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죄수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1] | "쥐"의 표지에 실려 있는 그림. 의자에 앉은 쪽이 블라덱, 담배를 문 채 바닥에 엎드려 이야기를 듣는 쪽은 아티. 배경은 폴란드 총독부 지역의 도시들과 절멸수용소들[2]이 그려진 지도이다. |
1. 소개
Władysław Spiegelman1906년 10월 11일 ~ 1982년 8월 18일(향년 75세)
그래픽 노블 '쥐'의 주인공이자 화자.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만화 내에서는 애칭인 블라덱(Vladek)으로 부르지만, 본명은 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Władysław Spiegelman[3]: 폴란드어)이며, 히브리어식 이름은 아브라함 벤제브(אברהם בן זאב, Avraham ben Zeev)이다.
작 중 사용하는 블라덱(Vladek, 폴란드어로는 브와데크·Władek)은 브와디스와프의 애칭이다. 작가가 블라덱이 부르기 더 편하다고 본명인 브와디스와프 대신 별칭인 블라덱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문서 역시 문서 제목은 본명인 '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으로 기재하였지만, 이해가 쉽게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에서 나왔던 대로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인 '블라덱 슈피겔만'으로 서술했으며, 해당 이름으로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인 블라덱 스필만(약칭) /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 폴란드어)과 동일인물이 아니며, 이 사람과는 이름은 같고, 성은 발음은 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실제로 성 발음은 한국어로는 대강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현지 언어로는 발음 차이가 꽤 크다.
원래 이름은 러시아식인 블라데크 슈피겔만(Владек Шпигельман)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진 후 독일군이 해당 지역을 점령하자 빌헬름(Wilhelm)으로 개명하고 '볼프(Wolf)'를 애칭으로 썼다. 이후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최종적으로 이름이 브와디스와프(Władysław)로 고정되게 된다.
2. 기구한 인생
자세한 에피소드들은 쥐 문서를 참고. 여기서는 전체적인 행보만을 설명한다.1906년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의 아슈케나지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2.1. 전간기
독일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폴란드의 쳉스토호바(Częstochowa)[4]에 살던 평범한 유태인 직물상으로 검소하고 성실했지만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다.14세 때 학업을 그만두고 일을 해야 했고, 젊은 시절엔 미국에 가고 싶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이는 이후 그가 홀로코스트를 끝까지 버텨내고 결국 무사히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 처음 아우슈비츠에서는 카포의 개인 영어교사가 되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다하우 수용소에서는 수용자들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영어와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프랑스인 수용자와 우연히 만나게 되어[5][6] 그와 친분을 다지고, 그로부터 음식을 좀 얻을 수 있었다.[7] 영어 외에도 모국어로 칠 수 있는 이디시어와 폴란드어, 독일어를 할 수 있었다고.[8]
젊었을 때는 영화배우 루돌프 발렌티노[9]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나이가 좀 든 뒤의 모습이라 별로 안 닮았으나 젊었을 때 사진(#)을 찾아서 보면 약간 닮았다. 사실 아우슈비츠에서 오만 고생을 다하며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얼굴이 그렇게 상하지 않은 걸 보면[10] 확실히 미남인데다가 인기도 꽤나 많았다. 그 중 여동생의 친구였던 루시아 그린버그라는 미인이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애인 관계가 되어 3,4년 정도 길게 사귀었고, 루시아가 약혼하자고 조르기 시작했지만 블라덱은 지참금도 못 줄 만큼 가난한 집안 딸인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사촌의 소개로 부유한 가문인 질버베르크 가문[11]의 딸 아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지성미에 빠지게 된 블라덱은 루시아를 차고 그녀와 약혼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집착에 가까웠던 루시아는 블라덱의 집에 와서 울고불고 빌고, 외출하려는 블라덱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서 방에서 농성하는 등 블라덱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결국 블라덱은 처음에 루시아를 소개시켜준 친구 율렉을 불러서 겨우 그녀를 떼어놓는다. 하지만 루시아는 블라덱에게 차인 걸 쉽게 인정하지 못해 아냐에게 "당신의 은밀한 친구, L."이라는 서명과 함께 블라덱을 비난하는 편지까지 보냈다. 결국 블라덱은 아냐를 힘들게 설득했고, 끝내 결혼에 성공했다. 이후 루시아 얘기가 안 나오는 걸 보면 포기한 모양. 아냐가 결혼 전에도, 이후에도 종종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블라덱은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 위해 애썼다.
이후 그는 부자 장인어른의 빽과 자신의 수완으로 공장을 세운다. 블라덱을 지켜보던 장인이 자신의 사위가 사업적으로 싹수가 보이자 자신의 손자가 태어나면 유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면서 블라덱이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 직물 가게를 세울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자 공장 정도는 가져야 한다면서 돈과 신용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어[12] 블라덱은 단숨에 공장주가 된다. 이 공장은 아냐가 장남 리슈를 낳은 후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는 바람에 체코슬로바키아로 요양을 간 사이에 도둑이 들어서 싹 털어가는 바람에 한 번 망했지만[13] 부유한 장인이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어[14] 금방 공장을 재건할 수 있었고 침실 2개 짜리 아파트에 가정교사와 하녀까지 두고 매우 부유하게 살게 된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이후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비엘스코에 있는 블라덱의 집으로 소집 통지서가 날아오게 된다. 폴란드군 예비역 상등병이었던 그는 소집되어 전선으로 가게 되고 아냐와 리슈, 가정교사는 아냐의 친정 가족들이 있는 소스노비에츠로 피난을 간다. 블라덱은 예비군이었고 전황이 매우 급박했기 때문에 불과 며칠만 훈련을 받고 바로 전선에 배치되었다.[15] 강을 앞에 두고 구축한 참호선에 배치되었는데 순시하러 온 폴란드인 장교가 총이 차갑다며 왜 사격을 안 하냐고 갈군다. 몇 발 쏘다가 독일군의 총탄이 날아오자 참호를 더 깊이 파고 버티던 중에 나무로 위장하고 움직이는 독일군 한 명을 발견하고 사살한다. 그 독일군 병사의 이름은 ‘얀’이었으며 손을 들어 항복하려는 듯 했으나 전쟁의 공포에 겁에 질린 블라덱은 총을 여러 번 사격해서 확인사살까지 했다.참호 안에서 버티고 있던 중 결국 독일군이 폴란드군의 강둑 방어선을 점령하면서 포로로 붙잡힌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은 독일군들이 블라덱의 총이 뜨거운 것을 보고 "우리 쪽에 쏴 댄거냐!"라며 분풀이로 마구 때리자 독일어로 "우리 대장이 쏘게 했어요! 전 허공에다만 쐈습니다!"라고 거짓말로 둘러댔고, 이에 다른 독일군이 때리던 독일군을 말려서[16] 목숨을 건지고 포로 대열에 합류한다.[17] 여기서 독일어를 몰랐으면 분기탱천한 독일군들에게 맞아죽거나 그 자리에서 즉결 총살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의 어학 실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이후 뉘른베르크의 포로수용소로 보내지는데, 유대인들만 따로 선별돼서 독일군으로부터 이 전쟁은 다 유대인들 때문이니 죄다 교수형당해도 할 말 없다는 협박이나 들으며 중노동에 동원된다.[18] 폴란드인 포로들은 하루에 두 끼 배급을 받고 나무로 된 막사에서 지낸 반면 유대인 포로들은 고작 하루 한 끼 배급에다 포로가 될 때 입고 있던 여름 군복 차림으로 엄동설한에 텐트에서 방치되다시피 지내는 등 가혹한 대우를 받았지만 블라덱은 그 와중에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호수의 찬물로 목욕한다거나 랍비 등과 토라를 읽으며 정신을 가다듬었고 이후 포로들에게 숙식 제공을 조건으로 노동력을 모집하자 사람 대우를 받겠다고 즉시 지원하였다. 가보니 정말로 수프와 빵을 주고 제대로 된 숙소와 진짜 침대, 난로 등이 제공되었으나 산을 통째로 파서 옮기는 가혹한 중노동 때문에 좀 고생을 하긴 한다. 그러던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나와 '파르샤스 트루마의 날에 자유가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게 되는데, 몇 달 후 파르샤스 트루마의 날이 되자 포로 석방 조약이 인정되면서 풀려난다.
