달에 옥수수 3kg을 내면 국수를 점심으로 제공한다.
2.2. 해외 주재 북한대사관
외무성 직원의 최대 목표는 외화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해외대사관에 외교관으로 파견되는 것이다. 외무성 직원 중에는 해외로 한 번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높은 경쟁률로 인해 해외발령을 받으려면 뇌물은 사실상 필수다. 외무성 내에 파견 지역별 뇌물 가격표가 있을 정도이다. 외교관으로 파견되려면 외무성 말단 직급부터 시작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직급을 쌓아야 하고 아무리 출신성분 토대가 좋더라도 미혼이면 불가능하고, 기혼이면서 로동당원이어야 한다.[6] 이유는 널리 알려진대로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을 인질로 삼아 외교관의 탈북을 방지하는 것이다.외교관은 해외로 발령받을 때, 아내와 자녀를 같이 데려갈 수 있다. 단, 자녀는 한 명만 가능하고 다른 자녀들은 북한에 남겨두고 와야 한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쌍둥이면 둘 다 데려갈 수 있다. 또한 자녀가 만 23세[7]가 되면 데려갈 수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일부 국가의 대사관을 제외하면 규모가 작아 5~6명급 대사관이 대다수이다. 이런 경우에는 국가보위성에서 파견하는 보위원은 주변의 규모가 큰 대사관에 상주하며 여러 국가를 담당하고, 당비서는 따로 파견하지 않고 차선임자에게 당비서 역할을 맡긴다. 태영호가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대사관 2인자인 공사로서 당비서를 맡아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의 정치사상교육을 담당했다. 대사에게 당조직관리까지 맡기면 권력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제한하는 것이다.
해외대사관에 파견되면 해당 국가의 물가에 맞춰 달러로 월급을 받는다. 보통 대사는 600~1,000달러, 공사와 참사는 500~600달러, 서기관은 350~5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나 미국 뉴욕의 UN 대사로 나가야 1,2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실제로 태영호가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시절 받았던 월급이 970달러에 불과했다. 물가가 높은 영국에서 대사관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는 공사의 월급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다.
해외로 파견되는 북한 외교관은 정통 외교관과 비정통 외교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통 외교관은 외무성의 외교관과 조선인민군에서 파견한 무관, 대외경제성에서 파견한 경제 무역 참사가 있다. 이들은 통상적인 국가의 외교 업무를 수행한다. 정통 외교관들은 정해진 '계획분(상납금)'이 존재하지 않고, 주택과 차량, 월급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의무적인 계획분은 없어도 각종 지원사업[8]을 이유로 상납을 요구받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현지 생활비를 충당하고 북한으로 귀국할 때 한몫 벌어가기 위해 정통 외교관이더라도 외화벌이와 밀수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비정통 외교관들은 국가보위성, 정찰총국, 제2경제위원회[9], 39호실 등에서 파견되는데 신분상 외교관일 뿐 외화벌이를 주 목적으로 파견된다. 대사관 인원 중 절반 정도가 이러한 비정통 외교관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외교 업무는 하지 않지만 외교관 특권을 이용해 1년에 3만에서 5만 달러 정도의 계획분을 상납해야 한다. 월급과 주택도 제공되지 않아 순전히 본인의 능력으로 외화를 벌어 생활비를 내고 계획분을 충당해야 한다. 국가보위성에서 파견되는 보위원들은 참사(안전대표)를 대외적인 직급으로 걸고 같이 파견된다. 북한 단독 수교국이라 대한민국의 외교 공관이 없는 나라의 경우 보위원이 파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시리아와 쿠바가 있었다.
따라서 해외로 파견된 외교관들은 각종 '계획분'(=상납금)을 수행하고, 현지 생활비와 추후 다시 해외로 발령받기 위한 뇌물 등을 마련하기 위해 외교관의 면세, 면책 특권, 불체포 특권과 외교행낭을 악용해 불법 장사(밀수)를 할 수밖에 없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일수록 외교관 특권을 이용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진다고 한다. 유럽과 같은 선진국 대사관의 경우, 월급이 많고 해당 국가에서 외국 외교관에게 제공하는 복지혜택이 좋지만 대신 밀수를 하기 어렵다. 선진국 공항에서는 외교행낭을 열지는 못해도 X선으로 보안검색을 하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의 특성에 따라 밀수 품목도 달라진다.
