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출간된 최초의 단행본.[1] |
1. 개요
이원복의 초기 만화 중 하나로 이후의 이원복의 스타일과는 달리 극화체로 그려진 만화[2]이다. 1974년부터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했으며 1980년대에는 같은 한국일보 계열의 잡지인 '학생과학'에도 연재가 되었다. 단행본 출간도 1984년 3월호 학생과학에서 3권 짜리 별책부록으로 나가면서 처음 이루어졌다. 1995년에 도서출판 사랑의학교를 통해 재출간된 뒤에 꾸준히 찍어낸다. 2002년에 표지 색깔만 바꿔서 다시 출간하였다. 2007년, 2008년에 표지를 바꾼 상권, 하권의 개정판이 나왔다. 올컬러판으로 출간한 것이 특징이다. 다만, 하권에서 '100만 파운드의 기적'이 빠졌다.제목의 어원은 아마도 이탈리아 동화인 사랑의 학교로 예상되지만 해당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거의'인 경우는 하나는 확실하기 때문.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이탈리아 원작과 다르게 옴니버스 스타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원작의 엔리코와 같은 존재가 없다. 다만 해설자 역할을 하는 콧수염쟁이 아저씨가 하나 있긴 한데[3], 단순히 이야기의 도입과 마무리에서 해설을 하고 교훈을 주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 오너캐의 역할은 엔리코보다는 옛날 옛적에의 배추도사와 무도사에 가깝다.
기재된 이야기는 대부분 미담이지만, 작화는 치바 테츠야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고, 작가 본인이 스스로 흑역사라고 생각하며 폐기했다. 물론 웹툰 시대 들어와서도 일본만화 그림체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고, 당대에는 해적판 만화들도 적지 않게 돌아다닌 건 물론이고, 또한 이 당시에는 한국이 베른 협약 등 국제 저작권 관련 규약에 가입하기 전이라 만화계뿐만 아니라 대중매체 전반에 저작권 개념이 미비해서 표절이 잦았던 시절인지라 표절을 공개시인하고 사과했다는 점으로도 당시에는 개념찬 행보였기는 했다.[4] 다만 여기까지는 좋은데 1990년대에 순정만화 그림체를 가지고 등장인물들을 너무 서양적으로 그린다면서 훈계질(?)을 하다가 동료 만화가나 후배 만화가들, 이원복의 극화체 만화 시절을 기억하던 만화애호가들에게 대차게 까이며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월간조선 인터뷰에 의하면 이전의 일본 만화 표절 그림체로 그린 만화는 전부 폐기시켰는데, 사랑의 학교만은 현재 어린이들에게 교훈적이라는 생각에 재출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 보면 중장년층들의 향수를 반영해서 폐기시켰다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주인공, 이시관이 짤막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2. 소재
미담모음집에 가까운 만화라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작화하여 그려낸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소재 대부분이 해외에서 나온 이야기에서 나왔는데, 박정희 시대때 연재된 만화답게 반공적인 내용을 내용을 담기도 했고,[5] 아우슈비츠 관련 에피소드와 같은 일부 이야기는 엔도 슈사쿠의 책을 써먹었다.극적으로 만들려는 의도였는지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전을 개작하여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많다. 그런데 원전 아는 사람에겐 티가 난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스토리 뿐 아니라 설정에도 손을 대 버리는 바람에 역사적, 지리적 오류가 줄을 잇는다는 것.
