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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大韓예수敎長老會總會(統合)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nghap) | |
<colbgcolor=#b13><colcolor=#ffffff> 표어 |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에스겔 37:14, 사도행전 9:31) |
약칭 | 예장통합 |
설립연도 | 1884년 1912년[1] 1960년[2] |
소속국가 | 대한민국 |
총회장 | 김영걸 목사[3] |
부총회장 | 정훈 목사[4], 윤한진 장로 |
사무총장 | 김보현 목사 |
교인 수 | 2,207,982명(교단 총회 보고서, 2024년#) |
교단 기관지 | 한국기독공보[5] |
교단 출판사 | 한국장로교출판사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3길 29 (연지동)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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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은 1884년 설립된 조선장로교공의회를 모태로 하는 대한민국의 장로회 양대 교단 중 하나이자 한국 개신교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가장 교세가 큰 교단이기도 하다.[6]예장통합은 합동·고신 그리고 기장과 같은 '조선장로교'로서의 뿌리를 가지며, 조선장로교는 감리회와 함께 구한말 한국에 최초로 선교된 개신교이다. 조선장로교공의회에서 각 교단이 분리된 과정은 대한민국의 장로회 교단 분열사 참조.
약칭은 예장통합이며 일반적으로 (신학적) 중도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중도 성향이라는 것은 기계적, 산술적 의미의 중립이 아니라 같은 교단 내에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포용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7]
2. 역사
2.1. 개요: 통합 적통론
본 섹션의 역사는 예장통합을 기준점에 놓고 서술한다. 즉 예장통합을 중심에 놓고 한국 장로회 분열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예장통합 교단사의 요지는, 언더우드의 선교 이후 예장통합이 적통을 이어가고, 기장과 합동 등이 이 적통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장통합의 교단사는 타 장로회 교단, 특히 예장합동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8]예장통합의 역사관은 개별교단의 입장을 차치하고도 에큐메니컬적인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선교된 교회, 그리고 세계 장로교/개신교의 일부로서 정체성을 가장 충실히 지키는 교단이 예장통합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9] 둘째,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구한말에서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장로회 유산을 대부분 예장통합이 관리하고 있다. 우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설립된 미션스쿨이나 기타 장로교 기관들이 대부분 예장통합 관리 하에 있다.[10] 또한 구한말 장로회 선교사 새뮤얼 모펫과 호러스 언더우드의 추모와 묘역관리도 예장통합이 한다.[11]
이와 같이 한반도 장로회 선교 역사의 유형적 무형적 상징을 대부분 예장통합이 관리하므로 통합을 장로교의 적통을 통합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예장통합은 국내 그리고 세계적으로 장로교 대표 교단으로서의 위상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장은 한국 국내 교계에서는 장로교의 대표격으로서 타 교단 및 가톨릭과 대화에 참여하고, 세계적으로도 장로교/개혁교회 연합체인 WCRC의 일원으로서 세계 장로교, 그리고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12]과 대화한다.
예장통합의 교단사 서술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1940년대 초중반에 했던 친일활동을 축소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존재하는 역사를 없는 셈 치는 것 또한 올바르진 않다.
예장통합의 공식적인 입장은 당시 교단 지도부 차원에서 친일활동을 하였고, 그 교단지도부의 적통은 기장이 계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단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예장통합이 주장하는 적통론과 당연히 상충한다.[13]
예장통합의 교단 유지재단이 합동측의 그것보다 먼저 세워졌고, 이 때문에 통합측 유지재단의 법적인 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유지재단’(1973년 설립허가)이지만 합동측 유지재단의 법적 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유지재단’(1982년 설립허가)이다. 다만 이 사실이 ‘통합측이 본류이고, 합동측은 일종의 분당세력이다’라는 명제를 뒷받침하지는 않는다.[14] 그럼에도 예장총회 자체는 법인격 없는 사단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보아야 하는데, (1) 예장통합-예장합동 분리 등 예장통합의 분열 당시 예장통합 측이 교인이나 개교회의 1/3 이상을 지켜낸 점[15], (2) 예장통합의 재산 상당수를 예장합동 등 타 교단이 결국 가져오지 못한 점 등에 비추어보면 민법의 법리 상으로도 예장통합 측이 적통이 맞다.
2.2. 구한말 선교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장로교는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에게서 시작되었다. 선교 이후 조선인 자립교단으로 조선장로교공의회가 설립되었다. 공의회는 독노회를 조직하였고, 이후 1912년에 목사 96명과 장로 125명이 총대로 모여 첫 총회를 치르었다.이후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여 1930년대 무렵에는 조선 내 최대인원 종파가 되었는데, 일본이 종교를 탄압하고 노골적으로 천황 숭배를 강요하기 시작한 때도 그 즈음이었다. 국가신토와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종교인, 비종교인 가리지 않고 조선인들은 모조리 신사 참배를 강요받았는데,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일본과 결탁하여 이런 행위에 적극 찬동했다. 신도들에게 사실상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천황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면 교단에서 축출하기까지 했다.
