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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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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4대 전국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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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는 판매부수 순.

<colbgcolor=#0079C7,#010101><colcolor=#FEFEFF,#DDDDDD> 마이니치 신문
[ruby(毎日新聞, ruby=まいにちしんぶん)]|The Mainichi Shimbun
파일:마이니치 신문 로고.svg
국가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종류 일간지
본사 주식회사 마이니치 신문사
창간 1872년 2월 21일
대표 마츠키 켄[1]
웹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공식 홈페이지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성향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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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毎日新聞 (まいにちしんぶん)

일본일간지. 일본의 전국 일간지 중 3번째로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으며, 1872년 창간으로 사실상 일본 현존 최고(最古)의 신문사이기도 하다.#[2]

2. 역사

전신이 되는 곳은 오사카마이니치 신문, 도쿄니치니치 신문 2곳이다.
  • 도쿄니치니치 신문: 일보사란 회사에 의해 1872년 창간했다.
  • 오사카마이니치 신문: 1882년 '일본입헌정당신문'(日本立憲政党新聞)이 발간되는데, 해당 신문은 1885년 '오사카일보'(大阪日報)로 제호를 바꾸며, 1888년에 '오사카마이니치 신문'(大阪毎日新聞)으로 다시 제호를 바꾼다.

1911년 오사카마이니치 신문은 일보사를 인수한다. 합병이 아닌 인수이기 때문에 양 신문 모두 제호가 그대로 살아있었고, 오사카마이니치 신문은 관서를, 도쿄니치니치 신문은 관동을 담당하여 전국지로 성장한다.[3] 그리고 1943년에 관동과 관서로 나뉘어져 있던 신문을 통합, 제호를 '마이니치 신문'으로 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통합된 신문의 지령은 더 오래된 도쿄니치니치 신문의 것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러한 인수된 회사가 더 오래되었다는 특이한 역사로 인해, 이 신문사에서는 1872년을 창간년도로 봐 기념광고를 하고 있고 그게 맞지만,[4] 두산백과 등의 일부 백과사전에서는 발행년도를 오사카마이니치 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한 1888년이라고 표시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3. 성향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일본의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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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리버럴 중도~중도좌파라고 볼 수 있다.[5] 아사히보단 상대적으로 온건한 언론으로 인식되는 편이나,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같은 문제에 있어선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6]

다만 다양한 견해를 중시해 논조를 굳이 통일하려 하진 않기 때문에 기자가 회사의 논조를 벗어난 기사를 작성해 논쟁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일 문제에서도 종종 우경화된 논조를 보이기도 한다.[7] 이에 대해선 사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긍정적인 시선과 종잡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는 편이다.

1970~80년대에는 한국의 군사정권을 비난하는 기사를 자주 썼었다. 이 때문에 언론통폐합 이후 서울지국이 5년간 폐쇄됐던 적도 있었다.