- 유럽 - 면세 특권을 이용해 술과 담배를 구매하여 현지인들에게 판매하여 차익을 남긴다.
- 중동 - 술과 돼지고기가 금지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면세로 주류를 수입하여 현지인에게 판매한다.
- 동남아 - 동남아 지역은 차량 관세가 높아 고가의 고가의 외제차를 면세로 수입하여 현지에 판매한다.
- 아프리카 - 코뿔소 뿔과 코끼리 상아 같은 귀중품을 외교행낭에 숨겨 중국으로 밀수하는 경우가 있으며, 우간다에서 코뿔소 뿔 40kg을 밀수하면 15만 달러 정도를 벌 수 있어 80배의 폭리를 취할 수 있다고 한다.#
- 쿠바 - 쿠바산 시가를 도매가로 수백 갑 구매하여 외교행낭으로 중국으로 가져가 판매한다.# 리일규 참사에 따르면 한번 왕복할 때마다 15,000달러의 이윤이 났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쿠바 주재 외교관들은 북한으로 귀국할 때 약 50~60만 달러를 벌어서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10]
2023년 이후로 북한은 기니, 네팔, 방글라데시, 세네갈, 스페인, 앙골라, 우간다 등 총 7개 공관을 폐쇄하는 등 재정난으로 인해 해외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운영하는 전 세계 재외 공관은 46곳이 되었다.
3. 조직
한 명의 외무상과 그 아래에 제1부상과 10명 내외의 부상이 있다. 외무상은 대외 활동을 담당하며, 전반적인 대외 관계를 본다. 제1부상은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대국 관계를 중심으로 관리하며, 외교 정책 전반을 총괄한다. 10명 내외의 부상들은 각 국을 담당한다.##북한 외무성이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조직 구성에 따르면, 11개 국과 3개의 산하 연구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외무성이 후원하는 10개 민간단체가 존재한다.[11]
11개 국 중 6개는 지역국, 5개는 행정국이다. 지역국은 아시아 1국[12], 아시아 2국[13], 유럽 1국[14], 유럽 2국[15], 북아메리카국(북미국)[16],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국이다. 행정국은 보도국, 영사국, 조약법규국, 의례국, 국제기구국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산하 연구소로는 군축평화연구소, 미국연구소, 일본연구소가 존재하며, 후원하는 민간단체는 조중민간교류촉진협회, 조선-캐나다협조사, 조일교류협회, 조선-유럽협회, 조로(북러)교류협력촉진협회, 조선아시아협회, 조선아프리카협회, 조선아랍협회, 조선라틴아메리카협회, 국제경제및기술교류촉진협회 등 10개이다.
