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구리 후미에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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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스구리 후미에([ruby(村主, ruby=すぐり)] [ruby(章枝, ruby=ふみえ)], Fumie Suguri)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80년 12월 31일 ([age(1981-12-29)]세) |
치바현 치바시[1] | |
학력 | 와세다대학교 사회과학부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신체 | 157cm |
은퇴 | 2014년 11월 13일 |
링크 |
1. 개요2. 선수 경력
2.1. 주니어 시절2.2. 1995-96 시즌2.3. 1996-97 시즌2.4. 1997-98 시즌2.5. 1998-99 시즌2.6. 1999-00 시즌2.7. 2000-01 시즌2.8. 2001-02 시즌2.9. 2002-03 시즌2.10. 2003-04 시즌2.11. 2004-05 시즌2.12. 2005-06 시즌2.13. 2006-07 시즌2.14. 2007-08 시즌2.15. 2008-09 시즌2.16. 2009-10 시즌2.17. 2010-11 시즌2.18. 2011-12 시즌2.19. 2012-13 시즌2.20. 2013-14 시즌2.21. 2014-15 시즌
3. ISU 공인 최고점수4. 수상 기록5. 기타[clearfix]
1. 개요
일본의 前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3번의 사대륙선수권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은 모두 20대 때의 기록이다.2. 선수 경력
2.1. 주니어 시절
이전에는 정해진 연령 제한이 없었다. 1992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19위, 1993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9위, 1994 가데나 스프링 트로피 주니어 부문에서 7위를 했다. 1994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10위를 했다.2.2. 1995-96 시즌
1995 블루 스워드 주니어 부문에서 3위를 했다. 1995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2위, 199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4위에 올랐다.이후 시니어로 나선 1995 전일본선수권에서 4위, 1996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5위를 기록했다.
2.3. 1996-97 시즌
1996 네벨혼 트로피에서 4위를 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이 시즌에도 주니어와 시니어를 병행하여 1996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2위, 1997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작년과 동일한 4위를 기록했다.1996 NHK 트로피에 출전하며 시니어 그랑프리[2] 데뷔를 했다. 이 대회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96 컵 오브 러시아에서는 7위를 기록했다. 1996 전일본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7 세계선수권에서는 18위를 기록했다.
2.4. 1997-98 시즌
1997 NHK 트로피에서 5위를 기록했다. 1997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아라카와 시즈카에 이어 2위를 했고 동계올림픽 대표로는 선발되지 못했다.2.5. 1998-99 시즌
1998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2위에 오르며 개인 첫 그랑프리 메달을 얻었다. 1998 NHK 트로피에서는 3위를 하며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1998 전일본선수권에서 또 아라카와 시즈카에 이어 2위, 1999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도 시즈카에 이은 동메달을 땄다. 그래도 이번 시즌 처음으로 열린 1999 사대륙선수권에서는 시즈카에 앞선 5위를 기록하며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되었다.
세계선수권에 앞서 열린 1998-99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1999 세계선수권에서는 20위를 기록했다.
2.6. 1999-00 시즌
1999 트로피 랄리크에서 7위, 1999 NHK 트로피에서 8위를 기록했다. 1999 전일본선수권에서 쇼트는 1위에 올랐으나 프리에서 4위로 쳐지는 바람에 최종 3위를 기록했다. 2000 사대륙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2.7. 2000-01 시즌
2000 스케이트 캐나다 | 2001 사대륙선수권 |
2.8. 2001-02 시즌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시즌으로, 2001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4위, 2001 NHK 트로피에서 7위를 기록했다.2001 전일본선수권 | 2002 세계선수권 |
2.9. 2002-03 시즌
2002 스케이트 캐나다 | 2002 전일본선수권 | 2003 세계선수권 |
2002 전일본선수권에서는 통산 4번째 우승이자 3연패를 달성했다.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2003 사대륙선수권에서는 개인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2-03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6위를 기록했고, 2003 세계선수권에서는 작년과 동일하게 3위에 올랐다.
2.10. 2003-04 시즌
2003 컵 오브 차이나 | 2003 NHK 트로피 |
2003-04 그랑프리 파이널 | 2003 전일본선수권 |
2.11. 2004-05 시즌
2004 스케이트 캐나다와 2004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모두 4위를 기록했다.2004 전일본선수권 | 2005 사대륙선수권 |
2.12. 2005-06 시즌
2.12.1. 그랑프리 시리즈~전일본선수권
2005 NHK 트로피 | 2005 전일본선수권 |
2.12.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최악의 빙질로 말이 많았던 대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리 경기에서 넘어지지 않고, 더블링 1번의 준클린하는 훌륭한 경기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2번이나 넘어진 사샤 코헨과 1번 넘어진 이리나 슬루츠카야에게 밀려서 프리 순위 4위를 기록했는데, 쇼트 점수 차이와 비점프 요소의 레벨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구리 후미에를 비롯한 프리 2위 사샤 코헨, 3위 이리나 슬루츠카야, 5위 키미 마이즈너 역시 비점프 레벨이 2~3이였다. 반면 금메달을 획득한 아라카와 시즈카는 유일하게 비점프에서 스텝 레벨3, 스핀과 스파이럴 레벨 4를 받았다. 그러므로 이 점이 승부의 갈림점이었던 것이다. 이 결과를 본 선수들이 이후 비점프 레벨을 신경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많은 팬들은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구채점제였다면, 스구리 후미에가 은메달을 땄을거라고 추측하기도 했다.[3]
결국 아쉽게도 2번 출전한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본인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올림픽에 미련이 남아서 은퇴를 못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 후미에의 나이는 만 25세였다. 많은 사람들은 스구리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은퇴할 거라고 예상하였으나, 본인은 현역 유지를 희망하였다.