그러나 석방된 포로를 태운 열차는 블라덱의 목적지인 소스노비에츠에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는데[19] 이는 소스노비에츠가 독일의 오버슐레지엔 주에 편입되어 나치 독일의 직할령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열차는 크라쿠프, 바르샤바 등 폴란드 총독부령에 들어서서야 정차했고, 블라덱은 하릴없이 종점인 루블린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독일군이 무단으로 폴란드계 유대인 포로를 학살하는 데 휘말릴 뻔했지만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고[20]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폴란드 군인인 것처럼 폴란드인 차장을 속여서[21] 그의 도움을 받아 몰래 기차를 타고 소스노비에츠의 집으로 돌아와 아냐를 비롯한 가족과 재회한다.
이후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점점 심해지면서 남은 집과 사업체 등도 다 뺏겨버리고 사실상 집안 구성원 모두가 기존의 재산을 파먹기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우슈비츠 행 이전의 시내 생활에서는 돈을 벌어오고,[22] 연줄을 이용해서 직물을 암거래함으로써[23]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고 이후에는 설탕이나 귀금속 등도 거래, 식당도 운영하면서 사실상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사업상 지인인 일체키를 만나러 갔다가 대낮부터 독일군이 신분증 여부와 관계없이 유대인이면 아무나 닥치는 대로 잡아가는 바람에 죽을 뻔 했지만 일체키가 그를 자신의 고급 아파트에 숨겨준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이때 일체키는 자신의 아주 훌륭한 폴란드 친구가 아들을 숨겨주겠다고 제안했다면서, 리슈도 같이 숨기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블라덱은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 이를 집안에 알리지만 온 가족들이 낯선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려 하다니 제정신이냐며 비난을 퍼부어대서 없던 일이 되었다.[24]
그러던 중 1941년 말, 유대인들은 모두 게토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포고가 발표되면서 그간 살 수 있었던 호화로운 질버베르그 저택에서 나와서 좁아터진 게토로 옮기게 된다.[25] 아냐의 언니 토샤의 남편인 볼프가 게마인데(자치 의회)에서 일하던 덕에 그나마 다른 유대인들보단 좀 더 나은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었고[26] 블라덱도 계속 돈을 벌어왔으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70세 이상 유대인에 대한 수용령이 내려지면서 아냐의 조부모님이 끌려가게 되고[27][28] 이후 노동 능력이 있는 유대인을 등록한다는 구실로 스타디움에 다들 불러모아 1만 명의 유대인을 제외하곤 모두 부적격자로 몰아서 수용소로 끌고간다. 이때 질버베르그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지만 블라덱의 부친, 블라덱의 누이인 펠라와 4명의 조카들, 말라의 어머니도 모조리 끌려간다.[29]
상황이 너무 나빠지자, 볼프의 삼촌이자 차르비에치에의 게마인데(자치 의회) 위원장이었던 페르시스에게 볼프와 토샤 부부, 그들의 자녀인 비비와 조카인 로니아[30], 그리고 블라덱 부부의 장남인 리슈를 보내게 된다.[31]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차르비에치에 게토가 폐쇄되면서 페르시스는 총살당하고, 토샤 또한 '나와 아이들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평상시 소지하던 독약으로 아이들과 함께 음독자살한다.[32] 볼프도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에서 탈출하려다가 총살당한다.
