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7 21:13:35

사쿠라바 카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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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승부로 인한 공동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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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쿠라바 카즈시
[ruby(桜庭, ruby=さくら ば)] [ruby(和志, ruby=かず し)]
생년월일 1969년 7월 14일 ([age(1969-07-14)]세)
아키타현 카타가미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종합격투기 전적 46전 26승 17패 1무 2무효
4KO, 19SUB, 3판정
10KO, 3SUB, 4판정
신체 180cm / 76kg[1] / 178cm / O형
학력 아키타시립 아키타상업 고등학교 졸업
주오대학 중퇴
링네임 The Gracie Hunter
주요 타이틀 UFC 15.5 Japan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
기타 Pride 2000 무차별급 그랑프리 3위
2017 UFC 명예의 전당 헌액
테마곡 SPEED TK RE-MIX - 코무로 테츠야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전적3. 경력
3.1. 종합격투기
3.1.1. UFC & Pride3.1.2. 그레이시 헌팅3.1.3. 그레이시 헌터, 도끼 살인마를 만나다.3.1.4. K-1 HERO'S & DREAM3.1.5. Rizin FF
3.2. 프로레슬링
4. 파이팅 스타일
4.1. 이종격투기와 종합격투기
5. 기타
5.1. 레이드5.2. 의혹5.3. 프로레슬러
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プロレスラーは[ruby(本当, ruby=ほんとう)]は[ruby(強, ruby=つよ)]いんです![2]
(프로레슬러는 사실 강합니다!)

일본프로레슬러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

3. 경력

3.1. 종합격투기

3.1.1. UFC & Pride

프로레슬링의 광팬으로 타이거 마스크를 동경하며 성장한 사쿠라바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아마추어 레슬링부에 입부했을 정도로 레슬링에 대한 애정이 남달으며 일본 대회에서 활약했다. 주오대학에서는 레슬링부 주장을 맡았다. 유급만 두번째인 4학년 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UWFi에 들어가고 대학을 중퇴했다. 하지만 정작 프로레슬러로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쿠라바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타카다 노부히코는 사쿠라바를 거의 먹여 살리다시피 할 정도로 총애했고, 자신이 소유한 도장의 코치들에게 지시하여 사쿠라바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3]

당시 일본의 프로레슬링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이외에도 실전지향의 격투기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타카다 노부히코와 안조 요지가 힉슨 그레이시에게 패하는 등 격투기 무대에서는 연전연패에 빠져 있었다. 특히 무(武)를 숭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유술, 유도, 가라테 등 각종 무술의 종주국으로 자부심이 높았던 일본이 정작 이종격투기 무대에서는 월등한 체격을 가진 서구인들에게 연패하며 침울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 1997년 12월 21일 일본에서 열린 UFC 15.5 Japan 토너먼트에 출전한 사쿠라바가 마커스 실베이라와의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우승[4]을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고, 우승 뒤 시상식에서 그가 내뱉은 "프로레슬러는 사실 강합니다!"라는 한마디는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길이 남을 감동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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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토너먼트가 끝난 후 다카다가 창설한 종합격투기 단체인 Pride에서 격투기 선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스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998년 6월 24일 PRIDE 3에서 UFC 2대 웰터급 챔피언인 카를로스 뉴턴니 바로 잡아내는 쾌거를 이룩했고, 1999년 4월 29일 PRIDE 5에서는 UFC 12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자인 비토 벨포트를 상대로 이기면서 PRIDE를 단숨에 인기 단체로 끌어올렸다.[5]

3.1.2. 그레이시 헌팅

당시 그레이시 가문은 이종격투기계의 절대강자였다. 발리 투도 석권에 이어 UFC 토너먼트 1회, 2회, 4회를 호이스 그레이시가 연달아 재패하며 자타공인 최강자의 위치에 올라 당시 그레이시 가문을 이길 자는 없었다.

하지만 사쿠라바는 이 그레이시 가문에 도전장을 던졌다. 첫 상대는 1999년 11월 21일 PRIDE 8에서 만난 호일러 그레이시였다. 호일러는 경량급 선수였지만 ADCC에서 수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강자였다. 그러나 사쿠라바는 체격의 우위를 이용해 호일러를 몰아붙였고 기무라 록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호일러는 팔이 완전히 꺾인 상황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심판이 TKO패를 선언해 경기를 끝냈다.[6]

이후 사쿠라바는 2000년 1월 30일에 개최한 무차별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16강전에서 가이 메츠거에게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고,[7] 2000년 5월 1일에 열린 8강전에서는 타카다 노부히코를 이기고 올라온 호이스 그레이시와 결전을 가졌다. 경기 전, 호이스는 무제한 라운드 룰[8]을 적용해 줄 것을 제의했고, 이에 사쿠라바는 "2박 3일이라도 싸우겠습니다."라며 수락했다. 사쿠라바는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진 경기에서 변칙적이고 기상천외한 움직임으로 호이스 괴롭히며 기력이 남아나지 않게 했고, 결국 6라운드 후 하프 타임에 호이스의 세컨이 타월을 던지며 경기는 사쿠라바의 승리로 끝났다.[9]

파일:external/cageinspiration.com/kazushi-sakuraba-royce-gracie.jpg

그러나 장장 90분에 걸친 사투로 체력을 소모하여 4강전에서 만난 이고르 보브찬친과의 경기에서는 시합이 연장에 돌입하자 사쿠라바측의 세컨이 타월을 던지며 패배하고 말았다.[10]

2000년 8월 27일 PRIDE 10에서 헨조 그레이시를 맞아 2라운드 기무라로 서브미션 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보여준 기무라가 환상적이었기에 일본의 팬들이 이 경기에서 나온 기무라에 사쿠라바 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파일:external/prommanow.com/Sakuraba.jpg

2000년 10월 31일 PRIDE 11에서 쉐논 리치를 상대로 1라운드 힐 훅으로 서브미션 승을 거뒀다.