2.12.3. 2006 세계선수권
2.13. 2006-07 시즌
2006 스케이트 캐나다 | 2006 NHK 트로피 |
2.14. 2007-08 시즌
2007 컵 오브 차이나에서 4위, 2007 컵 오브 러시아에서 5위를 기록했다. 2007 전일본선수권에서 4위, 2008 사대륙선수권에서 10위를 기록했다.2.15. 2008-09 시즌
2008 스케이트 캐나다 | 2008 전일본선수권 |
2.16. 2009-10 시즌
2009 핀란디아 트로피에서 7위를 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2009 컵 오브 차이나에서 7위, 2009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9 전일본선수권에서 7위를 하여, 동계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면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원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후원사를 구하지 못해서 자비로 스케이트를 탔으나, 아버지도 정년퇴직을 하여 자금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였다. 결국 Sunny Side Up 스포츠 마케팅 부서에 정규 직원으로 입사하고 의학 회사 요신도에서 후원을 받아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2.17. 2010-11 시즌
2010 스케이트 캐나다와 2010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 초청되어 각각 9위와 8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 이후로는 그랑프리 시리즈에 초청받지 못했고[4], 국내대회에만 출전했다.2011년 3월, 스구리는 2011-12 시즌에도 대회에 참가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2014년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2.18. 2011-12 시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량은 하락했고, 심지어 지역예선에서도 탈락하는 신세로 전락하여 전일본선수권 출전도 불가능해졌다.[5]2.19. 2012-13 시즌
발목 부상을 안고 출전한 2012 전일본선수권에서는 12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의사를 밝혔다.2.20. 2013-14 시즌
하지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대표를 뽑는 2013 전일본선수권을 앞두고 열린 지역예선에서도 탈락하여, 올림픽 출전 자체가 물거품이 되었다.[6]2.21. 2014-15 시즌
이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한 후 진짜로 은퇴했으며, 2016년 처음으로 성인 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했다.3.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e9e2da><colcolor=#000000> ISU 공인 최고점수 | |
쇼트 | 62.12(2006 세계선수권) |
프리 | 120.06(2004-05 그랑프리 파이널) |
총점 | 182.08(2004-05 그랑프리 파이널) |
4. 수상 기록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2006 캘거리 | 여자 싱글 |
동메달 | 2002 나가노 | 여자 싱글 |
동메달 | 2003 워싱턴 D.C. | 여자 싱글 |
사대륙선수권 | ||
금메달 | 2001 솔트레이크시티 | 여자 싱글 |
금메달 | 2003 베이징 | 여자 싱글 |
금메달 | 2005 강릉 | 여자 싱글 |
그랑프리 파이널 | ||
금메달 | 2003-04 콜로라도 스프링스 | 여자 싱글 |
아시안 게임 | ||
은메달 | 2003 아오모리 | 여자 싱글 |
은메달 | 2007 창춘 | 여자 싱글 |
동메달 | 1996 하얼빈 | 여자 싱글 |
동메달 | 1999 강원 | 여자 싱글 |
5. 기타
- 자국 내에서는 아라카와 시즈카와 오랜 라이벌 관계였고[7], 전일본선수권에서도 무려 5번이나 우승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구채점제부터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한 덕분에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선수이지만, 웜업에서의 노골적인 방해 공작으로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하지만 커리어만 보면 일본 여자 싱글 선수들 중 상위권 안에 속한다.
- 현역 시절 윔업 방해건으로 악명이 높았다. 2009-10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대회에서 김연아한테 윔업 방해를 시도하였으며, 심지어 자국 선수들한테도 윔업 방해를 하였다. 대표적으로 2008 전일본선수권에서 안도 미키를 들이받은 직후 안도가 충격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8]
-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피겨계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생활고로 인해 누드 화보집까지 발간하였다. 그래서 일본 팬들은 "아라카와 시즈카처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은퇴했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올림픽 출전에 미련을 갖고 계속 현역 생활을 유지했으나, 기량이 떨어지는 모습만 보이고 결국 화려한 커리어마저 다 깎아먹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1] 유년 시절 요코하마시에서 성장했다.[2] 당시 명칭은 챔피언 시리즈였다.[3] 구체점제에서는 넘어지지 않는게 제일 중요했다.[4] 국제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했다.[5] 전일본선수권 참가자격 중에서 지역예선 순위권 안에 들면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단 연맹에서 지목한 특별강화선수 자격이 되면 지역예선은 면제된다.[6] 반면 이때 출산 직후 복귀한 안도 미키는 지역예선에서 1위를 하여, 2013-14 전일본선수권 참가 자격을 받았다. 하지만 전일본선수권에서 7위를 하여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7]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아라카와 시즈카는 한동안 부진에 시달렸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두려고 까지 했었다. 반면 스구리 후미에는 형편도 유복한데다가 여러 대회에서 포디움에 드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둘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8] 그러나 안도가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스구리에게 사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