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شيرين أبو عاقلة Shireen Abu Akleh | |
출생 | 1971년 4월 3일 |
예루살렘 舊시가지[1] | |
사망 | 2022년 5월 11일 (향년 51세) |
팔레스타인 제닌 현 | |
국적 | <colbgcolor=#fff,#1f2023>미국 팔레스타인 |
학력 | 야르무크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 |
직업 | 기자 |
가족 | 나스리 & 룰리 아부 아클레 (부모) 안톤 아부 아클레 (오빠) |
종교 | 기독교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
묘지 | 예루살렘 시온산 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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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레스타인 출신 알자지라 방송사의 기자. 2022년 5월 11일 팔레스타인의 제닌 현에서 벌어진 시위 및 이스라엘 육군의 봉쇄 작전을 취재하던 도중 이스라엘 육군의 총탄에 맞아 피살되었다. 이 사건은 아랍어권 전역의 반이스라엘 감정에 불을 붙였으며, 시위 현장과 멀리 떨어진 안전 지대에 있던 언론인에게 발포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도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비판 여론이 일었다.2. 생애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여성이며, 1971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관구에서 거주하고 있는 베들레헴 출신 아랍계 기독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뉴저지에 거주하는 외가를 통해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부모가 모두 사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예루살렘 시외의 베이트 하니나의 사립고등학교(수녀원 부설학교)를 졸업하였고, 요르단으로 이주하여 요르단 과학기술대학교의 건축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반체제투쟁을 세상에 알릴 것을 결심하고 야르무크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로 편입하였다. 졸업한 직후에 그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제 막 접수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로 돌아가 팔레스타인의 소리(라디오 방송국)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였고, 1997년부터 알자지라 방송사의 팔레스타인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쉬린은 고향(예루살렘 구시가지)에 돌아와 외국인 영주권자 신분으로 거주하면서 각종 시위와 전투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25년간 열정적으로 취재에 임하였다.특히 제2차 인티파다와 2002년 제닌 전투에 대한 취재를 통해 아랍인 언론인들로부터 팔레스타인 최고의 기자라는 평을 받았다.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그녀를 보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2005년 아랍인 기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이스라엘 공안부의 형무청이 다스리는 쉬크마 형무소의 팔레스타인 아랍인 정치범을 취재했는데, 그녀는 이스라엘 육군과 유대인 향토예비군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쉬린은 이스라엘 언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디지털 미디어 학위를 취득하는 등 직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2021년 5월에는 UN의 연례 교육 프로그램 중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연례 교육이 '쉬린 아부 아클레 교육 프로그램'으로 명명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로써 쉬린은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었고, 특히 현지 여성들의 롤모델로 추앙받았다.
2.1. 사망
피격 직후 쓰러진 쉬린 (좌측). 총알이 헬멧을 관통한 것으로 보아 저격총이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증폭되었다.
2022년 5월, 안전 지대에서 제닌의 무력 충돌을 취재하던 쉬린은 5월 11일 총탄에 맞아 쓰러졌고, 무의식 상태로 이븐 시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하였다. 그녀와 함께 있던 카메라맨과 기자 역시 경상을 입었다. 사건 직후 알자지라 방송사는 그녀가 이스라엘 육군의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고 보도하였다. 팔레스타인 언론에 따르면 쉬린은 알리 사모디를 포함하여 이스라엘 육군에게 피살된 4번째 언론인이라 한다. 사망 직후 안나자흐 국립대학의 의학부가 실행한 부검에서 사인은 원거리 사격에 의한 두부 관통상 및 뇌손상으로 판명되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총탄 역시 감식에 들어갔는데 팔레스타인 측은 UN 수사기관 측에 이를 의뢰하였다.
3. 반응
쉬린의 장례식에 운집한 군중. 십자가형을 받는 예수가 새겨진 그녀의 목관과 그 위에 놓인 팔레스타인 국기가 눈에 띈다.
