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28 11:39:44

이홍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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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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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
(1992년)
이홍렬
이경실
(1993년)
이경실
이휘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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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466><colcolor=#FFFFFF> 이홍렬
李洪烈 | Lee Hong-ryeol
파일:external/www.breaknews.com/200810232822574.jpg
출생 1954년 6월 22일[2] ([age(1954-06-22)]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국적 [[대한민국|]]
본관 덕수 이씨[3]
신체 163cm, 65kg, A형
직업 코미디언, MC
가족 1남 2녀 중 둘째, 배우자 박인규, 슬하 2남
학력 서울삼광초등학교 (졸업)
한양중학교[4]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요업과 / 졸업)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개신교(예장통합)[5]
소속 파일:크리시아미디어 로고.png
데뷔 1979년 TBC 라디오 가요대행진
링크 파일:트위터 아이콘.svg[6]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 경력3. 여담4. 출연 프로그램
4.1. 교양4.2. 예능4.3. 시사교양4.4. 시트콤4.5. CF
5. 경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코미디언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작은 키와 개성적이고 익살맞은 외모,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2. 활동 경력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DJ로 활동하다가 친해진 DJ 선배 허참의 권유로 1978넨에 방송가에 입문, 코미디에 출연하거나 방송 진행을 많이 맡으며, 이후 MBC에서 주로 활동했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부터 청춘행진곡, 오늘은 좋은 날, 그리고 현재의 일밤까지 MBC 희극인실의 숨은 터줏대감 중의 하나로 꼽힌다.

파일:external/6a0059a02a5ce024024f342112a8193ff2a8441525741fde3d66b69381ff6077.jpg

대표적인 콩트로는 1980년대에는 김병조와 콤비를 이룬 청춘만만세의 카운셀링 개그코너 '어찌 하오리까'가 있으며, 일밤대행진 마당놀이에선 주로 사회자를 봤다.

1991년 한창 잘 나가던 방송 일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2년간 유학을 가서 화제가 되었다. 일본 유학 후 방송계로 복귀하여 전성기를 다시 열었다.

유학 가기 전 30대까지는 별명이 촉새였는데, 90년대 40살에 컴백 후 후배 이경실과 함께 하던 방송에서 "콧구멍에 500원 동전 넣기"[7]로 뜨면서 40대부터 "뺑코"라는 별명이 생겼고 친숙한 옆집 아저씨 이미지[8]가 생기며, 이를 이용해서 캐릭터 사업까지 할 만큼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중년의 개그 스타[9]가 되었다.[10]

1990년대에 KBS 출신 임하룡과 함께 했던 귀곡산장 또한 결코 빼놓아선 안 되는 대표작 중 하나다. 아래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태~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절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당시 괴담물 단행본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공포특급'이 불러온 공포 마케팅 열풍을 타고, 공포 컨셉 게스트 코미디 쇼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히트를 친 것.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0182933000_60800020.jpg

원조 배역은 이홍렬과 임하룡이다. 연극 버전에서는 후배 강성범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홍렬은 여기서 할머니 분장을 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홍렬쇼라는 토크쇼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100회를 채우고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 또 200회까지 채우고 막을 내렸다.[11] 프로그램 코너들 중에서는 특히 '참참참'이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 스타가 나와서 밤참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 참참참은 당시 일본 버라이어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던 쿡방들이 한국 사정과는 안 맞아 몽땅 망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장수했던 코너였다는 점도 특색이다.

또한 이 프로를 통해서 초창기 심현섭김구라SBS 초기 공채 개그맨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 이홍렬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면 단연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코너였던 '한다면 한다'. 국내와 해외에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며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상격인 프로라 생각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번지점프는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당시 40대였던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고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12]은 많은 중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20년 전인 만큼 예능 프로도 지금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점잖고 얌전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야 이놈들아아아아아아!"라는 처절한 저주의 외침을 토하며 뛰어내렸으니 당시 시청자들이 받았던 쇼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몇 해 지나서, 일밤에 나와 번지점프 한 번 뛰어보라구 이홍렬이 씩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도 이야기하며 "뛰어내리지 말까?" 하다가 뛰어내리니 그야말로 마구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면서 "저 이놈들아!"라는 말도 내뱉었다. 이건 애드립도 아니라 그냥 알아서 마구 터져나온 속마음이었던 셈이다.