2.3. 광복 이후
2.3.1. 고신의 이탈
1938년 2월 9일 평북노회가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서 참배하기로 결의했고 이후 9월 총회까지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참배를 결의했다. 총동부는 총회를 대비하여 교회 지도자들에게 회유책과 탄압책을 함께 썼다.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총회가 열렸다. 총대는 전국 27개 노회(만주의 4개 노회 포함) 대표 목사 88명, 장로 88명, 선교사 30명 등 모두 206명이었다. 총독부는 총회장소 주변에 수백 명의 사복경관을 배치하고 사회석 아래에는 평남 경찰부장의 지휘 아래 경관 수십 명이, 회의장 안에는 무술경관 100여 명이 배치됐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신사참배 안건에 관하여 가부를 물었다. 이때 제안자와 동의, 재청한 자를 포함한 몇몇이 “예.”라고 대답했고 나머지 대다수는 침묵을 지켰다. 침묵으로 항거하는 총대들을 향해 일제 경찰들이 일제히 일어나 위협 시위를 했고 총회장은 “부”를 묻지 않은 채 만장일치 가결을 선언했다.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총회 총대들은 평양신사에 가서 참배했다.일제는 이 무렵에 시작된 태평양전쟁을 위해 교회에게도 전쟁에 필요한 물자공급을 강요했는데, 제27회 총회는 국방헌금 모금을 결의하고 그 자리에서 500원을 걷었다. 이때부터 해마다 총회 기간에 총대들은 국방헌금이나 황군위문금을 걷었고 교회는 예배당을 팔아서 없애기까지 전쟁 수행에 협력해야 했다. 일제는 전국 각 면 단위로 1개의 교회만을 남겨 놓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교회의 통폐합으로 비게 된 교회들을 매각해 판매대금을 국방헌금으로 거둬들였다.
1938년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니 진리를 수호하는 주의 신실한 종들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고 한상동, 주남선, 손명복, 조수옥, 손양원, 이기선, 이원영 등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이들은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루다 50여명이 순교하였고, 살아남은 이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8월 18일, 장로교회 교역자들이 승동교회에 모였다. 신사참배가 일제 식민지배 세력의 강압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잘못이긴 하지만 그 허물을 청산하기 위하여 “책벌을 논의하자.”는 자리였다. 안동교회 담임목사 최거덕은 그들이 회개하면 이 모든 과오를 불문에 붙이기로 하자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설득했다. 또 9월 18일 '경남재건노회'가 부산에서 모였다. 신사참배에 굴복한 죄과를 자숙하는 자숙안이 상정되었지만 신사참배에 동참했던 목회자들이 다수인데다 해방 후 이들이 교권을 확보하게 되면서 신앙정화운동은 좌절됐다. 이즈음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됐던 주남선과 한상동이 진해에서 하기신학강좌(1946년 6월 23일)를 여는 등 경남 및 부산지역에서 '신학교육을 통한 교회 재건'에 착수했다. 당시 총회 산하의 신학교는 1938년 평양신학교의 무기휴교 이후 서울에 설립한 조선신학교 하나였는데, 출옥 목회자들은 일제 치하에서 설립된 조선신학교가 태생적으로 일제의 정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새로운 신학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1946년 6월에 열린 총회가 조선신학교를 총회직영 신학교육기관으로 승인하자 출옥 목회자들은 7월 제47회 경남노회 임시노회에서 새로운 신학교 설립허가를 얻어 내고 지난날의 평양신학교를 계승하는 순수한 개혁주의 보수신학교라는 기치로 9월 20일 '고려신학교'를 개교했다.
1948년 4월 제 34회 총회는 고려신학교 학생 추천문제를 [고려신학교는 총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노회가 천서를 줄 수 없다] 하여 문제가 제기되고, 총회 내엔 출옥성도들이 중심된 고려신학교를 거세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므로 장로교 분열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50년 4월 경남노회에서는 출옥성도들을 거북하게 여기는 친일목사들의 세력이 점차 확산되고 고려신학교 천서 문제를 반대하여 오다 경남노회가 5개로 분열되었다. 제36회 총회에서는 경남노회 총대 문제로 개회부터 소란이 일다가 급기야 경찰이 동원되어 진압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며 총회는 유회되었다. 그리고 2개월 후 6.25 전쟁이 발발했다.
1951년 5월 25일 전쟁 중이던 때에 유회된 제36회 총회가 열렸는데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경남노회에서 보낸 총대가 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총회는 경남노회를 관계없는 곳으로 선포하였다.
1952년 4월 29일 제37회 총회에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경남노회는 총대를 파송하여 총회와 관계복원을 시도했다. 그러나 총회는 “고려신학교 및 그 관련단체(경남노회))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재천명했다. 이로써 경남노회와 총회는 완전히 결별했다.
1952년 9월 11일 경남법통노회(제57회)는 목사 50명, 장로 37명의 총대가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총노회를 조직되고 총노회 조직의 취지와 목적을 발표하였다.[16] 이것이 오늘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가 되었다.
친일행위를 반대하거나 거부하다가 강제탈퇴를 당한 신도들은 '우상숭배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다 정치와 결탁한 지도부에게 쫓겨났기에, 이들에게 친일 문제를 공개적으로 회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친일행위와 천황숭배라는 부끄러운 역사로 얼룩진 당시 장로회 지도부는 반성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장로들과 목사들 손으로 대표로 선출된 교단지도부를 저항파 목사들이 불신임하는 상황이 초래되었고, 급기야 1951년 총회에서 이 문제로 갈등이 터져나왔다.
결국 지도부는 강제 탈퇴 신도들과 합의를 거부하고 이들을 모조리 제명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최종적으로 1952년 제 37회 총회에서 고려신학교와 그 관계자(경남노회)는 총회와 하등 관련이 없는 집단이라는 언명과 엄주신 장로의 고별선언을 계기로 고신파와 기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완전히 결별했다.
예장통합은 고신과 교단 차원으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예장통합과 예장합동 계통의 교회들은 지금도 한국 정치권과 유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고신은 자신의 정통성을 국가신토를 거부하다 친일 장로회 지도부에게 강제로 탈퇴당한 신도들에게서 찾기 때문에 친일 정치권 세력과 결탁하는 일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한편 교단 지도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났던 독일 개신교에 비한다면, 당시 교단 지도부가 회개 없이 신사참배 결의 취소[신사참배취소성명(1954)]로 책임을 피하려 했고 이후 고려신학교(고신)를 폐쇄하는 등의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다.[18] 그후 이 당시 지도부는 회개운동을 제안한 박형룡과도 충돌했고, 조선신학교의 고등비평학을 거부하던 한경직도 미련 없이 조선신학교를 떠나 새로운 총회신학교 설립지침에 따르면서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결국 그들은 북한의 공산화 이후 남쪽으로 내려온 교회들을 중심으로 하는 박형룡의 쇄신파와 충돌하여 상당수가 한국기독교장로회에 합류했다. 출옥성도 중 온건했던 혁신복구파조차 북한 정권의 탄압으로 내려와 합류했으나 존중받지 못한 점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19]
일제의 패망 이후 장로회 역시 군사분계선이던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리되었고, 북한에 있던 장로회 소속 교회들은 곧바로 조선로동당의 어용단체인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의 등장으로 탄압을 받았다.
