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챌래 반란 FIN: Mäntsälän kapina SWE: Mäntsäläupproret ENG: Mäntsälä rebellion | |
시기 | |
1932년 2월 27일 ~ 3월 6일 | |
장소 | |
핀란드 맨챌래, 위배스퀼래, 살로, 세이내요키, 포리 | |
교전세력 | |
핀란드 정부 | 라푸아 운동 |
지휘관 | |
유호 수닐라 아르네 시흐보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 아르투리 부오리마 비흐토리 코솔라 쿠르트 발레니우스 |
병력 | |
불명 | 맨챌래: 500명 전국: 5,000명 |
피해 | |
없음 | 1명 자살 52명 체포 |
결과 | |
쿠데타 실패 및 라푸아 운동 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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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2년 2월 27일부터 3월 6일까지 일어난 반란.2. 상세
1932년 2월 27일, 시민위병 400명이 맨챌래에서 핀란드 사회민주당의 모임을 방해하면서 반란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라푸아 운동이 반란에 참여했으며, 쿠르트 발레니우스 육군 소장이 반란의 지휘관으로 참여했다. 이에 분노한 유호 수닐라 수상과 내각은 라푸아 운동이 강요해서 만든 공화국 수호법을 적용하여 라푸아 운동을 반역집단으로 규정하고, 라푸아 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고 아르네 시흐보 중장을 위시한 군대가 반란 진압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헬싱키에서도 탱크와 포병대를 배치시키는 등 도시 내 군대를 증강했다.3월 2일, 심적으로는 라푸아 운동 쪽과 가까웠지만 수닐라 내각의 논리를 파훼할 방법을 찾지 못한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시민위병의 해산을 촉구하면서 지도자들만 처벌받을 것을 약속했다. 이후 반란군은 해산, 지도자들은 체포되었고 라푸아 운동 또한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