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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상좌평 사택기루 | 沙宅己婁 | |
<colbgcolor=#00A6A9> 직위 | 상좌평(上佐平) |
주군 | 성왕 |
성씨 | 사택(沙宅) |
이름 | 기루(己婁)[1] |
생몰연도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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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 성왕 시기의 상좌평. 국내 사서 기록에서는 언급이 없고 《일본서기》에서만 확인되는 인물이다.[2]2. 생애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사택기루가 백제의 상좌평으로서 회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543년 12월, 백제 성왕이 군신을 모은 후 왜에서 요청한 가야 3개국(탁기탄, 금관국, 탁순국) 재건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는 상좌평 사택기루, 중좌평 목리마나, 하좌평 목윤귀, 덕솔 비리막고, 덕솔 동성도천, 덕솔 목리미순, 덕솔 국수다, 나솔 연비선나 등 백제의 고위 관리들이 참석하였다. 이 중 사택기루는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으며, 관등 또한 최고위인 상좌평이어서 성왕 때 백제 최고의 귀족임을 알 수 있다.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은 가야 각국의 한기(왕)들을 소집하여 2년 전의 1차 사비회의와 같은 국제 회의를 다시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전개는 사비회의 문서 참고.
3. 기타
- 회의에 같이 참여한 관리인 중좌평 목리마나, 하좌평 목윤귀와 함께 등장하고 있어서, 상좌평 문서에 등재된 다른 상좌평들과 동일한 관직이 아니라 삼좌평제를 운용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무령왕 시기부터 좌평 앞의 수식어가 사라지므로 이 시기에 6좌평 체제에서 상·중·하좌평 체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4. 창작물에서
SBS 드라마 서동요에서 주요인물이다. 류진이 연기했다. 화랑도의 풍월주인 신라의 왕족. 나중에 무서운 집념과 뛰어난 두뇌로 5년만에 공방의 후계자가 된다(...)드라마에서의 내용은 완전히 허구이며, 이 드라마의 인물과 사택기루를 동일인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두 인물의 활동 시대가 다르다. 드라마는 위덕왕 연간에서 무왕 연간까지가 시대적 배경이고 위덕왕 때 젊은 신하로 나오는 사택기루와 달리, 실존 인물 사택기루는 앞 시대인 성왕 때 최고위인 상좌평을 역임한 인물이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제작한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에서 손선근이 연기했다. 여기서는 기록에 충실하게 '상좌평 사택기루'로 손선근이 나레이션을 겸하며 등장한다.
[1] 백제 3대 국왕 기루왕(己婁王) 및 성왕 대의 외교관 기주기루(己州己婁)와 동명이인이다.[2] 일본서기가 임나일본부설 같은 말도 안되는 왜곡이 많다 보니 신뢰가 안 갈 수도 있으나, 1970년대 천관우의 주체교체설(요약하자면 '일본이 했다'는 부분을 '백제/가야가 했다'로 주체를 바꿔서 읽으면 말이 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후부터 관련 연구들이 지속되면서 오늘날에는 분위기가 반전된 감이 있다. 특히 백제사·가야사 연구자라면 국내 문헌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탓에 거의 필수적으로 한번쯤은 보게 되는 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