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아버지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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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99><colcolor=#fede58> 출생 | 1710년 5월 6일 |
영국령 미국 버지니아주 프린스조지 카운티 (현 미국 버지니아주 프린스조지 카운티) | |
사망 | 1776년 10월 26일 (향년 66세) |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 |
부모 | 아버지 리처드 블랜드 어머니 엘리자베스 랜돌프 |
친척 | 토머스 제퍼슨 페이튼 랜돌프 |
학력 | 윌리엄 & 메리 대학교 (졸업) 에든버러 대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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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토머스 제퍼슨, 페이튼 랜돌프와 가족관계이다.[1]
2. 생애
1710년 5월 6일 버지니아주 프린스조지 카운티에서 태어났으며, 버지니아주에서 유명한 농장주이자 정치가 리처드 블랜드와 자베스 랜돌프[2]의 아들이었다. 이후 사촌인 페이튼 랜돌프와 친구가 되어 같이 윌리엄 & 메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정치에 입문했다.[3]1739년 민병대의 장교가 되었으며, 1742년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를 시작했다. 1774년 제1차 대륙회의에 참석하여 대륙회의 연합규약에 서명했다. 1775년 제2차 대륙회의 의원에 선출되었으나 당시로선 나이가 많은 고령이었기에 참석을 거절했다. 비록 고령때문에 제2차 대륙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버지니아 내에서는 계속 정치활동했다. 그러나 1776년 10월 26일 향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그의 모교인 윌리엄 & 메리 대학교는 전문대학인 리처드 블랜드 대학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1] 같은 버지니아주 출신이며 모계쪽 친적이라고 한다.[2] 윌리엄 & 메리 대학교의 설립자 중 한명인 윌리엄 랜돌프의 딸,[3]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 대륙 회의에서 같이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