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17:43:30

문나이트(클럽)


1. 개요

1. 개요

1980년대 중후반경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댄스 음악과 블랙뮤직의 텃밭이 되어준 전설적인 클럽이다. 사장은 서치훈이라는 인물이며 1948년생으로 2013년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태원동에 소재하고 있는 클럽이고, 주소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132-3이다.

아들인 서재용에 따르면 "아버지가 2013년 6월 23일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이태원에서 소울트레인[1]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다 인근에 문나이트를 차렸다. 90년대 후반까지 가게를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 서씨는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등 지금도 아버지의 가게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지인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섭섭함을 토로하며 "그 가운데에 빈소에 와 준 강원래, 구준엽, 이현도씨에게는 특별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당시 가게에서 일하는 김민재라는 DJ가 있었다. 아버지 일을 열정적으로 도와주던 DJ인데, 연락이 끊겼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문나이트' 사장 서치훈씨, 지난해 작고…유가족 "잊혀져 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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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Korean Popular Dance Music 대한민국 대중 댄스 음악의 성지(좌측) 90년대 초 이태원 문나이트 돌출 간판(우측) 강원래 문나이트 전시 광고판

미군 용산기지 부대 근처고 외국인 밀집 지역으로 유명한 이태원에 위치한 만큼 처음에는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내국인의 출입도 허용하면서 해외의 댄스 문화와 본토에서 유행하는 음악들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며 춤꾼들의 새로운 아지트가 되었다.

한국의 댄서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확하게 1986년이다. 프로듀서 한백희는 조카인 김완선을 17세의 나이에 데뷔시키면서 기존에 리듬터치 댄스팀을 해체시킨다. 이때 리듬터치에서 안무를 맡던 안무가인 이성문이 이주노박철우를 데리고 1세대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를 창단하고 문나이트라는 이태원 클럽에 활동하게 된다.[2] 그 후에 노피플,[3] 노파킹, 엑스레이, 오토매틱 등의 초창기 브레이크 댄스팀이 등장하였고 이때 이주노, 박철우, 박남정, 도건우[4]가 유명했는데 이들이 모인 문나이트 클럽이 춤꾼 사이에 명성을 떨치면서 좀 뒷 세대들인 현진영, 양현석,[5]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 이탁, 유영진, 미애[6]와 같은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문나이트에 대거 모이게 된다.

당시에 춤 좀 춘다는 댄서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였는데, 단순히 춤을 즐긴다기보다는 춤 실력을 과시하고 연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여기서 열린 댄스 배틀[7]에서 돋보이기 위해 댄서들은 남몰래 연습을 하며 때로는 서로 친분도 쌓으며 새로운 춤에 대해 정보 공유도 하는 덕분에, 이곳에서 첫선을 보이고 인기를 얻은 춤들이 방송까지 진출하는 일이 부지기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춤이 다름 아닌 토끼춤이다. 이 춤 탁재훈이 못 춘다.

1988년에 박남정이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을 시발점[8]이 되었는데, 당시 박남정이 거느리는 댄스팀의 이름은 "박남정과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이라는 댄스팀에 이주노, 양현석, 박철우, 김영완, 현진영이 있었다.

박남정이 가수로 데뷔하면서 연예계 내부에서도 이곳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 각종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이곳을 찾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기획자가 이수만이호연이었다. 김완선의 등장 이후 댄스음악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놓칠 수 없었던 이수만은 한국에 흑인 댄스음악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바비 브라운을 참고하여 현진영을 발탁한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를 영입하기 위해 여인도시라는 나이트클럽에서 댄스 페스티벌[9]을 개최하였는데 이주노, 양현석, 이현도, 김성재, 유영진, 미애 등 여러 명이 참가하였다. 당시 이현도·김성재팀이 밀리게 되자 김성재가 다급하게 구준엽에게 전화을 해서 구준엽·강원래가 참여하게 된다.[10] 결국 구준엽·강원래 팀이 이주노·양현석팀을 꺾고 우승하게 된다. 얼마 후 최진열[11]의 제의로 두 사람은 SM에 입사하게 된다.[12] 또한 이호연은[13] 소방차의 멤버 이상원이 탈퇴하자 문나이트의 춤꾼인 도건우를 소방차의 새로운 멤버로 영입하였다. 한편 문나이트에서 DJ를 하던 신철은 1990년에 나미와 "나미와 붐붐"을 결성하여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댄서와 랩퍼를 오가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1992년에 미애와 "철이와 미애"를 결성해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큰 인기를 얻게된다.