2000년 12월 23일 PRIDE 12에서는 하이안 그레이시마저 판정으로 꺾으며 그레이시 헌터의 명성을 세계에 과시했다. 하이안의 어깨 부상 때문에 1라운드만 치르는 특별 룰로 펼쳐졌던 경기였는데, 여기서 하이언은 4점 포지션에서 사쿠라바에게 엉덩이를 맞는 굴욕을 당했다.

3.1.3. 그레이시 헌터, 도끼 살인마를 만나다.

하지만 2001년 3월 25일 PRIDE 13에서 사쿠라바는 자신의 천적과 마주하게 된다. 브라질 슈트박세 아카데미의 반달레이 실바와의 첫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탄탄하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레이시 주짓떼로들과는 달리 실바는 전신이 근육으로 뒤덮인 90kg을 훌쩍 넘는 거구의 스트라이커였다. 더군다나 이 대회를 시작으로 PRIDE측에서 좀더 화끈한 경기 운영을 위해 경기룰을 수정하였고, 수정된 룰이 사점 포지션 방어를 하는 사람의 양손이 바닥에 있어도 무릎 공격을 하용하는 것이었다.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사쿠라바의 불리함을 예측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전 경기까지 수 많은 타격계 선수들을 이겨온 사쿠라바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예측과 달리 사쿠라바는 실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타격에서 완전히 압도당했고, 자신의 주특기인 하단 태클을 고집하다가 더 얻어맞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1분 38초 만에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

2001년 7월 29일 PRIDE 15에서는 퀸튼 잭슨과 대결했다. 실바를 웃도는 파워를 가진 퀸튼은 사쿠라바가 하위에서 걸어오는 서브미션을 모두 슬램으로 깨버리며 장중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고, 경기는 사쿠라바가 5분 만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서브미션 승리를 따냈으나 이 경기에서 퀸튼 잭슨이 보여준 엄청난 파워는 굉장한 임팩트를 보여줬다.

2001년 11월 3일 PRIDE 17에서 다시 반달레이 실바를 상대로 2차전을 가졌다.[11] 경기 초반 팽팽한 접전 중 사쿠라바가 길로틴 초크 그립을 완성시켰으나 실바는 그대로 사쿠라바를 들어올려 링바닥에 메다 꽂아버렸다. 이 슬램으로 사쿠라바의 어깨가 탈골되며 결국 2번째 대결도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12]

2002년 8월 28일 PRIDE 남제에서는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로 시합을 가졌다. 크로캅은 반달레이 실바 이상의 피지컬을 가진 선수로 비록 당시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로서의 완성도는 아직 높지 않았으나 수준급의 타격과 파워를 가지고 있었던 크로캅은 스탠딩에서 압도하며 그라운드에서도 사쿠라바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막아냈고, 결국 경기 도중 사쿠라바가 미르코의 타격을 정통으로 맞고 오른쪽 눈 언저리가 크게 부어올라 더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게 되며 사쿠라바의 TKO패가 선언되었다.

2003년 8월 10일 PRIDE 토탈 일리미네이션 2003에서 반달레이 실바와 3차전을 가졌는데, 경기 초반 실바의 타격에 맞서 타격으로 맞불을 놓는 무리한 작전을 들고 나왔으나 레그킥에 카운터 원투를 얻어맞고 그대로 실신하며 리벤지에 실패했다. 지난 1,2차전과 달리 사쿠라바는 잘 안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식단관리를 하는 등 90kg까지 불려서 출전했다. 아웃복싱 스타일로 순간 클린치 상황에서는 안면 니킥, 거리가 유지될 때는 로우킥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나온 것. 초반에는 실바 측에서 오히려 당황해서 전략이 어느정도 먹히긴 했다. 그러나 증량의 결과는 스피드의 둔화였고, 경기 초반과 달리 아웃복싱 공략 패턴도 읽히기 시작하면서, 실바가 로우킥 패턴을 읽고 카운터 훅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2003년 11월 9일 PRIDE 파이널 컨플릭트 2003에서는 케빈 랜들맨에게 암바로 서브미션 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2003년 12월 31일 PRIDE 남제 2003에서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를 상대로 경기 내내 압도당하면서 또 다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2005년 4월 23일 PRIDE 토탈 일리미네이션 2005에서 개최한 미들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16강전에서 윤동식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사쿠라바는 2005년 6월 26일 PRIDE 크리티컬 카운트다운 2005에서 히카르도 아로나를 상대로 8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주최측으로서는 주짓떼로인 아로나를 보며 그레이시를 떠올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로나의 주짓수는 그레이시 가문과는 전혀 다른 근육질의 육체와 동급최강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힘에서 눌린 사쿠라바는 이렇다 할 기술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4점 니킥에 난타당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이 때 사쿠라바의 얼굴은 원래 생김새를 알아볼 수도 없이 퉁퉁 부어올라서 심히 처참했다.[13]

파일:external/auto.img.v4.skyrock.net/168355496_small.jpg

그나마 이 사진이 덜 잔인하게 나온거다. 경기 직후 사진을 보면 그냥 말그대로 피칠갑이다.

이후 켄 샴락, 미노와 이쿠히사와 경기를 가져 승리를 거둔 뒤, 사쿠라바는 PRIDE를 떠나 HERO'S로 이적했다.