그는 "뺑코"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는 이경실의 콩트 '도루묵 여사'에서 이경실의 권유로 콧구멍에 500원짜리 동전을 성공적으로 넣었다가 빼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넓은 콧구멍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으므로 코에 무엇인가를 넣는 행위를 대단히 불쾌하게 여긴다. 대신 별명이 "촉새" → "뺑코"로 바뀐 것은 만족해 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MBC every1의 프로그램 가족이 필요해 시즌 2에서 15년 만에 코에 고무줄을 넣는 개그를 시도했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방송국에서는 연예인들이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 자리를 한두 자리 비워 놓는데 때마침 방송국에 늦게 도착한 이홍렬에게 경비가 "주차장에 자리 부족해요. 나가세요."라면서 진입을 막았다. 이홍렬은 결국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방송국에 들어가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비의 대응에 서운함을 느껴서 '내가 MBC에 바친 열정이 얼만데...' 하고 실망했다고 한다. 결국 SBS로 옮길 때는 SBS에 전용 주차석을 요구했다고...

2000년 말부터 2002년 초까지는 SBS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다.[13] 진지한 배역을 주로 맡다가 코믹한 배역에서 맹활약했던 노주현신구와는 반대로, 진지한 연기를 할 때도 많았던 경험이 있어서 기본 베이스는 코믹하지만 중년의 로맨스와 관련되어있는 노홍렬이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 내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주로 여유만만이나 체험 삶의 현장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예능 트렌드가 변하면서 이홍렬 본인도 방송에서의 입지가 좁아졌고, 그와 함께 2010년대부터는 브라운관에 모습을 보이는 빈도가 줄었다.

그러던 도중 2014년 4월 중순, MBC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의 길로 방송에 복귀하여 MBC 19기 개그맨 김용재와 함께 모큐멘터리 형식의 코너를 진행하였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어린이 분장으로 PD 앞에서 코너 검사를 받는 등 분투하였다. 김용재는 이상민 주연의 음악의 신에 등장한 개념없는 매니저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2014년 7월 6일에 그의 환갑을 맞아 그가 연 기념 출판기념회가 방송되었다. 전유성, 최불암, 이경실, 전영록, 황기순 등 많은 스타들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2015년 기준으로는 TBS에서 이홍렬의 라디오쇼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2월 21일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띠동갑 후배인 지석진과 팀을 이루었다. 이른바 콤비며 이홍렬의 별명이 뺑코이고, 지석진의 별명이 왕코 이므로...

밑에 있는 CF 부분에서 보다시피 그는 20세기 후반 매우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인이므로 그가 찍은 광고의 수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젊은 세대들은 어릴 적 TV를 켜면 그가 등장하는 여러 개의 CF들을 매우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방송을 전혀 보지 않았던 어린아이들도 "어? 저 아저씨 어느 어느 광고에서 봤던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다.

2020년 SBS 연예대상에서 레전드 특별상을 수상했다.

