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7 10:22:45

서창(명나라)


1. 개요2. 역사

1. 개요

西廠

중국 명나라 때의 첩보기관으로 동창이라는 첩보기관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력이다. 다만, 환관 왕직이 사조직처럼 부리다 황제의 화를 사 폐지되었다.

2. 역사

성화 12년 7월 이자룡이라는 요술을 부리는 도사가 북경에서 체포된 일이 있었다. 그는 간교한 술수로 혹세무민하면서 자신이 진명천자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석포, 정충 등 환관들과 결탁하여 황궁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만세산에 올라가 황궁 내부를 정탐했다. 정변을 일으켜 황위 찬탈을 시도하다 그만 금의위에 잡혔다. 만세산은 황궁과 이어져 있는 명나라의 성산이다. 이자룡이 그처럼 삼엄한 경비를 뚫고 황궁을 제집 드나들 듯 한 사건은 헌종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어명은 받은 왕직은 영제궁 앞에 있는 석회 공장에서 이자룡과 그의 일당을 잔혹하게 고문했다. 그들은 모조리 대역죄로 처형당했다. 헌종은 또 이런 모반이 일어날까 두려위하였다. 결국 성화 13년 1월 헌종은 또 동창과 비견되는 서집사창이라는 이라는 새로운 정보기관을 만들었다. 이것을 약자로 서창이라고 칭한다.

헌종이 가장 총애하는 왕직이 서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왕직은 변장술에 능해 도성의 안팎에서 온갖 가담항어를 수집하고 다닐 때 누구도 그의 신분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가 수집한 정보는 헌종에게 보고되어 황제를 비난하는 자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는 즉시 체포되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고관대작의 전횡도 중요한 감찰 대상이었다. 일단 걸러들면 패가망신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창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서창의 비밀 조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그 인원은 동창을 능가했다. 동창의 우두머리 환관 상명은 왕직에게 복종하고 그의 지시를 받아야 할 정도 였다.

이를 악용해 왕직은 헌종의 윤허를 받지않고 중앙관리나 지방관리를 닥치는대로 구금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전횡을 일삼았다. 조정중신들이 강하게 반발하여 대학사 상로가 헌종에게 상소하여 왕직을 탄핵했는데 왕직이 3품이상의 경관의 가산을 멋대로 수색하고 압수한 일에서 비롯되었지만 일반백성들도 왕직과 서창의 전횡에 편안한 삶을 누릴수 없었다. 하지만 헌종은 여전히 왕직을 두둔했을 뿐만 아니라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직에게 몇차례 능욕을 당했던 병부상서 항충도 헌종에게 왕직의 죄상을 밝히고 서창의 폐쇄를 강하게 주장했다. 상로와 항충의 요구에 동조하는 신하들이 많아지자 헌종은 성화 13년 5월에 부득이하게 서창을 폐쇄하고 왕직을 어마감으로 돌려보냈다. 조야의 사대부들은 기뻐했지만 잠시뿐이었고 항충과 상로가 왕직 일당의 음모에 걸려들어 파면된 후인 같은 해 6월에 서창이 부활하고 왕직의 권세가 다시 하늘을 찔렸다.

성화 17년 헌종은 왕직에게 경군을 거느리고 선부로 가서 달단의 침략을 물리치게 했다. 왕직이 달단을 격퇴한 후 북경으로 회군을 요청했지만 헌종은 윤허하지 않고 그를 대동으로 보내 변방을 지키게 했다. 이때부터 왕직은 헌종의 총애를 잃기 시작했다. 왕직이 변방의 한직에 밀려나 있을 때 대신들은 다시 왕직을 탄핵하고 서창을 폐쇄하라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렸다. 왕직은 이미 헌종의 마음속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던지라 성화 18년 결국 서창은 폐쇄되고 왕직은 남경의 어마감으로 쫒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