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3:47:25

보르나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71796 0%, #171796 30%, #171796 70%, #171796);"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포르가 보르나 블라디슬라브 류도미슬
미슬라브 트르피미르 1세 도마고이 일리코
즈데슬라브 브라니미르 문치미르 토미슬라브 }}}}}}}}}}}}}}}

<colbgcolor=#ff0000><colcolor=#FFF> 크로아티아 반
보르나
Borna
제호 보르나
(Borna)
출생 미상
사망 821년경 (향년 불명)
재위 크로아티아 공국의 반
810년 ~ 821년
아버지 비셰슬라프?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기록상에서 전해지는 크로아티아 공국의 첫 번째 반(Ban).

2. 행적

일부 학자들은 닌(Nin)에서 발견된 세례반에서 "비셰슬라프 공작 시대에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 이반이라는 사제를 기리는 내용이 기술된 라틴어 비문에서 언급된 크로아트족 지도자 비셰슬라프의 아들이라고 추정하나 분명하지 않다. 보르나가 언제부터 통치했는지도 불분명하나, 학자들은 대체로 810년경부터 통치했을 거라고 본다. <프랑크 왕실 연대기(Annales regni Francorum)>에 따르면, 보르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도비쿠스 1세가 오보트리테스 족, 티모치아니족, 하부 판노니아 슬라브 공작이자 프리올리 변경백인 류데비트와 헤르스탈에서 회동했을 때 구두스카니족의 지도자로서 참여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구두스카니 족이 크로아티아 중부 리카 지방의 가츠카 강 어귀에 거주한 부족이었을 거라 추정한다.

819년 7월, 잉겔하임에서 또 다른 제국 의회가 열러 제국에 반기를 든 류데비트를 진압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이때 보로나는 제국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기록상에서는 이 시기에 "달마티아의 공작"으로 언급되었다. 보르나는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쿠파 강에서 류데비트군과 맞붙었지만, 전투 중에 구두스카니족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참패를 면치 못하고 패주했다. 당시 류데비트의 시아버지였지만 보르나와 합류했던 드라고무즈(Dragomuž)도 이때 전사했다고 한다. 보르나는 본구그로 돌아간 뒤 구두스카니족을 복속했다. 그해 12월, 류데비트가 대군을 이끌고 달마티아를 침공해 많은 영역을 약탈했다. 보르나는 성에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비축한 후, 정예 병력을 거느리고 류데비트군이 지친 틈을 타 그들의 후방과 측면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3,000 병력과 300 마리 이상의 류데비트는 판노니아로 퇴각했고, 보르나는 사절을 루도비쿠스 1세에게 보내 이 소식을 전했다.

820년 1월, 아헨에서 제국 의회가 열렸다. 제국군은 이탈리아에서 동부 알프스 산맥을 거쳐 판노니아로 진군하는 부대와 케른티아를 거치는 부대, 바이에른에서 상부 판노니아를 거쳐 진군하는 부대의 3갈래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이때 보르나는 사절을 보내 작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부대와 바이에른에서 출발한 부대는 긴 경로로 인해 느리게 움직였고, 케른티아에서 출발한 부대는 드라바 강을 건너 류데비트를 상대로 3차례 승리를 거둔 뒤 빠르게 진군했다. 이윽고 세 부대가 연합한 뒤 하부 판노니아 일대를 황폐화하고 큰 손실 없이 귀환했고, 류데비트는 산악 성채에 숨었다.

821년 2월, 또 다른 제국 의회가 아헨에서 열렸고, 3개 군대를 동원해 류데비트를 공격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후 제국군이 투입되어 류데비트의 영지를 약탈하고 10월에 작전을 마치고 귀환했다. 프랑크 왕실 연대기에 따르면, "달마티아와 리부르니아의 공작"이라고 언급된 보르나가 죽었고, 그의 조카인 블라디슬라브가 크로아트 족의 의지와 루도비쿠스 1세의 승인으로 직위를 계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