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시 보그스의 수상 이력 | ||||||||||||||||
|
타이론 커티스 보그스 Tyrone Curtis Bogues | |
출생 | 1965년 1월 9일 ([age(1965-01-09)]세) |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
키 | 160cm (5' 3") |
체중 | 62kg (136 lbs)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프로입단 | 198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2순위 워싱턴 불리츠 지명 |
소속팀 | 로드아일랜드 걸스 (1987 / USBL) 워싱턴 불리츠 (1987~1988) 샬럿 호네츠 (1988~1997)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997~1999) 토론토 랩터스 (1999~2001) |
지도자 | 샬럿 스팅 감독 (2005~2006 / WNBA) 유나이티드 페이스 크리스찬 아카데미 감독 (2011~2014) |
등번호 | 1번 - 워싱턴 / 샬럿 / 골든스테이트 14번 - 토론토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이자 NBA 역사상 최단신 선수. 농구선수는 물론 일반인 중에서도 작은 160cm의 키로 당당히 주전으로 활약했다.2. 일생
2.1. 데뷔 이전
고등학교 시절 모습(앞줄 가운데)
1965년 1월 9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3남 중 하나로 출생했다. 원래 어머니인 엘렌은 여자 아이를 갖고 싶어했으나, 막상 아들인 먹시가 태어나자 만족했다고 한다.
볼티모어는 치안이 매우 안 좋은 지역이었고, 후술되는 아버지와 형의 마약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보그스가 5세일 당시 무장강도 사건에 잘못 휘말려서 팔과 다리에 총알 파편에 맞아 급하게 치료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먹시가 10세일 당시 아버지가 무장강도로 20년형을 받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맨앞에서 다른 아이들을 이끌 정도로 리더십이 강했으며, 8살부터 농구를 시작했는데, 모두들 그가 스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렇게 먹시는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자랐으나, 어느 날 아버지가 교도소로 끌려가게 되자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타자학원에 가게 되었고, 보그스 역시 범죄에 휘말리지 않고 가족을 위해서 농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던바 고등학교에 진학해 밥 웨이드[1] 감독 아래서 농구를 배우기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시절, 보그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농구를 한다고 하자 비웃었는데, 그것은 보그스가 다니던 폴 로렌스 던바 고등학교의 농구부가 결승전에 나갔을 때였다.
이 당시 장내 아나운서가 보그스를 던바 고교의 스타라고 소개하자 사람들은 보그스를 비웃었으나, 막상 게임이 시작되자 보그스가 상대 에이스를 9득점으로 묶고 그에게서 7번이나 공을 가져간 걸 보고 침묵해야 했다. 결국 우승은 던바 고교가 차지하게 되었다.
먹시가 재학 중이던 던바 고등학교는 당대 최강의 전력이었는데 보그스와 더불어 훗날 NBA에서 뛰게 되는 레지 윌리엄스와 레지 루이스같은 선수의 힘으로 무려 60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이 세 선수는 모두 87년도에 1라운드에 뽑히게 된다.[2]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시절(가운데 자 옆에 서있는 선수)
그러나 보그스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1학년 당시에는 좌절을 맛보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슬럼프로 경기에 거의 못 나갔고, 학점을 따는 데 고생이 많았다. 보그스는 자퇴까지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보기 싫어서 남은 3년간을 농구에 매진하게 되었고, 칼 테이시(1932~2020)[3]와 밥 스타크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 결과 남은 3년 동안 열심히 뛰며 14.8득점, 9.5어시스트, 3.8리바운드, 2.4스틸을 달성했고, 1984-85 시즌에는 농구부를 NIT에 진출시키고 1986년 세계 선수권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해 팀을 우승시키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이렇게 화려했던 모습을 보여준 보그스는 1987년, NBA 드래프트에 신청하게 된다.
2.2. NBA 시절
마누트 볼과 함께.
