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에 있는 전망탑에 대한 내용은 부산타워 문서 참고하십시오.
사진 속 로터리 중앙의 구조물.
1. 개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서면로터리 중앙에 세워졌던 기념탑. 대전광역시의 동부네거리(구.동부로터리)에 있던 대전탑과 비슷한 상징물이었다.[1] 후술할 문단에서도 이야기하듯 존재했던 세월보다 철거되어 없어진 세월이 더 긺에도 불구하고 부산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산탑의 실물을 본 적도 없는 세대들도 '서면교차로' 가 아닌 '서면로터리' 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부산탑의 상징성은 매우 높았다고 볼 수 있다.[2]현재는 1호선 공사로 인해 철거되어 탑의 일부인 기념 조형물이 남구 대연동 부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부산진구청과 서면역 일대에도 축소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2. 상세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으로 1963년 1월 1일에 건립된 부산의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1981년 6월 23일에 있었던 부산 도시철도 1호선 건설사업의 시작으로 인해 그해 9월 초에 철거되었다.[3] 21세기의 기술이라면 부산탑을 보존하면서 밑에 지하철을 뚫는 게 가능했겠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부산탑을 보존하면서 지하철을 뚫는 건 불가능했다. 위의 사진은 1970년대에 찍힌 사진으로, 1968년 노면전차가 사라지기 전까지 부산탑 아래로 전차가 지나갔다고 한다. 노면전차가 사라진 후에는 선로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사진과 같이 화단이 꾸며졌다고 한다.탑의 전체적인 모양은 ‘부산’의 ‘부’ 자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4] 탑의 윗부분에는 부산을 상징하는 오륙도가 세워져 있고 탑의 중앙 부분에는 자유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 동상을 세웠다. 이 청동상은 부산탑이 해체될 때 부산박물관 뜰로 옮겨졌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건설사업으로 부득이 철거되었던 당시의 자세한 회고를 부산시보 기획연재 |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제1화·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⑦ : “서면로터리 부산 상징탑을 철거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산시는 1962년 12월 서면로터리에 부산탑 공사를 시작, 이듬해인 1963년 12월 완공한다. 1963년은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한 해다. 부산탑은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오랜 세월 부산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쉽게 부산탑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눈치 볼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지요. 땅은 파야되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로터리 안에는 국산 금잔디를 심었는데, 그 잔디가 참 좋았습니다. 몇날 며칠 잔디밭에 앉아 고민을 했습니다. 건설과, 총무과, 문화공보실 등에 혹 모를 언론보도를 걱정해 협조요청을 해봤지만, 모두 알아서 하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일단 기록을 남겨야겠다 싶어 사진을 찍어놓고, 일을 내기로 했습니다.”
부산 상징탑을 주저앉히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크레인을 가져와서 아주 큰 추를 달았습니다. 그리곤 한방에 주저앉혔지요. 누가 볼까봐 10분도 안돼 재빨리 현장을 치웠습니다. ‘건설쟁이’들은 삭막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우리 건설 직원들도 가슴이 짠했습니다.”
예상 밖으로 시민이나 언론은 조용했다. 이렇게 해서 서면로터리의 부산탑은 1981년 초가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부산박물관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부산 상징탑의 조형물이 서 있다.
“그러니, 쉽게 부산탑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눈치 볼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지요. 땅은 파야되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로터리 안에는 국산 금잔디를 심었는데, 그 잔디가 참 좋았습니다. 몇날 며칠 잔디밭에 앉아 고민을 했습니다. 건설과, 총무과, 문화공보실 등에 혹 모를 언론보도를 걱정해 협조요청을 해봤지만, 모두 알아서 하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일단 기록을 남겨야겠다 싶어 사진을 찍어놓고, 일을 내기로 했습니다.”
부산 상징탑을 주저앉히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크레인을 가져와서 아주 큰 추를 달았습니다. 그리곤 한방에 주저앉혔지요. 누가 볼까봐 10분도 안돼 재빨리 현장을 치웠습니다. ‘건설쟁이’들은 삭막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우리 건설 직원들도 가슴이 짠했습니다.”
예상 밖으로 시민이나 언론은 조용했다. 이렇게 해서 서면로터리의 부산탑은 1981년 초가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부산박물관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부산 상징탑의 조형물이 서 있다.
3. 철거 이후
철거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모습인데 해당 오거리는 밤이 되면 차량의 불빛과 오거리 특유의 모양이 합쳐져 별처럼 보여 유명하다.
부산탑은 상상 외로 상당히 큰 구조물이었는데 만약 철거되지 않았다면 서면은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인해 불편해졌을 듯하다.[5] 오히려 도시철도가 건설된 것이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1998년에는 부산진구청 신청사 이전 기념(#1, #2)으로 축소 모형이 설치되었다. 2011년에 서면역 4번 출구 인근에 부산탑의 1/10 크기로 제작된 축소 모형이 설치되었다. 서면역 9번 출구 인근의 서면문화로의 영광도서 서적 부근에도 동일한 축소 모형이 분수대 형태로 하나 설치되어 있다.
[1] 두 탑 다 글자를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대전탑은 한자 大자 형태로 만들어졌었다. 여기도 원래는 로터리였으나 차량 증가로 인한 정체로 대전탑을 철거하고 로터리를 사거리로 바꾸었다. 이후 동상은 대전IC 인근 공원으로 이전하였고 축소 모형을 만들어 동부네거리 인근에 설치되었다.[2] 더군다나 요즘처럼 고층빌딩이 즐비했던 시대가 아니었던지라 길 한 가운데 탑 하나가 우뚝 솟아있는 광경이 쉽게 잊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면전차가 사라지기 전까지 탑 아래로 전차가 다녔을 정도였으니 당대를 살아온 노인들은 부산탑을 랜드마크 그 이상의 의미로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3] 여담으로 서면교차로를 제외한 구간은 1980년 3월부터 이미 공사를 시작한 상태여서 부산탑 철거 이전까지는 서면교차로 구간만 공사 진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면역은 2호선 승강장층 선시공으로 인하여 공사 진척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철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시공회사는 공영토건으로, 서면역 말고도 노포차량사업소 구간도 시공을 맡았으며 시공 도중인 1982년에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큰 피해를 봤다.[4] 당시의 부산직할시 휘장도 이렇게 생겼는데 1962년 5월 31일부터 1995년 3월 27일까지 사용됐다.[5] 사실 교차로에 있는 거대한 탑이 철거된 사례는 부산말고도 다른 지역에서도 종종 있다. 상술한 대전탑이 대표적인 예. 역으로 로터리가 철거되었는데 오히려 정체와 사고가 더욱 극심해져버린 사례가 있는데 바로 울산광역시의 제2공업탑과 신복고가차도가 있었던 신복로터리가 있다. 다만 철거 후 석달이 지나 적응기를 거치면서 현재 신복교차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