결국 조선그리스도인련맹에 가입하지 않는 교역자는 노회에서 제명한다는 지시에 따라 의산노회가 이기선 목사를 제명했다. 이로 인해 조선그리스도인련맹에 가입하지 않고 이북5도연합노회를 이탈한 교회들이 혁신복구파의 조선예수교장로회독노회를 만들었다. 지속되는 탄압에 밀린 독노회와 상당수의 이북5도연합회 장로교회들이 남측으로 내려왔다. 북측에 남은 장로교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아 지하교회가 되거나 조선그리스도인련맹에 가입 후 변질되었고, 이기선 목사는 북한에서 한국전쟁 중 순교했다.
2.3.2. 기장의 분립
1953년,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을 수용할지를 둘러싼 문제로 기장 측의 김재준 목사가 총회에서 파문당했다. 이에 따라 김재준 목사[20]를 따르는 목회자 일부가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분립하여 나갔다.이 사건으로 구한말 한반도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던 해외의 장로교회 교단 중 캐나다 연합교회[21]가 예수교장로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22]
21세기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예장통합 신학교 커리큘럼에서도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므로 이때의 갈등과 분열은 오늘날에 회복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기장과 통합 사이에는 현재 단발적 대화가 이루어지고, NCCK나 에큐메니컬 운동 등에서 협력한다. 2016년에는 김재준 목사의 파면을 취소하는 교단결의가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장 통합 입장에서 신학적 화해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그동안 기장은 기장대로 민중신학의 형성, 해방신학이나 북한관 등의 문제로 온건한 장로교 신학으로부터 꾸준히 멀어졌기 때문이다.[23]
2.3.3. 합동과 결별
1960년 연동교회에 모인 찬성파, 이른바 연동측은 대한기독교장로회 일부 온건파를 흡수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을, 승동교회에 모인 반대파, 이른바 승동측은 1951년 독립해 나갔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과 합동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을 결성, 분립하였다.합동측과 분열 당시 평안북도 출신들이 주로 통합 측에 가담했고, 평안남도와 황해도 출신들은 주로 합동 쪽에 참여했다.
1967년에는 성결교회가 1952년에 설립한 임마누엘 예수교 소속의 대다수 교회들을 흡수하였다.[24] 자세한 내용은 한국 장로회 분열사 문서 참고.
3. 조직
2023년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통계 | ||
<rowcolor=#ffffff> 구분 | 내용 | |
노회 | 69개 | |
교회 | 9,473개 | |
교역자 | 목사(전체) | 22,510명 |
목사(시무) | 16,870명 | |
전도사 | 2,069명 | |
교육전도사 | 2,904명 | |
총계 | 27,483명 | |
교인 | 장로 | 35,137명 |
안수집사 | 82,054명 | |
권사 | 203,019명 | |
집사[25] | 523,482명 | |
세례교인 | 1,655,042명 | |
전체교인 | 2,207,982명[26]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기구 조직[27] | ||||
총회장 직속 | ||||
임원회 | 사무총장 | |||
상임부 | ||||
정치부 | 규칙부 | 재정부 | 재판국 | |
사회봉사부 | 농어촌선교부 | 교육자원부 | 신학교육부 | |
세계선교부 | 국내선교부 | 군정교정선교부 | ||
상임위원회 | ||||
감사위원회 | 헌법위원회 |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 |
고시위원회 | 평신도위원회 | 훈련원운영위원회 | ||
정기위원회 | ||||
통계위원회 | 공천위원회 | 절차위원회 | 안내위원회 | |
질서관리위원회 | 총대등록심사위원회 | 헌의위원회 | 선거관리위원회 | |
특별위원회[28] | ||||
교회연합사업위원회 | 정책기획및기구개혁위원회 | 생명목회순례10년위원회 | 에큐메니칼위원회 | |
역사및선교유산회복위원회 | 교회동반성장위원회 | 언론홍보및정보통신위원회 | 이슬람선교및단군상대책위원회 | |
차별금지법및동성애대책위원회 | 여성위원회 | 다음세대비전위원회 | 전도부흥위원회 | |
디아스포라이주민선교위원회 | 신학대학교미래발전위원회 | 치유화해조정위원회 | ||
총회본부[29] | ||||
국내와군·특수선교처 | 해외·다문화선교처 | 교육·훈련처 | 도농·사회처 | |
행정·재무처 |
3.1. 역대 총회
3.2. 노회 목록
- 서울강남지역
- 경기노회
관할구역 : 경기도 수원시, 안성시, 오산시, 용인시, 평택시, 화성시 - 부천노회
관할구역 : 경기도 부천시, 시흥시, 안산시 - 서울강남노회
- 서울강서노회
- 서울강동노회
관할구역 : 경기도 성남시, 서울특별시 송파구 - 서울관악노회
- 서울남노회
- 서울동남노회
관할구역 : 경기도 광주시, 이천시, 하남시, 서울특별시 강동구 - 서울서남노회
- 안양노회
관할구역 : 경기도 군포시, 안양시, 의왕시 - 영등포노회
관할구역 : 경기도 광명시, 서울특별시 일부 (강서구,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 인천노회
관할구역 : 인천광역시 - 인천동노회
관할구역 : 인천광역시 일부 - 서울강북지역
- 중부지역
- 강원노회
관할구역 :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영월군, 원주시, 인제군, 정선군 (임계면 제외), 춘천시, 홍천군, 화천군, 횡성군 - 강원동노회
