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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세디(Ghanaian cedi)
1. 개요
가나의 통화. ISO 4217 코드는 GHS(2007년 화폐 단위 변경 전에는 GHC)이고, 기호는 세디 기호 ₵다. 센트 기호(¢)와 헷갈리지 않도록 GH₵ 또는 GH¢로 쓰는 경우가 많다. 보조 단위는 페세와(pesewa)로, 1세디는 100페세와다. 가나은행이 발행한다.'세디'는 아칸어로 개오지 조개껍데기를 뜻한다. 옛날 이 지역에서는 개오지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썼고, 1901년까지도 주화, 금과 함께 쓰였다.
1965년 처음 도입된 이래 두 차례 액면 단위가 바뀌었다. 1965~1967년의 첫 세디, 1967~2007년의 (신)세디, 2007년부터의 지금의 가나 세디(GHS)로 나뉜다.
2026년 9월 기준 은행 간 시장 환율은 1달러당 약 11.55세디이고, 같은 달 물가 상승률은 5.2%다.
2. 1기 세디 (1965~1967)
가나는 독립 이듬해인 1958년 7월 14일 가나은행이 가나 파운드를 발행하면서 독자 통화를 갖게 되었다. 이때까지 쓰던 영국령 서아프리카 파운드와 같은 가치였다.[1]1965년 7월 19일 가나는 12진법의 파운드 대신 10진법의 세디를 도입했다. 1세디는 8실링 4펜스로, 2.4세디가 1파운드였고, 1페세와는 1펜스와 같았다. 지폐에는 콰메 은크루마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갔다.
3. 2기 세디 (1967~2007, GHC)
3.1. 신세디
1966년 2월 쿠데타로 은크루마를 몰아낸 국가해방위원회(NLC)는 이듬해 2월 은크루마의 초상이 없는 '신세디'(New cedi, N₵)를 내놓았다.[2] 1.2세디가 1신세디였고, 2신세디가 1파운드가 되었다. 1967년에는 신세디가 미국 달러에 대해 30% 평가 절하되었다. 1973년 3월부터 이름은 다시 그냥 '세디'가 되었다.| 1967 ~ 1974 | 앞면 | 뒷면 | |
| | ₵1 | 카카오 빈 | 방패와 검 |
| | ₵5 | 새 모양 나무조각 | 거북이, 물고기모양 나무조각 |
| | ₵10 | 칼과 투구의 장식 | 조각상들 |
3.2. 평가 절하와 1979년 화폐 교환
1971년 12월 부시아 정부가 국제 수지 위기를 이유로 세디를 44% 평가 절하하자 국민의 반발이 거셌고, 이는 이듬해 1월 어챔퐁의 쿠데타로 이어진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3]1970년대 후반 물가가 치솟고 암시장과 사재기가 퍼지자, 1979년 3월 9일 정부는 기존 지폐를 새 지폐로 바꾸게 했다. 5,000세디까지는 30%를 깎아 옛 지폐 10세디를 새 지폐 7세디로 바꾸어 주었고, 그보다 많은 금액은 50%를 깎았다. 동전과 은행 예금은 대상이 아니었다. 암시장과 사재기로 쌓인 현금을 거두어들이려는 조치였지만, 화폐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 1975 ~ 1979 | 앞면 | 뒷면 | |
| | ₵1 | 소녀 | 카카오 농부 |
| | ₵2 | 농부 | 어부들 |
| | ₵5 | 큰 모자를 쓴 여성 | 라라방가 모스크 |
| | ₵10 | 파이프 흡연자 | 아코솜보 댐 |
3.3. 1980년대 초의 위기
1979년 새로 나온 지폐 가운데 최고액권이던 50세디 지폐는 1982년 임시국방위원회(PNDC) 정부가 다시 폐지했다. 정부는 공식 환율을 1달러당 약 2.8세디로 묶어 두고 물가를 통제했지만, 암시장이 성행해 1983년 무렵 암시장 환율은 1달러당 약 120세디로 공식 환율의 40배를 넘었다.| 1980 ~ 1984 | 앞면 | 뒷면 | |
| | ₵1 | 남성 | 바구니 뜨는 사람들 |
| | ₵2 | 책을 머리에 인 여학생 | 밭농사 풍경 |
| | ₵5 | 노인 남성 | 통나무 톱질하는 나무꾼 |
| | ₵10 | 젊은 여성 | 어부들 |
| | ₵20 | 광부 | 베틀로 직물(켄테[4], Kente)짜는 사람 |
| | ₵50 | 노인 남성 | 카카오 농부들 |
3.4. 경제 회복 계획과 환율 자유화
1983년 임시국방위원회 정부는 IMF와 세계은행의 지원 아래 경제 회복 계획(ERP)을 시작하면서 세디를 여러 차례 크게 평가 절하했다. 1986년에는 외환 경매제를, 1988년에는 민간 외환 거래소를 도입해 환율을 차츰 시장에 맡겼고, 1990년 무렵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의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5] 그 대가로 세디 가치는 계속 떨어져, 2000년대 중반에는 1달러당 약 9,000세디에 이르렀다.1972년부터 1994년 사이에 지폐 7종과 동전 8종이 새로 나왔고, 2002년에는 1만 세디와 2만 세디 지폐가 추가되었다.
