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영국의 아동문학가 멜빈 버지스(1954- )가 2001년에 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소설판.발레리노를 꿈꾸는 탄광촌 소년의 이야기이다. 원작은 전술한 대로 영화이며, 각본가인 Lee Hall이 광산마을 Seaham Harbour 출신인 바리톤가수 Thomas Allen (토마스 앨런)의 삶에 영감을 얻어 지은 시나리오이다.
이것을 무대화하여 2005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뮤지컬도 존재한다. #
2. 내용
때는 1980년대, 장소는 잉글랜드 북부 더럼 지역에 있는 탄광촌.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은 뒤 광부인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와 형 토니, 치매가 있는 할머니와 같이 사는 11살 소년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에 살고 있는 평범한 10대이다.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총리가 석탄 산업 합리화를 강행하자 탄광촌 광부들은 그녀의 정책에 반대하여 장기 파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광부인 재키와 장남 토니 역시 그들과 동참하고 재키는 차남 빌리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권투를 배우게 하지만 빌리는 권투에 관심이 없고 마침 체육관에서 권투 수업과 같이 하는 발레 수업[1]에 관심이 많다.
- 당시 엘리어트 집안은 파업으로 인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처지였지만 차남을 강하게(남자답게) 키우기 위해서는 권투를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무리해서 권투 교습 수업료를 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빌리가 권투 교습에 나가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재키는 빌리가 수업료로 받아간 돈을 다른 데 써버린 줄 알고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집안이 이렇게 힘든 상황인줄도 모르고 돈을 함부로 낭비하다니!" 라며 심하게 실망해서 화를 내게 된다. 물론 빌리는 그 돈을 노는데 써버린 것이 아니라 발레 수업료로 냈던 것이고, 이를 알게 된 이후에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되지만.
- 또한 이 장면은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의 전형적인 생활상을 보여주는 장면으로써도 중요하다. 이 지역 노동자의 대부분은 광부였고, 재키와 토니처럼 부모자식이 대대로 함께 광산에서 일하는 집안도 많았다.(재키와 토니가 빌리를 강하게 남자답게 키우려고 한 것 역시, 빌리도 학교를 졸업하면 광부로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힘든 광부일을 해내려면 강하고 남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 작은 소도시(탄광촌) 전체가 탄광이라는 하나의 산업기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 따라서 마가렛 대처의 석탄 산업 합리화(폐광 및 인원감축)에 온 마을이 격렬하게 저항한 것은 광산이 문 닫으면 단순히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수준을 넘어 이 지역 공동체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와해될 것이라는 강렬한 공포에 직면했기 때문인 것이다[2]. 또한 이 생활상에서 유럽 특유의 보수성 역시 확인할 수 있는데, 60~80년대 고도성장기의 한국에서는 가난한 부모들도 가능하면 자식을 대학에 보내서 자신과는 다른(더 돈도 잘 벌고 편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하고 싶다는 정서가 강했던 것과는 달리 20세기 후반의 유럽에서는 '부모의 직업을 자식이 물려받는 것' 을 당연하고 바람직하게 여기는 정서가 상당히 강했던 것. 본 문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설명하는 재키 특유의 좁은 견문과 세계관 역시 이에서 비롯된 문제이다.작은 탄광마을에서 태어나 그 마을의 유일한 직장인 탄광에서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 역시 마을을 떠나지 않고 탄광에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재키의 삶에서는 그 작은 도시 바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 따라서 이 때문에 석탄 산업 합리화로 인한 작은 지역 커뮤니티의 붕괴가 그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것이기도 하다.