이후 소스노비에츠 게토도 폐쇄되면서 살아남은 1만 명의 유대인들도 거의 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는데, 블라덱 일가는 비밀 은신처를 만들어 한동안 어떻게든 버티지만, 먹을 것을 찾아왔다가 우연히 그들의 은신처를 목격한 한 유대인을 불쌍히 여겨 돌려보냈다가 이놈이 밀고하는 바람에 모두 체포된다.[33] 그대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갈 판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끌려간 게 수요일마다 오는 객차가 출발한 바로 다음날인 목요일이었기에 한 숨 돌릴 수 있었고, 마침 그 곳에서 일하던 사촌 하스켈과 야코프를 만나 이들에게 금시계 등의 뇌물을 주고 빠져나가게 된다. 이 때 블라덱과 아냐, 그리고 아냐의 조카인 롤렉은 쓰레기 버리는 인원으로 위장하여 탈출에 성공하지만 블라덱의 장인과 장모는 결국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탈출 계획을 돕던 하스켈이 롤렉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장인과 장모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경비병의 눈을 속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뇌물만 받고 저 둘은 그대로 버려버린 것.[34]
1943년 말에 그나마 남아있던 극소수의 유대인들도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되면서 블라덱과 아냐, 롤렉은 하스켈이 마련한 신발 공장의 벙커에 숨지만 롤렉은 이제 숨어사는 건 지긋지긋하다, 자기는 전기 기술자이니 수용소에 가더라도 바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은신처를 나왔다가 곧바로 체포되어 사실상 제발로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고 이 즈음에 리슈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냐는 거의 삶의 의욕을 상실하지만 블라덱이 어떻게든 다그쳐서 붙들어놓는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다 잡아간 줄 알고 물러나자 블라덱과 아냐는 소스노비에츠에 숨어들어간다. 우선 리슈의 가정교사였던 야니나(Janina)의 집에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하고[35], 우여곡절 끝에 암상인 모토노바의 집에 의탁하게 되는데, 헝가리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36] 친구 만델바움과 그 조카 아브라함과 상의 끝에 아브라함을 먼저 보내고 그가 안전하다고 편지를 보내면 헝가리로 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를 알선했던 폴란드인들이 사실 게슈타포의 끄나풀이었고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체포당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이디시어를 다 알아들어서 아브라함을 체포하자마자 가짜 편지를 쓰게 했고[37] 여기에 속아서 모두 잡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된다.[38]
아우슈비츠에서는 카포에게 영어를 가르치는[39] 일을 맡아 자기 편으로 만들고, 그의 보호 덕에 같이 들어온 사람들 중에선 혼자만 남았다고.[40] 또한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아내인 아냐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업장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 행진할 때 아냐가 있는 여자 수용소 쪽을 쳐다봤다가 경비병에게 발각되어 두들겨 맞고, 아냐는 블라덱이 남녀 수용소를 가르는 철조망 너머로 매번 던져주는 빵을 줍다가 한 번은 여자 카포에게 발각될 뻔했다. 멀리서 빵을 줍는 아냐를 본 카포가 그녀를 쫓아왔고, 이에 아냐는 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가 다른 수용자들 사이에 숨었다. 이에 카포가 그녀를 찾아내기 위해 그녀를 포함한 해당 막사의 전체 인원을 밖으로 끌어내어 누군지 알면 빨리 내보내라고 윽박지르며 수용자들에게 체벌을 가했으나 다른 수용자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어주어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다. 블라덱의 말에 의하면 평소에 주변 사람들이 아냐를 많이 도와줬다고. 실제로 블라덱은 여성 카포 만치에[41]를 통해 아냐의 소식을 들었고, 위의 빵을 줍다가 발각될 뻔한 사건에서는 상술했다시피 아냐의 동료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어 줬다고 한다.[42] 다만 이 사건 이후 블라덱은 아냐에게 음식 꾸러미를 보내는 걸 중단해야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의 자신의 개인 작업장이나 다름 없던 구두 수선 작업장을 나치가 폐쇄하면서 본 수용소로 돌아가 중노동을 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이 시기에 수용소에 수감된 것은 결과적으로 상당히 '시의적절'(?)했다. 블라덱과 아냐가 수용소로 끌려온 1944년 초반은 나치 독일의 패색이 점차 짙어져가던 중이었고, 전술한 바와 같이 블라덱과 아냐는 더 일찍 끌려올 뻔했던 적도 있었으나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고 최대한의 은신 생활로 버티면서 끌려오는 시점이 상당히 늦어졌기 때문에 부부는 수용소가 폐쇄될 때까지 어찌어찌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블라덱 부부가 탈출하려던 헝가리는 블라덱 부부가 아우슈비츠로 끌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과 단독 강화를 시도한 것이 독일에 의해 발각되어 헝가리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가 독일로 납치되고 살러시 페렌츠의 국민단결정부가 들어서는데 이들은 유대인들의 탈출을 묵인해 줬던 호르티와 달리 헝가리 내 유대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게다가 국민단결정부에 의해 헝가리에서 잡혀온 유대인들 역시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는데 나치는 노동력으로 부려먹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이 수용소에 들어오는 즉시 '살처분'하였다.[43] 즉 종합하자면 아우슈비츠에서 노동력으로 부려먹히면서 그나마 생존할 확률이 높은 시점은 블라덱 부부가 잡혀왔을 시점이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만약 좀 더 일찍 잡혀왔으면 고된 수용소 생활을 너무 오래 겪게 되어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서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했을 것이고, 블라덱 부부가 정상적으로 헝가리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어도 몇 개월 뒤 국민단결정부에 의해 그곳에서 붙잡혀 학살당하거나[44] 뒤늦게 아우슈비츠로 끌려와서 상술한 것처럼 오자마자 처형당했을 것이 유력하니 애매한 시점에서 잡힌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45]
아우슈비츠에서 노역 생활을 한 지 몇 달이 흐른 후,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지척까지 진군해오자 나치는 아우슈비츠를 폐쇄하게 되고 이에 블라덱은 다른 수용자들과 함께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이송된다.[46] 사실 블라덱은 이송을 피해 몇몇 동료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내에 몰래 숨어있다가 모두가 떠난 후 수용소가 텅 비면 탈출할 계획이었는데, 나치가 수용소를 폭파시킬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급히 빠져나와 행렬의 거의 마지막에 끼어 따라나선다. 실제론 나치는 급하게 달아나느라 아우슈비츠를 폭파하기는커녕 수용 인원을 전부 이송시키지도 못했으니 매우 운이 없었다.[47]
블라덱에게 진짜 지옥은 아우슈비츠 이후였다. 수용소 폐쇄 당시까지 살아남은 수용자들은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일명 '죽음의 행진'. 가는 중간에는 화물열차에 가축처럼 처넣어져 몇 주 동안(!) 아무 보급도 없이 실려가서 그 칸에 넣어졌던 200여 명 중 불과 20여 명만이 살아남았으며, 그렇게 도착한 다하우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처럼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블라덱도 아우슈비츠가 아닌 이 부분에서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되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 거기다 다하우 생활 동안 블라덱은 티푸스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고, 당뇨가 생겨서 평생 고생했다. 이후 티푸스가 겨우 회복되어 종전 때까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2.3. 종전 이후
다하우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지만 겨우 회복되어서 포로 교환을 위해 스위스 국경으로 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유대인을 사냥하던 독일군들에게 잡혀 죽을 뻔하지만 그 독일군 지휘관의 애인이 이미 전쟁은 다 끝났는데 괜히 엄한 유대인들을 죽여서 전범이 되느니 그냥 도망가자고 그를 눈물로 설득하여 독일군들이 무기를 버리고 달아난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이때 고향 친구인 시베크를 만나서 함께 텅 빈 독일 농가들을 돌아다니며 닭과 우유로 포식하고[48][49] 독일 민간인들이 버린 멋진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후 미군이 진주하자 그들의 시중을 들어주면서 한동안 편히 지내다가[50] 다시 폴란드로 돌아가 아내 아냐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51]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국 비자가 나오기 전까지 임시로 스웨덴으로 건너가[52] 유대인 사장이 운영하는 백화점에서 양말과 미국산 나일론 스타킹 판매(끼워팔기)를 하여 성공했고,[53] 본인의 장사 수완이 워낙 뛰어난지라 스웨덴에서 크게 성공하여 급기야 일개 외판원에서 동업자 수준으로까지 격상되었고, 굉장히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54] 이후 미국 비자가 마침내 나와서 그의 송별연이 열렸을 때는 그냥 미국행 티켓 찢어버리고 스웨덴에 남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도 받았다. 블라덱은 스웨덴에서 거둔 대단한 성공 때문에 사실 스웨덴에 남고 싶어했지만, 아냐가 친정 식구들 중 거의 유일한 생존자인 오빠 헤르만과 그의 아내 헬렌 부부가 사는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결국 미국행을 택한다.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는 보석상을 경영했다.[55] 스웨덴 수준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사업 재간은 어디 가지 않아서 미국에서도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데 성공한다. 참고로 미국 이민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을 미국식인 '윌리엄 슈피겔만'으로 개명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폴란드식 이름 읽는 법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서 개명 전 이름은 러시아식인 블라데크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며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성격이 크게 삐뚤어져 지독한 구두쇠가 되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아티를 쥐잡듯 잡아대며 아들과 크게 갈등을 빚었다. 여기에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등 여러 PTSD와 트라우마는 덤.[56] 거기에 결혼 전부터 우울증이 있었던데다[57] 장남인 리슈를 비롯한 온 가족이 거의 전부 홀로코스트로 인해 희생된 끔찍한 기억,[58] 차남 아티의 엇나감[59] 등이 겹쳐서 괴로워하던 아냐는 욕조에서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해 버린다.
