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윤화(潤化) / 서암(西巖) |
본관 | 월성 박씨(月城)[2] |
출생 | 1872년 10월 4일 |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하라동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하라마을)[3] | |
사망 | 1961년 2월 22일[4] (향년 88세) |
묘소 |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 덕골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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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필조는 1872년 10월 4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하라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하라마을)에서 아버지 박현우(朴顯宇, 1847. 7. 9 ~ 1891. 12. 26)와 어머니 인동 장씨(1843. 12. 21 ~ 1890. 10. 16)[5]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20년 음력 8월경, 군위군에서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여, 겉으로는 종교 활동을 표방하며 독립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1924년에 흠치교의 힘에 의해 조선이 독립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모집 및 교도증대에 힘을 쏟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박필조는 이 일로 인해 1921년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 공소하여 그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2부에서 원심 판결이 취소되어 면소 처분을 받고 곧 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이후 1961년 2월 22일 사망하였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