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12:54:48

만인소

1. 개요2. 역사3. 매체4. 역대 만인소

1. 개요

만인소()는 조선시대 상소의 일종으로 공론을 중시한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생들이 조정의 정책에 강력히 반발할 경우 1만여 명 내외의 서명을 받아 공동 명의로 조정에 의견을 제시해 반대 여론을 공론화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서 조선 시대의 범국민 서명운동인 셈.

2. 역사



조선 역사 기록에 남은 만인소는 정조 16년(1792년)을 시작으로 19세기 말까지 총 7차례 있었다.

최초의 만인소는 노론 관료 유성환이 정조가 주색잡기에 빠졌다는 내용으로 상소에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역대 조선 왕들 중 가장 자기 관리가 철저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트집잡기에 발분한 영남 지방 유생들이 집단상소를 올렸고 그게 바로 만인소의 시작이었다. 당시 만인소에는 유성환의 처벌과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에 대한 처벌의 요구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것은 '만인소'라는 이름 그대로 상소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가 만 명이 넘는다. 정확히는 1만 57명. 사실 집단상소는 이전에도 있었고( 1565년 백인소, 1666년 천인소) 그 전통이 만인소의 바탕이 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3. 매체

임오화변을 다룬 사도에서 사도세자의 추숭을 부르짖는 영남 만인소 장면이 나올 뻔 했으나 영화의 엔딩이 늘어지는 관계로 편집당했다. 윤허하지 않으실꺼면 여기 가져온 도끼로 목을 치라는, 그리고 그걸 반대하는 신하들의 사도세자 추숭할 거면 우리들 목부터 날리라는 캐삭빵지부상소는 덤. 궁문 바깥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길이의 상소문 두루마리를 정조가 걸어가며 보다 궁문 바깥을 뒤덮은 채 읍소하는 일만 유생들의 모습을 보며 착잡해하는 장면이지만 잘려나간 관계로 CG 처리를 위한 초록벽이 남아있는등 불완전한 상태로만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 면암 최익현을 필두로 외세의 바짓가랑이를 기며 국가와 황실을 능멸하는 주인공 조지원을 비판하는 유생들의 만인소가 작성되었다. 허나, 어전에 가지도 못하고, 조지원에게 감회된 김좌진 등의 청년단원들에게 백주대낮에 경성 시민들 앞에서 조롱의 멸시를 받음과 동시에 불쏘시개가 되어 버렸다. 이후 참가한 유생들은 문화대혁명 때 반동이라 규정되었던 이들처럼 조리돌림을 당하고 최익현은 불온세력의 수뇌라는 명목으로 사형을 당하면서 종식된다.

4. 역대 만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