3.1.4. K-1 HERO'S & DREAM

K-1에 정착한 사쿠라바는 2006년 8월 5일 HERO'S 6에서 개최한 라이트헤비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케스투티스 스미르노바스와 16강전을 치렀다. 상대의 타격에 고전하던 중 역전 암바를 성공시키며 승리했지만 거의 실신 상태에서 레프리가 스탑 돈 무브 선언을 하고 링 중앙에서 시합을 재개시켰기 때문에 편파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데미지의 누적[14]으로 다음 대전 상대였던 추성훈과의 4강전이 취소되고 패배한 스미르노바스가 올라가게 되었다.[15]

2006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추성훈과 경기를 갖게 된다. 사쿠라바는 경기 중 추성훈의 몸이 미끄럽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라운드 5분 37초만에 KO패를 당했다. 하지만 경기 후 크림 도포가 사실로 판명되면서 이 시합은 무효 처리되었고, 추성훈은 공개 사과를 했으며 대전료를 삭감당했다.[16][17]이 경기로 인해 추성훈은 일본의 인기스타에서 비겁한 반칙을 한 선수로 각인되었다.[18]

2007년 9월 17일 K-1 다이너마이트 in USA에서 7년 4개월만에 호이스 그레이시와 재대결을 가졌다. 만 41세의 호이스와 만 38세의 사쿠라바의 대결은 주최측이 어필했던 전설들의 재대결이라기에는 다소 루즈한 전개 끝에 호이스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리벤지를 축하하기에는 호이스도 사쿠라바도 너무 노쇠한 뒤였다.[19]

이후 시바타 카츠요리후나키 마사카츠를 각각 암바와 기무라로 1라운드 서브미션 승을 거뒀고, 2008년 4월 29일 DREAM 2에서 개최한 미들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16강전에서 앤드류스 나카하라를 넥 크랭크로 1라운드 서브미션 승을 거뒀으나, 2008년 6월 15일 DREAM 4에서 8강전 상대인 멜빈 만호프에게 타격전에서 압도적으로 밀렸고, 결국 난타를 당하며 1라운드 1분 30초만에 초살 KO패를 당했다.

2008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 과거의 라이벌[20]이었던 타무라 키요시에게도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며,[21]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량이 예전같지 않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22]

2009년 10월 6일 DREAM 11에서 로빈 윌리엄스를 상대로 기무라를 성공시키며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2009년 10월 25일[23] DREAM 12에서는 젤그 갈레시치에게 그라운드에서 백을 내준 채 파운딩 수십대를 맞았으나 니바를 성공시켜 역전승을 거두었다.

2010년 5월 29일 DREAM 14에서 할렉 그레이시[24]에게 판정패했다. 사쿠라바 vs 그레이시라는 자못 의미심장한 대전이었지만 정말로 그냥 의미만 있는 대전이었다. 종합격투기 전적이 2전뿐인 할렉이 상대였지만 전성기를 훌쩍 넘겨버린 사쿠라바는 너무 무기력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두 차례 기습적인 기무라로 할렉을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마운트를 허용하는 등 포지션 싸움에서 밀리며 판정패를 당했다.

2010년 9월 25일 DREAM 16에서 제이슨 밀러와 대결하여 1라운드 2분 9초만에 암 트라이앵글 초크에 걸려 데뷔전 이후 첫 서브미션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웰터급으로 전향이라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인 뒤, 2010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10에서 DREAM 웰터급 챔피언 마리우스 자롬스키의 타이틀에 도전했다. 팬들은 그저 사쿠라바가 무사히 링 밖으로 걸어나오기만을 바랬으나, 팬들의 바람을 져버리고 타격전에서 완벽히 밀리며 귀가 떨어져 나가는 부상을 입고 닥터스톱으로 경기는 사쿠라바의 KO패로 끝났다.

2012년 9월 24일 DREAM 17에서 얀 카브랄과 붙어 경기 내내 끌려다니며 2라운드만에 암 트라이앵글 초크로 서브미션 패배를 당했다. 2012월 12월 1일부로 자신의 도장인 래프터 7을 폐쇄했다.

3.1.5. Rizin FF

2015년 12월 29일 3년만에 복귀하여 Rizin FF SARABA에서 아오키 신야를 상대했으나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파운딩 펀치만 맞다가 사쿠라바측의 세컨이 타월을 던져 TKO패로 경기가 끝나게 되었다.

사쿠라바가 일방적으로 파운딩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스톱도 없었고, 사쿠라바측 세컨드도 타올을 던질 생각을 안하는 바람에 때리고 있는 아오키가 사쿠라바측의 세컨과 심판에게 빨리 경기를 멈추라고 호소했고, 결국 사쿠라바의 얼굴이 완전 피떡이 되고난 뒤에야 타올을 던져 시합이 끝났다.[25]

파일:external/adcombat.com/151229rizin-14-sakuraba-aoki-4.jpg

이후 아오키는 이렇게 불쾌했던 승리는 처음이라며 흥행을 위해서 선수 보호는 뒷전으로 미루는 주최측이나 세컨드측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난했다.[26]

3.2. 프로레슬링

링네임 사쿠라바 카즈시
신장 180cm
체중 85kg
출생지 일본 아키타현 카타가미 시([ruby(潟上市, ruby=かたがみ し)])[27]
학력 츄오대학 레슬링부[28]
유형 스트롱 스타일(U계)
피니쉬 무브 4자 꺾기([ruby(四, ruby=よん)]の[ruby(字固, ruby=じ がた)]め)
[ruby(39, ruby=さく)] 록[29]
별명 IQ 레슬러(IQレスラー)
테마곡 SPEED TK RE-MIX - 코무로 테츠야
데뷔 (프로레슬링) 1993년 8월 13일 도쿄도 일본 무도관
UWFi 일본무도관 대회
vs 스티브 넬슨

