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영옥(英玉) / 심계(心溪) |
본관 | 월성 박씨(月城)[1] |
출생 | 1876년 12월 3일 |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상라동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상라마을)[2][3] | |
사망 | 1954년 12월 5일[4] |
묘소 |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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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승조는 1876년 12월 3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상라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상라마을)에서 아버지 박현구(朴顯求, 1853. 3. 22 ~ 1939. 12. 28)와 어머니 여주 이씨(1852. 5. 13 ~ 1932. 10. 21)[5] 사이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서산 김흥락(西山 金興洛)의 문하에 들어가 한문을 수학했다.1920년 음력 3월경, 6인조 이범구(李範九)의 권유에 따라 흠치교 12인조에 가입한 박승조는 1924년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황제에 취임하여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도를 포섭하였고, 아울러 이들로부터 치성금 명목으로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등 국권회복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박승조는 1921년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고, 이에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2부에서 원심 판결이 취소되어 미결 구류일수 중 120일이 본형에 산입되고, 면소 처분을 받아 곧 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4년 12월 5일 별세하였다.
200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