1987년 USBL 드래프트에서 2번으로 지명되어 로드아일랜드 걸스에서 뛰다가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2번으로 워싱턴 불리츠에 지명과 동시에 입단, 당시 주전인 매뉴트 볼과 콤비를 결성하면서 볼에게 집중되었던 주목이 타이론 보그스에까지 분산되는 효과를 낳게 되었다. 사진기자들에겐 무한한 일거리를, 관중들에겐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그러나 워싱턴 시절에는 "과연 보그스는 NBA에서 플레이하게 되는가, 아니면 그냥 마스코트인가?" 라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별로 빛을 못 보았고, 1988년에 샬럿 호네츠가 창단하자 확대 드래프트를 통해 3위 지명을 받고 입단하면서 창단 멤버가 되었다. 당시 호네츠의 구단주인 조지 쉰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당시 감독인 딕 하터가 자신이 구상한 하프 코트 농구에 안 맞는다며 주전 리스트에 보그스를 누락시키면서 벤치에 앉는 일이 많게 되었는데, 급기야 하터 감독은 1990년에 보그스의 트레이드를 요청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하터는 오히려 팀 감독을 사임했고, 1991년에 새로 부임한 알란 브리스토우 감독은 덴버 너게츠와 호네츠의 어시스턴트 코치 시절부터 보그스를 주목해 왔는데, 그가 구상한 패싱 게임에 보그스가 적격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실력이 빛을 발하게 된 보그스는 알론조 모닝, 래리 존슨, 델 커리와 함께 활약하면서 팀은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1992/93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5할 승률을 넘김과 동시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고, 급기야 시카고 불스에 맞설 만한 동부의 신흥 강호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7/98 시즌 도중에 보그스는 세대 교체의 일환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트레이드됐으나, 호네츠 시절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1999년에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 2000/01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3. 은퇴 이후
2005년에 WNBA 팀인 샬럿 스팅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나,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1년만에 경질당했고, 2011년부터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지역 농구팀인 유나이티드 페이스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감독으로 재직했었다. 다행히도 여기에서는 나름대로 3시즌동안 6명 정도의 전국구 선수를 배출해 냈을 정도의 안정적인 감독 생활을 한 덕택에 연장 제의도 있었지만, 본인이 거절하여 2014년 팀을 떠났다.현재는 Muggsy Bogues Family Foundation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서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청소년과 가족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포인트 가드 평균 신장이 188cm에 달하는 NBA는 말할 것도 없고, 동네 농구 기준으로도 핸디캡으로 작용할 만한 160cm의 단신을 높은 농구 이해도와 빠른 발[4], 뛰어난 운동능력과 근성으로 커버한 선수다.먼저 수비에서는 단신이라는 단점을 어마어마한 활동량으로 커버한다. 보그스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가 막는 포지션이 외곽에서 주로 활동하는 포인트 가드였다는 점이다. 포인트 가드 수비는 세로수비보다 가로수비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공격수 입장에서는 키는 작지만 체구가 단단한 보그스를 포스트업으로 쉽게 밀어 붙히기도, 그렇다고 사이드스텝이 엄청나게 빠른 그를 제치기도 힘들었다. 또한 자신의 장점인 빠른 발과 손을 이용한 스틸 시도로 끊임없이 공격수를 괴롭게 했다. 그의 경기 장면을 보면 공격수가 패스나 슛을 시도할 때마다 마치 찰거머리마냥 달라붙으면서[5] 빠르게 견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아빠에게 달려드는 어린 아들(...)이 연상될 정도. 물론 당하는 공격수들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그가 체구는 작아도 힘[6]과 운동능력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또한 그는 자기 매치업 뿐 아니라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다른 선수들을 도움수비하기도 했는데 이런 근성과 센스가 가장 잘 나타난 것이 213cm에 달하는 패트릭 유잉을 뒤에서 블럭해버린 장면.