핵협상 상무조와 인권대책 상무조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정규조직은 아니며 항시 가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17]
- 제1부상: 미상
- 지역담당국
- 아시아 1국 (부상: 박명호, 국장: 맹영림) 출처
- 아시아 2국 (부상: 박명국[18])
- 유럽 1국 (부상: 임천일) 출처
- 유럽 2국 (부상: 김선경)
- 북아메리카국[19] (부상: 리태성)
-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상: 허용복)
- 행정담당국
- 보도국 (국장: 조영삼)
- 영사국 (국장: 리길호)
- 의례국 (국장: 리광남)
- 조약법규국 (국장: 미상)
- 국제기구국 (국장: 조철수)
- 산하연구소[20]
- 군축평화연구소 (부국장: 김용국)
- 미국연구소 (국장: 권정근, 부국장: 최진)
- 일본연구소 (부국장: 차성일)
4. 역대 외무상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김일성 시대 | ||||
초대 박헌영 | 제2-3대 남일 | 제4-6대 박성철 | 제7-10대 허담 | 제11-13대 김영남 | |
김정일 시대 | 김정은 시대 | ||||
제14-15대 백남순 | 직무대리 강석주 | 제16-17대 박의춘 | 제18대 리수용 | 제19-20대 리용호 | |
김정은 시대 | |||||
제21대 리선권 | 제22대 최선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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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 성명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직책 | 비고 |
1 | 박헌영 | 1948년 9월 9일 | 1953년 ?[21] | 외무상 | 제1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 |
2 | 남일 | 1953년 8월 3일 | 1957년 9월 18일 | ||
3 | 1957년 9월 18일 | 1959년 10월 23일 | 제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제1서기의 방북 무산으로 해임 | ||
4 | 박성철 | 1959년 10월 23일 | 1962년 10월 22일 | 국제부장에서 조동 | |
5 | 1962년 10월 22일 | 1967년 12월 14일 |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 ||
6 | 1967년 12월 14일 | 1970년 7월 13일 | 제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제2부수상 이임 | ||
7 | 허담 | 1970년 7월 13일 | 1972년 12월 25일 | 외무성 제1부상에서 승진임명 | |
8 | 1972년 12월 25일 | 1977년 12월 15일 | 정무원 외교부장[22] | 제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 |
9 | 1977년 12월 15일 | 1982년 4월 5일 | 제6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 ||
10 | 1982년 4월 5일 | 1983년 12월 30일 | 제7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아웅산 테러 실패 이후 대남비서로 조동 | ||
11 | 김영남 | 1983년 12월 30일 | 1986년 12월 29일 | 국제비서 겸 국제부장에서 조동 | |
12 | 1986년 12월 29일 | 1990년 5월 24일 | 제8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 ||
13 | 1990년 5월 24일 | 1998년 9월 5일 | 제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영전 | ||
14 | 백남순 | 1998년 9월 5일 | 2003년 9월 3일 | 외무상[23] | 제10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 |
15 | 2003년 9월 3일 | 2007년 1월 2일 | 제11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임기 중 사망 | ||
대행 | 강석주 | 2007년 1월 2일 | 2007년 5월 18일 | 외무상 직무대행 외무성 제1부상 | |
16 | 박의춘 | 2007년 5월 18일 | 2009년 4월 9일 | 주 러시아 대사에서 조동 | |
17 | 2009년 4월 9일 | 2014년 4월 9일 | 제1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은퇴 | ||
18 | 리수용 | 2014년 4월 9일 | 2016년 5월 16일 | 제1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 국제부위원장 겸 국제부장으로 조동 | |
19 | 리용호 | 2016년 5월 16일 | 2019년 4월 12일 | 외무성 부상에서 승진임명 | |
20 | 2019년 4월 12일 | 2019년 12월 | 제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선,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숙청 | ||
21 | 리선권 | 2019년 12월 | 2022년 6월 8일 | 조평통 위원장에서 조동 통일전선부장으로 조동 | |
22 | 최선희 | 2022년 6월 8일 | (현직) | 외무성 제1부상에서 승진임명 |
4.1. 역대 제1부상
- 허담
- 김재봉: 1970년대 재임
- 리종목: 1984 ~ 1985
- 김충일: 1985 ~ 1987
- 강석주: 1987 ~ 2010[24]
- 김계관: 2010 ~ 2019
- 최선희: 2019 ~ 2022
5. 출신 인물
- 권정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 겸 미국연구소 소장
- 김주성: 제1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통역관
-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현 주 오스트리아 북한대사관 대사
-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협상담당 대사
- 최희철: 현 주 인도 북한대사관 대사
- 김평일: 전 주 체코 북한대사관 대사, 김정일의 이복동생
5.1. 외무성 출신 북한이탈주민
- 고영환(1953~ ): 콩고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 1991년 탈북[25][26]
- 현성일(1959~ ): 잠비아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 1996년 탈북[27] #
- 장승길(1948~ ): 이집트 북한대사관 대사, 1997년 탈북, 미국으로 망명
- 김동수(1960~ ): 이탈리아 북한대표부 3등서기관, 1998년 탈북[28]
- 이영철(1962~ ): 핀란드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2004년 탈북[29] #
- 한진명(1975~ ): 베트남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 2015년 탈북 #
- 태영호(1962~ ):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2016년 탈북[30]
- 조성길(1975~): 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2019년 탈북
- 류현우(1973~ ): 쿠웨이트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2019년 탈북
- 리일규(1972~ ):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2023년 탈북
- 북한 외교관 연쇄 탈북 사건
이외에도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신변안전을 이유로 공개활동을 하지 않는 북한 외교관 출신 북한이탈주민이 다수 있다고 한다.