- 덤으로, 작은 탄광촌의 디테일한 생활상 역시 잘 드러난 편. 당시의 탄광촌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지역 사회=직장 동료 공동체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비교적 저렴한 수업료에 매번 수업을 들을 때마다 1회분 수업료를 내는 방식으로 목돈 부담도 없이 들을 수 있는 권투/발레 수업도 지역 사회의 복지 서비스인 동시에 회사 직원들을 위한 복지의 역할도 담당했던 것. 파업 참여 광부들을 위한 공동 급식소가 필요해지자 마을 체육관을 노조의 급식소로 전용하는 것 역시 이런 지역 사회 분위기에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전용' 하는 정도의 조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작은 지역사회의 분위기상 '요즘 빌리가 권투수업에 나오지 않는다' 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직장 동료들을 통해 빌리의 아버지(재키)의 귀에 들어간다는 것.
또한, 이 지역 공동체 내에서 '이질적인' 요소들과의 갈등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꼼꼼한 독자라면 발레 교사 윌킨슨 선생이 엘리어트 일가 및 탄광촌 사람들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일부 서비스업이나 화이트칼라, 교사등 전문직은 반쯤 가족화된 탄광촌 공동체 '외부' 에서 공급되었던 것이다. 발레는 여자들만 하는 것이라는 탄광촌 주민들의 편견과는 달리 빌리의 발레 재능을 알아보고 진로를 권유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처럼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했기에 가능했던 것. 물론 윌킨슨 선생처럼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나 재키처럼 처음엔 완고한 편견에 사로잡혀있다가도 합리적으로 설득하면 마음을 여는 사람도 있는 반면, 윌킨슨 선생의 남편처럼 술에 꼴아서 광부 아들 앞에서 광부놈들 다 미친놈이라고 패드립치는 인간도 있는 법이다.(재키의 반응을 보면 탄광촌 주민들 사이에 이런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적지 않음도 알 수 있다.)
발레 교사인 윌킨슨 선생은 빌리가 발레에 관심이 많음을 알면서 빌리의 가능성을 눈치채고, 빌리에게 발레를 배워보도록 권유를 하지만... 아버지는 발레는 여자만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 아들의 발레 수업을 강경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윌킨슨 선생과 빌리는 아버지에게 발레는 남자들도 배울 수 있다고 계속해서 설득을 하고, 마침내 자신의 눈앞에서 빌리가 직접 발레 동작을 선보이자, 아들의 진심을 알게 된 아버지 재키는 아들의 꿈을 위해 노조 파업을 단념하고 다시 광산으로 나간다. 이 때,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빌리가 선보인 발레 동작에 아버지가 아무 말도 않고 기겁하며 뛰쳐나갔는데, 빌리와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아버지가 충격에 의해 뛰쳐나간걸로 보게되지만, 아버지는 윌킨슨 선생에게 달려가 "애 발레 가르치는 데 얼마면 됩니까?"라고 물으며 빌리를 인정하게 된다.
아버지는 빌리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터에 복귀하기로 결심한다. 노조와 아들도 이를 알아챘고, 큰 아들이 아버지의 앞을 가로막는다. 여기서 둘이 감정을 터뜨리며 맞서는 부분이 영화의 절정. 큰 아들인 토니는 아버지는 동료들의 배신자가 될 것이냐며 따지지만 아버지는 모든 것은 작은 아들 빌리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우리 둘은 이미 선택지 없이 하류 계급의 노동자로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지만 빌리에게는 재능을 꽃피우고 신분 상승을 할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 기회를 주는 것만이 작은 아들과 죽은 아내를 위한 일이라고 아버지는 울부짖는다. 이는 영화에서 상당히 감정적으로 격정적인 장면이자 대단히 영국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도 대처 시기 영국의 격동기인 데다가 노동 계급 안에서의 갈등과 노동 계급이 상류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장면은 대단히 영국인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내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귀금속인 아내의 결혼 반지를 전당포에 맡겨 여비를 마련한다. 이는 아내의 유품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내의 반지를 마지막으로 만져보고 입맞춘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여비를 마련한 아버지는 빌리를 데리고 발레 학교에 시험을 보러 간다.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빌리는 발레 학교에 합격한다. 면접에서 면접관은 빌리의 아버지에게 아들이 학업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가정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때 굳은 표정으로 결의를 드러내며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압권이다.