그러나 이렇게 장점만 놓고 보면 그가 수비를 잘한 것 같지만, 위에서 언급된 그의 장점은 자신의 작은 키로 인한 손해를 그나마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고 엄밀히 말해 그는 구멍을 겨우 면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90년대 당시 포인트가드들의 평균 키가 지금보단 작았다고 해도 평균이 186~188 사이였는데 이걸 160이 막는다고 생각해보자. 오히려 저 정도 키 차이에도 퇴출되지 않고 수비가 최소한이나마 됐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 애초에 농구는 공격수, 그리고 키가 큰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스포츠인데, 상대보다 2~30cm씩 작은 수비수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그스의 수비는 빠른 발과 손으로 상대를 더블팀하거나 기습적으로 스틸을 노리는 방식이었지만[7] 애초에 백여 번의 공격권이 오가는 농구 경기 특성상 수비의 기본은 끽해야 두번 정도인 스틸을 노리는 대신 상대가 최대한 어려운 슛을 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보그스는 키가 워낙 작아 슛 견제란게 거의 안 되다 보니[8] 일단 공격수에게 공간을 내주면 거의 슛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성기 때 플레이오프 다크호스 정도 되는 제법 강한 팀의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격력 덕분이었다.[9] 사실 그는 초단신치고 다소 특이하게 득점보다 리딩에 주력하는 선수였다.[10] 그는 공식 신장이 178cm 이하인 선수들 중 유일하게 두 자리수 어시스트와 두 개 이상 항목에서 두 자리수를 기록하는 더블더블을 기록한 선수로 1993-94시즌에는 10.1개를 찍으며 존 스탁턴에 이은 리그 2위에 오른 적도 있다. 게다가 이렇게 어시스트를 많이 하면서도 실책은 말도 안되게 적어서 통산실책은 1.8개고 커리어 통산 어시스트 대 턴오버 비율(ATR)이 4.7, 가장 높았을 때는 무려 5.9에 달했다.[11] 이 수치가 더욱 대단한 점은 그가 뛰었던 샬럿 호네츠는 속공이 강하기로 유명한 팀이었고, 보통 속공 위주 팀들은 페이스가 빠르게 공격을 전개해서 포인트 가드들의 실책이 많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쇼타임 농구를 이끌었던 매직 존슨이 그렇고, 역대 최강의 속공 지휘자 중 하나인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시 등도 전성기 때 실책수는 경기당 3개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그스는 커리어 통틀어서 2개를 넘은 적이 단 한번(94시즌 2.2개)에 불과했다. 워낙 키가 작은 데다 드리블의 달인[12] 이어서 스틸 당하거나 공을 흘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패스도 매우 정확했다.
또한 그는 훌륭한 득점원은 아니었지만 득점에서도 어느 정도 제 몫은 해줬다. 일단 그는 80년대에 대학을 나온 선수답게(?) 외곽슛이 빈약한 편이었다.[13] 또한 키가 너무 작아서 수비를 완벽하게 떼놓고 쏘지 않으면 상대 수비수가 블럭하기가 매우 쉬웠다. 그러나 그는 절대 무리해서 공격을 하는 법이 없었고 위에 언급된 빠른 발을 이용해 요리조리 수비를 뚫고 가다가 기습적으로 슛을 쏘거나 레이업을 올려놓는 방식을 통해 득점을 했다.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9~1997년까지 그의 필드골 성공률은 47%정도였는데, 이는 그의 포지션으로선 준수한 편이었으며 그의 키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14]
보그스에게 행운이었던 건 위에 언급된 것처럼 샬럿이 속공을 많이 하는 팀이었던 것이다.[15] 그는 장단점이 명확한 선수라 지공 위주 팀이었다면 수비에서의 단점이 속공에서의 그의 장점을 가려 많이 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샬럿은 센터 알론조 모닝, 파워포워드 래리 존슨 등 빅맨들부터 기동력이 좋은 선수들이었고, 속공 시 모닝, 존슨과 더불어 에디 존슨, 허시 호킨스, 델 커리 등 퍼리미터 선수들까지 달려주면서 득점을 퍼부을 수 있는 팀이었다.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빠른 발과 정확한 패스로 속공을 지휘할 수 있는 보그스만한 선수는 없었던 것.