6. 여담
* 외무성 건물에 걸려있는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하지만 2011~2012년경 알 수 없는 이유로 철거되었다.[31] 이후 2024년경 다시 재건립되었다.
위와 같은 이미지를 북한 인터넷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 기관과 달리 공식 로고라기보다는 장식의 일종이다. 이 이미지는 예서체라는 서체를 사용한 것으로, 씨름 대회와 같은 평범한 상황에서도 쓰는 서체다. 다른 서체를 사용한 것들도 있으나, 외무성 청사 외벽에는 '외무성'이라는 글씨가 해당 글씨체로 적혀 있다.#
- 과거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32]가 조평통과 종교단체 등을 아우르며 대남정책을 전권 수행함에 따라 통일부와 대화했던 것에 비해 남한 외교부와 북한 외무성은 별다른 접점이 없다. 태영호에 의하면, 남북한의 국력 차이와 북한이 국제적 왕따로 찍힌 점 때문에 외교행사나 국제회의에서 남한 외교관을 피해 다니며, 남한 외교관이 말이라도 걸면 매우 난처하다고 한다. 이는 북한 외교관들은 그날 바로 대사관 정치부 비서와 북한 외무성에 '남조선의 누구누구를 만났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내에 고영환과 태영호 등 여러 외무성 출신 인사들이 망명해 있고, 미국 및 제3국들로의 망명을 합치면 약 50여 명이 북한을 떠나 서방세계로 망명했다고 전해진다. 한국의 외무성 출신 외교관들은 과거 국정원 산하 3개 기관, 현재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으로 배치되었는데 현재는 강제는 아니나 경호 등 여러 이유로 권유하는 편이다.
- 2023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신청에 대한 '입국 불허' 방침을 대남기구가 아닌 이 기구에서 표명한 것에 대해 관심이 모였다. 통상적으로 남측과 관련된 업무를 외무성이 관장하지 않았기에 남측을 타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졌다. 그러나 추후 김영철이 조직이 남아 있는 통일전선부에 복귀하거나 열병식 등지 및 각종 연설[33]에 '조국통일'과 같은 언급이 등장하여 북한이 남측과의 거리감을 표현하되,[34]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변동까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후 2023년 12월 30일,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주장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식민지 속국으로 비하하는 언행을 쏟아내어 외무성이 대남 관련 사업을 관장할 수 있다는 예측이 다시 나왔다.[35]
- 2024년 1월 1일, 최선희 외무상이 김정은의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리선권 등 대남관계부문 일꾼[36]과 이에 관련한 협의회를 열었다.#
- 2024년, 통일전선부의 명칭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10국으로 변경되며 규모와 기능이 크게 축소되고, 상당수의 인력이 외무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공작 기능을 제외한 대남 전략과 남북 대화 등의 기능도 외무성으로 이전되었다.##
-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가 출연하는 자유아시아방송의 주간프로 류현우의 블랙북(北)스에서 외무성의 주요 인물의 사건사고와 내부 비화가 소개된다.