관할구역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고성군, 동해시, 삼척시, 속초시, 양양군, 정선군 임계면, 태백시, 평창군 - 대전노회
관할구역 : 대전광역시 일부 (대덕구, 동구), 충청남도 금산군 - 대전서노회
관할구역 : 대전광역시 일부 (서구, 유성구, 중구),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계룡시, 공주시, 논산시 - 천안아산노회
관할구역 : 충청남도 아산시, 천안시 - 충남노회
관할구역 : 충청남도 당진시, 보령시, 부여군, 서산시, 서천군, 예산군, 청양군, 태안군, 홍성군 - 충북노회
관할구역 : 충청북도 보은군, 영동군, 청주시 일부 (상당구, 서원구) - 충청노회
관할구역 : 충청북도 괴산군, 진천군, 청주시 일부 (청원구, 흥덕구)
- 동부지역
- 경남노회
관할구역 : 경상남도 거제시, 밀양시, 의령군, 창녕군, 창원시, 함안군 - 경동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경주시, 영천시 - 경서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일부 (동지역, 고아읍, 무을면, 선산읍, 옥성면), 김천시, 문경시, 상주시 - 경북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일부 (도개면, 산동읍, 장천면, 해평면), 칠곡군, 대구광역시 군위군 - 경안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영양군, 의성군, 청송군 - 대구동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경산시, 청도군, 대구광역시 일부 (동구, 북구) - 대구동남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성주군, 대구광역시 일부 {달성군 일부 (다사읍, 하빈면), 남구, 수성구, 서구, 중구} - 대구서남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 부산노회
관할구역 : 경상남도 김해시, 부산광역시 일부 (강서구, 남구, 동구, 사하구, 서구, 영도구, 중구) - 부산남노회
관할구역 : 경상남도 양산시, 부산광역시 일부 (금정구, 북구) - 부산동노회
관할구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부 (기장읍, 정관읍, 철마면), 부산진구, 사상구, 수영구, 연제구, 해운대구 - 영주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봉화군, 예천군, 영주시 - 울산노회
관할구역 : 울산광역시 - 진주노회
관할구역 : 경상남도 거창군, 산청군, 하동군, 합천군 - 진주남노회
관할구역 : 경상남도 고성군, 남해군, 사천군, 진주시, 통영시 - 포항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영덕군, 울진군, 포항시 북구 - 포항남노회
관할구역 : 경상북도 울릉군, 포항시 남구 - 서부지역
- 광주노회
관할구역 : 광주광역시 일부, 전라남도 영광군, 장성군 - 광주동노회
관할구역 : 광주광역시 일부, 전라남도 담양군 - 군산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익산시 일부 (호남선 기준 좌측지역) - 김제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 남원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순창군, 임실군 - 땅끝노회
관할구역 : 전라남도 강진군, 영암군, 완도군, 장흥군, 진도군, 해남군 - 목포노회
관할구역 : 전라남도 신안군, 목포시, 무안군, 함평군 - 순서노회
관할구역 : 전라남도 고흥군, 보성군 - 순천노회
관할구역 : 전라남도 곡성군, 광양시, 구례군, 순천시 일부 (서면, 송광면, 승주읍, 외서면, 월등면, 주암면, 황전면) - 순천남노회[30]
관할구역 : 전라남도 순천시 일부 (동지역, 낙안면, 별량면, 상사면, 해룡면) - 여수노회
관할구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익산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일부 (호남선 기준 우측지역) - 전남노회
관할구역 : 전라남도 나주시, 화순군 - 전북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 전북동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장수군, 진안군 - 전서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군, 정읍시 - 전주노회
관할구역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일부 (구이면, 이서면), 전주시
3.3. 소속 교회
장로회/교단 목록 문서 참조3.4. 전국 분포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수도권[31], 호남권[32], 경상북도 북부 내륙 지역[33] 및 동해안 지역[34], 충청북도 남부[35], 제주 지역에 상대적으로 교세가 크며 대전을 제외한 충남권[36][37] 및 강원도[38][39], 경상남도 동부 지역[40]은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한 편이다.3.5. 산하 학교
국내 개신교단 중에서 가장 미션스쿨이 많다. 그리고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모두 신학대학으로 승급시킨 유일한 교단이다. 게다가 통합 소속이 아니더라도 평택대학교와 같은 다른 장로회 교단의 미션스쿨이나 부산외국어대학교, 아신대학교, 한동대학교 등 초교파 성향 미션스쿨의 설립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그러나 미션스쿨을 많이 설립한 만큼 계명대학교, 예수대학교 등 미션스쿨 경영권 분쟁이나 교단 탈주[41] 같은 아픈 기억도 많아서 요즘은 시큰둥한 편이다. 서해대학도 폐교하기 전에 한일장신대학교와 통합을 시도하다가 안 되자 그냥 포기해버렸을 정도.
