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방통에서 모티브를 따왔다.유비군의 책사로 정략과 군략 양측에 뛰어나다. 본작에서 유비와 반쯤 별개로 활동하는 제갈량과 달리 유비의 옆에서 유비를 보좌하고 있다.
2. 작중 행적
빙의 직후라 정신없는 유비 대신에 군사 작전 시에 총지휘를 담당한다.본래 유비의 명령대로 입촉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미래 지식을 손에 넣은 유비가 전략을 바꿔 파촉이 아니라 한중 정벌을 주장하자 자신의 성격상 그쪽이 더 마음에 든다면서 바로 찬동한다. 한중 공략에서 전황을 읽고 공격을 정하는 등 활약하고 이후 서량 진출에도 유비의 책사이자 군사 지휘관으로 동참한다.
본래 역사에서도 방통은 유비의 의견에 다른 의견을 내기보다는 군말없이 충성하는 측이었으나, 익주 정벌을 두고서는 유장의 장수들을 꺾고 부성에서 술에 취해 기뻐하는 유비를 보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만을 보이는 거 아닙니까?' 라고 불평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등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유비가 방통에게 화를 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면서 봉합되긴 했다.
방통이 입촉을 찬성했단 기록도 있지만 본래 방통의 상책은 정병만을 모아서 성도를 기습해 제압하는 것인데 유비는 이를 거부하고 백수관 등의 성도 주변부터 차례대로 제압하는 중책을 썼다. 방통 입장에선 속전속결하자는 상책도 이미지 관리, 도박수라는 이유로 거절하고는 시간 걸리는 중책을 채택하더니, 아직 끝난 것도 아닌 마당에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즉 입촉 찬성이든 반대든 간에 자기의 상책이 채택되지 않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던 것.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담백한 성품으로 상용 전투에 종군할 군사로 법정을 추천하며 먼저 양보해주었다. 상용에서 귀환한 유비가 본격적인 익주 정벌을 시작하자 다시 종군을 시작. 정예 병력으로 빠르게 친다는 전략을 완벽히 성공시키며 부성, 백마관, 낙성을 연달아 함락시킨다.
성도 정복 이후 유비가 유파를 불러 회의하는 자리에서 동탁의 사례를 우려해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직백오수전 발행 이야기를 끊어버리지만 이어진 회의에서 유파가 보다 상세한 근거로 논의를 전개하자 수긍한다. 군사제도 논의에서는 법정이 제안한 병호제를 지지했으며 손권이 조만간 배신할 것이라는 유비의 예견에 법정, 황권과 함께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데 익숙한 참모들 생각에는 손권이 조조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 한중 도착 후 진군로를 두고 회의할 때는 기산도를 밀었다.
물론 이는 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공법인 기산도를 택했을 뿐, 방통이 생각하는 상책은 익주에서 4~5개월 더 시간을 들여서 5만 이상 대군을 단번에 동원해 여러 진군로에서 동시에 공격해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가 융족 등의 이민족을 대거 징병해서 먼저 가 있던 관우와 마초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겨우 2만 내외의 병력만이 준비된 상황이라 상책을 쓸 수 없어서 기산도를 선택한 것.
유비의 의중대로 야곡도 → 위수 도하에 성공하자 법정과 합을 맞춰 장안을 직공하는 척 하며 진창을 치는 기만전술을 펼친다. 두 참모의 기만 전술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유비조차 긴가민가 할 정도. 진창 공방전에서는 법정이 전선에 가있는 동안 후방에서 유비를 보좌한다. 유수구의 역병 확산에 더해 황권과 관우가 조홍을 격파하고 지원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확신한다. 북원 대치가 승리로 끝나고 유비의 막료들이 칭왕을 요청할 때 형주계 대표로 나섰다. 이후 법정이 앞장서서 유봉을 폐할 것을 제안하자, 형주에서 함께 고생한 만큼 대놓고 찬성하진 못하나 유비가 끝내 거절하자 법정에게 힘을 보태 유비를 설득하려다 실패한다.