4. 기타
1995년에 현대자동차 엑센트의 광고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이 광고 때문에 국내에서는 보그스가 덩크가 가능하다고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다.[16][17]
180cm대 혹은 그 미만의 체구가 작은 포인트 가드 포지션의 농구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동안인 것에 비해 보그스는 상당한 노안인데 선수시절보다 체중이 줄었기도 하고 나이도 먹었지만 주름이 많은 얼굴인 탓에 2013년 이후 사진을 보면 70대 노인처럼 보인다.
NBA 역사상 160cm대 선수는 단 3명뿐인데 그중 나머지 두 선수는 모두 165이상의 후반대이고 이 선수만 160cm다. 참고로 그 두 선수 중 스퍼드 웹은 168cm. 이 선수는 NBA에서 덩크를 성공시킨 최단신 선수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얼 보이킨스는 165cm이다. 또한 175cm 이하 NBA 선수들은 저 둘을 포함해 대부분 후보 정도인데 보그스는 그 중 상당히 돋보이는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175cm 이하 중 단연 최고의 선수는 휴스턴 로켓츠의 레전드 캘빈 머피로 무려 5번이나 평균 20점을 넘기고 한번은 25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명예의 전당까지 헌액되었다. 머피는 한동안 올스타에 출전한 역대 최단신 선수였으나 2016년에 그와 키가 같은 아이제아 토마스(1989)가 올스타에 선정되며 동률 기록을 세웠다.
가족사가 남다른 편이다. 1993년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18]했는데, 아버지는 극심한 마약중독자로 가끔 마약을 흡입할 때 보그스의 친형인 처키 보그스도 같이 마약 흡입하게 강요하다보니, 친형도 자연스레 마약중독자가 되어 건강을 해치게 되었는데, 먹시 보그스가 그의 친형을 직접 자신의 집인 샬럿으로 오게 해서 친형과 같이 살면서 마약을 끊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19]고 한다. 다행히 친형은 마약 중독을 치료하고 지금도 동생 집에 같이 살면서 형제끼리 서로 우애를 돈독히 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스페이스 잼에 찬조 출연한 바 있는데, 여기서도 작은 키 덕택에 유일하게 문 위의 천장을 부딪치지 않고[20]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준 바 있다.(영상 1:10부터)
스페이스 잼에 같이 출연한 마이클 조던과 악연(?)이 있는데, 95플레이오프 당시 경기 막판에 보그스가 공격기회를 얻자 조던이 도발하며 공간을 주면서 "쏴봐, 이 &(&*^&*한 꼬맹아(midget)!"라고 트래쉬토크를 걸었고 보그스가 이를 놓치면서 경기를 진 적이 있다.(호네츠가 시리즈 패배) 다만 보그스는 조던의 트래쉬토크 때문에 악영향을 받았거나 그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었...으나 먹시 보거스나 나중에 고백하기를 이때 이후로 슛을 할때마다 위축감이 들면서 슛이 망가졌다고 고백하였다. 둘은 시리즈 이후 95년 오프시즌에 스페이스 잼을 같이 촬영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1] 1940년 12월 9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출생. 모건 주립대학교 재학 시절 미식축구부에서 뛰다가 1968년 AFL 팀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시초로 워싱턴 레드스킨스, 덴버 브롱코스 등 3팀을 거치며 NFL과 AFL을 오갔다. 1970년 오프시즌에는 워싱턴으로 돌아왔으나 주전으로 오르지 못해 동년 9월 은퇴한 후, 1975년부터 고향에 있는 폴 루이스 던바 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이 되어 임기 11년 동안 먹시 외에 레지 루이스, 데이브 윈게이트, 레지 윌리엄스 등을 길러냈으며, 1986년부터 메릴랜드 대학교 감독으로 이적하여 렌 바이어스 사망 사태로 혼란스러운 농구부 분위기를 수습해내 바이슨 딜레, 월트 윌리엄스, 제로드 무스타프 등을 발굴했으나 1989년 퇴임 후 유망주에 대한 비리행위 등이 밝혀져 메릴랜드대 농구부는 1987-88 시즌 기록 말소, 1991 및 1992년 포스트시즌 출전 금지 등의 징계를 받았고, 웨이드 자신도 1995년까지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2] 한 고등학교 팀에서 NBA 