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미타카시에서 발생한 열차 탈선 사고에 대한 내용은 미타카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東京・三鷹バス痴漢冤罪事件2011년 일본에서 한 남성이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써 세간의 이목을 모은 사건.
'성범죄자의 검거에 조력했다'는 타이틀을 얻으려고 멀쩡한 사람을 치한으로 내몬 취업준비생, 자기가 근무하던 버스회사에서 치한죄가 일어난 사실을 덮기 위해 오버한 버스기사,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바꾼 자칭 치한 피해자인 여고생과 언론의 눈치를 살핀 경찰, '성범죄자에게 철퇴를 가한 판사'라는 타이틀을 지키려고 한 판사가 무고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내몰아 그 사람을 지옥불로 떨어뜨린 사건이다.
다행히 2014년 7월 15일 고등재판소(한국으로 치면 고등법원)에서 항소가 받아들여져 무죄 판결을 받았다.
2. 발단
2011년 12월 22일 도쿄도 미타카시 버스노선에서 버스기사와 가라테 유단자 취업준비생이 여고생을 추행한 치한을 검거했다. 이후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가라테 유단자는 '정의집행'이란 말을 외치며 검거한 성범죄자에게 폭행을 가했다. 버스기사는 "우리 회사 버스에서 치한이 나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치한을 잡았다는 사실을 주변에 강조했다.경찰이 도착한 뒤 치한의 정체가 밝혀졌다. 치한은 해당 버스 노선에 위치한 공립 중학교의 교사였으며 치한행위를 일체 부정했다.
단, 위 내용은 초기의 보도내용에 의한 것이며 향후에 밝혀진 사건의 실제 발단에 대해 알아보려면 아래의 발단-진상 문단을 참조하자.
"나는 한손으론 손잡이를 잡았고, 한 손으론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내리기 전 문자를 보냈다. 문자 발신기록과 버스 내의 CCTV를 확인하면 내 무죄가 증명될 것이다"
치한행위를 부정하는 주장에 격노한 취업준비생과 버스기사는 언론에 '뻔뻔한 치한을 잡았다'는 투서를 보냈다. 매스컴이 몰려오자 일본 경찰은 과학수사팀을 초빙해 치한행위를 검증하기 시작했다.2.1. 과학수사대의 검증
초빙된 과학수사대는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섬유가 검출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만진 흔적이 없다"
취업준비생과 버스기사의 목격 증언을 토대로 치한행위를 당한 여고생이 입고 있던 학교의 교복은 100% 울섬유제로, 울섬유에 피부를 문지를 경우 그 섬유조각이 묻어나게 된다. 하지만 과학수사팀의 검사 결과 치한으로 체포된 교사의 손에선 섬유가 일체 검출되지 않았다.이러한 결과에 현지 경찰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과학수사팀이 검증수사를 시작한 시점에서 그 결과를 듣지 않고 "과학검증을 마쳤다"는 발표와 함께 교사의 치한행위를 인정하는 발표를 내보냈다. 위기에 몰린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취업준비생과 버스 기사를 불러들였지만 신원이 불분명했던 취업준비생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버스 기사만이 남게 되었다. 이에 버스 기사는 CCTV의 자료를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CCTV 자료의 회수와 함께 치한 피해자로 추정된 여고생을 소환했다.
2.2. 피해 여고생의 증언
증인으로 소환된 피해 여고생은 "손을 잡았다", "누군가 만진 것 같긴 하다.", "(피고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모호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발언 중 '손을 잡았다'는 발언은 취업준비생과 버스기사의 '엉덩이를 계속 매만졌다'는 증언과 충돌했고 CCTV의 조사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2.3. CCTV 기록
CCTV 영상이 공개되자 경찰은 충격에 빠졌다. 체포된 교사의 주장대로 한 손으론 손잡이를, 한 손으론 종이로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피고의 모습이 찍혀 있었으며 치한 피해자로 소환된 여고생과 함께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모습이 확인됐다.2.4. 경찰의 자료조작
CCTV라는 증거 영상, 과학수사팀의 과학수사 결과, 피해자의 모호한 증언과 (불리해지자 도주한) 신고자의 증언이 어우러져 자신들이 삽질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경찰은 증언과 증거를 조작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다 도주한 취업준비생 때문에 이미 너무 큰 사건으로 번졌으며 과학수사대의 검사 결과를 듣기도 전에 "피고가 범인임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발표를 섣불리 해 버린 막장 상황을 증거 및 증언 조작으로 넘어가려 했다.경찰은 오락가락하는 증언을 했던 여고생을 다시 소환한 후 추궁해 "닿았다"는 내용을 증언록 곳곳에 추가하고 잡아들인 교사의 구류 기간을 타 관할지역으로 잠시 넘겼다가 돌려받는 식으로 연장해 1년 6개월 동안 구류시켜 언론의 관심을 돌린 후 여고생의 증언을 기본으로 교사를 "짧은 시간 동안 수차례 몸을 더듬은 악랄한 치한"으로 만들어 2013년 5월 8일 재판을 열었다.