(종합격투기) 1996년 7월 14일 국립 요요기 경기장
Shoot Boxing – S-Cup 1996
vs 키모 레오폴도

2000년대 후반부터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인 DDT나 특별 흥행 등에서 프로레슬링 시합을 소화하고 있었고 2012년 이후부터는 일본 격투계가 영 분위기가 식은지라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링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30] 2013년 1월 4일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최대 흥행인 레슬 킹덤 7에서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나카무라 신스케에 도전했으나 분전 끝에 나카무라의 보마예를 맞고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나카무라는 일본 선수답지 않게 상당히 개성적인 기믹의 소유자이자 단체에서 밀어주는 스타고, 사쿠라바도 거물이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관심이 쏠렸었는데, 나카무라가 결국 승리했지만 경기는 메인 이벤트 못지않게 훌륭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종합격투기의 그래플링을 프로레슬링에 맞게 어레인지하여 화려하게 연계하는 감각은 전업 프로레슬러 못지 않았다.

이후로도 사쿠라바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꾸준히 참전하기로 결정, 2014년 같은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인 스즈키 미노루와 대립하면서 2015년 1월 신일본 최대의 흥행인 레슬킹덤 Ⅸ에서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미노루의 슬리퍼 홀드에 걸려 레프리 스톱 패배.

프로레슬러로서 사쿠라바는 팬들 사이에서 심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스트롱 스타일을 주창하며 다른 격투기에 관대한 편이지만, 아무래도 사쿠라바의 U계 스타일은 정통 프로레슬링 팬들 시각에선 외도이기 때문. 즉 "하라는 프로레슬링은 안하고 혼자 격투기를 하고 있다."고 반감을 사는 측면이 있다. 본인이 일단 프로레슬링에 대한 센스가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퀄리티 있는 시합을 만들 수 있지만 1:1 시합을 하기에는 그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다.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커리어가 있는 스즈키 미노루, 시바타 카츠요리, 아마추어 레슬링 경험이 많은 나가타 유지, 나카무라 신스케 혹은 종합격투기 무대 경험이 있는 KUSHIDA, 카일 오 라일리 정도가 어느 정도 합을 맞출 수 있는 대상인 듯 하다.

2015년에는 순화된 악역 군단 CHAOS의 멤버로서 주로 활동했으며, 야노 토오루와 함께 태그팀으로 주로 나왔다. 야노 특유의 악역 플레이나 롤업등을 배워 써먹는걸 보면 과거 격투가로서의 모습과는 상당한 갭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DDT에 출장하여 개그성 짙은 시합을 소화하는 등 풀타임 프로레슬러로 굳어진 듯 하다.

2016년을 상반기를 끝으로 신일본과의 레귤러 계약이 끝나며, CHAOS에서 자연스럽게 탈퇴되었다.

2019년 9월 16일 프로레슬링 노아에서 스기우라 타카시의 군단 스기우라군의 멤버로 첫 출전하여 NOSAWA논외, 오오하라 하지메와 태그를 맺고 오가와 요시나리, 스즈키 코타로, 크리스 릿지웨이와 3대3 태그 매치를 치러 사쿠라바 록으로 크리스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노아를 거점으로 삼아 빅 매치 위주로 출장하고 있다.

4. 파이팅 스타일



원래 일본 프로레슬러들이 배운 레슬링이 영국 랭커셔 지방의 관절기와 초크도 허용된 캐치 레슬링이기에[31] 메치기와 서브미션에 능하며, 독창적이고 지능적인 그래플링을 펼치며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다. 초저공 태클, 슬라이딩 킥, 해머링을 시도하는가 하면 빠르고 정확한 태클로 거구의 파이터들을 넘어뜨린 후 어느새 서브미션 그립을 완성시킨다. 서브미션 시도에 의외로 보수적인 브라질리언 주짓수와는 달리 가드에 갇힌 상태에서도 서브미션을 시도하거나 심지어는 헨조 그레이시와의 대결에서도 보여줬듯이 백을 잡힌 상황에서도 기어코 기무라를 잡고 사이드로 나가는 등 캐치레슬링 특유의 변칙적이고 무모한 움직임을 보여준다.[32] 호이스 그레이시와의 1차전에서 그레이시 주짓떼로들의 무기와도 같던 유술 도복을 거꾸로 이용하며 호이스를 당황시켰고, 2차전에서는 호이스의 다리를 컨트롤하면서 기습적인 기무라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IQ 레슬러라는 별명은 이러한 창의적인 플레이에서 기인한 것이며, 기술로 힘을 능가한 선수로 유명하다.

약점은 체격이 작고 파워가 부족한 것으로 체격은 수치상으로도 반달레이 실바히카르도 아로나에 비해 피지컬이 떨어진다. 골격이 가녀리고 리치짧고 허리 긴 몸이기 때문에 더욱 불리하며[33], 자기관리는 잘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싫어했다. 결론은 파워에서 눌리기 때문에 뛰어난 그라운드 테크닉을 갖고 있음에도 하위 포지션에 몰리면 무력하게 패하는 경우가 있다. 기술로 힘을 능가했지만 힘을 가진 선수들이 똑같이 기술을 향상시키자 타고난 신체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스탠딩 타격이 부족한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스탠딩에서도 특유의 변칙 복싱을 구사하는데, 펀치의 궤도가 매우 특이한 것은 장점이지만 파괴력이 약하고 핸드 스피드가 느려 정통파 스트라이커들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불리했다. 스탠딩 타격에서 압도당한 좋은 예가 실바전이며, 실질적으로 전성기가 한참 지났을 때 만난 멜빈 만호프와의 대결에서도 비참한 수준의 복싱 스킬로 인해 일방적으로 구타당했다.

