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50대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Ultimate Classic Rock이 2023년에 선정한 50대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를 정리한 틀이다. 이는 음악 자체의 작품성 보다는, 얼마나 프로그레시브 록 스러운지, 프로그레시브 록에 미친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기준으로 선정 되었다고 한다.[1] | ||||||||
<rowcolor=#fff,#000>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킹 크림슨 | 제네시스 | 예스 | 핑크 플로이드 | 프랭크 자파 | |||||
<rowcolor=#fff,#000>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러시 | 젠틀 자이언트 | 제쓰로 툴 | 카멜 | 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11위-20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000>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공 | 캐러밴 | Van der Graaf Generator | 더 마스 볼타 | 마이크 올드필드 | |||||
<rowcolor=#fff,#000>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 캔 |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 | 캔자스 | 오페스 | |||||
21위부터는 링크 참조. |
멤버는 왼쪽부터 휴즈 밴튼(오르간, 신디사이저[1], 베이스 기타) 가이 에반스(드럼, 퍼커션)[2], 피터 해밀(보컬, 피아노, 작곡, 작사), 데이비드 잭슨(색소폰, 플루트. 2006년 탈퇴)[3].
1. 개요
피터 해밀이 주축이 되어 이끄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밴드의 이름은 물리학에서 쓰이는 밴더그래프 발전기에서 따왔다.대한민국에서는 마치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연극배우인양 다양한 감정표현과 긴 독백을 특징으로 하는 보컬 피터 해밀만의 독특한 창법과[4] 멜로디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곡 전개 때문에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밴드이지만 서양에서는 킹 크림슨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중에서도 진보적인 음악성을 갖춘 밴드로 평가받으며 고청 팬층이 두터운 밴드이다. 흔히 피터 해밀은 제네시스의 피터 가브리엘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씬의 두 피터'로 불린다.[5]
<Pawn Hearts (1971)>를 마지막으로 1972년 상업적 실패와 피터 해밀의 솔로 활동 등의 이유로 처음 해산하였다가 1975년 피터 해밀의 솔로 앨범 <Nadir's Big Chance> 녹음에 밴드의 모든 멤버들이 참여한 것을 계기로 재결성을 모의하여 같은 해 Van Der Graaf라는 이름으로 재결성한다. [6] 이후 밴드는 예전 앨범들보다 좀 더 팝적인 색체의 명반 <Still Life(1976)>를 비롯한 몇 개의 앨범을 내고 1978년 다시 해체하였다.
2005년 다시 재결합 하였으며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록 밴드 데빌 돌의 프론트 맨인 미스터 닥터가 영향을 많이 받은 그룹으로도 유명하다. 미스터 닥터는 1집을 발매하기 전 피터 해밀을 직접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2. 음악적 특징
이들은 당대의 여느 밴드들과 달리 기타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7] 해먼드 오르간으로 대표되는 건반악기와 색소폰 등의 관악기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실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으며 1960년대말의 사회상을 반영한 실존주의적이며 서사적인 가사, 그 가사를 전달하는 보컬의 융합을 통한 전위적이며 연극적인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을 하였다. 이는 특히 초기 그들의 명작 <H to He, Who Am the Only One (1970)>에 잘 나타난다.어떤 평론가들은 이들의 음악을 캔과 같은 크라우트록 밴드들과 비슷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 해먼드 오르간에 장착된 로타리 스피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디스토션 사운드를 시도한 오르간 연주자. 이 사운드는 훗날 딥 퍼플의 존 로드가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유명해짐[2] 파워풀하고 쉴틈없는 변박과 무질서한 드럼 연주로 퓨전 재즈에서 명성이 자자함.[3] 2개 이상의 색소폰을 동시에 연주하여 기존의 연주자들과 다른 입체적인 사운드를 내어 색소폰계의 반 고흐로 불린다.[4]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목소리로 그러한 방법론을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5] 실제로 두 밴드 모두 카리스마 레코드 소속이었고 두 사람은 사적인 교류도 종종 했었다.[6] 참고로 피터 해밀의 <Nadir's Big Chance> 앨범은 비록 처음 발표 되었을 때는 '곡의 구조가 단순하고 연주가 지나치게 날카롭다'며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직후 전개된 펑크 록씬에 큰 영향을 끼친 앨범으로 재조명받는다. (원래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프로토 펑크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 피터 해밀은 <Nadir's Big Chance> 앨범 속지에 영국 밴드들 중 최초로 '펑크'라는 단어를 기제했으며 포스트 펑크, 와이어 같은 미니멀리즘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펑크 록 밴드에 영향을 주었다. 섹스 피스톨즈 또한 1977년 라디오에 출연해서 Nidir 앨범 수록곡을 연주하였다. 특히 쟈니 로튼이 피터 해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조이 디비전의 이안 커티스도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피터 해밀을 꼽았을 정도.[7] 애초에 밴드내에 기타를 담당하는 멤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피터 해밀이 종종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거나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이 몇몇 앨범에서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하기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