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선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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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31대 | ||||
클럽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정해원 (1984) | ▶ | 박창선 (1984~1986) | ▶ | 조병득 (1987~1988) |
박창선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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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 | | ||
베스트팀 | ||||
| 1984 · 1985 · 1986 | |||
| 1983 · 1984 |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박창선 朴昌善 | Park Chang-Sun | |
출생 | 1954년 2월 2일 ([age(1954-02-02)]세) | |
경상남도 김해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
신체 | 170cm, 65kg | |
학력 | 합성초등학교 (졸업) 김해중학교 (졸업) 동아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1] |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 전역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포항제철 축구단 (1977~1982) → 육군 충의 축구단 (1978~1980 / 군 복무) 할렐루야 독수리 (1983) 대우 로얄즈 (1984~1986) 유공 코끼리 (1987) |
감독 | 동아고등학교 (1992~1993) 대한민국 U-20 대표팀 (1998) 경희대학교 (1994~2003) 대중초등학교 축구부 (2011) | |
국가대표 | 32경기 8골 (대한민국 / 1979~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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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컵 득점 선수다.
2. 생애
2.1. 선수 경력
2.1.1. 클럽 경력
경남 김해 출신으로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7년 실업팀인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육군에서 군복무를 한 후 1983년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되자 할렐루야 독수리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할렐루야에서 15경기에 출장해 3골 6도움을 기록하였고, 6개의 도움으로 도움왕에 올랐고,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대우 로얄즈로 이적하였다. 1984년 대우에서 28경기에 출장해 6골 7도움을 올리며 대우의 첫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이후 1987년 유공 코끼리로 이적하였고, 유공에서 13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2.1.2. 국가대표 경력
1979년부터 1986년까지 32경기 8골을 기록한 박창선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대표팀의 주장으로 참가해 본 대회 챔피언으로 등극할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중거리 슛으로 득점하며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의 본선 무대 첫 골을 기록한 선수로 각인되었다.[2]
1986 월드컵 3경기 모두 출전하여 필드의 중앙을 누비는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고 비록 1승도 거두지 못했으나 당시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 축구의 주장으로서 3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최초의 득점을 하는 등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의 유의미한 업적을 세웠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도 출전하여 3골[3] 3도움으로 대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대회 최우수선수상에 선정됐다. 그리고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2.2. 플레이 스타일
키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다부진 체형에 몸싸움을 잘했고 기동력이 좋았다. 섬세함은 부족했지만 강인한 체력과 저돌적인 플레이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최대 장점은 강한 킥력과[4] 전방으로의 볼 배급이었으며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간결한 탈압박을 이용한 기회 창출 능력이 좋았던 플레이메이커였다. K리그 초대 도움왕이 되기도 했고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10번 역할을 했던 미드필더이자 역대급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회자되고 있다.[5] 다만, 그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시기가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는 늦은 시기였다. 그 이전에는 조광래, 이영무, 박상인 같은 쟁쟁한 미드필더들에게 밀려 국가대표에서 빛을 못 봤으며, 그 때문에 A매치 출전 수도 적은 편이다. 이에 따라, 당시 언론에서는 그를 대기만성형이라 표현했다.2.3. 지도자
은퇴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잠시 현장을 떠났다가 1992년 모교 동아고등학교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1994년부터 모교인 경희대학교 축구부의 감독 및 교수로 선임되어 12년간 지휘했고 8회 우승, 10회 준우승을 거두었다.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박이천호 | ▶ | 박창선호 | ▶ | 조영증호 |
1998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고, 10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1998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당시 김은중, 이동국, 김용대, 설기현, 전재호, 이정수, 노병준, 박동혁, 송종국, 정용훈 등 황금세대를 거닐고 결승에서 이동국의 극적인 터닝 결승골로 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미 경희대에서 몇 년 간 다져진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어린 선수들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선수단을 지휘했다.
하지만 대회 직후 체육특기생 부정입학 의혹이 터지며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게 된다.
이후 1998년 다시 경희대로 복직했고, 2001 KFA 최고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정신적으로 혼란이 왔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유소년 축구 관련 일을 했지만 즐겁고 보람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해 귀국해 2010년부터 본인의 고향인 김해시에서 박창선 축구클럽(PCS FC)의 감독으로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에는 박창선 축구클럽 회원으로 구성된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중초등학교 축구부를 창단해 창단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3. 논란
2013년 김해시 공무원으로부터 공무집행 방해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하며 구설수에 올랐었다.김해중부경찰서에 따르면 불암동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박모 씨는 박창선 감독이 불암동 동장실에서 자신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폭언을 했고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넘어뜨렸다는 내용이 담긴 고소장과 함께 전치 10일의 진단서도 제출했다.
반면 박창건은 "박 씨가 동장실 밖에서 동장실로 들어오면서 먼저 (자신을)잡았고 그 와중에 타박상을 입었다"고 반박했다. 또 서로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옥신각신하는 정도였으며 박 씨가 고소한만큼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박창선은 자신이 아끼는 후배 축구 선수(29)가 불암동 주민센터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듣고 항의하러 간 것으로 알려졌다.#
4. 여담
-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의 소유자이지만 은퇴 후에는 비교적 언론에 노출이 적은 채 조용한 삶을 살고 있으며 월드컵 시즌 때만 주로 언론에 모습을 비추고 있다.
[1] 석사 학위 논문: 프로 및 實業 蹴球選手들의 生活實態에 對한 調査硏究(1993)[2] 그것도 당시 최고의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시절의 챔피언 아르헨티나였으니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3] pk 3골[4]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PK를 도맡아 찼다.[5]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조광래와의 조합은 역대 대표팀에서 손꼽히는 플레이메이커 조합으로 꼽힌다.
분류
- 1954년 출생
- 김해시 출신 인물
- 김해중학교 출신
- 동아고등학교 출신
- 경희대학교 출신
- 경희대학교 대학원 출신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 중앙 미드필더
- 1977년 데뷔
- 1987년 은퇴
- 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 상무 축구단/전역
- 할렐루야 축구단/은퇴, 이적
- 부산 아이파크/은퇴, 이적
- 제주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득점자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1984 AFC 아시안컵 싱가포르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감독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K리그1 MVP
- K리그1 도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