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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오 아구에로/클럽 경력/아틀레티코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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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오 아구에로
2006-2011
파일:68cac0d5744a5f37c87d1d0f506a95d3.jpg
▲ 2006년 계약 당시
<colbgcolor=#2c325f> 소속팀 <colbgcolor=#fff,#191919>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EA SPORTS)
등번호 10
기록
파일:라리가 산탄데르 은행 로고(가로형/화이트).svg
175경기
74득점 29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17경기
8득점 3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20경기
11득점 7도움
파일:코파 델 레이 로고.svg
20경기
7득점 5도움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1경기
1득점 1도움
파일:UEFA 인터토토컵 로고.svg
1경기
합산 성적
234경기
101득점 45도움

1. 개요2. 이적3. 2006-07 시즌4. 2007-08 시즌5. 2008-09 시즌6. 2009-10 시즌7. 2010-11 시즌
7.1. 이적 사가

[clearfix]

1. 개요

세르히오 아구에로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2006년, 아구에로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2000만 유로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오늘날의 월드클래스급 공격수로 비상하게 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3. 2006-07 시즌

파일:gettyimages-839506112-612x612.jpg
1R 라싱 산탄데르전 교체로 들어와서 아틀레티코 첫 데뷔전을 치렀다. 그 후 바로 3R 아틀레틱 빌바오전에서 한 골을 기록하며 데뷔골을 바로 기록했다. 2006년 10월 14일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전 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도 이끌었다. 첫 시즌에는 38경기 6골이라는 저조한 스탯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첫 시즌임을 감안해야하고 번뜩이는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시즌을 마친 뒤 2007년 U-20 월드컵 득점왕+MVP 및 골든보이를 수상하며 다음 시즌을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2006-07 시즌: 42경기(선발 27경기) 7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8 25 13 6 0
코파 델 레이 4 2 2 1 0
합계 42 27 15 7 0

4. 2007-08 시즌

파일:gettyimages-77589858-612x612.jpg
팀의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였던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FC로 이적함에 따라 아구에로는 두 번째 시즌부터 주전 공격수라 자리를 차지했다.
파일:Agüero Barcelona Goal(07-08).gif파일:Aguero ATgoal.gif
리그 37경기 19골로 리그 득점 순위 3위에 올랐고, 특히 2008년 3월 후반기에 치러진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여 맹활약을 해서 팀을 승리로 이끈 공로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훌륭한 시즌활약으로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돈 발롱 라리가 외국인 MVP를 수상했기도 하고 2년차 만에 팀의 핵심 선수가 되고 아구에로에게는 아주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이 당시 아구에로의 퍼포먼스는 상당해서,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이 때가 개인적인 기량 면에서는 정점이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2007-08 시즌: 50경기(선발 45경기) 27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7 35 2 19 8
UEFA컵 8 6 2 6 3
코파 델 레이 4 3 1 2 0
인터토토컵 1 1 0 0 0
합계 50 45 5 27 11

5. 2008-09 시즌

파일:gettyimages-82574211-612x612.jpg
지난 시즌 영입되어 좋은 합을 맞춰왔던 디에고 포를란과의 호흡이 더욱 더 농익어 리그 수위급 공격 듀오로 포를란, 아구에로 듀오의 공격라인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아구에로는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를 경험한 시즌이었다. 아구에로는 PSV 아인트호벤 전 첫 챔피언스리그 골을 기록했고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를 했다. 포를란이 팀 적응을 끝마치고 미친 득점력 행보를 보이자 아구에로는 조금 더 포를란을 돕는 형태의 스타일로 경기를 치렀고 그 결과 포를란은 피치치를 차지했다. 팀은 리그 4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도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아구에로는 리그 37경기 17골 12도움을 기록했다.

