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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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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씨티폰.jpg
1. 개요2. 역사3. 특징4. 쇠퇴5. 광고6. 단말기7. 기타

[clearfix]

1. 개요

City Phone

보행자 중심의 보급형 이동통신으로서 대한민국에서의 서비스명이다.

원리는 집에서 쓰는 무선 전화기의 사용 범위를 공중전화망을 통해 확장하는 개념에 가깝다. 시티폰이라는 이름은 기술 규격인 CT-2의 CT에서 착안하여 발음이 같은 city로 바꾼 것인데[1] CT란 가정용 무선전화(Cordless Telephone)의 약자이며 집전화를 CT-1로 보고 확장판 개념으로 CT-2로 명명했다.

2. 역사

기술 규격 CT-2는 1989년 영국 국가표준으로 채택되고 이어 1991년 유럽 통신 규격 협회 ETSI를 통하여 유럽표준이 되었다.

서비스는 1989년 영국에서 개시되어 상가포르, 홍콩, 태국, 말레이지아 등에 보급되었고, 이후 개선된 서비스로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로 도입되었고 1995년 무렵에는 중국, 대만, 브라질,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으로 확산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5년 3월 8일 한국통신에서 ‘시티폰’이라는 서비스명으로 여의도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고 1997년 3월 10일 서울이동통신, 나래이동통신과 함께 수도권 상용 서비스를 개시하여 도입하였다.

국내에서 처음 개통된 곳은 서울특별시, 광명시, 과천시 (이상 서울 지역번호 02 사용지역). 이후 서비스 지역이 수도권 주요 도시와 광역시급 지방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다.

3. 특징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발신전용 기기였으므로 반대로 수신만 가능했던 무선호출기(삐삐)와는 찰떡궁합이었다. 애초에 시티폰은 삐삐의 상호보완재로서 호출을 받으면 즉시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개발되었는데, 이후 무선호출 기능과 결합된 "CT-2 플러스"로 발전하여 일체형 시티폰까지 등장하고 음성사서함을 매개로 제한된 시간 동안 (3분) 실시간 통화할 수 있는 "미트 미" 서비스가 구현되었다. 이어 시티폰 사업이 한국통신으로 통합된 이후에는 기지국에 착신번호를 수동 등록하여 착신할 수 있는 간이착신서비스가 도입되었다.

4. 쇠퇴

하지만 시티폰은 그 태생 단계에서부터 공중전화기를 휴대하는 방식이었다. 수신율이 매우 좋지 않았기에 교통수단으로 이동시 통화가 되지 않거나 중계기가 있는 공중전화박스 근처가 아니면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다. 이마저도 중계기에서 약 100m를 벗어나면 통화가 아예 되지 않는 제한된 이용 범위를 가졌고[2], 중계기의 범위를 벗어날 때 다른 중계기로의 통화 연결도 불가능해서 이동 불능이었기 때문에 요금의 메리트가 묻혀버렸다. 기존 핸드폰(011, 017)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지만 결국 반쪽짜리 이동전화로서 과도기적인 서비스에 불과했다.

게다가 서비스 시기도 너무 늦었다. 1997년 2월에 KT와 서울이동통신 등 여러 사업자들이 1997년 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그 해 10월에 나온 PCS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신도 가능한 PCS에 비해 전화 발신밖에 안되는 시티폰은 요금 이외에는 메리트가 없었다.[3] PCS에는 문자메시지도 있었으나 항목의 내용처럼 2000년 이전의 문자메시지 기능은 통신사가 다르면 메시지를 못 보내는 등 사실상 없으니만 못했기 때문에 별 영향은 없었다.