4. 여담

  • 한국의 지역 신문사인 매일신문과 한자 이름이 완전히 똑같다. 물론 두 회사는 서로 관계가 없다. 정확히는 대구 매일신문이 마이니치의 제호를 따라한 건데 과거에는 이런 사례가 많아 새삼스럽지도 않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방송.
  • 1989년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의 범인을 검거했다는 기사를 냈다. 기사의 내용은 범인이 에자키 글리코 사장의 지인을 포함한 4명이며 에자키 사장을 원망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는 것인데... 기자가 날조한 오보로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으로 편집국장이 사임하고 지면에 사과문을 내야 했다.
  • 한때 마이니치의 서양인 기자가 일본에 관한 근거 없는 소문을 기사로 쓴 탓에 '변태신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연장선상에서, 과거 마이니치 신문 영문판에 <엄마들은, 떨어져가는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랍시고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 전 아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극소수 일본 어머니들의 정신나간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시 KBS 도쿄 특파원이던 전여옥이 후일 자신의 저서 일본은 없다에 인용했는데, 이 책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다 보니 한국에서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 중엔 아직도 저게 일본인들의 공공연한 행각인 줄 아는 경우도 일부 있다.[8]
  • 일본 고고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 후지무라 신이치의 사기를 폭로한 언론사도 바로 이 신문사였다.
  • 치바를 연고로 두고 있는 치바 롯데 마린즈는 원래 이 신문사가 창단한 야구단이었다. 당시의 이름은 마이니치 오리온즈. 그 뒤 다이에이 유니온스와 합쳐 다이마이 오리온즈가 되었다가 1964년 마이니치가 경영에서 손을 떼어서 이름을 도쿄 오리온즈로 변경. 그 뒤론 키움 히어로즈 같이 명명권 판매로 운영하다가 1969년부터 롯데가 네이밍 스폰서가 되며 롯데 오리온즈가 되었고, 1970년 시즌이 끝나고 롯데가 이 구단을 매입하면서 정식으로 롯데의 구단이 되었다. 이후 1973년 도쿄를 떠나 이리저리 떠돌고 가와사키 시절을 지나 1992년 치바로 연고지를 옮기며 현재의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어져오고 있다.
  • 일본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부랑인 대상 인권유린 사건인 오카다 갱생관 사건을 목숨을 건 잠입 취재 끝에 폭로한 오오모리 미노루 기자가 마이니치신문 소속이었다. 사건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5. 관련 문서



[1] 대표이사 사장 역임.[2] 명목상 일본 최초의 신문은 1871년 창간된 요코하마마이니치 신문인데, 신기하게도 마이니치 신문과 제호가 겹친다. 이 신문은 차례로 도쿄요코하마마이니치 신문, 마이니치 신문, 도쿄마이니치 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후일 데토니치니치 신문에게 합병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회사에서 발행하던 신문의 제호가 마이니치 신문의 옛 제호인 도쿄니치니치 신문과 겹친다. 이후 이 신문은 야마토 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변경한다. 다만 이 야마토 신문을 최초 또는 현존 최고의 신문사로 치지 않는 이유는, 인수 과정에서 도쿄마이니치 신문이 아닌 데토니치니치 신문의 지령을 따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결국 도쿄마이니치 신문을 폐간시키고 인프라만 받아온 셈이 되어 옛 신문사의 역사를 이어받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구독자가 적은 탓에 일간 발행을 포기하고 1998년부터는 월간지, 2002년부터는 계간지로 축소된 데다가, 2013년부터는 아예 종이신문 발간을 중지하고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하여 애초에 전통적인 신문사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3] 이때 각각의 지령을 모두 살렸기 때문에, 제호 통합 전까지 관동과 관서에서 똑같은 신문의 지령이 다른 괴현상이 일어났다.[4] 신문사의 역사는 보통 지령의 연속성을 기준으로 세기 때문이다.[5] 영어 위키백과에선 중도~중도좌파라고 나와 있다. 뉴욕타임스에선 중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Relief in Japan After Shinzo Abe's Visit With Trump". The New York Times. 13 February 2017. Retrieved 20 February 2020. "In an editorial, the centrist Mainichi Shimbun said that Mr. Trump might have taken a strategy of ..."[6] 다만 마이니치 신문도 중일전쟁이나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군부의 협박에 사실상 굴복해 군국주의를 찬양하거나 난징 대학살을 스포츠 중계처럼 싣는 등 흑역사가 있었다. 얼마나 친정부 논조였는지 별명이 '어용신문'이었을 정도. 난징 대학살 항목에 있는 유명한 "100인 베기 경쟁" 신문기사도 마이니치 신문의 전신인 동경일일(도쿄니치니치) 신문의 지면이었다. 다만 오늘날엔 당시 일본제국의 잔학성을 알리는 대표적 지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보니, 결과적으론 친정부를 표방한 반정부 기사가 되었다.[7] 이런 경향은 산하 방송국인 TBS, MBS도 마찬가지이다.[8] 당연하지만 신문에 날 만한 사건이라는 것은 현지에서도 상당히 이레귤러한 일이란 의미다. 게다가 일본의 보수성은 한국보다 상상 이상으로 철통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