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명나라의 소설가 시내암 施耐庵|Shi Nai'an[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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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암의 동상 (중국 장쑤성) | |
<colbgcolor=#005a94><colcolor=#e0e0e0> 본명 | 시자안(施子安), 시언단(施彦端) |
출생 | 1296년? |
사망 | 1370년 (향년 74세) |
직업 | 소설가 |
별칭 | 조서(肇瑞) (자) 내암(耐庵) (아호) |
저서 | 《수호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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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나라, 명나라의 소설가.소설《수호전》의 저자로, 이름의 '내암(耐庵)'은 아호이다.
2. 생애
출신이나 행적, 이름, 자도 정확한지 불분명하다.명나라 때 사람인 고유의 백천서지에 따르면 충의수호전 100권에 사는 전당에 사는 시내암의 책이라 했으며, 낭영의 칠수류고에서는 수호전에 대해 이 책은 전당 시내암의 책이라고 해서 전당 출신으로 추정된다.
명나라 때 사람인 서복조의 삼가촌노위담에는 수호전의 저자가 시군미(施君美)라 했으며, 저자를 알 수 없는 전기회고표목에는 시내암의 이름은 혜(惠)이고 자는 군승(君承)이라 했다.
시내암에 대한 행적은 다양한 설이 있어서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행적은 없지만, 설들에 대해 언급하자면 생존 시기는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로 추측되고 전해지는 것에 따르면 강소성 회안 출신으로 13살에 사숙을 다니고 19살에 수재로 29살에는 거인, 35살에는 진사에 뽑혔으나 진사에 뽑힌 직후, 원나라 말기의 군웅인 장사성의 난에 가담하였다가 은거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내암은 소주(쑤저우)에서 은거 생활을 하며 민간예인들이 송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송강 등 36명에 대해 공연한 역사극을 즐겨보았는데 이와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를 결합하여 수호전을 창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수호전도 시내암이 71회까지 쓰다가 중단한 것을 가문에서 쫓겨난[3] 나관중이 수집하고 편집하여 세상에 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3. 같이보기
[1] 한어병음으로는 'Shī Nài'ān'이다.[2] 《삼국지연의》의 저자인 나관중도 공동 저자이다.[3] 족보에도 나관중의 이름이 지워져 있고 둘째 아들을 외지로 보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