1998년 들어 PCS 측이 현대 걸리버걸면 걸리니까 걸리버같은 공격적 마케팅을 하고, 기존 셀룰러 이동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신세기통신 역시 PCS에 대항하기 위해 요금 인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기존 고객들마저 이탈해 사업자들이 속속 사업을 접기 시작했고, 이를 한국통신(現 KT)이 인수하였다. KT는 시티폰을 가정용 무선 전화기로 편입시켜 집 밖에서는 시티폰으로, 집 안에서는 무선전화로 사용해 가정용 통화요금이 나오는 시티폰 플러스 서비스도 실시했으나 결국 2000년 1월 KT마저 1,000억 원 대의 대형 누적적자를 남기며 시티폰 사업을 철수하고 KT PCS로 흡수시키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나치게 빠른 전자기기 발달 속도의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티폰플러스 전용 단말기의 경우 시티폰 서비스 종료 후 남은 재고는 일부 홈쇼핑에서 유무선전화기로 판매되었고 당시 가입자는 PCS와 집전화 등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는데 상당수가 PCS 단말기를 받았다. 전화번호도 016을 사용했으나 정확히는 KTF가 아닌 KT가 직접 관리하는 부서인 KT PCS의 역 MVNO 회선으로 승계되었다. 당시 시티폰에서 PCS로 전환한 회선 중 2020년 현재까지 남아있는 회선은 KT PCS에서 KTF를 거쳐 KT로 통합된 셈이다.

5. 광고


1997년 당시에 최고의 예능계 황제였던 김국진이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줄 서지 않고 바로 시티폰으로 전화를 거는 CF를 찍으며 그의 유행어인 "여보세요?"의 효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중전화에 줄서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던 시절 이것은 매우 강점이었다. 공중전화가 동네 잉여 기물인 현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공중전화를 줄서서 기다리다가 앞 사람이 통화 오래한다며 시비가 붙어 심지어 살인까지 난 뉴스도 종종 나왔다. (공중전화걸던 20대 남자, 빨리 끊으라고 재촉하자 살인 (MBC, 1990), '공중전화 통화길다' 핀잔에 살해 (SBS, 2004)) 스마트폰 사용 허용되기 전 군대에서 전화기 밀려서 줄서서 기다리던거 회상하면 된다.


이홍렬이 출연한 서울이동통신의 서울시티폰 광고. 서울구경을 개사한 노래로 시티폰이 있으면 공중전화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그리고 삐삐와 찰떡궁합이라는 점을 노려서 자사의 서울삐삐도 함께 광고하고 있다.


이후 2011년 7월 라디오 스타 백지영, 지상렬, 김연우 출연분에서 지상렬이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상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자만 계속 일방적으로 김칫국을 마셔대는 습성을 김구라가 공격하자, 이에 김희철이 시티폰이 발신전용인 것에 착안하여 시티폰이라고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지상렬이 시티폰 없어진지가 언젠데 라며 맞받아 치는 가운데, 가만히 있던 김국진이 "그거 내가 선전했어"[4]라는 한 마디로 올킬하며 빵 터뜨리기도 했다. 김국진이 다름아닌 위에 있는 시티폰 광고 영상의 모델이었기에 가능했던 개그...

6. 단말기

파일:SP-D200.jpg
삼성전자 SP-D200 (MARK II)
무게 152g, 크기 가로 52mm, 세로 135mm, 두께 24mm. 니켈수소배터리 이용시 6시간 연속통화, 60시간 통화대기. 일반 건전지 이용시 9시간 연속통화, 90시간 통화대기. 네자리 비밀번호 잠금 기능, 20개 번호 저장 기능, 백라이트 기능, 음성송신 단절 기능.

파일:HDT-110.png
한창 HDT-100 (일명 워킹폰)
10개의 전화번호 메모 기능. 4종류 착신벨 선택. 수화중 음량조절 기능.

파일:YYP-201.png
유양정보통신 YYP-201 (플러스폰)
광역무선호출기를 내장하여 삐삐로 호출된 번호를 원터치로 불러내 통화 가능. 가정에서 900MHz 무선전화기로도 사용 가능. 무게는 145g, 가로 48mm, 세로 135mm, 두께 23mm.

파일:HCT-101.jpg
화승전자[5] HCT-101 (SPIXX)
국내 최초의 광역무선호출기 내장 모델. 플립형 디자인 채택. 조그 스위치를 사용해 호출 메시지 보기, 메모리 다이얼 등의 조작 가능. 삐삐 수신메세지로 자동발신. 가정에서 900MHz 무선전화기로 사용 가능.
파일:DP-3000(1).png파일:DP-3000(2).png
태광 DP-3000
플립형 디자인. 10문자 액정화면.