- 신학대학교
- 장로회신학대학교(서울 광진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신학대학교이자, 평양신학교(1901년)와 조선신학교(1939년)의 적통을 이어받은 역사깊은 신학대학교이다. 평양신학교의 설립자인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 새뮤얼 오스틴 모펫)의 무덤 역시 장신대 교정에 위치한다.[42][43]
- 서울장신대학교(경기 광주시)
- 부산장신대학교(경남 김해시)
- 호남신학대학교(광주 남구)
- 영남신학대학교(경북 경산시)
- 대전신학대학교(대전 대덕구)
- 한일장신대학교(전북 완주군)
- 경안대학원대학교(경북 안동시)
- 종합대학
계명대학교: 원래 예장 통합 경북노회 산하 학교였으나 경북노회와 신일희 계명대 총장의 갈등 때문에 사실상 독립하였다.- 연세대학교: 개신교 초교파 학교로서 예장통합은 기감, 기장, 성공회와 함께 이사회 임원 파견 학교이다.[44]
- 숭실대학교
- 서울여자대학교
- 한남대학교
- 전문대학
- 원격대학
- 미인가 학교
3.6. 이사, 교목 파송 대학교
- 종합대학
- 원격대학
- 전문대학
3.7. 소속 교회가 설립한 학교
예장 통합 소속 교회에게 설립되었지만 예장 통합과 분리되어 있는 학교이다.- 신학대학교
- 주안대학원대학교 - 주안장로교회가 설립
-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 온누리교회가 설립
- 종합대학
- 경성대학교 - 김길창 목사(당시 부산 향서교회 담임목사)가 설립: 김길창 목사는 경성대학교의 전신인 경남사범대숙을 1955년 설립했다. 1963년 통합과 합동이 분열할 때, 김길창 목사는 합동으로 소속을 변경했지만 부산 향서교회는 통합에 잔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길창 목사는 1966년 소천할 때까지 부산 향서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활동했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형제학교였던 부산신학교가 합동과 인준하여 확실한 보수 성향을 띄었지만, 경성대는 어차피 신학대도 없었기에 교단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1998년 부산신학교를 흡수하여 신학대학을 신설하자 합동과의 인준 관계를 끊어버렸고, 2021년 학부 신학대학을 폐과해버렸다.
4. 특징
- 예장합동, 기장과 함께 대한민국 장로회 교단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45] 실제로 1884년에 공식적인 장로교 선교가 알렌 선교사를 통해 시작되어 조선예수교장로회 시초가 되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는 장로교뿐만 아니라 개신교 교단 중 교인 수가 가장 많은 교단이며, 대한민국 장로회의 모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46][47]
- 개혁교회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연합을 추구하는 신학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48][49]
-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대 요리문답을 옛 문서화하고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문답만을 사용한다.[50]
- 한국기독교장로회만큼은 아니지만 성서비평학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51]
- WCC와 교회일치운동을 지지한다.[52]
- 장로회 교단답게 장로 정치 체제를 취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창립 회원 교단이며, 수년 전에는 한기총에 가입하였으나 한기총의 파행으로 한기총을 탈퇴하고 현재는 한국교회연합과 한국교회총연합회에도 가입해있다.[53]
5. 이야깃거리
- WCC, CCA, WCRC, NCCK에 가입된 교단이며,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한다. 2013년 WCC 부산총회 유치를 위해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등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54]
- 교인, 목회자 개개인들의 성향 스펙트럼은 넓은 편으로, 진보적인 성향부터 보수적인 성향까지 다양한 성향의 교인들이 존재한다.[55] 신학적으로 신정통주의를 중심점으로 해서 자유주의 성향, 복음주의 성향 교회 모두 있으나, 진보적인 교회보다는 복음주의적인 교회가 훨씬 많다.[56] 신학적으로 중도~보수 혹은 온건보수 정도. 이 때문에 일부 인사들로부터 '진보와 보수에 양다리를 걸치는' 교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57]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용하는 교단의 특성상 한국 개신교 내에서 진보 교단과 보수 교단 사이에 의견이 대립할 때 중재자로서 가장 중요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58]
- 예배 전통을 비교적 철저히 지키는 교단으로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강단에 십자가를 걸고 있으며,[59] 강단보와 성찬대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성공회 정도는 아니지만 개신교 내에서는 주일 대예배시 찬송가 반주로 오르간을 사용하는 교회의 비율이 높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예복(가운)과 스톨을 착용하며 영락교회, 주안장로교회 등 일부 교회에서는 클러지 칼라(또는 목회자 셔츠. 로만칼라를 개량한 와이셔츠)를 착용하기도 한다.[60]
-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교단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편이며,[61] 사회복지기관 위탁운영, 미션스쿨 설립 및 운영[62], 생태·환경운동, 인권운동, 기타 사회운동 등 사회선교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기독교 좌파로 이름 있는 진보적 인사들도 없지는 않는 편.[63]
- 2003년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산하 신학교인 평양신학원 건물 건축을 지원하여 완공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전까지 운영 자금도 지원했으며 총회나 노회 임원이 여름방학마다 계절학기 강의 형식으로 평양신학원에서 특강을 했다.
- 소속 교회 중 가장 신도 수가 많은 교회는 명성교회다.[64]
- 국내에서 마술을 공식적으로 금지 중인 유일한 교단이다. 성경에서도 마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65] 그러나 현대에 들어 오컬트와 마술은 분리되었으며, 교회에서도 수련회 등지에서 신자들의 재능 기부를 통한 마술[66] 공연 등이 허용되기에 때문에 중도적인 성향이 강한 통합이 마술에 대한 금지를 의결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꽤 있다. 그래서인지 개신교 신자인 마술사들은 예장통합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67] 그런데 마술을 금지했다고 해서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미디어 매체들을 금기시하는 것은 아니며, 정작 교인들부터가 마술에 별 거리낌이 없다. 사실 대부분의 교인들은 통합 교단이 마술을 금지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요가 또한 범신론 종교인 힌두교의 수행 방식이라는 것을 근거로 금지했다.# 그러나 2023년 광주무등교회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국어린이대회에서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마술 공연을 선보이며 마술 금지는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68]
- 여성의 목사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이다.