1라운더 세명을 배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학같은 경우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리크루트하니까 크리스 웨버를 포함해 전국구 신입생을 무려 5명이나 입학시킨 미시건 대학교의 Fab Five같은 경우가 있지만 (5명 중 1라운더 3명, 2라운더 한명) 이들은 모두 다른 고등학교 출신이었고, 미시건 주 출신은 웨버와 제일런 로즈 뿐이었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대규모 리크루팅이 이뤄지지 않고 그 동네 학생들이 진학하는 고등학교에 NBA 1라운더급 유망주가 세명이나 동시에 뛴 건 정말 엄청난 것. 물론 탈 아마추어급 고등학생 선수가 있는 팀이 몇십연승씩 달리는 경우는 종종 일어나지만, 대부분 경우 초특급 유망주 한명이 리그를 씹어먹는 정도지 뛰어난 선수가 세명이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 중 루이스는 올스타 출신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슈퍼스타급으로 컸을지도 모른다고 예상됐던 선수고, 보그스는 10년 이상 준척급 선수로 활약했다. 심지어 루이스, 윌리엄스, 보그스 3인방은 동기였는데, 이들은 1년 선배이자 NBA 86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뽑힌 데이비드 윈게이트와도 같이 뛰었다.[3] 그는 1972년부터 13년간 웨이크 포레스트대를 지휘하면서 먹시 외에 프랭크 존슨도 발굴한 바 있다.[4] 당시 NBA에서 뛰던 선수들 중 가장 빠른 선수였다. 빌 레임비어처럼 느린 선수의 경우, 보그스가 2미터 정도 뒤에서 출발했음에도 한쪽 자유투라인 부근에서 반대쪽 코트까지 가는동안 죽어라고 뛰는 레임비어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레이업을 올려놓는 장면이 나올 정도.[5] 게다가 작은 선수들은 큰 선수들에 비해 은근히 파울콜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어 은근슬쩍 시도를 하면서 팔이나 몸을 치는 거친 수비를 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지금보다 핸드체킹(손으로 공격수를 밀거나 잡아당기면서 견제하는 것)에 훨씬 관대한 시기이기도 했고.[6] 워싱턴 시절 마뉴트 볼을 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7] 그의 스틸 실력은 경기당 통산 1.5개로 출장시간(28.6분)에 비해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8] 통산 889경기에 총 블럭슛이 39개다.[9] 초단신 선수들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수비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비에서 까먹는 걸 공격으로 만회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보그스와 다른 케이스지만 아이제아 토마스(1989)의 경우 뛰어난 수비수들이 백코트 파트너로 있었고 수비 시스템이 훌륭한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었음에도 그로 인한 수비부담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토마스나 보그스는 공격에서 공헌하는 것이 수비에서 깎아먹는 걸 상회했기 때문에 중용되었던 것. 보그스는 10년 넘게 뛰면서 전성기 때 강팀의 주전가드로 뛰었고, 토마스는 올NBA 세컨팀까지 올랐다.[10] 특히 165cm의 얼 보이킨스, 175cm의 네이트 로빈슨 같이 초단신 선수들은 대부분 득점형 포인트 가드들이 많다. 이런 선수들은 주로 출장시간이 제약받는 경우가 많은데, 짧은 출장시간 내에 두각을 나타내려면 폭발적인 득점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11] 포인트 가드 특성상 팀에서 공을 가장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실책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포인트 가드들은 실책 자체만 놓고 보는게 아니라 어시스트 대 턴오버 수를 보고 평가한다. ATR 분야에선 2016-17 시즌 초반 현재 안드레 이궈달라가 5.7을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그는 원래 이 수치가 높은 선수가 아니라 (16, 15시즌 둘다 3을 기록) 떨어질 게 거의 확실하다. 