이 모든 것들을 둘째치고 사쿠라바의 제일 치명적인 약점은 귀가 너무나도 잘 찢어진다는 것이다. 레슬링과 유도를 하는 선수들이 만두귀가 되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 사쿠라바의 경우는 심할 정도의 만두귀에다 피부가 아주 약해서 귀가 끔찍할 정도로 찢어져서 떨어져 나갈 지경에 이른 경우가 몆번이나 있었다. PRIDE 시절에도 이런점 때문에 귀쪽에 보호대를 한적도 있었을 정도이며, 마리우스 자롬스키와의 대결에서 하마터면 귀가 괴사할 뻔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2018년 기준의 사쿠라바는 절대 격투기를 뛰어서는 안될 정도로 심각한 몸상태라는 것이다. 선수 시절 너무 많은 타격을 허용하여 편치 드렁크가 의심되는 상황에다 턱에 가볍게 맞아도 그냥 고꾸라져버릴 정도로 이미 격투가로써는 2010년 이후에 사형선고를 받은 몸으로, 이런 사쿠라바를 경기에 나서게 만든 Rizin FF측의 정신나간 행태와 PRIDE 시절 선수들 죽이기로 작정한 진행으로 세계 종합격투기 역사상 최악의 레프리로 불리는 시마다 유지의 경기 진행 방식도 사쿠라바의 몸이 망가지는데 일조했다. 팬들은 사쿠라바가 이러다가 파킨슨병이나 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걸리지 않을까 우려하며[34] 실제로 그렇게 되면 시마다 유지를 형사 & 민사로 고소에다 소송까지 내야 한다고 할 정도이기 때문에 사쿠라바는 그나마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아예 선수 생활을 그만두어야 한다.

4.1. 이종격투기와 종합격투기

사쿠라바는 이종격투기의 끝자락에 걸친 세대로 보는 것이 옳다. 발리 투도의 이종격투기에서 프랭크 샴락의 프로토 타입을 거쳐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BJ 펜, 조르주 생 피에르로 진화하는 종합격투기의 흐름의 마지막을 지켜본 파이터가 바로 사쿠라바 카즈시이다.

그레이시 가문은 브라질리안 주짓수 만능론에 입각하여 그래플링을 극한의 정수까지 발전시킨 일족이었고 이에 대응하는 사쿠라바도 레슬링 베이스의 그래플러였다. 하지만 반달레이 실바, 미르코 크로캅,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는 타격과 그래플링을 조율하며 유기적인 시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한 수 위의 신체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PRIDE 2005 미들급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마우리시오 쇼군, 퀸튼 잭슨 등이 이러한 흐름에 합류했다. 어느 한가지 격투기로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이종격투기의 시대가 지나고 만능형 선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종합격투기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그래플링에 극히 치중하는 사쿠라바의 스타일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고 슈트박세에서 합동훈련을 하는 등 나름대로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결국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5. 기타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스타가 아닌 국민적 영웅의 영역. 이는 그의 기량이 하락세에 접어든 지금에도 유효하다. 이 인기가 어느정도냐면 사쿠라바가 K-1 HERO'S로 이적했을 당시 원래 라운드 타임이 전라운드 5분이였는데 사쿠라바를 배려하기 위해 PRIDE와 똑같이 라운드 타임을 1라운드 10분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것도 사쿠라바가 활동하는 급에서만 한정해서.

2006년 이후로 괄목할만한 활약은 보이지 못하고 있으나 종합격투계의 전설로서 예우를 받고 있다. 이는 일본 뿐 아니라 북미의 팬들도 마찬가지인데, 일례로 DREAM 16에서 상대한 제이슨 밀러가 사쿠라바에게 승리해서 그의 자리를 이어받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당연하게도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쇠한 사쿠라바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는 없다는 것.

입장과 인터뷰시 독특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슈퍼 마리오 시리즈[35], 로드 워리어즈의 코스프레를 하거나 타이거 마스크,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히카르도 아로나와의 기자회견장에서는 몸매에 관한 말을 듣고 사인펜으로 몸에 근육을 그려넣기도 했다.[36] 이래저래 관객을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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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장난꾸러기 같은 성격으로 호기심이 많고 재치가 넘친다.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학 문제 풀기가 취미라고 한다.

프로레슬링의 광팬으로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타카다 노부히코UWF에 입단했다. 타카다는 사쿠라바의 레슬링 스승으로 자주 사쿠라바의 세컨을 봐주었고, 총괄본부장과 흥행스타로서 PRIDE를 견인해 온 각별한 사이였으나 2006년 K-1으로 이적할 때 완전히 틀어져 버린 듯하다.

사쿠라바는 원래 타카다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 언급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나, PRIDE에서 활동하면서 타카다의 독단적인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게 된다. 모 일본 격투기 잡지에 실린 일화를 보면 타카다 계열의 선수들의 회식자리에서 사쿠라바는 자신의 은퇴한 선배들을 잘 챙기지 못한다며 타카다에게 항의했고,[37] 타카다가 자기 행동에 토달지 말라고 일축하자 이에 격분한 사쿠라바가 거칠게 항의하면서 회식을 엎어버린 적도 있다. 또한 사쿠라바의 부인이 "요시다는 도장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데, 공헌도가 높은 당신은 어째서 하나도 없어요?" 하고 부추긴 것도 사쿠라바와 타카다가 결별한 또다른 요인 중 하나이다.[38]