결국, 빌리는 로열발레단에 합격통지서를 받는다. 이에 기뻐하면서도 착잡한 표정으로 아버지와 형은 광산업에 복귀한다. 그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결국 빌리와 재키/토니의 모습이 교차되는 것은 빌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했는가를 '발레학교 합격 통지를 받고 기뻐서 뛰어오르는 빌리의 모습'(그리고 이것은 발레리노의 가장 중요한 기량 중 하나인 도약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재키/토니의 모습'을 대비하여 보여주기에 명장면으로 꼽히는 것이다. 또한, 지하로 내려가는 광부들의 모습은 동시에 광산촌 공동체의 몰락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발레의 특징 중 하나가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오르는듯한 도약이고 이 때문에 빌리 엘리어트의 포스터나 작품 내에서도 '빌리의 도약'을 주된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다. '도약하여 날아오르는 빌리' 와 '지하로 내려가 몰락하는 빌리의 가족, 그리고 더럼의 광산촌 사람들'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빌리는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어 유명 극단에 공연을 하게 되고 재키는 토니와 함께 빌리가 주역으로 나오는 런던의 발레 공연장으로 가고 빌리는 아버지와 형에게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발레를 선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때, 아버지가 런던 지하철(튜브)을 처음 와 본 듯 둘러보다 형의 재촉을 받는데, 그만큼 빌리 가족이 교육의 혜택을 보기 힘든 시골 출신임을 보여준다.[3]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3. 영화
- 빌리 엘리어트(영화) 문서 참조.
4. 뮤지컬
- 빌리 엘리어트(뮤지컬) 문서 참조.
5. 위 영화와 뮤지컬의 주연
영화판의 빌리는 제이미 벨이 연기했으며, 뮤지컬판의 초대 빌리는 리암 모어, 제임스 로머스, 조지 맥과이어가 (트리플 캐스팅) 연기하였다. 한국 라이선스판 초연에서는 김세용, 이지명, 정진호 임선우, 박준형이 빌리를 맡았다. [4]
초대 이후의 영국 빌리 중에서는 최연소로 데뷔하였으며 2014년 영상화된 빌리 엘리어트 더 뮤지컬에 등장한 엘리엇 한나가 잘 알려져 있다.
6. 여담
- '여성 정치가' 하면 정말 많이 떠오르는 '마거릿 대처'가 이 작품에서는 정말 많이 까인다. 뮤지컬에서는 "매기 대처 당신의 죽을 날을 축하한다"... 뭐 이런 식의 가사가 담긴 노래도 나온다. 왜냐하면,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 탄광촌이고, 매기 대처는 당시 탄광촌들에 그다지 좋지 않은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 사실 마거릿 대처가 많이 까인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새삼스러운 것이, 마거릿 대처는 원래 영국 내에서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완전무결한 수준의 영웅 대접을 받지만 반대파들에게는 철천지 원수 취급을 받을 정도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다. 실제로도 대처는 자신 나름의 업적과 영향력이 분명히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거나 아예 정당화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실책과 오판 역시 저질렀던 양면이 극단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작중 배경인 북부 탄광지역은 대처리즘의 부작용을 직격으로 뒤집어 쓴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대처는 그냥 역적 취급이다. 당신의 죽을 날을 축하한다는 노랫가사만 나온 게 아니라, 진짜 대처가 죽었을 때 반대파가 많은 지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대놓고 '마녀가 죽었다'는 신문기사까지 나왔을 정도. 사실 원작 감독과 각본가 모두가 대처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고 [5], 각본가 리 홀의 경우 본인이 북부 탄광촌 출신으로 대처 때문에 고향이 망해 가는 비참한 꼴을 보면서 이를 북북 갈던 인물이기도 하다. 7080년대 영국의 사회 분위기를 잘 모르는 2010년대의 한국인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단순히 '빌리 엘리어트의 고난과 극복, 성장 이야기'로 읽어서, 대처가 이렇게까지 까이는 것이 뜬금없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받아들이기 쉽지만 원작 영화 개봉 및 소설 출간 당시에는 '대처가 영국 노동자 계급(특히 북부 탄광 노동자들)을 어떻게 무너트렸는가' 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주제였다. 그리고 빌리 엘리어트 개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무너져 가는 사회에서 한 소년이 어떻게 탈출했는가, 그리고 그 소년을 탈출시키기 위해 가족들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했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애초부터 대처의 실책을 까려고 만든 작품이었으니 '대처가 많이 까인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운 것이다.