[1] 북한이 오토 웜비어 판결문을 재반송하면서 담당자가 문서에 외무성 주소를 직접 써서 보냈는데, 해당 주소는 링크 참조.#[2] 나머지는 조선로동당, 조선인민군,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3] 인민군, 보위부, 안전부와 함께[4] 탈북 외교관 김동수 박사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 내각 총리가 열차 7일 타고 모스크바에 갈 때 외무성 관리들은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5] 물론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의 외무부는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특수성 및 보안성을 고려하여 국가의 자주권과 위상을 대표하는 큼지막한 단독 청사를 운용함이 관행이다. 하지만 북한의 국력이나 대외 위상을 고려한다면, 외무성은 청사에서부터 특히 배려받는 조직임은 분명하다.[6] 이는 외무성뿐만 아니라 북한 내 모든 권력기관이 마찬가지이다.[7] 해외에서 대학을 다녔을 경우 졸업을 고려한 나이로 보인다.[8] 태양절 행사 지원 기금, 김정일 생일 행사 지원 기금, 잠수함 건조 지원 기금 등[9] 군수공업부 산하로 군수경제를 총괄한다.[10] 최대 100만 달러까지 벌어간 외교관도 있다고 한다.[11] 이는 공개해도 되는 조직만을 공개한 것으로, 실제 조직은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연구원의 관련 보고서(‘3. 외교정책결정 체계 분석’ 부분) 참조[12] 중국, 몽골, 일본[13]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14] 러시아와 구소련 독립국[15]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연합 소속 국가[16] 미국과 캐나다[17] 대외 협상과 핵전략을 두고 각 부서에서 중구난방으로 해법이 나오자 김정일이 직접 외무성 주관으로 상무조(태스크포스 팀)를 꾸렸다.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인민군, 로동당 통일전선부, 국가보위부 등의 권력기관을 아울러 대외 정책을 도출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가동 중인 것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전 의원과 고영환, 김동수 박사에 의하면,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나 특별한 경우에는 김 부자의 특각을 빌려 며칠씩 밤을 새우며, 특히 북미 협상 시기에는 일주일씩 철야로 밤샘 작업을 한다고 한다.[18] 북한군 원수 리을설의 사위이다.[19] 북미관계를 담당하다 보니 부서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한다.[20] 각 연구소 소장직은 각 행정국 국장이 맡는 것으로 파악된다.[21] 로동신문을 기준으로 적어도 1953년 2월까지는 외무상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지만 이후 종적이 묘연해지면서 정확한 해임 날짜는 알기 힘들다. 남일의 외무상 임명 정령에서도 남일을 임명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 전임 외무상인 박헌영을 해임한다는 정령은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22]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채택에 따라 정무원 외교부장으로 직책 변경[23] 1998년 김일성 헌법 채택에 따라 내각 외무상으로 직책 환원[24]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정무원 외교부 제1부부장'[25] 북한 외교관으로는 최초이다.[26]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현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 현 국립통일교육원장[27]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전문위원이자 현철해 조카이다.[28]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29] ㈜엘티케이 대표, 남북하나재단 이사[30]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사무처장[31] 북한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업적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레닌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마르크스와 레닌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높지 않다. 다만 김정은 체제에서는 인터내셔널가를 조선로동당 행사에서 연주하거나 당헌에서 삭제된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재명시하는 등 외양상으로나마 마르크스주의로 복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다시 초상화가 건물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32] 현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10국으로 개편[33] 2023년 7월 열병식에 '조국통일'이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8월에는 김정은이 해군절 연설에서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혁명전쟁준비'를 언급하기도 했다.[34] 김정은은 12월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라고 주장하기는 했으나, 상호 인정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태도는 극구 부인하고 필연적인 전쟁에 맞서 남조선을 평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5] 남북관계를 국가 관계로 주장한 것은 큰 변동이지만, 동시에 2016년경 무력 적화통일을 주장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2016년경의 무조건적인 적화통일론과는 달리 지금은 "우리는 대한민국이 먼저 시비 걸지만 않는다면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즉시 응징하여 대한민국 땅을 수복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어 선공은 없을 것이라고 표명하고는 있다. 큰소리는 뻥뻥 치고 있지만 본인들도 전쟁을 일으킬 형편은 못 되니 오물 풍선 같은 똥꼬쇼나 하면서 자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36] 북한식 표기는 '일군'이나 발음은 한국 표준어처럼 '일꾼'이다. 경음화를 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