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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천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4년 8월 23일[1]
전라도 낙안군 고하면 벌교리
(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부용마을 650번지)
사망 1969년 2월 10일 (향년 74세)
본관 진주 소씨[2]
이명 소몽열(蘇夢悅)
춘화(春化)
상훈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 생애

소휘천은 1880년경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소준술(蘇準述)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2월 안규홍이 보성 동소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는 여기에 가담해 유격장(遊擊將) 겸 한후장(捍後將)에 임명되어 유격전의 선봉에 섰다. 이후 안규홍의 의병대를 종군한 그는 중군장으로서 1908년 2월 파청(巴靑) 전투에서 승리했고, 일본군 수호(水戶), 평정(平井)의 부대와 진산(眞山)에서 전투를 벌여 적을 맹렬히 공격한 뒤 전멸상태로 만들어 패배시켰으며, 이때 많은 무기류와 기밀문서 다수를 노획하였다.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고 무기류와 기밀문서 다수를 노획했다. 그 외에도 원봉산, 흥양, 순천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차례 교전했다. 일본군 수비대 병사를 습격해 일본군 50여 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군수품을 노획하였다.

그러나 1909년경 묵석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선두에서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3]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소휘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진주소씨족보에는 1890년 9월 5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2] 능성공파(綾城公派) 42세 휘(輝) 항렬.[3] 국가보훈처 공훈록에는 소휘천이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 때까지 구국의 대의를 지니고 살았고 1969년 2월 10일에 사망했다고 기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