- 이 관점에서 보면 본작의 진짜 주인공은 빌리가 아니라 더럼의 탄광도시 공동체, 더 명확하게는 빌리의 아버지 재키가 진 주인공이며 빌리는 페이크 주인공, 또는 '가장 핵심적인 작중 장치' 에 가깝다고 보기도 한다. 어떤 서사에서 주인공의 역할이란 '고난, 역경, 시련, 갈등과 맞부딪혀 싸우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 인물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는 것' 인데... 본작에서 이런 면모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빌리보다는 오히려 재키이기 때문이다.
빌리의 고난과 극복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발레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다> 라는 주변 사회의 편견이고, 이 편견은 특히 <아버지의 반대> 라는 형태로 구체화된다. 즉, 본작의 서사 중심축이 빌리의 성장에 맞춰져 있다면 <빌리가 어떻게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설득하는가>에 서사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중에서 이 부분은 그냥 빌리가 멋진 춤을 한번 보여주자 아버지가 "아.. 얘는 정말 춤을 추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한방에 납득하는 것으로 해결되어버린다. 즉, 핵심 갈등이 너무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서사의 중심축을 재키에게 맞춰 해석하면 가장 핵심적인 고난은 <빌리에게 발레교육을 시켜줄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고, 이를 위해 동료들을 배신할 생각까지도 했다가, 차마 동료들을 배신하지는 못하고 대신 소중한 아내의 유품까지 파는 희생을 감수하고, 결국 파업의 실패로 무너지고 몰락하여 지하로 다시 내려가는 결말을 맞이하면서도 그런 희생을 감수한 끝에 얻어낸 성과 -발레리노로 성공한 아들 빌리-가 왕립 극장의 무대에서 날아오르는 모습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어나가는 극적이고 감동적인 서사구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 영화에서 런던 지하철(튜브)를 처음 보고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장면과 비슷한 장면으로 소설판에서 빌리의 로열 발레 스쿨 입학 면접에 빌리 아빠가 보호자 자격으로 참석하는 장면이 있다. 면접이 끝난 후 나가려는 빌리 아빠에게 면접관 중 한 사람이 "요즘 그 지역이 몹시 힘들다고 들었는데, 부디 끝까지 싸워서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응원하는 말을 들려주자 빌리 아빠가 "런던에도 우리 편이 있었다"고 기뻐하는 것. 이 장면 역시 작품의 복잡한 배경을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인데... 일단 빌리 아빠는 영국 북부의 작은 광산도시에서 평생 살아왔고, 그 바깥 세상은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작은 도시 내부에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은 빌리 아빠가 속한 블루칼라와 주로 대립적인 입장에 있으며, 마거릿 대처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이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가시화된 것[6]. 따라서 빌리 아빠는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나 중산층, 화이트칼라 계층을 믿지 않는 입장이다. 하지만 작은 탄광도시보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 계층의 규모가 훨씬 큰 런던에는 중산층 이상의 화이트칼라 계층에 속하면서도 빌리 아빠와 같은 노동계층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집단이 형성되어 있고[7] 이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주자 "양복 입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먹물들은 다 우리 부려먹을 궁리나 하는 얍삽한 깍쟁이들인 줄 알았는데, 그중에도 우리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고 놀라워 한 것이다. 