"서류를 확인한 후, 핸드폰 문자를 보내기 전의 부재시간인 10여 초 사이에 수십 차례 추행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CCTV의 사각에서 추행을 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담당 판사는 성범죄자들에게 너무 과중한 처벌을 물리기로 유명한 강경파 판사로, 경찰의 이러한 주장을 모두 수용했다. 경찰의 주장을 모두 수용한 판사는 치한죄의 성립을 선언하고 벌금 40만 엔을 선고했다."CCTV의 사각에서 추행을 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해당 판결에 일본변호사회는 항의성명과 함께 '고등재판소에 항소할 인력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으며 과학수사팀에 자문을 해 주는 대학과 과학수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2.5. 유죄 판결, 그리고 남은 것
치한죄가 성립된 교사는 공개적으로 교단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최초 검거 직후부터 이미 중학교 교사직에서 해임되었으며 18개월간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으므로 재임용을 요청하는 항의서를 문부과학성에 내었으나 모두 묵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성범죄자로 몰려 사실상 사회적인 말살을 당했다.3. 반격의 시작
유죄 판결이 나온 후 일본 변호사회는 '일본 사법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고쳐야 한다'며 적극 개입의사를 밝혔고 스타급 변호사들을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다.3.1. 1심 분석
일본 변호사회는 1심 판결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는데 유력한 것은 다음과 같다.- 교사가 누명을 썼던 시기, 자신이 치한체포에 조력한 것을 내세워 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 '정의집행'이라 외치며 주변에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외친 이 자칭 취업준비생은 자신의 취업을 위해 노골적으로 교사에게 누명을 씌우는 데 일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 버스 운행 시 생겨난 문제에 대해 해당 버스를 운행한 기사가 책임을 지게 된다. 버스기사는 이 책임을 '치한을 검거하는데 조력했다'는 것으로 벗어나려고 한 것으로 여겨진다.
- 성범죄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반복하여 자서전 출판까지 제안받은 판사가 자신의 명예와 업적을 위해 경찰의 억지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발표한 경찰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검찰로 넘기기 위해 증거와 증언을 조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 오락가락하는 증언을 한 여고생은 자신을 피해자로 대우해 주는 주변 반응을 즐기며 위증에 참가한 것으로 여겨진다.
3.2. 그리고 무죄로
일본변호사회는 취조기록에 대한 녹음과 증언기록이 없다는 점을 들어 여고생의 증언 자체가 모순되어 있다는 점과 섬유검출 시연을 반복하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범죄라는 점을 강조해 고등재판소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고 검찰도 상고를 포기했다. 피해자를 자처하며 언론의 관심을 즐기는 것 같던 이전 여고생(2013년에 졸업해서 무죄 나온 시점에서는 성인 무직자)에게 이번 무죄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정작 피해자를 자처하던 이 여자는 그동안 아예 이 사건에 관심을 끊고 살았던 것인지 처음에는 뭘 말하는 지 모르겠다고 하다가 기억을 떠올렸는지 왜 무죄가 나왔냐며 오히려 기자한테 질문하며 횡설수설하다가 인터뷰를 거절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4. 발단 - 진상
2011년 11월 22일 JR 동일본 키치죠지역에서 케이오 전철 센가와역으로 향하는 오다큐 버스 차량 내에서 "치마 위로 엉덩이를 만졌다"는 혐의로 츠야마 마사요시(津山正義[1], 공립중학교 교사)가 체포되었다.츠야마는 키치조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회식을 마친 후 근무하던 학교에 두고 온 지갑을 가지러 센가와행 버스를 탔다. 당시 츠야마는 어깨끈을 늘어뜨린 륙색(rucksack)[2]을 앞쪽으로 메고 승차하였다.
출발 후 8번째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앞에 서 있던 여고생이 뭔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츠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뭔가 심기를 건드렸나 싶어서 트러블을 회피하고자 별 생각 없이 '아, 미안미안'이라고 말했다.[3]
그러자 앞에 있던 여고생은 츠야마의 손목을 붙잡고 "같이 내리죠"라고 말하였고 근무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소란이 생기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아서 따라 내렸다.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자신은 치한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자리를 뜨려고 하였으나 때마침 도착한 다음 차량[4]의 운전수와 승객이 쓸데없는 정의감을 내세우며 츠야마를 쫓아가서는 치한 범죄자라며 때려잡았다.
이 사건에서 여고생은 치한 행위를 본 것도 아니고 치한 행위를 하고 있는 현행범의 손을 붙잡은 것도 아니었으며 운전수와 취업준비생은 치한 행위가 있었다는 버스에 탑승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여고생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주장 한 마디 외에는 그것을 보완할 어떠한 목격자의 증언이나 객관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5. 같이 보기
- 엔자이
- 일본/사법
-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 무죄추정의 원칙
- 무고죄
- 성범죄
-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입니다
- 상서중학교 성추행 의혹 교사 자살 사건 - 한국판 미타카 버스 사건.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인 교사는 억울함을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결말은 더욱 비참하다.
[1] 공교롭게도 정의의 이름으로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의 이름이 正義이다. 또 한 가지 아이러니한 부분은 누구 하나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날조로 점철된 이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이름인 '미타카'가 '봤나?(見たか?)'와 발음이 똑같다는 점이다.[2] 등에 메는 배낭의 일종으로 독일어에서 유래된 단어[3]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하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남과의 충돌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일본인의 국민성 때문에 앞뒤 생각 없이 일단 사과하고 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일본 드라마나 애니 등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스미마센'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국민성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살짝 부딪히거나 할 때도 거의 습관처럼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목례 정도로 그치거나 '잠시만요' 정도의 다른 어휘를 쓴다.[4] 츠야마와 여고생이 탄 버스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