5.1. 가톨릭에 대한 입장
예장통합은 교회 일치 운동을 지지하므로, 가톨릭을 반드시 정죄하지는 말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 예장통합은 가톨릭에 대해 "이단적인 요소는 있으나 반사회적이라거나 반윤리적인 다른 이단집단과 같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우리(장로회)와 다른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결의했다.정리하자면, 예장합동, 침례회 등 비에큐메니컬 보수 교단과 다르게 가톨릭을 이단 내지 이단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고, 가톨릭에 중도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6. 사건 사고
예장통합의 사건 사고를 서술.6.1. 2016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이단 사면 취소 사태
과거 이단으로 규정된 몇몇 기독교계 신흥종교 교단들을 2016년 통합 교단이 사면했다가 불과 며칠 만에 철회한 사건. 교단 내부의 신학적, 신앙적 스펙트럼이 넓은 상황에서 교단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취합하지 않은 상태로 성급하게 사면을 진행하는 바람에 발생한 사태로 교단 내부나 타 교단, 그리고 사면 대상 교파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6.2. 광주 안디옥교회[69] 방역 조치 비협조
교인들이 IM선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이 원인이 되어 코로나에 감염되었음에도 검사를 거부하며 의료진과 문재인 대통령이 교회를 죽이려고 한다고 남탓으로 돌리기만 해 논란이 일고 있다. # 특히 한 교인이 '나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쩌라고'라는 자세로 자기 때문에 코로나가 퍼지든 말든 배째라는 태도로 버티고 있다. 이후 1월 29일 안디옥 관련 확진자가 30명이나 나와 광주광역시의 총 일일 확진자가 54명으로 늘어났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안디옥교회는 벌금형이 나왔음에도 대면예배를 강경하게 고집하였다. # 광주 안디옥교회 박영우 담임목사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탈락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는 등 논란스러운 행보를 보인 바 있으며, 그 발언을 한 '국가비상긴급기도대성회 전국 목회자 세미나'에서는 WCC 반대 등 교단 총회에 반하는 주장이 넘쳐났다.#6.3. 장로회신학대학교 무지개기 사건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공식 채플 시간에 소위 '무지개 깃발'을 몸에 두른 채 예배를 드려 논란이 되었다. 채플이 끝난 직후에는 무지개색 깃발까지 든 채 단체사진을 촬영해 SNS에 게시했다. 동성애자와 동성애 지지자는 신학대에 입학할 수 없다고 결의하였었고 또 헌법개정을 통해 동성애자가 교회 항존직과 임시직, 유급종사자가 될 수 없도록 하며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성명도 발표했던 102회 총회의 입장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여 논란이 되었다.6.4. 명성교회 세습관련 논란
교계 내 영향력이 매우 큰 명성교회 세습관련 논란이다. 해당항목참조7. 파생 교단
분가한 순서 순으로 서술. 예장 합동이 분가한 이후로 별다른 분열의 역사가 없다는 관점도 있지만, 통합도 이런저런 이유로 꾸준히 목사들이 이탈하여 파생교단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70]- 기독교대한복음교회 : 1935년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가 평신도 최태용을 제명하여 탄생한 교단이다. 최태용은 일본 유학을 하면서 우치무라 칸조의 무교회주의에 영향을 받아 사실상 퀘이커의 분파로써 활동했으며, 당시 장로회를 비판하며 신정통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태용은 복음교회를 창립하며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최태용 목사도 무교회주의에 큰 한계를 느껴서 무교회주의를 폐기해버리고 민족주의로 신학 노선을 변경하여 그냥 한국 토착 교파가 되었다. 그래서 교세는 매우 작지만 엄연한 주류 교파이다. 최태용의 탈퇴 당시 오늘날의 수도권과 호남지역 교회에서 동조자들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해당 교단 교세가 형성된 원인이며, 최태용의 신학적 이단성[71]을 정정한 지동식 박사 역시 호남에서 남장로회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믿은 인물이다.
- 대한예수교장로회(중앙) : 1970년 여자목사 안수에 찬성하는 목사들이 백기환 목사를 필두로 탈퇴하여 세운 교단이다. 과거에는 여성목사 안수를 두고 통합과 대립한 적도 있으나 근본적인 신학 성향은 큰 차이가 없고, 1990년대 들어 통합측도 여성 목사 안수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관계가 개선되고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태. 산하에 온석대학원대학교를 두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피어선) : 1993년 피어선대학 동문들이 아서 T. 피어선 목사의 신학을 기리기 위해 탈퇴하여 세운 교단이다. 딱히 껄끄러운 문제로 갈라진게 아니다보니 예장 통합과 신학적 성향이 비슷하며 교류도 활발한 교단이다. 피어선대학은 평택대학교로 개칭한다.
- 한국독립교회및선교단체연합회(KAICAM) : 1997년 장로회 헌법에 의한 교단 조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의사 결정과정에 얽매이기 싫었던 자유교회 성향 목사들이 탈퇴하여 세운 독립교단이다. 원래 목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지 않았던 연세대, 서울여대, 한남대, 전주대, 계명대, 김천대 등 예장 통합 소속 종합대학에 개설된 신학대학원과 인준하였다.[72]
8. 분열된 교단
각자 총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호헌총회임을 주장한 교단들이며 시간 순으로 정리.-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본 문서의 고신 관련 단락 참조. 분열 이전 예장의 경남노회. 신사참배에 저항한 목회자들을 당시 예장 지도부가 퇴출시킴에 따라 신사참배 저항 목사들이 고신을 세웠다.[73] 그렇다보니 예장 고신 측에서는 고신 목사들을 주도적으로 퇴출한 예장 통합과 기장의 수뇌부에게 큰 원한과 증오를 품었다.[74] 예장 통합이 현재까지도 비판받고 있는 흑역사. 다만, 2016년 통합이 과거 신사참배 및 저항파 목회자들의 제명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였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본 문서의 기장 관련 단락 참조. 성서비평학을 수용한 김재준 목사와 그 제자들을 퇴출시켜서 파생된 교단이다. 후술할 예장 합동이 생겨나자 장로교 통합을 위해 기장과 통합을 시도하였고 기장의 온건파를 상당수 흡수한다. 2016년에 예장통합 총회는 김재준의 제명을 철회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동년 10월에는 기장 총회 측에 이를 알렸다.#
8.1. 최종 분열 당시의 교단들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 WCC 가입에 반대한 박형룡 목사와 그 제자들이 탈퇴하여 파생한 교단이다. 이 때 먼저 갈라져 나간 예장 고신과 뜻을 같이하며 통합했으나 신학교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고 1963년 결국 결별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 김치선 목사[75] 가 광복 후 대한신학교가 박정희 정부에게 캠퍼스를 뺏겨서 폐교할 위기에 처하자 ICCC의 도움을 받고 새 캠퍼스를 마련하며 계약에 따라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를 설립하며 탈퇴한다.[76] 이때 합동측과 통합측은 잠시 재연합을 위해 1968년까지 합동원칙에 합의하는 등 과도기에 있었는데, 대신측은 제3의 길을 간 교단이라 할 수 있다. 설립자와 학교, 해당 교단을 형성한 목회자들도 합동측과 분열 전 예장 출신들이었다. 대한신학교는 안양대학교로 개칭한다.
