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2:12:37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함명 Nuestra Señora de la Santísima Trinidad
함종 전열함
제작 아바나 조선소
운용 스페인 해군
모항 카디스 항구
발주 1768년 3월 12일
진수 1769년 3월 3일
침몰 1805년 10월 21일 ~ 22일, 지브롤터 근처 해안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무장
등급 134문 전열함
배수량 4,950톤 또는 4,572톤
자체중량(3층 구조/4층 구조) 2,153톤/2,580톤
길이 61.3미터(201ft)[1]
너비 16.2미터(53ft)[2]
뱃전 높이 10.1m
흘수 8.02미터(26.3ft)
승선수 1,048명 또는 1,115명
무장 초기 무장: 112문 / 개장 후 134문[3]
하선포열갑판: 32파운드 36문
중앙포열갑판: 24파운드 34문
윗선포열갑판: 12파운드 36문
8파운드 18문
24파운드 선회포 10문
선원, 해병대의 머스캣총[4]

1. 개요2. 건조와 개조3. 활동과 증강4. 결전과 최후5. 기타6.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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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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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제국전열함으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Santísima Trinidad)의 정식 함명은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Nuestra Señora de la Santísima Trinidad)"로, 영어로 번역하면 Our Lady of the Holy Trinity(성삼위일체성모 마리아) 정도가 될 것이다.[5]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구가한 후 하락세이던 스페인의 중흥군주 카를로스 3세때 만든 세계최고 수준의 배였지만 그 이후 카를로스 4세 시절의 부실한 해군정책과 부정부패, 그리고 상대방인 영국 해군과의 전력차로 끝내 침몰하고 만 비운의 함이다.

1769년 3월 3일 쿠바 섬에 위치한 아바나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으며, 훗날 미국이 건조한 USS 펜실베이니아(Pensylvania)와 더불어 얼마 안되는 4층 전열함 중 하나이다. 이 초대형 전열함의 함장으로는 돈 발타사르 이달고(Don Baltazar Hidalgo) 제독이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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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발타사르 이달고(Don Baltazar Hidalgo). 초상화 뒤편으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가 보인다.

2. 건조와 개조

당시 스페인에는 거대 전열함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초기 프로젝트에는 돈 호르헤 후안(Don Jorge Juan)이 감독을 맡았고 조선공은 매튜 뮬런(Mattew Mullen)이라는 아일랜드인이었으며, 영국의 설계방식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해 최대한 근접하여 설계를 시작했어도,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18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와 함께 함선 설계는 영국보다 앞선 편이었다. 영국은 해군정책상 물량빨과 과무장 화력빨로 승부를 보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그래서 3층갑판 전열함들도 최하층은 파도에 휩쓸려 사격을 못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영국군은 기본적으로 설계에 여유가 있는 프랑스나 스페인의 배를 보면 나포해 쓰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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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의 최상급 떡갈나무들을 수입하여 제작된 함선은 3마스트에 112문의 함포를 장착시킬 계획으로 착수하여 1770년 조선공 엘 페롤(El Ferrol)이 점검을 마친 후 함포를 탑재했다. 하지만 뒤이은 결함으로 인해 1771년 조타키의 폭과 돛의 길이 등을 포함한 여러곳의 교정을 필요로 했고 결국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는 건조완료된 이후에도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 충분한 추진력을 얻어낼 수 없었고, 돌풍이 불면 위험에 쉽게 빠진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1778년 12인치의 용골이 추가로 설치 되었으며, 선미 갑판을 비롯한 전체의 데크가 낮춤 개조 되었다.