파일:HT-100.png
한화정보통신 HT-100 TocToc(톡톡)

기타 단말기들
참고로 현대전자에서 발매한 시티맨 시리즈는 시티폰이 아니라 송수신이 모두 가능한 셀룰러폰 휴대폰 브랜드다. 인터넷 자료에는 이름 때문에 시티폰으로 오해하여 잘못 분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7. 기타

스마트폰 시대에도 과거 시티폰 시절과 비슷하게 운용되는 서비스를 찾아본다면 VoIP, 즉 와이파이 기반 인터넷전화음성채팅이 있다. 수신이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과거 시티폰 기지국 수신가능범위와 비슷하게 와이파이 가능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와이파이로 넘어가도 핸드오버가 지원되지 않으며, 많은 공중전화 부스에 와이파이 AP가 깔려있고 결정적으로 저렴했던 시티폰처럼 아예 대부분이 무료로 서비스되는 등 비슷한 구석이 많다. 다만 요새는 모바일 네트워크의 고속화로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서도(LTE망)사용이 가능하고[7] 단말기에 따라서는 와이파이 AP간 핸드오버가 지원되는 경우도 있다. 삼성의 경우는 정확하진 않으나 갤럭시 S8 즈음부터 와이파이간 핸드오버가 된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한 하드웨어적 핸드오버는 아니고, 소프트웨어의 개선에 가깝다.[8]

일본의 PHS는 시티폰에 이동 중의 통화 기능과 착신 기능이 추가된 시티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1] 시티은행이 자사의 폰뱅킹 서비스인 시티폰(Citiphone)과 유사한 명칭이라고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특허청은 전화통신업과 은행업으로 업종이 달라 오인 혼동의 우려가 없다고 결론내렸다.[2]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전화를 휴대하면서 통화를 위해 Wi-Fi 존을 찾아가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3] 1997년 기준으로 핸드폰(AMPS): 25원/10초, PCS: 18원/10초, 시티폰: 8원/10초, 1998년 기준 45원/3분, 공중전화의 50원/3분(업체별 요금제, 이용시간대등 요소에 따른 차이가 있으므로 대략적 평균임)[4] 자막은 그거 내가 광고했어 라고 나갔을 정도로 보통 광고라는 말이 더 적합한데, 어르신들이 쓰는 선전이란 말로 더욱 웃음을 주었다. 참고로 광고(Advertisement)와 선전(Propaganda)는 다른 의미이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두 단어의 의미를 혼동해서 썼다.[5] 마녹스 브랜드로 삐삐를 생산하던 스탠더드텔레콤이 화승전자를 인수하였고, 닉소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6] 휴대전화는 아니고 무선데이터통신용 모뎀이다. 모토로라와 공동개발. 사실 당시 Apple이 휴대전화를 계획하지 않았다.[7] 단지 음성통화 요금보다 데이터 요금이 같은 통화시간 대비 더 비싼데다 요새는 음성통화는 아예 무제한인 경우도 흔해서 잘 사용하지 않을 뿐. 사실 요새는 VoLTE라 해서 그냥 휴대전화의 기본적인 전화 기능으로 발신을 해도 기지국 내부적으로는 음성 회선이 아니라 데이터 회선으로 통화를 연결한다.[8] 와이파이 AP에서 멀리 떨어져서 신호가 약해지고 데이터 네트워크가 켜져 있으면 데이터 통신이 심하게 느려지거나 끊기기 전에(버퍼링이 걸리기 전에) 알아서 다른 AP를 검색하고 전환하는 방식. 이 때 와이파이를 끊고 다른 AP에 접속하며 붙는 공백을 막기 위해 모바일 네트워크를 같이 사용한다. 갤럭시 S5 이후의 단말은 데이터 네트워크와 와이파이 AP에 동시에 접속하는 게 가능한데, 원래 초창기에는 '다운로드 부스터' 기능으로 LTE와 와이파이를 동시에 사용해서 데이터 다운로드 속도를 더 가속시키는 용도였으나, 와이파이도 기가망으로 교체되어 LTE보다 빨라져서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지자 해당 기능은 갤럭시 S7 즈음부터 삭제되고 '끊김 없는 네트워크 전환' 기능에 활용되도록 바뀌었다. 재검색 시에 다른 신호세기가 양호한 AP를 검색하지 못하였거나 연결에 실패하면 그냥 백업으로 연결되어 있던 LTE/3G 통신으로 전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