사실 좌파 지식인 계층이 노동자 계층 못지 않게 서유럽 좌파 정치세력의 중요한 기반임을 생각하면 빌리 아빠가 자신이 살던 도시와 광산이라는 작은 영역 바깥을 직접적으로든, 언론등의 매체나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든 거의 접해본 경험이 없음을 보여주는 장치인 것. 또한 면접의 내용 역시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 기본적으로 빌리에게 호의적인 입장인 면접관들이[8] 빌리 아빠에게 가장 중요하게 물어본 것은 "발레 교육을 받으려면 가족의 지원이 필수적인데 감당하실 수 있겠는가" 였다. 말하자면 "애 예체능계 시키려면 님네 집 기둥이 뽑히고 님 등골도 뽑히는데 감당하실 수 있어요?" 라고 질문한 것. 현대 한국인들 중에서도 예체능계 진로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아주 뼈져리게 공감할만한 질문이지만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의 격차가 격심하고, 대처 행정부 들어 교육이나 문화등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정부 지원까지 격감하던 당시 영국의 상황에서도 "애는 재능이 있으니까 가르쳐보고 싶긴 한데, 가족들한테 몹쓸 짓 하는 꼴이 아닌지 걱정된다"는 염려를 할만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1] 원래는 권투 수업하는 곳 아래층에서 했지만 하필 발레 수업하는 곳이 파업 광부들 급식소로 쓰이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권투 수업하는 곳 한 구석에서 하게 되었다.[2] 여담으로, 50년대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한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도 금속 가공 공장의 장기 파업을 다룬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이 두 이야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당시 영국 북부 탄광촌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참고가 된다. 두 곳 모두 파업기간 동안에는 임금이 나오지 않으므로 노동조합에서 모아둔 조합비로 식량, 생필품등을 공급하여 조합원인 노동자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즉 파업 기간동안 노동자들의 생활은 당연히 조업기간보다 궁핍해지게 된다.) 다만 대도시인 뉴욕에 있는 금속 공장 노동자들은 파업기간 동안에 다른 일용직 직장이라도 찾아볼 수 있지만 (남성 노동자는 '당신은 어차피 파업이 끝나면 이 일을 그만둘 것 아니냐'는 이유로 직장을 구하기 힘들수도 있지만, 대신 당시 미국에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제법 있었으므로 남편 대신 아내가 직장을 구해 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다.) 탄광이 그 지역 경제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영국 북부 탄광 소도시의 광부들은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던 것.[3] 아예 발레학교가 있는 런던으로 가는 길에 빌리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가 한번도 런던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4] 주인공이 아역인 관계로 다른 뮤지컬과 달리 주연의 트리플 ~ 쿼드러플 캐스팅이 흔하다. 한국 초연 역시 쿼드러플로 시작하였고 나중에 박준형이 합류하였다.[5] 사실 영국 영화계에서 대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이클 케인 같은 보수당 찍는 노인 세대 같은 소수에 가깝다. (참고로 케인은 노동 계급 출신이다.) 영국은 키친 싱크라는 특유의 사실주의 풍토가 발달했는데, 이런 흐름 때문에 대처에게 비판적인 감독이나 각본가가 대다수다. 빌리 엘리어트도 이런 키친 싱크 사실주의 풍토에 속해있는 영화.[6] 예를 들어 발레 교사 윌킨슨 선생의 남편이 (광부의 아들인 빌리 앞에서) 대놓고 광부들을 미친놈들이라고 욕하는 장면등이 있다.[7] 흔히 말하는 강남 좌파에 가깝다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8]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이질적인 출신 배경에 정규 발레 교육을 오래 받은것도 아니고, 시험에서도 긴장해서 초반에 전혀 춤을 추지 못한 빌리를 합격시켰다는 점에서, 면접관들이 빌리(의 재능)에 호의적인 입장이었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