홀로코스트의 악몽에다 아내의 죽음까지 겹친 블라덱은 극심한 PTSD에 시달리며 이후로도 계속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병적일 정도의 절약본능과 쇠고집 때문에 그의 주변인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는다. 작중 시점의 현재에서는 물건 하나 버리지 못하는 노랭이. 후처인 말라가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자 심장이 나쁜 자신은 먹지 못하는 소금이 든 시리얼을 가게에 가져가서 환불해 달라고 난리치다가 점장에게 아우슈비츠 얘기를 해서 끝끝내 환불을 받고 1달러로 6달러 어치 식료품을 사들고는[60] 매우 의기양양해하며 또 가스레인지 켤 때 쓰는 나무 성냥을 아끼려고 가스레인지를 하루종일 켜둔다. 가스비는 집세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공짜라나. 종이 성냥은 호텔에서 가져와서 쓴다. 심지어는 아티와 함께 길거리를 걸으며 이야기할 때 쓸만한 게(버려진 전화선이라든지) 눈에 보이면 일단 챙기고 본다. 냅킨과 티슈 살 돈을 아낀다고 공중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오고, 홍차 티백을 말려서 다시 쓰는 건 기본. 오죽하면 그의 구두쇠질에 질려버린 말라가 "그 양반 통장에는 수십만 달러[61]가 있는데 사는 건 거지같이 살고 있어!"라고 아티에게 말할 정도.[62] 이처럼 돈 한 푼 쓰는데도 벌벌 떨고 온갖 잡동사니는 하나도 못 버리면서 정작 아들인 아티가 아끼던 트렌치 코트는 낡았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 앞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운(하지만 엄청 큰) 점퍼를 주기도 했다.[63]
아냐의 자살 이후 괴로워하다가 아냐의 일기를 모조리 다 태워버렸다. 처음에는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다 1부 마지막에 아티에게 이를 고백한다. '아들이 이것들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했다는 아냐의 말까지 덧붙여서... 이 때문에 작중 아티가 제일 크게 분노하며 "살인자"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물론 이는 블라덱의 악의가 아닌 끔찍했던 학살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방어기제였으며, 아티는 아티대로 만화가가 되기 전까진 부모와 반목하며 그들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 모조리 합쳐져 폭발했던 것이다.
밤에 잠을 잘 때마다 "우아아아아아아아!!!!"하고 울부짖는 잠꼬대를 한다(PTSD의 증세 중 하나인 악몽). 아티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든 부모가 밤에 저렇게 소리지르는 줄 알았다고 한다.[64]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아서 이웃들, 말라, 심지어 아들마저도 아버지의 행동에 극도의 노이로제를 얻어서 지긋지긋해할 정도로 엄청나게 인심을 잃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만지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자기 실수로 물건을 깨도 주위 사람들 탓을 할 정도다. 그러면서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며, 아들 아티를 두고 "아티가 제 어미 닮아 히스테리컬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블라덱 자신도 인종차별주의자. 자신을 도와준 이들을 제외한 폴란드인, 독일인, 흑인을 싫어한다.[65] 며느리인 프랑소와즈가 같은 동네에 사는 흑인을 차에 태워주자 "믿을 수가 없군! 검둥이가 내 차 안에 있다니!"라고 폴란드어로 중얼거리면서 흑인이 물건을 훔쳐가나 안 훔쳐가나 계속 사이드미러로 감시한다. "검둥이와 우리 유태인이 같을 수가 있느냐?!"라는 것.[66] 나중에 아티는 이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이 "나치도 유대인 죽여가면서 똑같은 소리 했겠죠!"라고 짜증나는 얼굴로 말하자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고 한다(만화의 세계/1996에서).[67] 그렇긴 해도 아티도 점차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되도록이면 이해해 주려고 한다. 대신 아내인 프랑소와즈가 이런 인종차별에 대하여 "아버님이 하는 짓이 나치랑 차이가 뭐죠?"라고 항의하고[68] 아티는 버럭거리는 아버지와 아내를 말렸다. 작중에서도 아티가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아티는 어쩔 때는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어쩔 때는 아버지가 인종차별에 고집불통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때는 블라덱도 그냥 씁쓸하게 들으며 그리 화내지 않았다.
성격도 더럽다. 말라의 말에 의하면,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신음해대는 통에 진짠지 허세인진 모르겠으나 일단 말라 쪽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69] 이런 괴팍한 성질머리 탓에 작중 현재 시점에선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들로부터도 인심을 제대로 잃어버려 결국 참다못한 후처인 말라 슈피겔만이 그의 재산을 들고 도망갔는데[70] 친아들부터 시작해서 이웃들까지 블라덱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말라가 도망갈 만해"라는 반응만 보였다.[71] 작중에서 아트 슈피겔만 본인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가진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아버지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72][73]
2권 후반으로 가면서 폐에 물이 차거나 산소 마스크를 끼는 등 건강과 관련된 위급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도망갔던 후처 말라까지도 돌아와서 챙겨줄 정도.[74]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블라덱은 말라와 싸우는 것도 지쳤는지 말라의 의견대로 플로리다의 콘도로 갈 계획이라 말하고,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갈 때 들것에 실려갔고,[75] 뉴욕 공항에서는 비행기에서 휠체어를 타고 내리느라 고생했으며, 아티가 마지막에 찾아갔을 땐 침대에 누워 있다가 섬망 증세까지 보인다.[76] 결국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하고(작중 구성에 의해 실제 사망 언급은 2권 2부에 나온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별한 전처 아냐의 곁에 나란히 묻혔다.