PRIDE 2005 미들급 그랑프리에서 윤동식에게 참패를 안겨준 선수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로는 윤동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며 종합격투기 무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퀸튼 잭슨과의 시합에서 세컨을 봐주기도 했고 PRIDE가 도산한 후 윤동식이 HERO'S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격투기의 간판이지만, 실제 받았던 대전료 수준은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K-1 이적 후 2007년 K-1 Dynamite! 미국에서 개최한적이 있는데, 상대 선수였던 호이스 그레이시는 30만 달러, 사쿠라바는 3만 달러(...)의 대전료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간 일본 격투기 단체의 대전료 뻥튀기는 공공연 했지만, 그래도 PRIDE의 성장에 큰 공헌을 했던 사쿠라바 또한 열정페이 수준의 대전료를 받아왔으니... 그리고 심지어 이적을 했음에도 저 대전료를 받았다는건 PRIDE에서 뛸 당시 저 금액보다 못 미치는 금액을 받으면서 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지 오래고 기량도 하락해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0년이 되어서도 계속 현역으로 뛰고 있는데 아마도 실력이 있는 선수들은 죄다 미국으로 가버리는 탓에 빈약해진 일본 중량급 선수층 때문인 듯하다.

마이크 타이슨, 이소룡, 바스 루텐과 함께 EA 스포츠 UFC 2에서 레전드 로스터로 등록되었다.

5.1. 레이드

워낙 일본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선수라서 그를 쓰러뜨린 선수는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PRIDE 13에서 반달레이 실바가 사쿠라바를 쓰러뜨리자 슈트박세는 순식간에 브라질의 악마소굴이 되었고 최종 보스인 실바에 대한 일본인 파이터들의 일대 레이드가 시작된다. 일본의 차기 에이스인 타무라 키요시, 곤도 유키, 요시다 히데히코, 나카무라 카즈히로 등이 나섰으나 막넴이 공대파괴자급인지 모두 전멸해 버렸고, 심지어는 헤비급의 후지타 카즈유키마저도 당하고 만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의 노력이 실바 입장에서는 떡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일본인 파이터들을 상대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수년간 PRIDE 타이틀과 셔독 랭킹 1위를 독식하게 된다.

5.2. 의혹

PRIDE에서 존 시나 마냥 거의 원톱으로 밀어주던 선수이다 보니 워크, 판정 의혹도 많고 어드밴티지도 많이 받았다. 다만 이런 의혹들 중에는 억측이거나 상대 선수의 일방적인 주장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비토 벨포트과의 경기에서는 비토가 경기 도중 요상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바람에 워크 의혹을 받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는 당시 경기 도중 비토가 사쿠라바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하다 주먹에 골절 부상을 입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퀸튼 잭슨의 경우 프라이드가 자신에게 워크 제의를 했었다고 폭로한 적이 있지만 사실 여부는 이제와서 확인할 방법이 없고 그의 폭로 내용을 100% 신뢰한다고 해도 퀸튼은 당시 워크 제의를 거절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셔독 기사[39]

워크 제의 의혹은 아니지만 가이 메츠거와의 시합에서는 세컨인 켄 샴락이 연장전을 거부한 채 선수를 데리고 링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몰수승을 얻어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메츠거 측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연장이 없는 계약을 했는데도 PRIDE 측이 연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메츠거가 우세한 경기를 했다고 본 팬들도 많았기 때문에 판정에 대해서도 한동안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40]

켄 샴락과의 경기에서는 심판이 지나치게 빨리 말려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은 샴락의 다리가 완전히 풀려 있었고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이 링 밖에 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경기 포기 의사라고 판단한 것이였는데 샴락이 그대로 벌떡 일어나 항의를 했기 때문에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41]

반대로 케스투티스 스미르노바스과의 경기는 심판이 스탑 돈 무브를 선언하면서 시간을 벌어준 탓에 경기는 사쿠라바가 승리했지만 다음 경기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로 데미지를 입는 바람에 결국 그랑프리 결승전을 포기했는데[42] 이 때문에 선수 보호 차원에서 사쿠라바의 TKO패로 끝내야 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43]

5.3. 프로레슬러

그의 경력 중 프로레슬링 경력에 대해서는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UWF는 프로레슬링 단체이긴 했지만 실전적인 관절기와 타격기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형태의 프로레슬링이었으며, 이른바 U계라고 불리는 이 단체는 잠깐 인기를 얻었지만 곧 시들해지고 만다. UWF 출신의 유명 레슬러 및 격투가로는 대표로 있었던 타카다 노부히코 외에도 타카야마 요시히로 등이 있다.

프로레슬러로서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일단 체구도 작은 편이고, 타카다 등의 단체의 얼굴마담을 보면 굉장히 잘생겼기 때문에 본인의 임팩트가 너무 약한 측면이 있었다. 심지어 프로레슬링 시절에는 가면 레슬러로 활동한 적도 있을 정도. 그래도 U계 레슬러로서의 상징성과, 무엇보다 미국식 엔터테인먼트보다 격투기로서의 요소가 강조된 일본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있어 실전 격투기라는 무대에서 프로레슬링을 우습게 만들지 않는, 의지가 되는 존재였기에 레슬링계의 레전드 중 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종합격투기 링 위에서도 프로레슬링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실 기묘한 하체 관절기 등은 U계의 혈통인 UWF나 Shooto 출신의 레슬러들의 전매 특허라고 할 수 있으며, 사쿠라바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마운트 포지션에서 몽골리안 춉을 사용하기도 했다.[44]

