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5596> 출생 | 1940년 12월 1일 ([age(1940-12-01)]세) | ||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 신서동[1] | |||
본관 | 달성 배씨 (達城 裵氏)[2] | ||
재임기간 | 대법관 (최종영 대법원장 제청 / 김대중 대통령 임명) | ||
2000년 7월 11일 ~ 2005년 11월 30일[정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005596><colcolor=#fff> 배우자 | 여정옥(呂靜玉) | |
자녀 | 배정은, 배정익, 배정민, 배정수 | ||
학력 | 안심국민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 40회)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법학 / 석사[4]) |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알폰소)[5] | ||
약력 | 제5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부산지방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장 대구고등법원 판사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장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배기원 법률사무소 변호사 성광협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대구지방변호사회 부회장 •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대구은행 비상임이사 대법관 (2000.07. ~ 2005.11.)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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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대법관 출신 법조인.2. 생애
1940년 12월 1일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 신서동(現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186번지[6]에서 아버지 배재덕[7]과 어머니 청주 정씨 정필임(鄭必任)[8]사이에서 5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 안심국민학교(現 대구반야월초등학교),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40회)[9], 대구대학(現 영남대학교) 법학과(60학번)를 졸업하고 1967년 8월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8기)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대구대학 재학 중이던 1965년 제5회 사법시험[10]에 수석합격했다.[11] 이후 석사 학위 취득 후 1967년 8월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해 3개월간의 훈련을 수료한 뒤 군법무관(중위)에 임관했고, 제15보병사단 검찰관으로 첫 보직을 받았다. 1968년 8월 초에는 주월한국군사령부 법무사로 파병되었고, 이듬해인 1969년 8월 중순에 귀국했다. 귀국 후 제2군사령부에서 법무사로 복무하다가 1970년 9월 30일 만기전역했다.
1970년 10월 1일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받아 1979년 9월 말까지 근무했고, 그 사이 1971년 4월부터 1973년 9월까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배석판사 겸 단독판사, 1976년 9월부터 1978년 9월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장을 겸직했다. 1979년 10월 1일 대구고등법원 판사로 발령받았고, 1981년 3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발령받았다. 1981년 10월 1일 부장판사로 승진과 동시에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장에 부임했고, 1983년 10월 1일 대구지방법원 민사합의부 재판장으로 발령받아 형사항소부 재판장, 민사항소부 재판장 등을 거쳤다. 1988년 7월 31일 법복을 벗고 고향인 대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대구지방법원에서 민사조정위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1991년부터 1992년까지 대구지방변호사회 홍보이사,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대구지방변호사회 감사,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대구지방변호사회 부회장,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제43대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0년 7월 11일 최종영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으로 지명되어 2005년 11월 30일까지 대법관으로 재직했다. 대법관 재직시절인 2003년 11월 11일,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에 변호인 입회를 요청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검찰의 행위는 위법으로, 헌법이 피의자에게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는 피의자는 변호사가 있는 자리에서 조사 받는 권리도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이후 2007년 6월 1일 형사소송법 개정 때 "변호인의 참여권"이라는 조항(형사소송법 제243의2)으로 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 대신, 무료법률 상담소 운영을 택해 화제를 모았고, 현재까지 대구에서 무료법률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모교인 영남대학교 법학과 석좌교수로도 활동하였다.
3. 논문
- 석사 학위 논문: 假登記의 效力 : 假登記에 基한 本登記節次와 關聯하여 (1967)
4. 여담
[1] 現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2] 병판공파(兵判公派) 35세 원(源) 항렬. 배기원이 직접 쓴 회고에서는 자신을 경주 배씨(慶州 裵氏) 달성파(達城派) 후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정년] 배 대법관 재임 당시의 법원조직법은 만 65세를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어 퇴임했고, 이후 개정된 대법관의 정년규정은 만 70세로 하고 있다.[4] 석사 학위 논문 : 假登記(가등기)의 效力(효력) : 假登記(가등기)에 基(기)한 本登記節次(본등기절차)와 關聯(관련)하여(1967).[5]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79년 4월 부산직할시 남구 대연동 대연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6] 대구신서혁신도시 개발로 인해 현재 이 지번은 사라졌다. 다만, 1912년 작성된 지적원도를 통해 추정해보건대, 대략 지금의 신서동 1143번지에 있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부지의 일부로 추정된다.[7] 족보명은 배종호(裵鍾昊).[8] 경산군 고산면 성동(現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출신이다.[9] 최재욱 전 환경부장관, 이정무 전 건설교통부장관, 심우영 전 총무처장관과 경북고등학교 40회 동기동창이다.[10]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장관, 현경대 전 국회의원, 변정일 전 국회의원, 김영일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유지담 전 대법관과 사법시험 동기이다.[11] 당시 최종 합격자는 모두 16명이었는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 11명, 고려대학교 출신이 3명, 숭실대학교 출신이 1명이었고, 배기원은 유일한 지방대 출신 합격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