원래는 아들 아티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닌 만화가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걸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는지 아들의 초기작인 지옥 혹성의 죄수를 읽기도 했고 나중엔 아티에게 월트 디즈니 같은 유명한 만화가가 될 거라고 덕담을 하기도 한다.[77]
[1] 39세 시절로 2권 후반부에 실려 있다. 전후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죄수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2]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마이다네크, 그리고 베우제츠.[3] 독일어로 직역하면 "거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그의 조상 중 한 명이 거울 세공인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4] 폴란드령 상부 슐레지엔에 있던 도시. 대홍수 당시 검은 성모화를 보관하고 있던 이곳의 수도원이 소수 병력으로 대규모 스웨덴군을 막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독일과의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위치하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소련에 점령되었던 지역이 대거 소련에 편입되고, 그 대가로 동부 독일의 상당 부분을 영토로 편입시켜 국경이 서쪽으로 훨씬 이전해 버렸기 때문. 쥐의 지도에도 나와 있지만 이 당시에는 바르샤바가 폴란드의 중앙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상태.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체스토초바"라고 오역되어 나온다. 카토비체에서 북쪽으로 40여분, 우치에서 남쪽으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이다. 크라쿠프 도시권에 속하는지라(1시간 반 정도 걸린다) 크라쿠프 항목에 설명되어 있다. 블라덱이 태어난 1906년 당시에는 러시아령 피오트르쿠프현에 속했다.[5] 당시 이 프랑스인 수용자는 주변에 영어나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이었는데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블라덱을 만나자 매우 기뻐하였으며 이 덕에 블라덱은 그와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6] 블라덱의 회고에 따르면 이 프랑스인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블라덱은 종전 이후에도 그와 여러 차례 편지를 교환하며 상당 기간 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다만 아냐의 자살 이후 블라덱이 그녀의 물건을 모두 태워버릴 때 이 사람의 편지도 함께 태워버렸고, 이후 노년의 블라덱이 그의 이름과 주소를 잊어버리면서 말년에는 연락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7] 비유대인 수용자들은 당시 적십자를 통해 소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 프랑스인이 그에게 소포로 받은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8] 즉, 젊은 시절에도 무려 4개 국어를 구사했던 능력자다. 유럽은 인접국가끼리의 언어가 비슷해 옆 나라의 외국어를 배우는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걸 감안하더라도, 블라덱의 영어 실력은 몇 번이고 그가 목숨을 건지는 데 도움을 줄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외국어 능력자인 건 맞다. 전후 스웨덴에서 한동안 지냈기에 스웨덴어도 어느 정도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9] 영화 "셰이크(Sheik, 원 뜻은 아랍 족장의 호칭이지만 국내 번역본에서는 '호남자'로 의역되었다)"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192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남성 섹스 심볼이었다.[10] 위에 있는 사진은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난 다음에 풀려나서 찍은 사진인데다가 30대 후반 시절에 찍은 사진인데도 얼굴이 꽤 준수하게 나왔다.[11] 작중 묘사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 최대의 양말 공장을 가진 집안이었다고 한다.[12] 장인이 엄청난 부자이기도 한데, 레벡 질버베르그를 비롯해서 다른 친척들도 투자를 한 모양이다.[13] 하필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보험에 들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에 아티가 반유대주의 테러가 아니냐고 묻자 블라덱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냥 단순한 도둑으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반유대주의 테러였음 그냥 도둑질 수준이 아니라 싸그리 불태웠겠지[14] 장인이 실제로 큰 투자도 손쉽게 할 수 있을 백만장자기도 하거니와, 만화 내내 묘사되는 것으로 볼 때 장인이 블라덱의 장사수완을 퍽 마음에 들어한 모양.[15] 아티가 겨우 며칠 훈련받고 투입됐냐고 놀라자, 당시 폴란드 예비군은 4년에 한 번 한 달씩 소집되어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정도로도 가능했다고 부연해준다.[16] 이 병사는 블라덱을 독일인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시 폴란드에는 독일계 인구가 80만이나 있었고, 당연히 이들도 폴란드군에서 병역 의무가 있었기에 다수가 장교 또는 사병으로 복무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폴란드에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도 있었다.[17] 합류 후 자신이 죽인 독일군 병사의 시신을 수습해준다.[18] 이때 다른 유대인 포로들이 죄다 5-6즐로티 정도밖에 없는 가운데 블라덱만 혼자 무려 300즐로티나 되는 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보고 독일군 장교가 그에게 "웬 돈이 이리 많나? 여기서 무슨 장사라도 하려고 왔나?"라고 비아냥대면서 블라덱의 손을 살피더니 매우 부드러운 그의 손을 보고 그가 부잣집 출신인 것을 간파한다.[19] 당시 포로들은 자신의 목적지가 찍힌 증명서를 발급받았고, 해당 증명서에 적혀 있는 목적지에서만 하차할 수 있었다.[20] 이미 블라덱이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6000명이 넘는 포로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살당한 상황이었고, 이에 기겁한 유대인 공동체 측에서는 나치에게 뇌물을 바쳐 이 지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으면 유대인이라도 포로를 풀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상태였다. 다행히 블라덱의 사업차 지인인 오르바흐가 루블린에 살고 있어서 그를 사촌으로 등록한 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블라덱은 오르바흐가 사는 집에서 며칠 머물렀고, 이후 소스노비에츠로 돌아온 이후에도 종종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러던 중 독일군이 선물을 가로챈다는 편지가 도착했고, 이후 완전히 그 사람과 소식이 끊겨 버렸다고 묘사된다.[21] 당연히 폴란드인들은 역사적으로 감정도 좋지 않은 독일군이 침략해와서 열불 터지는 상황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우다 탈출한 자국 군인이 나타나서 도와달라고 하니 아주 기꺼이 그를 기차에 숨겨준다. 인종을 빼면 진짜로 독일군에게서 도망치는 전쟁포로이기도 하고, 어찌되었건 블라덱은 폴란드군의 소집에 응해 비록 짧지만 폴란드를 위해 전선에 투입되어 싸운 군인이므로 엄밀히 치면 속였다고 하기엔 좀 억울한 면도 있다.[22] 가문의 사업체를 빼앗긴 뒤 질버베르크 가문의 대다수가 잉여(...)가 된 지라 사실상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블라덱이었다고 한다. 