사실 그가 최고의 스타가 된 것은 그레이시 가문을 연전연파한 것도 있지만, 안토니오 이노키라는 걸물의 존재로 인해 프로레슬링의 강함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자극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이 경우 재미있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와 일본화된 유파 vs 일본에서 건너가 외국화된 유파이라는 기묘한 대립 구도가 성립되게 된다. 사쿠라바와 그레이시 가문의 대립의 저변에는 이러한 독특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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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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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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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바 카즈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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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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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우라 타카시 & 사쿠라바 카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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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치 & 잭 세이버 주니어)
(2021)


[1] 미들급에서 활동했던 시절에는 84~88kg 사이를 왔다갔다 했으며, 의도적으로 93kg까지 불려서 나온적도 있다.[2] 마커스 실베이라를 결승에서 꺾고 UFC 15.5 Japan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후 인터뷰에서 한 발언.[3] 이때 사쿠라바와 타카다 간에는 신뢰가 높아 둘 사이엔 계약서조차 없을 정도였으며, 타카다가 지시하면 지시하는 대로 사쿠라바가 묵묵히 싸우는 형태였다.[4] 마커스 실베이라와의 결승전을 보면, 사쿠라바가 철창쪽으로 몰린 상태에서 마커스에게 펀치 연타를 허용하다가 기습적으로 초저공 태클을 시도했는데, 이를 다운으로 착각한 존 매카시 레프리가 KO를 선언했다. 사쿠라바는 분명히 실베이라의 하체를 응시하며 정확하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사쿠라바를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마치 실베이라의 펀치 연타에 실신 다운한 것처럼 몸이 링바닥으로 갑작스럽게 내려앉은데다, 레프리가 다운이라고 착각해 긴급하게 경기를 중단하려는 순간에 하체를 잡고 넘어뜨리려는 상황이라 실베이라의 상체를 붙잡으며 말리는 레프리의 시야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결국, 사쿠라바 측의 항의와 경기 영상을 수차례 되돌려보아도 실신이 아닌 태클임이 분명했기에 해당시합은 무효가 되었고 바로 재시합에 들어가 승리했다. 결과가 번복되지 않았다면 존 매카시의 명성에 흠집이 생길만한 판정이었다.[5] 다만 이 경기에서 벨포트는 본인 스타일답게 경기 초반 맹렬한 강공으로 사쿠라바를 압도했지만, 경기 도중 사쿠라바의 머리를 가격하다 주먹에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그 후부터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벨포트가 경기 도중 골절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단순히 경기 후반에 소극적인 플레이로만 일관한 벨포트의 경기 운영을 근거로 워크 아니냐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6] 이에 대해 그레이시 쪽에서 "호일러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심판이 부당하게 패배를 선언했다."라는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심판은 선수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죽거나 부상을 입어야만 중지 시키지 않는데다, 기술이 완벽히 걸린 상태였다.[7] 이 경기는 메츠거 쪽의 세컨이 연장전을 거부하며 메츠거가 몰수패를 당한 경기였는데, 정작 경기는 메츠거가 우세했다고 본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8] 1라운드 15분으로 승부가 날 때까지 싸우는 무제한 라운드는 심판 판정, 닥터 스톱 없이 오로지 KO되거나 선수 기권만 허용되는 선수의 의지로 승부가 결정되는 싸움이었다. 이는 실전지향의 그레이시 주짓때로들이 선호하는 룰이었다.[9] 이때부터 사쿠라바에게는 세계 최강의 그레이시 일족을 제압그레이시 헌터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10] 이후 보브찬친도 이 시합에서 체력을 소진한 끝에 결국 결승에서 마크 콜먼에게 패배하고 말았다.[11] 참고로 이 경기는 PRIDE 미들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이기도 했다.[12] 이때가 실질적으로 사쿠라바의 전성기의 마지막이며, 이후 사쿠라바는 패배와 승리를 오고 가게 된다.[13] 보통 선수였다면 진작에 TKO 판정이 났겠지만 사쿠라바라면 혹시... 라는 생각에 심판이 선뜻 개입하지 못했고, 덕분에 사쿠라바는 제대로 방어도 못하고 몇분동안 4점 니킥에 처참하게 난타를 당했다.[14] 이 경기에서 사쿠라바는 총 80대를 맞았다고 한다.[15] 이후 추성훈이 2006년 10월 9일 HERO'S 7에서 스미르노바스를 4강전에서 쓰러뜨리고 결승전에 진출해 멜빈 만호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라이트헤비급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16] 이 경기에선 총 130대를 맞았다고 한다. 또한 이날 경기를 말리지 않고, 바셀린 도포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레프리는 2ch 유저들에게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17] 다만, K-1측에서는 추성훈에게 고의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이유는 추성훈이 카메라 앞에서 바세린을 바르면서 냄새 좋죠? 라고 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였고 단순히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악의는 없었다고 하는 점이 인정되었다.[18]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전까지 추성훈이 당당하게 자이니치라는 것을 밝히면서 일본과 한국 양쪽의 국기를 걸고 나오는 것을 멋있게 생각하는 팬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았다.