3. 여담

  • 2007년부터 크라제버거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방문하면 가끔 볼 수도 있으며, 3번 망하고 4번째로 낸 가게라고 한다. 지금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영 중단을 천명해 놓은 상태다. 어째 사업과는 전혀 안 맞는 것 같아보인다.
  • 점심 시간에 홍대 앞을 지나면 담배 피는 이홍렬을 구경할 수 있지만, 워낙 연예인이 깔린 동네라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게 이 인물은 거의 인지도가 없다시피 한 것도 있고...
  • 과거에 음악 활동을 한 적이 있으며, 1998년에는 음반을 낸 적도 있다.[14] 일종의 자선 음반으로 기획했고, 일부 기존 노래를 커버한 노래(ex. 트로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좀 있다. 그 외에도 Friends라는 곡은 함께 한 아티스트가 아홉이고, 마지막 트랙인 발라드 넘버 '다시 한번 해봐요'는 그를 비롯한 당대 유명가수들과 합창했는데, 함께 한 아티스트가 열아홉이나 된다. 하지만 흥행은 흑역사. 지금은 정반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영희네 담벼락에 누가 써 놓은 이야기>라는 곡은 그럭저럭 유명하다. 들어보기 해당 곡의 작곡자는 그 유명한 김창완이다. 이 앨범 전곡을 이홍렬은 대인배스럽게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해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들어보자. 몇몇 곡의 경우 이홍렬의 라이너노트도 곁들여져 있다. 이 외 음악 활동의 경우 '초콜렛'이라는 남녀혼성 듀오에 거의 모든 곡을 제공한 적도 있으나, 그룹이 망해서 자선음반보다 더 잊혀졌다.[15]
  • 34세에 결혼을 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늦게 한 편이다. 사실 이홍렬과 아내는 이미 1979년에 TBC에서 만난 사이로, 아내가 TBC에 회계 업무 관련하여 실습하러 온 고3 여학생(이홍렬보다 8살 연하로 1962년생.)이었다고 한다.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헤어졌고, 그러다 7년이 지나 운명처럼 재회해서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16]
  • 1987년(당시 33세)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한 것으로 유명한 만학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상당한 다독가라고 한다. 2년간 일본에 유학을 목적으로 체류한 적이 있다. 당시 한참 잘 나가던 시점에서 갑자기 일본으로 공부한다고 떠난 경우였다. 때문에 전유성같은 이들은 이와 같은 그의 행보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였다. 이때 일본에 체류한 경험에 바탕해서 쓴 일본, 일본어 서적도 있고,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하기는 어렵다"라는 자녀 교육서를 쓴 적도 있다. 그 외 아버지에 관련된 책을 번역했으며 당연히 일본어에 매우 능통해서 일본인과 대화가 가능하다.
  •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적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고도 유명하다. '그냥 이즈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식이 아니라, 정확한 날짜를 쓰고 그때 겪은 일을 짧은 문장으로 간추리는 형식으로 기록한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태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 주병진(1977년 데뷔) - 강석(1978년 데뷔) - 이홍렬(1979년 데뷔) 순으로 선후배 사이다. 이 시점 이후로 MBC의 개그맨은 공채를 하기 시작하여 기수대로 표시하고 있다. 즉, 이 세 사람은 전원 특채에 해당. 알다시피 개그계는 선후배 사이를 철저히 따지는 쪽이라.... 대신 중견연예인이 된 이후 이홍렬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주병진을 방송에서도 그냥 병진이라고 부른다.