다만, 블라덱이 집안 사람들 모두를 먹여살렸다기보다는 원래 질버베르크 가문이 워낙 갑부였던지라 사업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도 기존의 재산을 이용해 어느 정도는 풍족하게 살고 있었지만, 그나마 있는 재산만 파먹지 않고 얼마간이라도 돈을 벌어서 보탠 유일한 인물이 블라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중 묘사를 보더라도 블라덱의 장인이 '사업체를 빼앗겨서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 다른 가족들은 상황 파악도 못하고 전쟁 전처럼 호사스럽게 살려고 든다'고 불평하다가 블라덱이 그나마 돈을 벌어서 살림에 보태자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23] 당시 유대인 소유의 공장이나 점포 등 대부분의 재산은 나치가 빼앗아서 '아리아인 관리인'에게 넘어간 상태였고, 본래 주인이던 유대인들은 잘해야 가게의 고용인 비슷한 처지로 겨우 남아있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블라덱은 과거 자신에게 사업적으로 빚을 졌던 유대인 가게 주인들을 찾아가(블라덱이 했던 사업은 직물 공장이었으니 당연히 미수금 등의 형태로 블라덱에게 빚이 있는 직물가게 주인이 많았을 것이다) 돈을 갚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쫒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간신히 버티던 가게 주인들은 당연히 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물론 블라덱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조건 빚을 갚으라고 억지를 쓰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런 처지면 빚은 갚지 않아도 좋으니 대신 배급표 없이(당시는 배급제가 실시되고 있던 상황이라 배급표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이 드물었다) 직물을 좀 팔아달라고 부탁한 것. 그 정도는 (가게의 물건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빚을 갚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으니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흔쾌히 들어주었고, 이렇게 구한 직물들을 역시 배급표 없이 직물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암시장에서 팔아넘겼다.[24] 안타깝게도 일체키 부부는 끝내 죽었으나 그의 아들은 폴란드 친구의 보살핌 속에 살아남았다. 블라덱 본인도 이를 회고하며 씁쓸해한다.[25] 관련된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를 보면 당시 유대인들이 어떻게 소개(疏開)당했는지가 잘 묘사된다.[26] 당시 상황을 보면 여러 명도 아니고 여러 가족이 아파트 방 하나를 같이 사용하는 수준이었다.[27] 당시 나치는 테레지엔슈타트에 노약자 수용소가 있다고 선전하며 노령의 유대인들을 보내려 하였으나,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어 나치를 믿나 생각한 아냐의 가족들은 집에 비밀 공간을 만들어 조부모를 숨겼다. 그러나 주민등록 명부를 들고 하나하나 노인들을 찾아다니던 나치가 이들이라고 가만 둘 리는 없었고, 결국 이들도 끌려가게 된다. 아우슈비츠로 바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 작중 서술도 그렇게 단정짓고 있다.[28] 작중 묘사된 것처럼 테레지엔슈타트에 유대인 노인들을 수용하는 선전용 수용소가 실제로 있긴 했는데, 여기 수용된 노인 유대인들은 대개 독일 제국군에 복무했거나 수훈자, 유명 학자와 운동선수 등 명망 있는 유대인들이었기에 (돈이 좀 많은 걸 빼면) 평범한 유대-부르주아1에 불과했던 이들이 여기로 갔을 가능성은 낮은 편. 차라리 아우슈비츠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다.[29] 블라덱의 부친은 친척의 도움으로 수용소행으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아이 네 명은 너무 많다'라는 이유로 수용소행으로 분류된 펠라를 본 부친이 어떻게 딸을 혼자 둘 수 있겠냐며 몰래 펠라가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그 길로 영영 블라덱과 이별하고 말았다. 블라덱도 이 때의 일이 평생 한으로 남았는지 이야기 끝에 가면서 말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고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지쳤다며 바로 잠에 빠지고 말았다.[30] 아냐와 토샤의 오빠인 헤르만의 딸이다. 헤르만 부부는 전쟁 직전에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동생 토샤에게 맡겼던 딸을 잃어야 했다.[31] 아냐의 어머니인 마르카는 여기에 반대했고, 블라덱은 '일체키의 친구에게 맡기자고 했을 땐 그리 비난하더니 ㅉ'라는 식으로 혀를 찬다.[32] 아티 슈피겔만의 회고에 따르면, 전후 블라덱 부부는 리슈는 죽지 않았을 거라며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유럽의 고아원들을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PTSD로 인해 병적일 정도로 구두쇠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전후의 블라덱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한 몇 안 되는 일이었다.[33] 나중에 이 밀고자는 하스켈이 모종의 방법으로 손을 써서 총살시켰는데, 하필 그 시체를 마침 시체 매장 일을 하고 있던 블라덱이 묻어줘야 했고 블라덱은 그 밀고자의 시체를 보자마자 "어이구, 이거 우리 가족을 밀고한 그 쥐새끼 아냐!"라고 욕지거리를 날렸다. 혹자는 사실 블라덱 일행이 하스켈에게 밀고자를 죽여달라며 '부탁'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하는데, 관련 인물들이 모두 사망한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34] 블라덱의 회고에 따르면 장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며' 아우슈비츠행 기차에 실려갔다. 백만장자였음에도 자신과 아내의 목숨은 결국 살리지 못했다고.[35]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홀로코스트가 본격화되기 이전 아냐는 야니나에게 보석류와 사진을 맡겼는데, 전후 야니나를 찾아가 행방을 물어보자 야니나는 보석류는 나치가 전부 압수해 갔지만 사진은 남아 있다며 사진만 건네주었고 이 사진은 아티에게까지 전해지게 된다. 보석류를 정말로 나치가 압수했는지 아니면 본인이 꿀꺽했는지는 미스테리. 어느 쪽이더라도 말이 되는지라….[36] 헝가리는 추축국 편이었으나 당시까지는 나치처럼 대놓고 유대인을 죽여대는 수준은 아니었다.[37] 이들이 이디시어를 알아볼 수 있으니 편지에 유대인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 신호 등을 남기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38] 아브라함은 편지를 작성한 이후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는데, 결국 거기서 사망했다. 또한 사기를 쳤던 폴란드인들도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서 죽었다.[39] 이 카포는 독일이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연합국이 승리할 것을 예상했고, 이에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영어가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판단하여 수용자들 중 영어를 할 수 있는 자를 구해 영어를 배워두고자 했다.[40]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갈 때도 함석장이에 구두공까지 곁다리로 배운 온갖 기술들을 활용해가며 살아남았는데(소스노비에츠에서 잠깐 판금 일을 했었다고 하고 구두 수선은 게토의 공장에서 친척인 밀로치와 일하면서 배웠다) 이를 보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이 마냥 운에 의존한 것뿐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41] 헝가리 출신으로 게슈타포인 애인이 있었다. 가끔씩 남자 수용소와 여자 수용소를 왔다갔다했다. 그러면서 몰래 편지를 놔두고 가기도 했다.[42] 평소에 아냐는 블라덱이 몰래 던져주던 음식을 혼자 먹지 않고 늘 주변 동료들과 다같이 나눠먹었는데, 블라덱은 그 얘기를 듣자 제발 남 걱정 말고 당신부터 챙겨먹으라고 닥달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처럼 아냐가 평소 주변을 잘 챙겼던 덕분에 위의 빵 사건에서도 동료들이 그녀를 위해 입을 다물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티도 "아버지는 이기적이어서 살아남았지만, 어머니는 남들을 잘 챙겨서(즉 주변으로부터 인심을 얻은 덕에) 살아남았다"고 평한 적이 있다.