다만, 이 책에서 그의 사상관의 기반이라 생각되는 에피소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청렴하면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관리에게 왕이 제주목사를 시켜주자, 그 관리는 제주도를 선정을 베풀면서 다스리다가 임기 말에 병에 걸린 척하면서 치료약이라면서 우황을 구한다. 선정에 감동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우황을 구해 목사에게 주자 목사는 그 우황을 좋은 값에 사서 뭍에 내다 팔아 이윤을 챙겨 땅과 재물을 챙긴다는 이야기. 관리는 왕에게 이 사실을 고했지만 왕은 그만큼 잘 통치했는데 그정도 챙기는 거야 문제 되겠냐는 아리송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6]
그리고 자료를 일본 쪽에서 많이 구했기 때문인지, 등장하는 외국인 이름 등의 외국어 표기에서 일본식 표기가 많이 눈에 띈다. 다만 시기상으로 봤을 때 1980년대까지는 일본책을 무단으로 번역하거나 외국책을 번역해도 중역하는 경우가 많아서 재플리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자료를 일본이 아닌 국내에서 구하려고 해도 일본식 표기가 눈에 띌 수밖에 없기는 했다.[7]
3. 에피소드별 줄거리
자세한 내용은 사랑의 학교(만화)/에피소드 문서 참고하십시오.4. 미디어 믹스
4.1. 애니메이션
KBS 2TV 금요일 애니메이션 | |||||
1993.10.22~1994.10.21 | → | 1994.10.28~1995.1.20 | → | 1995.1.27~4.21 | |
초롱이의 옛날여행 | → | 사랑의 학교 | → | 마법사의 아들 코리 | |
1995.6.16~7.14 | → | 1995.7.21~11.10 | → | 1995.11.17~12.8 | |
지구는 초록별 | → | 사랑의 학교 | → | 떠돌이 까치 |
동일 제목으로 대원동화에서 애니화되어 1994년 10월 28일부터 1995년 1월 20일까지 KBS 2TV를 통해 금요일 저녁 6시에 방영되었다.(총 13회 분량) 하지만 컬러화까지 이루어진 만화책과는 달리 애니메이션판은 접하기 어렵다. KBS에서 수신료 합산징수를 단행하던 시기에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공영성에 신경쓴다고 만화일기나 맹꽁이 서당을 비롯한 쟁쟁한 히트 학습만화들을 제치고 애니메이션화가 되었지만, 전작인 초롱이의 옛날여행처럼 지나치게 교양성에 신경쓴 구성인지라 시청률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또한 그 이후에는 비디오로도 발매되지 않았고 지겹도록 우려먹였던 여러 국산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게 재방송도 몇 번 안했다.[8] 아무튼 두작품이 별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지못하자, 이후의 KBS에서는 무조건적인 공익성, 교육성 노선에서 탈피해서 꼬비꼬비나 두치와 뿌꾸같이 코막성이 강한 작품이나 녹색전차 해모수, 레스톨 특수구조대같은 로봇물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건 최소 중박이상은 쳤다.
이 때문에 비디오 녹화를 한 사람들을 보기 쉽지 않으며, 게다가 저작권 문제가 대원미디어, KBS, 이원복 등등 여기저기 얽혀 있어 재방영이나 VOD 서비스 제공, 블루레이/DVD 등 2차 매체 정발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하다못해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이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도 소장이 되어 있지 않아 운 좋게 녹화비디오를 가지고 있거나 대원방송이나 국립중앙도서관에 근무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상 볼 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던 중 2021년에 대원미디어 유튜브 채널 '대플릭스'에서 벡터맨 다음으로 마법사의 아들 코리를 공개 업로드할 예정이라 이 작품의 업로드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동년 3월 2일에 해당 채널이 계정 해지가 되어 아쉽게도 계획이 취소되었다. 향후 대플릭스 채널이 다시 돌아와서 기대를 하고 있다지만 채널이 유튜브 저작권 위반으로 폭파되었다. KBS 멀티플랫폼편성국의 유튜브 채널인 옛날티비에서도 아직까진 업로드를 고려하진 않는 편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이게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고? 정도의 수준에 그친다.[9] 참고로 이 애니 감독이 바로 괴작 블루시걸을 감독한 오중일이다. 다만 블루시걸의 악명과는 달리 사랑의 학교 자체는 이상한 방향으로 재창작될 여지가 없는 작품이었기때문에 그림체가 좀 구닥다리스러운 것을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당시 다른 국산 작품들과 비교하면 퀄리티는 오히려 좋은 편이다.