2008-09 시즌: 47경기(선발 42경기) 21골 1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7 34 3 17 12
챔피언스 리그 9 7 2 4 3
코파 델 레이 1 1 0 0 0
합계 47 42 5 21 15

6. 2009-10 시즌

파일:gettyimages-99259515-612x612.jpg
09-10 시즌이 아구에로에 아틀레티코 커리어에 있어서 팀 커리어는 가장 좋은 시즌이었는데 챔피언스 리그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첼시와의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 투입되어 36분을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2골을 기록하며 2대2 무승부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자 첼시는 아구에로와의 경기에서 감명을 받고 아구에로의 이적을 추진했을 정도였다. 비록 아틀레티코는 조별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유로파 리그로 떨어졌지만 유로파 리그에서도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결승에서 아구에로는 2도움을 기록하여 2대1 승리로 팀의 우승을 견인했고 첫 트로피를 들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코파 델 레이도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지만 세비야에게 2대0으로 패배했다.

2009-10 시즌: 54경기(선발 45경기) 19골 1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1 24 7 12 5
챔피언스 리그 8 7 1 4 0
유로파 리그 8 8 0 2 3
코파 델 레이 7 6 1 1 4
합계 54 45 9 19 12

7. 2010-11 시즌

파일:727525-21257308-2560-1440.jpg
2010-11 시즌 초반의 아구에로-포를란-시망 삼각편대는 여타 빅클럽의 공격진 못지 않은 파괴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망이 이적하고 팀은 재정 붕괴 직전에 몰리며 팀 분위기가 굉장히 나빠져서 리그 후반부에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결국 리그 20골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를 제외한 라리가 인간계 최고의 골잡이가 되었다.

아직 젊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라서 계속해서 이적 루머가 돌았으며, 첼시, 바르셀로나 등 클럽의 관심도 고사하고 재계약을 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남을 의사를 내비쳤다.

2010-11 시즌: 41경기(선발 31경기) 27골 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2 31 1 20 4
유로파 리그 4 3 1 3 1
코파 델 레이 4 4 0 3 1
슈퍼컵 1 1 0 1 1
합계 41 39 2 27 7

7.1. 이적 사가

2010-11 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 다음 날 갑작스레 자신의 홈페이지에 아틀레티코를 떠나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등의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클럽 수뇌부 심지어 감독과 스탭 코치들도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재계약을 맺은지 6개월도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발표 이후 아구에로는 코파 아메리카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하며 조국으로 떠나 버린다. 아구에로는 이전부터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이미 다른 클럽으로부터 접촉이 있었는지 혹은 더 큰 계약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클럽이 잔류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조차 아구에로는 말하지 않고 그냥 떠날 것이라고만 통보했다. 아구에로에게는 4,500만 유로의 바이아웃이 있었지만 이미 그가 떠날 것이라고 못 박아놓은 상황에서 다른 구단들은 가격 협상을 안할리 없었다. 당연히 협상카드를 쥐고 있는 구매 구단들이 계약을 질질 끌었고 아틀레티코 입장에서는 떠나는지 안떠나는지 아구에로에게 명확하게 확답도 못 들은 상황에서 난처한 입장이 된 것이다.[1]
파일:Muerte Kun traidor.jpg

여름 이적시장 내내 아구에로는 상황 설명을 거부했고 이어 ESPN을 통해 "아틀레티코로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팬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결국 아구에로의 바람대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그를 사랑하던 팬들의 마음은 돌아섰고 2011-12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비센테 칼데론에 "배신자 쿤, 죽어라.(Muerte Kun traidor)"라는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아틀레티코의 엔리케 세레소 회장 또한 "아구에로가 왜 우리에게 이렇게 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6년이 지난 2017년에도 스페인 라디오 '코페'를 통해 "아틀레티코를 안 좋게 떠난 선수는 아구에로가 유일하다. 그는 바보(tonto)였다. 아구에로는 영웅처럼 아틀레티코로 와서 뒷문으로 걸어나갔다"고 말하며 그에게 감정이 남아있음을 표출했다.

그렇게 앙투안 그리즈만과 마찬가지로 아구에로 또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에서 증오와 야유를 받는 선수로 전락했다. 그나마도 그리즈만은 다시 돌아와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다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아구에로는 아예 바르셀로나로 다시 이적하여 아틀레티코 팬들에게 여전히 미움 받고 있다.


[1] 이때 당시 아틀레티코는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구에로가 팔리지 않으면 대체자도 사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아구에로를 판 뒤 대체 스트라이커로 라다멜 팔카오를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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