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前 축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브워지미에시 스몰라레크 Włodzimierz Smolarek | |
출생 | 1957년 7월 16일 폴란드 인민 공화국 우치 | |
사망 | 2012년 3월 7일 (향년 54세) 폴란드 우치 | |
국적 |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1cm | |
직업 | 축구선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 Włókniarz Aleksandrów Łódzki (~1973) 비제프 우치 (1973~1976) |
선수 | 비제프 우치 (1976~1977) 레기아 바르샤바 (1978) 비제프 우치 (1979~1986)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6~1988)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88~1990) FC 위트레흐트 (1990~1996) | |
스태프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0~2009 / 유스 매니저) | |
국가대표 | 60경기 13골 (폴란드 / 1980~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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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前 축구인. 커리어 대다수를 폴란드 리그와 에레디비시에서 뛰었고 1980년대 폴란드의 간판 스타였던 축구선수였다.2. 클럽 경력
1957년 한창 공산권이었던 폴란드에서 태어나 비제프 우치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년간 폴란드에서 손꼽히는 빅클럽인 레기아 바르샤바로 이적하여 축구계에 그 이름을 드러내고, 비제프 우치로 복귀한 뒤 10년간 우치에서 활약하며서방 세계 프로팀으로 이적하기 힘들었던 냉전 초 시대상과 맞물려 대부분의 프로생활을 첫 클럽에서 보내게 된다.우치에서 1981년과 82년 2회 연속 리그 우승과 1985년 폴란드 컵 (FA컵) 우승을 경험한 뒤 1986년 철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하며 29세의 나이로 독일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 2년만에 DFB-포칼을 우승하며 빅리그에서도 무리없이 통하는 실력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와 FC 위트레흐트에서 뛰며 39세까지 프로생활을 한 후 은퇴한다.
3. 국가대표 경력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이전 폴란드 축구의 얼굴마담이자 상징과도 같았던 선수였다. 클럽도 클럽이지만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특히 도드라진다.1980년 8월 12일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국가대표팀 데뷔를 했으며, 그후 1980년부터 1992년까지 A매치 60경기에서 13골을 득점했다. 특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유명한데, 2회의 월드컵에 출전하여 페루와의 개막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맹활약으로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서 폴란드가 전체 3위를[1] 차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이를 계기로 스몰라레크는 국가적 영웅이 된다. 4년 후 86년 월드컵에서는 비록 조국은 16강에서 떨어졌지만 A매치 50번째 경기였던 조별 리그 포르투갈전에서 득점을 하는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겸손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경기장에 나가면 우리중 그 누구보다도 투쟁심이 넘쳤고 온몸을 불사르며 뛰었다.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조용하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성격으로서 보니에크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감은 아니었지만 필드에서 맹위를 떨치며 스스로를 증명했던 폴란드의 영웅으로, 비록 공산권의 일원이었던 시대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있지 않고 저평가되는 선수이지만 특히 전체 3위라는 대업을 달성한 82년 월드컵 당시에는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171cm의 작은 신장이지만 폭발적인 드리블과 골 결정력을 겸비했던 선수로, 특히나 뛰어난 결정력으로 인해 중앙 공격수도 자주 겸했다. 빠른 속력을 이용한 드리블이 발군이었는데, 빠른 발로 침투한 다음 오른발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자주 보였다. 거기다 성실하게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성격이기 때문에 빠른 속력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모습으로 소속팀에 다양한 공격루트를 제공했다.
5. 은퇴 이후
40이 가까운 나이에 은퇴한 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유스 담당 코치로 10년간 재직하다 2009년 폴란드 축구협회의 요청으로 폴란드 축구 유소년 총괄 담당자가 된다.6. 사망
2012년 3월 7일 54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택에서 취침 중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사인은 지병이었던 심장마비로 알려졌다.사망 이후에 폴란드와 선수시절 소속팀이었던 위트레흐트, 프랑크푸르트는 별도의 애도 기간을 가졌으며 현재 폴란드에는 스몰라레크의 이름을 딴 거리와 건물 부조가 만들어졌다.
7. 여담
- 아들 에우제비우시 스몰라레크 또한 축구선수였으며, 아버지를 따라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로 평가받으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뛰어넘진 못했다. 그래도 선수 시절 아들도 월드컵 1회, 유로 1회 출전을 하며 국가대표급 선수로 꽤 오래 활약했다.
- EA의 콘솔 게임 FIFA 23과 넥슨의 온라인 축구게임 피파 온라인 4에 히어로즈 카드로 등장했다. 준족 선수가 선호되는 본가에서는 폴란드 음바페라는 별칭과 함께 팀케미가 유일하게 아쉬운 꿀선수로 평가받지만, 약발이 중요시되는 국내에서는 아쉬운 케미와 더불어 약발 3이라는 치명적인 결격사유 때문에 그나마 괜찮다고 평가받는 프랑크푸르트 팀케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외국에서 호불호 갈리는 알 오와이란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 폴란드 국대에서는 11번 주로 팀에서도 11번을 달았고팀에서 9번도 달았다
[1] 여전히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