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1-12 05:13:42

박노근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히라노 코오(平野光應)
공보(公甫)
본관 순천 박씨[1]
출생 1928년 9월 21일[2]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3][4]
사망 1956년 10월 12일[5]
경상남도 산청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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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노근은 1928년 9월 21일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에서 아버지 박기동(朴琦東, 1910. 4. 2 ~ ?)과 어머니 진주 정씨(1906 ~ 1986. 1. 18)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기동은 독립군으로 활동했다고 하며, 순천박씨판윤공파보 2권 302쪽에 따르면, 일찍이 외국을 떠돌다가 끝내 귀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1943년경 경남 진주군에 소재한 진주공립중학교에 재학하던 중 하익봉, 김상훈(金相勳), 강필진 등과 함께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하였다. 광명회는 독서써클로 우리 역사를 공부, 토론하고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한 단체였다. 이들 회원들은 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로, 특히 그의 아버지와 하익봉의 삼촌이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졸업 후에는 모두 독립군에 가담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중 박노근은 1944년 9월 진주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해비행장 건설공사 현장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천막으로 지은 막사에서 공동숙식을 하며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박노근을 포함한 광명회 동지들은 학생들에게 우리말 사용을 생활화할 것과 독립군의 활약상을 전파하는 등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해 활동하다가 9월 23일 동지들과 함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었다.

박노근은 진해헌병대 영내에서 약 40일 동안 구금된 채 학교 내외에 퍼져 있는 항일운동과 조선독립을 위한 써클활동의 사실유무 등의 자백을 강요받으며 갖은 협박과 고문을 당하였다. 1944년 11월 동지들과 함께 군용트럭편으로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된 뒤 9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1945년 6월 출옥하였다.

이후 산청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6년 10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노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판윤공파-용담공파 22세 노(魯) 항렬.[2] 음력 8월 8일.[3]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권익현 전 국회의원과 독립유공자 권숙린·박권세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출생지인 600번지에는 현재 산청 단계리 박인현 고택이 위치해 있으며,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444호로 지정되어 있다. 박인현(朴寅鉉, 1861 ~ 1925. 10. 16)은 박노근의 증조부이고, 현재 소유 및 관리 중인 박갑동(朴甲東, 1919. 2. 10 ~ ?)은 박노근의 작은아버지이다.[5] 음력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