  • 이는 데뷔가 30살에 가까워서 더 늦은 임하룡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임하룡과 이홍렬은 나이차이가 크지 않고 이홍렬이 선배라서인지 나이 70살에도 형동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 두 사람이 같이 방송에 출연했을때 과거 에피소드를 밝혔는데, 귀곡산장 시절에도 서로 그냥 "자기"라고 불렀고, 나이 어린 선배 이홍렬이 임하룡을 구박한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NG가 날때 "거기서 자기가 먼저 노래를 부르면서 치고 나와야지 왜 타이밍을 못 맞춰?"라며 이홍렬이 임하룡을 구박하면. 임하룡이 속으로 '지도 전에 틀렸으면서'라며 불만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참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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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의 이경규, 뺑코 '이홍렬'과 함께
사진과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당시 무명 개그맨이었던 이경규가 자신도 개그맨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방송사 선배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데,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고 가장 친한 선배였던 이홍렬이 이 소식을 듣고 같이 사진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후 이경규는 감히 선배인 이홍렬과 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쪼개고 건방진 표정을 짓는다는 이유로 모 선배 개그맨에게 코피까지 흘릴 정도로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며, 다른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어떻게 감히 후배가 선배랑 사진을 찍냐고 갈굼받았다고 한다.[17] 이홍렬은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 해주던 천사표 선배 중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이경규도 이홍렬에게 "때려 봐. 때려 봐."라고 쓸데없이 약올렸다가 한 대 맞기도 했고, 이홍렬과 맞담배를 피질 않나, 담뱃불 없다고 이홍렬이 피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배에 붙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홍렬은 나중에 최양락한테 지나가는 식으로 뒷담화를 했는데 최양락은 말 끝나기 무섭게 자기도 똑같이 이경규를 따라했다. 그러자 참고 참던 이홍렬이 폭발해 "이 XX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구두로 최양락을 때렸다고 한다(...).[18] 한마디로 매를 벌어서 맞은 것.[19][20]
  • 이경실이 지나치게 괄괄한 여걸이라서, 이성미가 그런 이경실을 기피하자 이홍렬이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화해시켜서 둘을 절친으로 만들어놓은 일화가 있다.[21] [22]
  • 독실한 크리스천 연예인 중 한 명으로, 현 직분은 집사. 어머니가 암투병을 하게 된 것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도 작성한 바에 의하면 무속인이었던 할머니도 (이홍렬의) 어머니에 의하여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 한창 인기 있던 1995년에는 '뺑코형사 특급추리왕'이라는 어린이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
  • 여명808의 등장을 예견했다. 중국배우 여명이 나와서 건강차를 만드는 내용. 예언.
  • 아프리카에 자전거 2,600대를 기부하기도 하는 등 선행을 많이 한다. #
  • 2001년부터 벌이 아닌 털뭉치를 뜻하는 영어 furball에서 따온 이름을 붙인 풀벌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지난 2018년 7월 5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리고 풀벌을 키우던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연재하고 있다.
  • 소주를 살짝씩 하는 편이다.
  • 조용필과 같이 다른 사람들도 모르던 허참의 암 투병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다.[23]