풀시즌 기준으로 2015-16시즌 ATR 리그 1위는 마이크 콘리로 4.1, 15시즌은 크리스 폴로 4.4, 그 전 시즌에도 폴로 4.3에 불과(?)했다. 즉, ATR 관련해서 보그스는 통산 기록이 웬만한 선수들의 커리어 하이급 수치와 맞먹는 괴물인 것. 참고로 레전드 중에는 역대 평균 어시스트 1위이자 턴오버가 많기로 유명한 매직 존슨이 통산 2.9, 역대 총어시스트 1위인 스탁턴이 3.7 정도이다.[12] 보그스의 기술 중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한 게 이 드리블이었을 것이다. 샬럿 호네츠 항목에도 나와있는 영상을 보면 알수 있듯이 풀스피드로 달리면서도 드리블을 하는데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앨런 아이버슨같은 역대급 드리블러도 carrying the ball 시비가 붙은 적이 종종 있는데 보그스는 거의 드리블을 땅에 붙어서 하는데다 기본기가 매우 정확해서 이런 애매한 드리블도 거의 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드리블이 상식 밖으로 낮아서 스틸하는 건 거의 불가능.[13] NCAA가 공식적으로 삼점슛을 적용시킨 건 1986-87시즌이었다. 그 전에 일부 컨퍼런스에서 사용하긴 했지만.[14] 물론 그는 슛을 매우 아끼는 타입이었고, 득점 자체를 많이 하진 않았으므로 다른 득점형 PG들과 비교하는 건 무리다.[15] 실제로 단신 선수들은 선수 구성에 영향을 많이 받고 전성기가 짧다. 175cm로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캘빈 머피도 실력에 비해 시즌별로 기록차이가 있는 편이었으며, 아이제아 토마스도 (부상 문제가 있긴 했지만) 올NBA세컨팀에서 갑자기 벤치급으로 추락하는 등 왔다갔다했다. 보그스 역시 자신과 안 맞는 구성의 팀이었다면 주전으로 출장하기 어려웠을수 있으나, 다행히 자신과 딱 맞는 샬럿에서 전성기를 보낼 수 있었다.[16] 보그스는 단 한번도 NBA게임에서 덩크한 적이 없다. 다만 보그스 본인에 따르면 연습 중에는 덩크가 가능했다고 하며, 경기 중에도 고등학교 때 한번, 대학교 때 딱 한번씩 덩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시대적 한계로 영상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 실제로 운동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경기 중에 레이업할 때도 종종 손이 림 근처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점프력이 44인치에 달했다고 하는데, 저게 사실이면 산술적으로 덩크가 가능한 높이이긴 하다.[17] 동료 마누트 볼과 함께 찍은 사진 중 볼이 공을 든 손을 위로 쭉 뻗고 보그스가 점프해 공을 터치하는 사진이 있는데 이때 사진을 보면 손이 림을 훌쩍 넘기고 있다. 참고로 볼은 스탠딩 리치가 318cm로 림보다 높기 때문에 저 골대는 정상 높이라고 보는게 맞다. 80년대에 찍은 사진이니만큼 저 정도로 위화감 없는 고품질의 합성사진일 확률은 낮고, 점프력이 44인치란 증언이나 경기 중 보여주는 보그스의 점프력을 감안하면 저 정도 뛰는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경기 중 덩크가 없다는 건 이상한게 아닌데, 덩크가 가능한 단신 NBA가드들 중 상당수가 난이도와 성공률을 이유로 경기 중엔 일부러 덩크가 아닌 레이업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3cm의 JJ 레딕이 경기 중 스탭 한번 밟고 투핸드 덩크를 손쉽게 성공시켰을 때 해설자는 "JJ 레딕이 덩크하는 것 처음 보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18] 여담으로 폐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에 유전성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먹시의 여동생인 셰론 보그스는 고향 볼티모어주에서 32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2015년 55세로 폐암으로 사망했다.[19] 이는 먹시 보그스가 아버지가 사망하기 8일 전에 같은 고등학교 동창의 NBA 선수였던 레지 루이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던 소식을 접했던 바 있었기에 더욱 친형을 도와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마음이 컸다고 전해진다.[20] 뒤에 따라오다가 문 위에 부딪쳐 기절하는 선수 세 명은 왼쪽부터 래리 존슨, 숀 브래들리, 패트릭 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