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윌리엄 에커슬리 (William Eckersley) |
생년월일 | 1925년 7월 16일 |
사망년월일 | 1982년 10월 25일 (향년 57세)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사우스포트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168cm | 64kg |
소속팀 | 블랙번 로버스 FC (1948-1961) |
국가대표 | 17경기 (1950-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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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에커슬리는 사우스포트에서 태어났고 정규 교육을 마친 후 트럭 운전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아마추어 축구를 즐겼는데 조니 페어허스트(Johnny Fairhurst)의 추천으로 블랙번 로버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에커슬리는 처음 블랙번에 입단할 때 트럭 운전직을 계속 유지하면서 블랙번의 리저브팀에서 뛰었지만 그는 곧 실력으로 1948년 1군팀에 승격할 수 있었다.에커슬리는 1947-48 시즌 잉글랜드 1부 리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블랙번 1군 데뷔전을 치렀지만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대4로 패해 2부 리그로 떨어졌고 10시즌간 2부 리그에서 생활했다. 그럼에도 에커슬리는 잉글랜드 리그 최고급 풀백으로 활약했다.
블랙번은 1958년에 다시 1부 리그에 승격했지만 에커슬리는 부상으로 자신의 자리가 없어져 갔다. 블랙번은 1959-60 FA컵 우승의 기회를 잡았지만 에커슬리는 결승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팀도 울버햄튼에 0대3으로 패했다.
그 다음 시즌에 에커슬리는 부상으로 은퇴했고 1961년 4월 24일의 자선 경기를 통해 블랙번과 작별했다.
2.1.2. 국가대표
에커슬리의 소속팀은 2부 리그 소속이었지만 에커슬리는 A매치 첫 경기를 FIFA 월드컵에서 치른 2부 리거라는 흔치 않은 기록의 소유자이다. 에커슬리는 대표팀 경력이 전혀 없었지만 월터 윈터보텀 감독은 그를 브라질 월드컵에 데려갔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스페인전이 에커슬리의 A매치 데뷔전이 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스페인에 0대1로 패하면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에커슬리는 이후에 대표팀에서 알프 램지와 15경기에서 호흡을 맞췄고 세기의 경기까지 총 17경기에 출전했다. 이 경기는 에커슬리, 모텐슨, 램지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2.2. 이후
에커슬리는 선수 은퇴 이후 축구계에 남아 있지 않고 사탕 가게,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말년의 에커슬리는 어린 시절의 직업이었던 트럭 운전으로 생계를 꾸렸다.에커슬리는 1982년에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그의 두 아들들에 의해 블랙번의 홈구장 이우드 파크에 뿌려졌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에커슬리는 빠르고 강하고 끈질긴 태클러였으며 항상 침착하고 조심스러운 수비수였다. 그는 자신의 움직 상보다 끊임없이 공을 주시해서 스탠리 매튜스를 다른 수비수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좋은 기술과 드리블 능력을 갖고 있었고 특별한 트릭을 써서 상대를 제칠 수도 있었다. 그는 왼쪽 다리를 상대 뒤로 뻗어 공을 뚫고 멀리 이동했는데 아마도 플립 플랩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기술로 그는 "망원경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그는 킥력도 좋아서 페널티 킥 전담 키커이기도 했는데 커리어에서 넣은 21골 중 18골이 PK 골이었다.
4. 수상
4.1. 클럽[2]
- FA컵 준우승 1회: 1959-60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에커슬리는 블랙번 로버스 FC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