[43] 가스실로 보내면 양반이었고, 블라덱이 소각장 해체 작업을 도우며 존더코만도에게서 들은 증언에 따르면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유대인들을 몰아넣은 다음 불을 질러 산 채로 소각해버렸다. 그리고 이때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다시 그 위로 퍼부어 불길이 더 잘 타오르게 했다는 목불인견의 증언은 덤.[44] 블라덱은 폴란드어와 독일어는 할 수 있었지만 헝가리어는 몰랐으므로, 신분을 위장하며 은신하는 것이 폴란드에 비해 헝가리에서 훨씬 어려웠을 것임은 자명하다.[45] 독일어를 할 수 있고 건강했던 블라덱은 그나마 존더코만도로 선발됐을 가능성이라도 좀 있지만 병약했던 아냐는 얄짤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블라덱이 존더코만도로 선발됐다고 치더라도 당분간은 좀 편할 순 있지만, 나치가 증거 인멸을 위해 주기적으로 존더코만도들을 '처분'하고 새 인원으로 교체했던 것을 생각하면...[46] 비르케나우 쪽에 있던 아냐는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해방되었다.[47] 그러나 당시 블라덱의 입장에서 수용소가 결국 폭파되지 않을 것을 믿고 끝까지 숨어있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아우슈비츠 외의 다른 수용소들은 나치가 퇴각하며 진짜로 파괴한 곳들도 있었다.[48] 다만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무거운 동물성 음식을 먹은 탓에 둘 다 소화 불량으로 한동안 고생한다.[49] 사실 블라덱과 시베크가 운이 좋았던 게, 오랫동안 굶은 다음 기름진 음식을 갑자기 먹으면 심한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수용소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을 때, 그곳의 참상을 목격하고 기겁한 연합군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식량을 유대인 수용자들에게 닥치는 대로 나눠주었고 이를 먹은 수용자들의 위장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해 죽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사례가 있었다.[50]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블라덱이 이때도 다시 한 번 어학 실력의 덕을 보았다.[51] 시베크와 함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를 얻어타며 시베크의 형이 있던 하노버로 향했고 거기서 아냐가 폴란드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시베크도 블라덱이 폴란드에 간다면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해서 둘은 함께 이동했지만, 하필 블라덱이 기차가 잠시 정차한 사이에 물을 뜨러 나갔다가 기차가 먼저 출발해버리는 바람에 헤어지고 말았다. 이후 블라덱은 곧장 폴란드로 향했고, 시베크는 블라덱을 찾으러 하노버로 다시 돌아갔다고. 블라덱이 시베크의 행적을 알고 있던 걸 보면 이후 어떻게든 다시 만난 듯하다.[52] 이때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그때까지 비행기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던 유대인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기를 주저하자 "까짓거 추락하더라도 이 빌어먹을 폴란드는 벗어날 것 아니냐"며 제일 먼저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한다.[53] 블라덱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이 전부였다고 한다. 게다가 블라덱은 스웨덴어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블라덱은 유대인이 사장으로 있는 백화점에 찾아가 이디시어로 담판을 벌였고, 유행이 지나 악성 재고가 된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모조리 팔아치워 수익을 올리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고용되었다. 어떻게 했냐면, 처가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인척이었던 처남 헤르만이 미국에서 나일론 스타킹 공장을 하고 있었고, 당시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스웨덴에서 나일론 스타킹은 인기가 아주 높았지만 배급제 품목이라 상인들이 전부 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이때 블라덱이 미국의 인척으로부터 나일론 스타킹을 대량 사들인 뒤 재고품 양말을 같이 끼워판다는 조건 하에 싼 가격으로 스타킹을 공급한 것. 나일론 스타킹의 인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스웨덴 상인들은 양말을 그냥 버려도 이윤이 남았다고 한다. 그의 이런 수완을 보면 확실히 그 지옥같은 처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가 있었다[54] 이 와중인 1948년 2월 스톡홀름에서 차남인 아트 '아티' 슈피겔만을 낳게 된다.[55]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며 먹고 살았다는 언급이 있다.[56]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블라덱의 집에서 하룻밤 자던 아티의 아내 프랑소와즈가 이 소리를 듣고 기겁하자 아티는 항상 저렇다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기는 어렸을 땐 어른들은 자면서 늘 저런 소리를 내는 줄 알았다나.[57] 아냐의 집에 처음으로 초대받아 갔던 날 블라덱은 우연히 찬장에 보관되어 있던 아냐의 정신과 약들을 보았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양이 상당했다고 한다. 즉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심한 우울증 환자였다는 것. 정말 홀로코스트를 겪고도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58] 아냐의 가문인 질버베르크 가는 홀로코스트 이전까지 폴란드에서 가장 큰 양말 공장의 소유주였을 정도로 부유했고 식구들도 많았지만, 전쟁 후에는 아냐와 그녀의 조카인 롤렉(수용소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했고 훗날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 다만 아냐 및 블라덱과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빠인 헤르만 부부(전쟁 발발 직전 미국으로 여행을 갔던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외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냐의 자살 몇 년 전 헤르만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블라덱은 '헤르만이 죽은 이후에는 아냐도 조금씩 죽어갔지'라고 말했다. 온 식구가 싸그리 몰살당하고 거의 유일하게 남은 혈육마저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되었으니 그녀가 겪었을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슈피겔만 쪽 집안은 더한데, 역시 살아남은 사람이 두엇에 불과한 데다가(이들 중에서는 러시아로 도망쳤다가 굴라크에 끌려간 사람도 있다고...) 사진이라도 남은 질버베르크 집안 쪽과는 달리 이쪽은 죽은 이들을 추억할 사진조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실제로 블라덱이 아티에게 보여준 슈피겔만 가문 쪽 사진은 모두 전후에 찍은 것들 뿐이었다.[59] 블라덱의 성격 파탄으로 인해 아티는 사춘기 시절부터 아버지와 끊임없이 대립했고, 아냐가 자살하던 날 아티는 부모님이 싫어하던 여자친구(결국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와 밤늦게까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이는 아티가 그린 "지옥 행성의 죄수"에서 일부 묘사되어 있다.[60] 심지어 이 스페셜 K 시리얼은 개봉하고 일부 먹은 것이었다. 아티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거부한 이유가 있다. 당연히 다시 파는 게 불가능한 상품이기 때문에 점장 입장에선 저 양반이 꼰대라 말도 안 통하는데 가엾기도 하고, 죽을 고생을 한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인심을 베풀어준 듯하다. 