3. 활동과 증강

1772년 지중해지브롤터(Gibraltar) 함대에 소속되어 활동 하였으며, 1795년 카디스(Cádiz)항에서 결함을 최대한 억제시킨후 앞쪽 선수부와 뒤쪽 선미갑판을 이어붙여 4번째 포갑판을 만들었고 이로서 3층 전열함에서 4층 전열함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함포를 134문으로 증강시켰다.(32파운드 36문, 24파운드 34문, 12파운드 36문, 8파운드 18문 그리고 24파운드 선회포 10문) 하지만 결함은 해결되지않은 채 포갑판을 높였기에 결함은 더욱 커졌고 외항항해가 힘들 정도로 항해능력이 충분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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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세인트 빈센트 곶 해전(The Battle of Cape St. Vincent)에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는 영국의 대포 74문 전열함인 캡틴(HMS Captain), 74문 전열함 컬로든(HMS Culloden)과 교전을 벌였으나[6] 곧이어 74문 전열함 블렌하임(HMS Blenheim), 74문 전열함 오리온(HMS Orion), 74문 전열함 이리시스터블(HMS Irresistible), 74문 전열함 엑설런트(HMS Excellent)로 구성된 4척의 영국 전열함의 지원으로 집중공격을 받아 거의 모든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나포되기 일보직전까지 몰렸다가 아군 전열함 두척 112문 1급 전열함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Principe De Asturias)와 74문급 3급 전열함 펠라요(Pelayo)의 구원으로 간신히 탈출할수 있었다. 참고로 112문 전열함인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는 트라팔기 해전당시 스페인 함대 총사령관 그라비나 제독의 기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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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모항으로 귀항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는 선체를 포함한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으나 여전히 자체결함은 해결되지 못했다.

4. 결전과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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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우리아르테 이 보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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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부터 1805년까지 영국 수송선 51척을 나포한 공적을 쌓았으며, 1805년 10월 21일에는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우리아르테 이 보르하(Fransisco Javier de Uriarte y Borja, 1753 10.5~1842 11.29) 함장의 지휘하에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의 일원으로서 트라팔가르 해전에 참전하였다. 전투 초반 돌격하기 시작한 영국측 제 1전대 선두에 위치한 HMS 빅토리에 유효한 명중탄을 만들었으나 약한 바람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했고 목표가 되기 쉬운 큰 덩치로 인해 곧 영국측의 함선들과 난투를 벌였다. 하지만 영국측의 98문의 전열함 넵튠(HMS Neptune), 74문의 전열함 리바이어던(HMS Leviathan), 컨커러(HMS Conqueror), 아프리카(HMS Africa), 98문의 전열함 프린스(HMS Prince)에게 집중 공격을 당해 3개 마스트가 모두 부러져 부동상태에 빠지게된다. 몇 시간 후 서로 맞닿는 영국 전열함으로부터 근접공격이 시작되었고, 이 전투로 인해 선상에 있던 승조원 338명이 중상을 입고, 312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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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투력을 상실한 해전 후반무렵에는 영국해군에 의해 나포되었고, 해전이 종결되고 난후 움직이지 못하는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영국 프리깃함 나이아스(HMS Naide)와 포이베(HMS Phoebe)가 밧줄을 묶어 끌고 이동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10월 22일 항해도중 폭풍을 만나 치명적 손상을 이겨내지 못한채 결국 35년 동안의 함생을 마치고 지브롤터 근방에서 해안가로 떠밀려서 좌초된후 침몰하였다. 당시 나포된 함에 있던 영국 해군 승조원들은 근처 자국함선으로 피신했지만 에스파냐 해군 포로들은 대부분은 배에서 전사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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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에서 축소 복원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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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시마 트리니다드의 선수상을 재현한 것.이다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위일체상 3개라고 기록되었으며, 공통적으로 6m에 식민지에서 약탈한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원본은 으로 만들었다.