- 중도파라 불리던 대한예수교장로회(보수) 계열 교단들: 이 교단들은 훗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신측)이 된다.
9. 국내 타교단과의 관계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통합 교단이 공식 사과한 이후 교단 간의 입장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77] 통합 교단 소속 교회에 고신대학교 교수가 초청받아 강연을 하는 등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최종 분열 당시 에큐메니컬 운동 찬반으로 인해 갈라졌기 때문에 현재도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다.[78] 다만 같은 뿌리를 가진 장로회 교단으로서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기본적인 협력은 이루어지고 있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였으나 통합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에 대한 제명을 철회했기 때문에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2022년 9월 18일에는 기장 총회와 통합 총회가 함께 에큐메니컬 예배를 드리는 등# WCC에 가입한 한국 장로교 교단이라는 공통점으로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교단 간의 입장에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79] 장로교 교단들 중 두 교단만이 WCC에 가입하였기 때문에 협력할 필요성을 느낀 듯 하다.[80]
10. 세계 에큐메니칼 기구 및 해외 동역교회[81]
10.1. 기구
세계 에큐메니칼 기구(International Ecumenical Organizations), 6곳- 세계교회협의회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 (WCRC) 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
-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CCA)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 세계선교협의회 (CWM) Council for World Mission
- 미션21 (Mission21)
- 기독교선교연대 (EMS) Evangelical Mission in Solidarity
10.2. 선교협력 교회
에큐메니칼 선교협력 교회(Ecumenical Mission Partner Churches of the PCK), 45곳- 아시아 지역 (18곳)
- 남인도교회 (CSI)
Church of South India[82] - 북인도교회 (CNI)
Church in North India[83] - 인도장로교회 (PCI)
Presbyterian Church of India[84] - 메트로폴리탄마토마교회(MMTC)
Metropolitan Mar Thoma Church - 대만장로교회 (PCT)
The Presbyterian Chruch in Taiwan - 인도네시아바탁그리스도교회(HKBP)
Huria Kristen Batak Protestan[85] - 미나하사기독교복음교회 (GMIM)
The Christian Evangelical Church in Minahasa[86] - 인도네시아예수그리스도교회 (GIA)
The Church of Jesus Christ in Indonesia - 일본그리스도교회 (CCJ)
Church of Christ in Japan[87] - 일본기독교단 (UCCJ)
The 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 - 일본예수그리스도교회 (JCCJ)
The Jesus Christ Church in Japan - 재일대한기독교회 (KCCJ)
The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88] - 태국기독교단 (CCT)
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89] -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UCCP)
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90] - 말레이시아복음교회(사바) (SIB)
SIB Sabah - 말레이시아복음교회(사라왁) (SIB)
SIB Sarawak - 말레이시아복음교회(서말레이시아) (SIB)
SIB Semenanjung - 말레이시아바젤그리스도교회 (BCCM)
The Basel Christian Church of Malaysia[91]
- 유럽 지역 (8곳)
- 네덜란드 개혁교회 (PKN)
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92] - 스위스개혁교회연맹 (PCS)
Federation of Swiss Protestant Churches[93] - 스코틀랜드교회 (CoS)
The Church of Scotland - 웨일즈장로교회 (PCW)
Presbyterian Church of Wales - 연합개혁교회 (URC)
The United Reformed Church[94] - 체코형제복음교회 (ECCB)
Evangelical Church of Czech Brethren[95] - 프랑스연합개신교회 (UPCF)
United Protestant Church of France[96] - 헝가리개혁교회 (RCH)
The Reformed Church in Hungary[97]
- 아프리카 지역 (7곳)
- 가나복음장로교회 (EPCG)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Ghana - 가나장로교회 (PCG)
Presbyterian Church of Ghana - 가봉복음교회 (EEDG)
Eglise Evangelique Du Gabon - 동아프리카장로교회 (PCEA)
Presbyterian Church of East Africa - 킨샤사장로교회 (CPK)
Communaute Presbyterienne de Kinshasa - 에디오피아복음주의교회 메카네예수스 (EECMY)
Ethiopia Evangelical Church Mekane Yesus - 케냐성공회 (ACK)
The Anglican Church of Kenya
- 태평양 지역 (3곳)
- 호주연합교회 (UCA)
Uniting church in Australia - 뉴질랜드장로교회 (PCANZ)
The Presbyterian Church of Aotearoa New Zealand - 바누아투장로교회 (PCV)
Presbyterian Church of Vanuatu
- 중남미 지역 (5곳)
- 도미니카공화국복음교회 (IED)
Iglesia Evangelica Dominicana - 멕시코장로교회 (INPM)
National Presbyterian Church of Mexico - 브라질장로교회 (IPM)