분리 장벽에 그려진 쉬린 아부 아클레 추모 삽화
쉬린 아부 아클레의 사망이 알려지자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연맹의 회원국들은 분노에 휩쌓였다. 그녀의 집은 팔레스타인 깃발이 무수히 꽂혔고, 추모객들이 몰렸다. 이에 이스라엘 경찰이 들이닥쳐 깃발들을 압수해버렸다. 쉬린의 운구가 라말라(팔레스타인의 행정수도)로 우송되자 무수한 인파가 몰려 애도와 이스라엘 타도를 외쳤고,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낸 베이트 하니나에서도 이스라엘 경찰에 맞선 시위 끝에 5명이 부상당하고 3명이 구금되었다. 피살 이듬날 팔레스타인 정부는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 등이 참석하는 국장을 선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슬람주의 정당인 하마스에서도 애도를 표했다.#,#[2]생전 그녀가 소속되었던 알자지라 방송사는 사건 직후에 특별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였고, 2022년 9월 현재까지도 매일 관련 보도를 중점 보도하며 진상 규명에 나서고 있다.
5월 13일 예루살렘 시내에서 장례가 치러지자 수만의 인파가 모여 아랍 지역의 전통대로 관을 군중의 어깨 위에 실어 운송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스라엘 경찰은 이런 과격한 행동을 저지했고, 군중이 팔레스타인 분리독립의 구호를 외치자 현장에 개입하여 최루탄을 쏘아대면서 무자비한 구타와 함께 추모객들을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망자의 관이 거의 땅에 떨어질뻔 하는 등의 고인모독이 일어날 뻔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말이 공개되자 이스라엘 공안부의 대처가 과했다며 이스라엘 공안부의 법치에 대하여 국제 사회의 비판이 이어졌다. 일련의 혼란 끝에 그녀의 관은 수태고지 성당에서 장례를 마치고 시온산의 기독교도 묘지에 부모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다. 3일 후 예루살렘 시내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공안부가 장례 시작 전부터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며 비판하였다.
이스라엘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얼룩진 장례식 이후 이스라엘 정부의 공동수사 요구를 거부하고 자체 수사에 나선 팔레스타인 정부는 조사 결과 피살 현장에서 발견된 총알은 이스라엘 군경의 것이라 밝혔다. 5월 25일 CNN은 사건 현장 주변인들과 영상 자료 분석을 통해 쉬린의 사망은 이스라엘 육군의 저격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6월 21일에는 뉴욕타임즈가 전문가들을 동원한 자체 수사 결과 총알이 발사된 각도나 거리를 따져 보았을 때에 이스라엘 육군의 호송 차량이 있는 곳에서 발포된 것이라 밝혔다. # 다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조준 사격 여부는 확답을 내지 않았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제네바에서 브리핑을 열어 검토결과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를 살해하고 동료 기자를 다치게 한 것은 이스라엘 육군의 총격이었다고 발표했다.
7월 4일 미국 국무부는 쉬린이 이스라엘 육군이 사격하는 방면에서 날아온 총알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총탄의 출처를 명확히 가려내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반발한 유족들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면담하고 재조사를 요청하였다. # 한편 팔레스타인 반란군의 총격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던 이스라엘 국방부는 내부에서조차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9월 5일 성명을 내어 쉬린이 이스라엘 육군의 총격에 맞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교전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반란군을 향해 발포한 총탄이 뜻하지 않게 그녀를 향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며 고의적 조준 사격 의혹을 부인했다. #
[1] 현재 팔레스타인이 다스리는 동예루살렘 지방은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가 다스리던 시절에 쌓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포함하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이스라엘 내무부가 서예루살렘 지방의 부도심으로 편입하여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관할하고 있으며, 유엔 총회에서 거론하는 동예루살렘은 예전에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다스린 요르단령 동예루살렘 시청의 행정구역이다. 별도로 아클레 기자의 이력은 프랑스24의 뉴스를 찾아서 읽을 것.[2] 인구의 98%가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도에 대한 국장은 치르는 이유는, 비중은 적어도 기독교 또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전통적인 종교였고, 기독교인이라도 역사및 문화적 공통분모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