KBS 2TV판 오프닝
투니버스-비디오판 오프닝
다만 오프닝 음악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들은 몇몇 매체에서 재탄생되었다. 아버지의 병간호와 서커스의 명마는 1980년대 교학사에서 나온 문제지 다달학습에서 재소개되었다. 돈이 없어서인지 삽화가가 그렸다. 다만 다달학습판에 서커스의 명마는 프랑스군으로 소개되었다.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도 원전 내용 그대로 1980년대 국민학교 방학교재에 실린 적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임팩트 있던 에피소드로는 '소년의 초상화'이야기가 있다. 유럽의 어느 화가가 아름다운 미소년을 발견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렸었는데, 세월이 지나 그 화가가 어느 마을을 여행하던 중 흉측하게 생긴 괴한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헌데 그 괴한이 화가에게 다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자신이 옛날에 선생님이 그려준 초상화의 소년이다'라고 고백하자 화가가 엄청난 충격을 먹게 된다는 다소 충공그깽스런 내용이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미소년을 발견해서 그린 게 아니라 처음 화가의 목적이 천사와 악마를 그리는 것이었다. 천사의 모델로 미소년을 발견해서 그렸고, 악마의 모델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나 못 찾고 십년 이상이 지났는데 그러던 중 난동으로 수감된 죄수에게 악마의 모델을 부탁하자 죄수가 '자신이 그 천사의 모델이었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아동용으로 재해석한 내용으로 보여진다. 한재규가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기 만화에도 이 이야기가 인용되었다. 거기에서는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와 유다의 모델을 찾는 이야기로 변용되었다.
[1] 엄밀히는 잡지 학생과학에서 연재되는 중이었기 때문에, 학생과학의 부록 형식으로 나왔다.[2] 이 극화체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도 간간이 사용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사랑의 학교 이후에도 볼 수 있다.[3] 이름은 조 선생이라고 한다. 시관이와 병호가 인사드리러 오는 장면도 있는 걸 보면 진짜 교사인 듯[4] 김형배도 일본 로봇만화 디자인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티가 났었고, 이두호, 이진주도 타이거마스크, 마징가 Z 짝퉁만화를 그린바 있었으며, 김수정도 일본만화 표절작을 그리기도 했었으며 이로마처럼 아예 표절만화로 이름을 날린 작가도 있었고, 배금택도 Y세대 제갈공두라는 표절작을 내다가 히트작가가 아이디어 떨어지니까 표절작이나 내놓는다면서 비웃음거리가 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다는 아니고 상당수는 억지로 그린것이기는 했다만.[5] 다만 이 당시의 이원복은 사민주의 정권이 집권하던 독일물을 먹었던 사람인지라, 당대 기준에서 진보적인 논지의 내용도 먼나라 이웃나라에 실을 정도로 꽤 진보적인 성향이었다. 반공적인 내용을 넣은것은 검열문제가 걸려있기도 했고, 이원복 본인이 어렸을 때 전쟁으로 고생하기도 했었으니 반공적인 내용도 썼던것이었다. 이원복이 보수성향이 된것은 3당 합당의 영향과 보수경제학자인 송병락과 같이 일을 한 영향이 큰데, 김영삼을 지지하던 많은 통일민주당 지지자들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것이다. 이건 조갑제나 이환경도 비슷하다.[6] 이 이야기는 청구야담이 원전으로 윤승운 화백의 《우리 겨레 위인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사실 아리송할 것도 없는 것이, 제값 주고 사서 시세차를 이용해 이익을 얻은 것이다. 단 한 가지 수를 쓴 부분은 다른 상인이 아닌 자신에게 자발적으로 우황을 팔도록 거짓 병자 흉내를 낸 것.[7] 베트남, 뉴코아같은 일부 표기나 빴데리, 테레비같은 말이 이 당시의 흔적이다.[8] 일요일 낮시간대에 1번 재방송을 해주기는 했었고 과거 1990년대 중후반기에 개국 초기 투니버스에서도 방영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감감 무소식.[9] 비슷한 예로 '지구는 초록별'이 있다. 이쪽 역시 공영성을 극대화한 만화인 데다가 사랑의 학교보다도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이 작품도 대원 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