북벌에서도 유비를 보좌하며 후음의 난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일단 상용의 호족들을 달래는 동안 장군 1명을 보내서 그들을 지원하자고 말해 유비가 마초를 파견하게 한다. 법정과 함께 유비군의 작전을 전담해 호수, 부방을 치는 척 하며 조홍군을 끌어들여 평야에서 요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징집 보병으로 기병 전력에서 압도하는 위군에 상대하기 위해 수레와 궁노수를 활용한 포진을 고안하는데 주어진 상황이 동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제갈량의 팔진도와 유사한 진형이 나왔다.
조홍군을 격파하고 10개월의 대치 중에도 분명 조조 세력에 변고가 있을거라 버텼으나 끝내 포기하려던 찰나 홍수로 인한 양번 포위 성공을 듣자 환호한다. 이후 우금군의 침수까지 들려오자 유파의 말대로 유비의 천자 즉위를 지지한다. 완성을 구원한 후 제갈량이 우금군 포로들의 처우를 묻자, 공명이 그런 것도 알아서 못하고 묻냐고 화를 낸다.
이후 양번에 합류해 유비를 보좌하다가 은서의 패배와 양양의 항복에도 마지막까지 버티는 번성을 무너뜨릴 계책을 올린다. 그 계책을 위해 거짓 퇴각하는 촉한군을 지휘해 전선에 탔다가 신호가 오자 곧바로 위연을 앞세워 번성을 공격한다. 조인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번성에 복귀해 위연을 잡을 뻔 했으나, 그 전에 들어온 방통이 돗자리를 깔아 촉군의 발판을 만들고 조운을 출격시킨 끝에 승리한다.
이후 오랜 대치 끝에 조조가 철퇴하면서 남양군민을 학살하여 유비를 끌어내려 들자, 굳이 싸울 필요 없이 요충지에 병력만 보내도 남양의 위군은 물러날 거라 의견을 제안해 황권을 출격시킨다. 예상대로 돌격해온 조조의 친위대와의 혈전 끝에 대승을 거두고, 중원에 입성하면서 여남에 들어선 것을 알려온다.
강동 정벌을 결심하고 원정군을 편성할 종군참모로서 관우와 함께 유비 곁을 지킨다.
221년 유비의 하북 정벌 당시에도 유비의 옆에서 복무했으며, 제갈량과 함께 유비를 돕는다. 업성 공방전에서 조비가 유협을 죽이는 대형사고를 치자 순간 멘탈이 나간 모습을 보인다.
유비가 황제가 된 후 사공으로 임명되었다. 유비가 고향에 들를 때 동행했으며 유비가 도원결의의 장소에서 사망할 때 탁고대신의 일원이 되어 유조를 받든다.
이후 사공으로 제갈량과 함께 오랫동안 유선을 도와 나라를 다스렸다. 무려 87세까지 살면서 원로들 중 가장 장수했는데, 관로가 점을 쳐보고 원래 다한 수명을 넘겨 2번 살아서 그렇다고 하자 소열제께서 자신을 도우셨다고 웃었다.
3. 기타
제갈량은 형주도독으로 임명된 뒤 주로 독립군세를 이끄는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고, 황권은 참모와 야전지휘관을 오가고 있어 유비의 곁에서 전술적 조언을 하는 군사참모 역할은 방통과 법정이 수행한다.자기 눈으로 전장을 봐야 하는 현장파 책사라서 아직 전투 중인데도 말을 몰고 적진 가까이 가는 등 위험한 면모를 보여서 유비가 늘상 호위를 붙여놓는다. 원 역사에서 어이없이 유시에 맞아 죽은 이유도 마음이 급한 데다가 이런 성향의 탓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원 역사에서 수명이 아니라 외적인 이유로 사망했고 제갈량보다 2살 연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후에도 별 탈 없이 살아 유비의 사망 순간까지도 유비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