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證據裁判主義 / Principle of Evidence범죄사실의 인정은 감정(感情)이나 추측이 아닌 증거에 의해야 하고, 유죄판결을 하려면 합리적인 관점에서 무죄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열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에 대응하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다.
1.1. 대한민국의 증거재판주의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
대한민국의 증거재판주의는 대한민국 헌법 제12조의 '신체의 자유' 조항에서 비롯된다. 신체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 중 하나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로 정해진 바 외에는' 그 누구도, 심지어 국가권력일지라도 개인의 신체를 마음대로 구속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12조 1항에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 적법한 절차 가운데 형사소송법 제307조에 의하여 성문화된 원칙이 증거재판주의이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 ①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
형사소송법상 '증거'는 유형의 물증뿐만 아니라 '법원 또는 법관의 조서(동법 제311조)', '검사 또는 형사의 조서(동법 제312조)', '진술서(동법 제313조)'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필로 서명한 진술서라 해도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자백이 '유일한 증거'라면 그 어떤 경우에서도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동법 제310조) 이는 인간의 진술이 거짓가능성과 주관성을 띄고 있기 때문으로, 사람의 의견만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대법원은 '합리적 의심(Reasonable suspicion)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란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중략) 여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을 사실인정과 관련하여 파악한 이성적 추론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
증거의 논리성과 과학성은 합리적 의심을 제거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어떤 증거가 과학적으로 확실한 사실을 증명해준다면 이는 같은 실험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므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라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진술과 자백에 그치지 않고 물증을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증거능력을 해석하고 판단할 권리는 최종적으로 재판관에게 있다.
2. 역사와 위기
증거재판주의는 인간이 인간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지만, 역사적으로 항상 증거재판주의가 철저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다. 최초의 성문법인 우르남무 법전(기원전 2100년)이나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50년)에도 '범죄의 증명'이라는 문장이 등장하나[1], 실질적으로는 통치자, 권력자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법살인을 당했는지는 차마 나열하지 못할 만큼 많다. 가장 큰 원인은 국가행정을 집행하는 군주가 사법권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를 제어하려는 행동은 많은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통치자의 판단력에 대한 모독이자 중대한 반역으로 취급되었다.18세기를 전후하여, 몽테스키외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사법권의 분립을 강력하게 주장[2]했으며, 근대적인 재판소가 설치되어 마침내 '재판관이 독립하여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형태의 사법제도가 실현되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선진국에서 사법부의 가치 중립은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으므로, 재판관은 쌍방에서 독립하여 제출된 증거만을 토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른 오늘날까지도 증거의 인정과 유죄 판결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는 수사기관의 정보능력과 변호인의 변론, 재판관의 판단력과 청렴도 등 통제하기 힘든 변인에 따라 도출된 판례가 상이하며, 서로 다른 법원끼리 모순된 입장을 내놓기도 하는데다가, 증거를 탐지하는 과학기술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관이나 배심원이 가진 감정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독재 국가 및 종교 국가, 행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진 경찰 국가(행정국가)에서 "재판관이 통치 권력으로부터 아직 완전히 독립해 있지 못하다."는[3]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사법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형식적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증거가 재판관에 의해 무리하게 채택되어 유죄로 결론 나거나, 또는 물증이 다수 존재하여 범죄자임이 확실한 피고인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거에 판결난 사건이 오늘날에는 증거효력을 발휘하거나 상실할 수도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안심할 수는 없으며, 엔자이와 유죄추정의 원칙 등 냉소적인 키워드들은 많은 현대인이 증거재판주의를 충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3. 관련 문서
[1] Roth, Martha. Law Collections from Mesopotamia and Asia Minor, 1997, 22-23p[2] De l'esprit des lois, 1748[3] 흔히 '법이 권력의 하수인이다' 하고 표현하는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