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01 01:25:07

박무조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박능일(朴能一)
자 / 호 성언(聖彦) / 무호(无號)
본관 월성 박씨(月城)[1]
출생 1859년 2월 29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상라동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상라마을)[2]
사망 1917년 7월 20일
대구광역시 영일군 흥해면 우목동 앞바다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우목리)
묘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이지리 가지골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與其事讎而生, 不若蹈海. 朝鮮逸民 朴能一.
(원수를 섬기고 사는 것은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 것만 못하다. 조선일민 박능일.)

1859년 2월 29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상라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상라마을)에서 아버지 박현원(朴顯源, 1835. 8. 16 ~ 1904. 2. 1)과 어머니 전주 이씨(1828. 10. 11 ~ 1897. 12. 28)[3]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8월 29일 일제경술국치를 당하자 통한을 품고 살아오다가, 1912년 제령(制令)인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의 공포로 호적 편제가 강제되었으나 호적 취득을 거부했다.

그 뒤 1914년부터 1917년까지 가족들을 이끌고 안동군 예안면, 영주군 풍기면 등지를 전전하다가 1917년 7월 20일 영일군 흥해면 우목동(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우목리)의 어느 바닷가 암벽 위에서 "與其事讎而生, 不若蹈海. 朝鮮逸民 朴能一"이라고 유서를 남긴 뒤 바닷속에 투신해 순사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고향인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에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1] 유촌공파(柳村公派) 59세 조(祚) 항렬.[2] 인근의 미성리와 함께 월성 박씨 집성촌이다. 박배근 전 대구직할시장, 박영언 전 군위군수와 독립유공자 박승조·박필조·조성우도 이 마을 출신이다.[3]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이원동(李元東)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