[19] 그 뒤, 승자인 호이스가 약물 검사에서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가 적발되었으나 무효 처리는 되지 않았다.[20] 다만 UWF 시절에는 라이벌이라기보다는 타무라가 메인이었고, 사쿠라바가 언더급 선수였다. 이후 사쿠라바가 PRIDE에서 그레이시 헌터 칭호를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고, 타무라는 Rings로 가서 활약을 하며 서로 동갑내기로 둘 다 노부히코의 제자였으나 각자 다른 단체로 이적 후 행보가 서로 달라 라이벌 관계가 됐다고 봐야한다.[21] 사실 이 경기는 PRIDE 시절 2003년엔 남제에서 추진하려 하였으나 조건이 안 맞아 파토, 2004년 남제에서는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사쿠라바의 부상으로 경기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결국 PRIDE가 해체되고 두 선수의 기량이 떨어지며 치러야할 적정 때를 놓쳐버렸다.[22] 그도 그런게 사쿠라바는 PRIDE에서 잦은 경기와 자신과 체급이 맞지 않는 선수를 상대하는 등 엄청난 혹사를 당했고, 이후 반달레이 실바와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여 미들급이 형성됐지만 사쿠라바의 평소 체중이 미들급 한계 체중보다 낮아 사실상 핸디캡 매치였고, 실바와의 경기 이후 KO패가 많아지는 등 잔부상이 누적되어 운동 신경도 많이 떨어져 후유증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이에 반해 타무라는 사쿠라바에 비해 센스가 떨어졌지만 Rings의 비교적 안전한 룰 덕분에 경기 후유증이 사쿠라바에 비해 적었고, PRIDE 이적 후에도 반달레이 실바, 밥 샙 등을 제외하고는 KO패가 없었을 뿐더러 경기도 많이 참여하지 않아 몸상태가 사쿠라바보다 훨씬 좋았다.[23] 대타로 뛴 경기였기 때문에 전 경기와 텀이 매우 짧았다.[24] UFC를 탄생시킨 호리온 그레이시의 아들로, 호이스 그레이시와 호일러 그레이시에게는 조카다.[25] 그 후, 아오키는 사쿠라바측 세컨드에게 왜 빨리 타올을 던지지 않았냐며 강력하게 항의하고는 쓰러진 사쿠라바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으며, 사쿠라바는 시합 후 인터뷰도 못한 채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경기 매너가 최악인데다 인성도 개차반인 아오키 신야가 이렇게 대우할 정도면, 사쿠라바가 얼마나 일본 격투가들에게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다.[26] 참고로 이때 심판이 전세계 종합격투기 팬들이 입을 모아 극혐하는 시마다 유지였다.[27] 출생 당시에는 미나미아키타군(南秋田郡) 쇼와마치(昭和町)였으나 2005년 3월에 카타가미시로 다른 두 마치와 함께 신설합병되었다.[28] 이곳 선배로는 점보 츠루타가 있으며, 후배로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스와마가 있다.[29] 변형 기무라 록. 39는 고로아와세로 '사쿠'라고 읽는다.[30] 프로레슬링은 부시로드 체제의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중흥을 맞이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인지 사쿠라바도 신일본 출신의 격투가이자 신 투혼 삼총사로 알려진 시바타 카츠요리와 함께 태그를 맺고 참전하였다.[31] 빌리 로빈슨에게서 사사한 칼 이사츠가 일본으로 건너와서 프로레슬러들을 가르쳤고, 이것이 사쿠라바에게 전수된 것이다.[32] 주짓수의 경우 옛날부터 특정 위치에서 함부로 서브미션을 거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피해왔다. 요컨데, 리어 마운트를 당했으면 일단 탈출에 주력하며, 가드, 특히 클로즈드 가드는 갇힌 상태에서 함부로 서브미션을 걸면 역관광을 당하기 딱 좋으니 일단 패스를 하고 보는 식이지만 캐치 레슬링은 상황을 봐서 도중에 역공당할 위험만 없다면 서브미션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제압법이라고 가르친다. 다만 2010년대 이후 주짓수계에선 델 라 히바 가드에 갇힌 상태에서 패스하지 않고 바로 발목비틀기나 토 홀드를 거는 등 서브미션에 훨씬 더 적극적인 편이다. 특히 기보다는 노기 주짓수에서 활발하다.[33] 엄밀히 말하자면 골격 운운하기 전에 그냥 체급이 안 맞았다. 실바의 경우 프라이드 시절에는 풀도핑에 가까웠고, 아로나는 그런 실바보다도 몸이 좋았다. 서구의 더 큰 그것도 풀도핑 약물 괴수들 상대로 밀린 것은 당연한 이야기.[34] 실제로 뇌손상 가능성이 높은 NFL 이나 축구, 권투, 그리고 각종 격투기 선수 출신들 중에 유독 파킨슨병과 루게릭병 환자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데 지속적인 뇌손상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이다.[35] BGM까지 입장곡으로 재현했고 그 복장을 하고 붙은 상대가 케빈 랜들맨이다.(...) 게임과 내용도 똑같았다.[36] 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거기에 하나를 더 했다.[37] 사쿠라바와 친한 한 격투기 선배는 은퇴후 타카다의 주선으로 음식점 견습 요리사로 취직했는데, 사쿠라바는 이 선배에 대한 타카다의 예우가 충분치 못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38] 사쿠라바의 처가 고용한 타카다 도장의 스탭을 타카다의 처가 해고해버리면서 사쿠라바의 처가 타카다 측에 앙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39] 퀸튼 잭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주최측에서 사쿠라바에게 져줄 경우 원래 파이트머니 1만 달러에 2000달러를 보너스로 더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본인은 거절했고 경기 후 받은 파이트머니는 정확히 1만 달러였다고 한다.[40] 결국 그 후 PRIDE측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미숙을 들어 사죄했다.[41] 단지 이런 식으로 심판이 너무 빨리 말려서 논란이 된 경우는 이 경기 말고도 꽤 있다. 심지어 미사키 카즈오vs멜빈 만호프처럼 심판이 너무 빨리 말리는 바람에 오히려 자국의 간판 스타 선수가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42] 후유증이 의외로 심각해서 이후 연습 중 구토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43] 비슷한 일이 한국의 Spirit MC에서 열린 임재석vs시라이 유야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다. 다만 이 경기에서는 결국 데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임재석이 시라이 유야에게 KO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44] 맥시마의 그 몽골리안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