또 이 무렵 김종서와 함께 무궁화밴드에서 활동하던 서태지는 어느 날 캐피탈호텔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마침 "박남정과 친구들"이 그날 그곳에서 공연을 하였다. 무궁화밴드의 공연이 끝난 후 평소 춤에 관심이 많던 서태지는 박남정의 공연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춤을 배우기 위해 박남정의 팀원이었던 양현석에게 말을 걸게 된다. 이때 양현석은 거액의 레슨비를 요구하였고 서태지는 이를 지불하였지만 양현석이 입대를 하면서 레슨은 하지 못하게 된다. 양현석이 군대에 있는 동안 서태지는 많은 곡을 작곡해 두었고 8개월 만에 의가사제대를 한 양현석이 레슨을 위해 서태지에게 연락하자 서태지는 양현석에게 자신이 만든 곡들을 들려준다. 양현석은 노래는 좋은데 혼자 하긴 어려울 것 같으니 팀을 꾸리자고 제안하였고 몇 명의 후보들을 거쳐 이주노가 영입되면서 전설적인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결성된다.(참고로 이주노는 1집 녹음이 완료된 후에서야 본격적으로 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기에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서태지와 양현석 목소리만 실려 있다.)

한편 구준엽·강원래는 군에 입대하여 와와는 이현도와 김성재가 대신하게 된다. 1991년에 현진영이 부산 공연 도중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에 실망한 이현도와 김성재는 SM을 떠나게 되며 1993년에 듀스로 데뷔한다.[14] 1992년 4월 서태지가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현진영을 복귀시키고 2집을 발표한다.[15] 이 때 구준엽은 제대 후에 이탁과 함께 남성듀엣 '탁2준2'[16]를 결성하여 다시 활동하게 된다.[17] 그러나 현진영과 이탁이 필로폰 투약사건을 일으키며 SM은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몰렸고 탁2준2는 그대로 해체되었다. 3년 후 구준엽은 강원래와 함께 클론을 결성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현진영과 이탁은 IWBH[18]를 결성해서 '뻗어봐'로 활동했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이듬해에 또다시 본드를 흡입한 혐의로 둘은 함께 구속되어버렸다.

90년대에 들어와 문나이트 출신 댄서들이 연달아 가수로 데뷔하면서 가요계에서 큰 축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문나이트 출신들로 이루어진 SM의 유영진,[19] YG의 양현석, JYP의 박진영 등의 기획사들이 3대 기획사로 군림하면서 현 가요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댄스가수 박남정, 한국 힙합의 원조로 불리는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이주노양현석, R.ef박철우성대현, 듀스이현도김성재, 클론강원래구준엽, 콜라 출신 김영완과 같은 콜라출신이자 강원래 아내 김송, 김건모 백업댄서로 입문해 1994년 솔로로 데뷔한 박진영, 룰라이상민신정환, 고영욱, 채리나, 철이와 미애신철미애, 터보김정남, 영턱스클럽최승민[20] 룰라 백업댄서 출신 코요태빽가,[21] 팝핀현준 등 20세기 말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댄스 실력으로 끗발을 날리던 0세대, 1세대 춤꾼들은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

2021년 10월 24일 SBS에서 제작한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4화에서 문나이트와 이곳을 거쳐간 댄스가수들을 다루었다. 만화 힙합으로 인기를 끌었던 만화가 김수용[22]이 찍은 영상이 나왔는데 영상에서 비보이 하휘동[23]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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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들의 인맥도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데, 이건 엠넷에서 드라마 문나이트90 제작을 위해 자체 제작한 인맥도로서 드라마에 출연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관계도가 형성되어 있어서 박남정, 박철우 등 초창기부터 문나이트를 이끌어갔던 춤꾼 연예인들이 이 그림에서는 비중이 적은 것처럼 묘사되는 등 실제와는 좀 동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댄스 가수를 꿈꿨던 이들이 클럽 대신 댄스 경연 대회나 오디션을 통해 들어간 연예 기획사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되면서 댄서들의 활동 영역 변화와 국내 클럽 문화의 지형 변화로 문나이트는 쇠퇴기를 걷다가 90년대 후반까지 가게를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

MNet에서 이 문나이트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UV가 부른 동명의 주제가는 이 문나이트에 대한 헌정곡인 셈.