4. 출연 프로그램

4.1. 교양

4.2. 예능

4.3. 시사교양

4.4. 시트콤

4.5. CF

5. 경력

  • 1998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
  • 2000년 <싸다콤 홍보이사>
  • 2003년 <테일러메이드 코리아 홍보대사>
  • 2005년 <코리아 드라마페스티벌 명예홍보대사>
  • 2007년 <한우자조금 한우사랑 연예인 서포터즈>
  • 2010년 <명지병원 홍보대사>
  • 2011년 <파워스터디 홍보이사>
  • 2015년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홍보대사>
  • 2018년 <2019 순천 방문의 해 홍보대사>
  • 2019년 <상주시 홍보대사>


[1] 1991년부터 1994년까지 MBC 방송대상 (코미디 부문), 1995년부터 2000년까지 MBC 코미디대상, 2001년부터 MBC 방송연예대상으로 바뀌었다.[2] 음력 5월 22일[3] 충무공파 26세손 '烈'자 항렬. '충무공 이순신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4] 가수 전영록과 중학교 동창이다.[5] 온누리교회 집사다. 참조[6] 2012년 이후로는 업데이트가 멈춰있다.[7] 이경실과 사적으로 대화하다가 일밤에서 일반인이 100원 동전을 콧구멍에 넣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홍렬이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은 500원도 넣는다고 주장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들은 이경실이 이를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장기(지금의 개인기)로 보여주자고 권유하면서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이홍렬은 하기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경실이 대박날 거라고 계속 설득했다고 한다. 이경실도 처음에는 500원이 들어간다는 걸 못 믿었는데 진짜 해 보라고 했고, 이홍렬이 약간 민망해하다가 같은 개그맨 후배니까 한번 보여주겠다며 태연하게 진짜로 넣자, 이경실이 놀라면서 이건 꼭 방송에서 하면 대박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박이 났으니 이경실의 선견지명.[8] 30대까지는 역할상 까부는 이미지와 밉상 이미지가 더 강한 개그맨이었다.[9] 방송일이 잘 풀린 건 좋았는데, 식당 같은 곳이나 어딜 가도 일반인들이 500원짜리 동전을 깨끗이 씻어다가 한번만 콧구멍에 넣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식당 주인들이 요청해서 몇 번 진짜 넣어주기도 했다고... 실제 이홍렬쇼 시절에는 제작진들이 녹화 전에 500원짜리를 씻어다가 보관해놓는 게 일이기도 했다고 한다.[10] 실제로 이경실과 80년대 중반부터 40년 가까이 절친한데, 나무위키 이경실 항목의 세바퀴짤에도 이경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이홍렬이다.[11] 부활했을 당시에도 인기는 좋았다.[12] 뉴질랜드로 가서 찍었는데 같이 간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나 PD는 높이를 보고 겁에 질려 번지점프로 뛰길 포기했다. 이홍렬도 "이거 긴장되네..."라며 고민하던 반응을 드러냈지만 결국 그 홀로 뛰어내렸다.[13] 사실 시트콤에 출연하게 된 배경이 재밌는데, 당시 진행하던 자신의 토크쇼 이홍렬쇼가 MBC의 세 친구에 시청률이 추월당한 후 시간대를 자주 옮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도통 오르질 않으면서 결국 종영을 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오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도전했던 작품이 해당 시트콤이라고 한다.[14] 이 앨범이 나온 해인 1998년은 프랑스 월드컵이 개최된 해로, 당시 출전했던 한국인 선수들의 응원곡인 한다면 한다가 수록되어 있다.[15] 사실 이 부분은 작곡가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16] 출처는 상상플러스 2006년 11월 7일 방송.[17] 개그계의 대표적인 똥군기의 예.[18] 최양락의 깐족거림은 옛부터 개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주병진 족발 사건이 대표적인 예.[19] 사실 저 일화만 봐도 그가 인격자란 건 알 수 있는데, 후배인 이경규가 저런 싸가지 없는 행동을 했는데 그걸 박살내는 게 아니러 딴 후배한테 불평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거나 좀 덜하지만, 그당시 개그계는 똥군기가 상당히 심하기로 악명 높던 시절이었는데, 다른 개그맨 선배한테는 감히 저러지도 못했을 것인데, 이홍렬이 그나마 착하고 사람이 좋으니까 후배인 데다 나이도 6살이나 동생인 이경규가 저 짓을 할 수 있는 것. 당연히 최양략이 한 건 무개념도 아니고 거의 싸우자는 거나 다름없기에 (물론 최양락 본인은 깐족이 본능 수준이라 주체 못 한 것에 불과하겠지만) 참다 못해서 폭발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다.[20] 그리고 기껏 화나서 때린다는 것이 구두다.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먹이든 손바닥이든 직접적으로 맞는 거랑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 그만큼 최양락을 때릴 때도 배려하는 걸 보면 사람 인성을 알 수가 있다.[21] 둘 다 한 성격 하는 인물들이라, 중재자가 없으면 거의 친해질 리가 없다. 물론 이성미가 선배라 이경실이 함부러 못 대했겠지만...[22] 이경실과도 마찰이 있었는 데, 이경실이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자서전에서 직접 언급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이경실이 MBC 개그맨 총무로 있을 때, 모PD가 퇴직하면서 개그맨들끼리 돈을 모아 선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수금을 담당하게 된 이경실이 이홍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돈을 달라고 하자, 이홍렬은 '나는 그 PD와 친하지도 않고, 내가 없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니 낼 수 없다'고 대답했고, 이경실은 '선배님이 공부하시느라 잘 모르시나 본데, 이미 결정한 사안이니 돈을 달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격노한 이홍렬이 '너도 힘들게 공부했으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호되게 꾸짖었다고 한다.[23] 실제로 이홍렬은 가족오락관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기록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1000회 특집이 있다. 1000회 특집에서는 돈 세는 스피드게임 직후 한 말이 압권이다. 난 방송하면서 이렇게 떨려본 적이 없어요![24] 5인조 보이그룹 Q.O.Q로 활동했던 솔로가수 최정철의 어머니. 본명은 김명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