역사상 최강의 화력을 갖춘 전열함이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함포를 탑재해 외양항해 능력이 부족했고, 운용 당사자인 스페인군의 능력이 부족해 제대로 운용될 수 없었다.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스페인 해군이 이런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은 당시 스페인의 재정부족과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일반 수병들의 하루 배급량은 베이컨 180g, 비스킷 520g, 완두콩 및 쌀 각각 30g, 포도주 0.7L, 물 2L다. 그나마도 해군의 부정부패로 이 마저도 줄기 일쑤여서 실제로는 기아를 겨우 면할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의 수병들도 징집한 양치기와 거지들이었는데 이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선원 자체가 징집당한 사람들이 거의 다수다. 이것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지휘하는 사관생도의 수업과정 이었는데, 4학년이 되어서야 삭구이문[7]을 4시간씩 실시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댄스 수업은 1학년부터 1시간씩 꾸준히 실시했다고 한다.

넬슨제독이 나포해서 지휘하고 싶어하던 함선이었다. 아무래도 세계 최강의 화력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으니 탐낼 만하다.

루츠 붕크가 지은 <<역사와 배>>에서 소개되었다. 배의 제원 및 상세 설명도 이 책에서 참고 했다.

참고로 최강의 화력을 갖춘 전열함이긴 하지만 최대의 전열함은 아니다. 역사상 최대의 전열함은 Jacques-Noël_Sané[8]이 설계한 프랑스의 오세앙급 전열함으로, 나일 해전에서 화재로 침몰한 프랑스군의 120문 1급 전열함 오리앙 호가 바로 이 오세앙급이다. 과무장으로 원항항해능력이 떨어지는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와는 달리 뛰어난 항해성을 갖췄다고 한다.

참고로 역대 최대의 전열함 오리앙은 넬슨이 나일 해전(아부키르 만 해전)에서 교전중에 탄약고의 폭발로 '침몰했다. 범선 시대에 유폭으로 인한 굉침은 드물고 그마저도 큰 배일수록 힘들다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불쌍하다. 물론 넬슨 제독이 이걸 노린 건 아니었고 침몰 원인은 정박중에 유성페인트를 칠하다가 교전이 벌어졌고 이때 영국 전열함들의 발포로 불이 유성 페인트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하고 그 불이 탄약고로 번진게 폭발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100문 이상의 1급 전열함은 스펙상으로는 뛰어나 보일 지 몰라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고 영국 1급 전열함 중에 트라팔가 해전에 참전했던 100문급 전열함 로얄 소머린호는 느려터진 속력 때문에 서부 짐마차라고 불릴 정도였다. 참고로 부사령관 콜링우드 제독의 탑승함이었다.

실제로 전열함 중 가장 활약한 것은 적절한 크기를 가진 74문급 전열함들이었다. 물론 정면 대결에서는 포문 수 많은 거함이 우세했다. 미국의 Great Frigate들이 프리깃치고는 뛰어난 성능을 가졌지만 대형 전열함에 대적하기는 힘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목범선 키트로도 판매 되고 있다. [9]

무선모형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

군함/배수량, 크기, 무기별 목록/1500년~1860년 이전

본 항목에 나와있는 배와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미드 블랙 세일즈에서 등장하는 1715년 난파됐던 스페인의 거대 보물선 L'Urca De Lima호는 실존했던 배이며 본명은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로 같은 이름이었다.

6. 매체에서의 등장



[1] 일부기록은 1층 갑판길이 79m,총길이 약 118m.[2] 일부 기록은 20.8m[3] 개장후 무장은 134문에서 140문으로 매우 다양함.[4] 일부 기록에서는 36파운드 32문, 24파운드 34문, 18파운드 18문, 12파운드 36문, 24파운드 선회포 14문, 구포 6문.[5] Santísima Trinidad는 가장 성스러운 삼위일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이므로, 지역 이름이나 성당 심지어 사람이름(ex: 파블로 피카소의 중간 이름)으로도 쓰이며, 비슷한 이름의 배도 있다.[6] 캡틴호는 당시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이 함장이었다.[7]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대포를 밀어 포신을 밖으로 빼내고 다시 안으로 집어 넣는 법.[8] 주력함으로는 역사상 최대 건조수를 자랑하는 걸작 테메레르급 전열함의 설계자. 범선 시대 최고의 설계자 중 한명이었다.[9]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개장전후 모습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