사실 노슬아치라고 불리는 꼰대 노인네들에게 대부분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정적으로 노인한테 함부로 욕하거나 폭행할 수도 없고, 조금이지만 인간적인 연민도 느껴지기 때문.[61] 아트 슈피겔만이 블라덱의 이야기를 기록한 게 1970년대 중후반이다. 그 시절에 수십만 달러다! 30대 후반에 수용소에서 풀려났을 때 거지 신세였는데도 위에 언급된 양말 사업부터 해서 수십만 달러를 벌었으니 수완이 정말 좋긴 한 모양이다. 만약 전쟁이 없던 시대에 태어났거나 유대인 학살이 없어서 젊은 시절부터 착실히 일했다면, 정말 전국에서 손꼽히는 백만장자가 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실제로 전쟁 전에는 혼자서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결혼 후 장인어른이 양말 공장을 혼수 선물로 준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62] 아들인 아티마저 아버지를 연민하되 이런 블라덱의 편집증적인 면모에 대해서만큼은 치를 떨었으며, 오히려 계모인 말라와는 이를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던 점으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고 꽤나 친하게 지냈다.[63] 이는 블라덱이 구두쇠 성향과는 별개로 아티에 대해 (아마 리슈를 겹쳐보고) 비틀린 과보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실제로 작품 마지막에서는 피곤하니 얘기는 여기까지 하자면서 아티를 리슈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만 (전개상 바로 다음 장면인) 다음 에피소드 도입부에서는 아티가 블라덱의 집에 찾아왔을 때 새로 산 트렌치 코트를 옷걸이에 거는 장면이 나온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아버지의 변덕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듯하다.[64] 때문에 아티의 아내인 프랑소와즈는 블라덱의 저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지만 아티는 정말 무심하게 "응, 별 거 아냐. 아버지셔..."라고 말한다.[65] 당시 블라덱이 살고 있던 지역의 유대인들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후에 정발된 메타마우스에서 언급되나 블라덱만큼 심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독일, 반폴란드 정서는 아냐를 포함한 슈피겔만 가 주변 지인 및 인척이 대부분 공유하였는데 전쟁 당시 나치 치하 폴란드에서 차별당하고, 통수 맞고, 죽을 뻔하기까지 했기 때문.[66] 사실 이건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는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편견이라기보단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이 크다. 블라덱은 유럽에선 흑인을 본 적도 없었고, 뉴욕에 온 첫날에는 흑인 좀도둑에게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런 경험과 수용소에서 익힌 생존 본능이 합쳐져 흑인 전체를 혐오하는 방향으로 발현된 것으로,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차별의 행태지만, 그 광기의 시대에 겪었던 아픔과 상처가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67] 당시 아티는 베이비부머 히피로 이런 사회적 문제에 민감했고, 여기다 마약과 우울증이 겹친 탓에 꽉 막힌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극심했던 상황이었다.[68] 메타마우스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프랑소와즈 부모는 블라덱보다 더 심하게 아랍인과 유대인을 싫어하는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결국 프랑스를 떠나며 절연했다고 한다. 아티와 비슷한, 어찌보면 더한 과거를 지닌 사람인 셈. 그렇게 유대인과 결혼했는데 정작 시아버지가 인종차별을 하니까 친부모와 싸웠던 과거가 떠올라서 못 참았을 것이다.[69] 블라덱의 건강과 나이를 생각하면 싸움 중에 심장이 아플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매번 부부 싸움 때마다 그런다면 상대 입장에서 당연히 꾀병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만에 하나 진짜일 수도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으며, 작중에서도 블라덱이 아티와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하다 잠깐 심장마비가 일어났던 적도 있다. 마침 약을 갖고 있었고, 아티가 부축해준 후 충분히 쉰 덕분에 겨우 회복되었지, 약이 없었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실제로 살아남은 친척인 밀로치 슈피겔만이 이렇게 죽었다)을 보면 심장마비 타령이 엄살이 아닐 수도 있긴 하다. 작중에서 심장 건강 상태가 드러난 것은 그게 딱 한 번이지만, 결국 사망 원인도 심장마비였다고 한다.[70] 성질 더러운 성격파탄자 노인네와 살며 일일이 그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주고, 결정적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말라가 쓰레기는 절대 아니다. 블라덱이 도를 지나치게 너무했을 뿐. 오히려 돈도 있고 자유도 있는데 돌아온 걸 보면 말라가 대인배다.[71] 말라가 나간 것 때문에 아버님이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며 걱정하는 프랑소와즈에게 아티는 그 반대로 아버지가 너무 신경질적이라 말라가 나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블라덱이 워낙 구두쇠짓과 꼰대질만 일삼은 나머지 주변 이웃들 역시 블라덱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기 때문이다.[72] 원래는 사교성 좋고 쾌활한 청년이었던 블라덱이 나치의 탄압을 받으면서 과거 유럽인들이 멸시했던 전형적인 유대인상으로 변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단 말라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도 모두 나치의 수용소를 겪었지만 누구도 블라덱처럼 되진 않았다면서, 수용소 경험 때문에 블라덱의 성깔이 더러워졌을 것이란 아티의 추측을 부정했다.[73] 같은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이자 부인인 말라이기에 할 수 있는 얘기다. PTSD와 트라우마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타인이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며, 블라덱은 수용소 내에서도 온갖 종류의 고생과 경험을 다 해 보고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으므로 일반적인 생존자보다 그 후유증이 더 심했을 것이다. 말라 슈피겔만 항목에도 나와있듯, 이 부분은 한때 피해자였던 블라덱이 이젠 과거의 기억을 방패 삼아 주변인들에 대한 가해자가 된 상황에서 부채감이나 거리낌 없이 블라덱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가진) 말라 정도 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작중 '블라덱을 흉봤다'는 사실이 별 거리낌 없이 밝혀진 다른 인물 중 하나가 역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아냐의 조카 롤렉 질버베르크이다.[74] 미운 정이 들었는지 본인도 '그러게, 왜 그랬을까...' 같은 투의 말을 남겼다.[75] 이 때 아티는 들것까지 필요하느냐고 물었지만 의료진은 "규정이다"라며 단칼에 무시한다.[76] "널 보다니 놀랍구나!"라고 말하는데 정작 아티는 "네? (오늘) 오겠다고 어제 전화로 연락드렸잖아요?"라며 황당해하지만 블라덱은 결국 기억해내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요절한 첫째 아들 리슈에 대한 기억까지 합쳐져서 아티를 리슈라고 부르기도 한다.[77]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아티는 지금 대화 내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메모해 둬야겠다며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모습으로 펜과 메모지를 찾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