2018년 10월에 강원래가 옛 문나이트 자리[24] 인근에 라운지, 펍 바의 형태로 문나이트를 재개장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운영이 어려워진 모양인지 2020년 11월 24일, 문나이트를 인수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1] AFKN을 통해 국내에서도 방영된 Soul Train에서 따온 상호명. 문나이트의 춤꾼들 또한 이 프로그램을 보며 춤을 배웠었다.[2] 그때는 문나이트는 일개 클럽이었다. 여기서 안무가 이성문이 스파크를 창단한 후 문나이트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문나이트는 댄서들의 성지로 거듭나게 되었다.[3] 이주노가 스파크에서 독립하여 노피플을 결성했다.[4] 기계체조를 배운 적이 있으며 묘기에도 능하다. 장혜리의 1987년 2집 '추억의 발라드' 활동 당시 백댄서 팀이었던 '에레스테'의 일원이었다.[5] 양현석은 댄서를 지망하다 포기한 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우연히 TV에 백댄서로 출연하는 옛 친구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입단한다.[6] 철이와 미애의 미애[7] 당시엔 쇼다운이라 불렸다. 지금 현재 한국의 비보이 크루들의 댄스 배틀 효시격이라고 봐도 좋다.[8] 사실 이미 도건우·이주노·박철우가 백댄서로 가요계에 데뷔했었다. 도건우는 에레스테팀의 백댄서로 이주노·박철우는 리듬터치 댄스팀에서 백댄서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가수로 데뷔한 것은 박남정이 최초였다. 그 후 같은 해에 도건우가 소방차로 데뷔하고 2년후에 현진영이 데뷔하게 된다. 이때 박남정이 데뷔하면서 프렌즈라는 백댄서팀을 창단하였고 이후 문나이트에서 주름잡던 김영완의 주도하에 엄정화의 백댄서팀으로까지 계보가 이어지며 코요태의 김종민도 백댄서 시절 이 팀에 속해 마지막 세대로 활동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9] 심사위원: 최민혁(REF 제작, 유승준 PD), 이수만, 최진열 / DJ: 김창환(라인기획 PD) / 사회자: 김승현[10] 아는 형님 136회에서 구준엽의 증언[11] 문나이트에서 DJ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인맥을 만들기 위해 이수만이 영입하였다. SM의 대표를 하다가 나중에 서태지의 매니저를 맡는다.[12] 강원래는 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서술했다.: SM 이수만 사장님의 목적은 우리를 가수를 시켜준다고 꼬셔서 현진영 뒤에서 춤을 추게 만든 거죠(이건 몇개월이 지나서 피부로 느끼게 된 것임!) 그래서, 송파구 석촌동의 SM 기획 지하실에서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죠..밤에는 흑인클럽인 문나이트에서 연습... 낮에는 지하실에서 연습... 근데 열심히 연습하는건 좋은데 분위기가 현진영이 솔로 가수로 되고 우리는 이상하게 되어 가는것 같았죠..그러다가.... 우연히 최진열씨에게 우리가 물었죠.. "우리는 뭐냐고, 우리가 댄서냐고.." 그랬더니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죠.. "니네는 댄서가 아니지. 이름을 만들어서 현진영과 XXXX라고 부르자. 그러면 한팀으로 보이잖아"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준엽이랑 같이 고심하다가 내가 만들었죠.. 당시 동네후배 성재가 신나는 일이 있으면 "와우"라는 말을 쓰곤했는데 거기에서 따왔죠..준엽이랑 나랑... "와와"라고 지었죠.. 그때가 1989년 12월 이었죠.[13] 당시 그는 소방차의 성공으로 한밭기획 전무에서 독립하여 대성기획을 설립한 상태였다.[14] 그 후 2인조 와와는 다인원 백댄서팀으로 개편이 되었고 션, 김송, 김재현이 있었다.[15] 이탁이 작곡한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매우 큰 인기를 얻었다.[16] 당시 현진영의 소속사는 SM이지만 이탁과 구준엽의 소속사는 SM이 아니다.[17] 참고로 당시 강원래는 안무가 겸 공연 연출가로 변신하여 김건모, 노이즈, 룰라 등의 안무를 맡았고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에서 백댄싱과 인상적인 랩을 선보였다.[18] international world beat hip-hop[19] 1980년대 후반 춤을 추고자 서울로 올라온 유영진은 MBC 무용단에 합격하는데, 여기서 미애를 만나 문나이트와 인연을 맺게 되고 구준엽, 강원래와 친하게 된다.[20]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문나이트편에 나왔는데 이상민이 밝힌 바에 따르면 양현석에게 문나이트에서 오디션을 본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21]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에서 문나이트 키드임이 밝혀졌는데 자신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문나이트 앞에서 장사를 했고 어머니가 문나이트 사장님과 친해져 춤을 좋아하는 아들을 들여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고 들어갈 수 없는 나이인 중2 때 부터 문나이트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22] 강원래가 VCR 속 김수용을 보며 "박남정 따라추기 1등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23] 당시 닉네임으로 불리던 스네이크라 했다.[24] 현재 옛 문나이트 자리에는 용산구 보훈회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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