| 1981 ~ 2007 | 앞면 | 뒷면 | |
| | ₵10 | 라비, 오투, 크와시 | 집회당으로 모이는 주민들 |
| | ₵20 | 야 아산테와 | 공화국 혁명운동 |
| | ₵50 | 농촌 청년 | 농사짓는 풍경 |
| | ₵100 | 중년 여성 | 트럭에 농산물 싣는 사람들 |
| | ₵200 | 노인 남성 | 선생과 아이들 |
| | ₵500 | 기예 니야메[6]와 블랙스타 | 카카오 나무, 카카오 열매, 광부 |
| | ₵1,000 | 다이아몬드 | 카카오 농사꾼 |
| | ₵2,000 | 교각 | 뱃일꾼들 |
| | ₵5,000 | 자유 가나의 문장 | 가나 지도, 항구와 배 |
| | ₵10,000 | 가나 6대 인물[7] | 독립문 |
| | ₵20,000 | 에프라임 아무 | 국립 극장 |
- 여기까지 통화는 2008년 1월부터 사용할 수 없다. (2007년 7월부터 6개월간 교체)
4. 3기 가나 세디 (2007~, GHS)
액면이 지나치게 커져 회계와 통계 처리가 어려워지자, 2007년 7월 1만 세디를 1가나 세디(GH₵1)로 바꾸는 화폐 단위 변경(디노미네이션)이 이루어졌다. 옛 세디는 2007년 말까지 함께 쓰였다.2022년에는 국제 금리 상승과 재정 위기가 겹쳐 세디 가치가 크게 떨어졌고, 그해 12월 물가 상승률은 54.1%로 22년 만에 가장 높았다. 같은 달 가나는 대외 채무 상환을 중단하고 IMF의 구제 금융을 받으며 채무 재조정에 들어갔다. 이후 물가가 안정되면서 세디는 2025년 들어 9월까지 달러에 대해 약 18% 절상되었고, 물가 상승률도 2026년 한 자릿수로 내려왔다.
4.1. 지폐
| 앞면 | 뒷면 | ||
| | |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 아코솜보 댐 |
| | | 콰메 은크루마 | 국회의사당 |
| | ₵5 |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 가나 대학교 |
| | ₵10 | 가나은행 | |
| | ₵20 | 대법원 | |
| | ₵50 | 오수 성 | |
| | ₵100 | 국회 본회의장 | |
| | ₵200 | 골든 주빌리 하우스 | |
- 1세디, 5세디, 10세디, 20세디, 50세디 지폐는 2007년, 2세디 지폐는 2010년, 100세디와 200세디 지폐는 2019년 12월 나왔다.
- 2017년에는 독립 60주년을 맞아 앞면에 교육자 제임스 에먼 퀘기르 애그리, 뒷면에 가나의 해상 유전을 담은 새 5세디 지폐가 나왔다.
- 가나은행은 인쇄 비용 부담과 빠른 훼손을 이유로 2021년 9월부터 1세디와 2세디 지폐를 거두어들이고 같은 액면의 동전으로 대체하고 있다.
4.2. 주화
1, 5, 10, 20, 50페세와와 1, 2세디 동전이 있다. 2세디 동전은 2019년 11월 나왔다. 50페세와와 1, 2세디 동전이 주로 쓰이고, 1~20페세와 동전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