Presbyterian Church of Brasil - 쿠바개혁장로교회 (RPCC)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in Cuba - 볼리비아예수교장로교회 (IEPB)
La Iglesia Evangelica Pebiteriana Boliviana
- 북미 지역 (4곳)
[1] 조선예수교장로회(現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설립연도.[2] 예장합동의 분립으로 인한 "통합" 명칭 사용 시점.[3] 포항동부교회 위임목사.[4] 여수 여천교회 위임목사.[5] 정식 교단 기관지가 아닌 예장통합 계열 신문으로는 교단 총회 산하 평신도단체 남선교회전국연합회의 기관지인 평신도신문, 비교적 진보적인 예장뉴스(PC 버전/모바일 버전)와 기독교 우파 성향의 예장통합뉴스(PC 버전/모바일 버전)가 있다. 예장뉴스와 예장통합뉴스 두 신문사는 모두 교단 총회와는 관련이 없고 신문의 논조는 교단의 공식 입장과 상관이 없음에 주의할 것.[6] 교세의 기준을 신자 수가 아닌 등록교회 수로 한다면 예장합동을 가장 교세가 큰 교단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도 종합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가장 큰 교단임은 분명하다. 이 또한 장신대에서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7] 예장통합 교단은 미국에서 가장 큰 장로회 교단이자 진보적인 교단인 미국 장로회(PCUSA)와 캐나다 장로교회(PCC)랑 교류하고 있다.[8] 참고로 예장합동은 자신들이 적통이고 통합이 분립해 나갔다는 관점을 고수하는 것을 제외하면 분립 이전의 역사에 대해 크게 상고하지 않고, 기장은 개별교단사 서술을 꺼리는 편이다.[9] 예장통합이 언더우드 및 기타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씨를 뿌린 '선교된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과 달리 기장은 '민족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실제로 예장통합과는 달리 기장 교단의 기틀을 다진 김재준 등의 신학자는 국내에 온 선교사에게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라 해외 신학교에서 유학하고 국내로 돌아온 사람이다.[10] 물론 예장합동이 관리하는 광주숭일고등학교나 기장이 관리하는 세광고등학교처럼 분립 과정에서 타 교단의 몫으로 돌아간 기관들도 있다.[11] 모펫의 무덤은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정 내, 언더우드의 무덤은 '양화진묘역'에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예장통합의 총회신학교(통합교단의 대표 신학교)이고 양화진묘역은 2005년 100주년기념교회로 관리권한이 이전되기 이전까지 예장통합이 관리하였다.[12] 다만 기독교회라고 부를 수도 없는 조그련과 대화한다고 해서 적통이라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래도 한국 기독교회의 대표자 역할을 한다는 의미 정도는 부여할 수 있다.[13] 정치에 비유하면,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의 법적 후신은 그 재산상 권리와 의무를 모두 승계한 국민의힘임에도 국힘 지도부에서 ‘민정당의 적통은 모 극우정당이 계승했다’는 논리를 펴는 격이다.[14] 두 교단이 갈라선 건 그보다도 더 이전인 1960년이기 때문.[15] 민법 제42조에 따른 사단법인의 정관변경 요건을 준용한다. 교회의 중대 결정(소속교단 변경 등)의 유효성을 따질 때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 조항에 근거해 판단을 내렸으며, 총사원 2/3 동의를 요구하는 정족수는 19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그대로이다. 법인 정관에 특칙이 규정되어 있다면 그 특칙이 우선하나, 당시 예장총회 교단헌법에 해당 내용이 명시되었는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16] 취지 :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본 장로회 정신을 떠나서 이교파적으로 흐르므로 이를 바로 잡아 참된 예수교장로회 총회를 계승하기 위하여 총노회를 조직한다. 목적 : 정통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정신을 지지하는 전국교회를 규합하여 통합하며 개혁주의 신앙 운동을하며, 법통총회를 장차 계승키로 한다.[신사참배취소성명(1954)] 장로교의 교단 분열이 계속해서 노회 분규와 개교회 분쟁으로 확산됐다. 1954년에는 장로교회가 현재 고려신학교파, 재건파, 복구파, 자유파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총회는 이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신실한 목회자로 교계의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거부했던 출옥성도였고, 최근에 ‘경남노회육성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고려신학교 측이 총회로 복귀하도록 노력했던 이원영(李源永, 1886-1958) 목사를 제39회 총회(1954) 총회장으로 추대했고 총회의 총대 대다수는 장로교의 교단 분열이 신사참배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 죄를 깊이 뉘우쳐야 한다고 보았다. 총회는 1938년(제27회)에 결의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기 위하여 위원회(이원영, 명신홍,권연호)를 선정하고, 위원회는 5가지 절차를 보고했고 1) 신사참배 취소성명을 문서로 작성해서 전국 교회에 공포하고, 2) 총회 기간에 (총대 전원<全員>이) 통회자복하며 하나님의 죄사하심을 위해 기도하고, 3) 위원 5인을 선택해 신사참배 주동자들을 심사한 후 해당노회에 통지해 처벌하도록 할 것, 4) 신사참배로 순교한 성도의 유가족을 위해 총회기간 중에 한 차례 연보하고 6월 첫 주일에 전국 각 교회가 연보해 유족에게 위문금을 드릴 것, 5) 6월 첫 주일을 통회주일로 정하고 각 노회를 통해 전국교회가 하루 금식통회하며 속죄를 위해 기도할 것 등이었다. 총회는 이 가운데서 4개 항목을 받아들여서 실행하기로 했다.[18] 이때 유일한 신학교 위치이던 조선신학교의 김재준이 지도부를 옹호하며 출옥한 성도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그들의 감옥 투쟁이 성령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권 욕심이었다는 글을 투고했다.[19] 당시 출옥 성도 중 강경파는 진작에 재건교회로 나가 교류를 단절했다.[20] 위에서 지도부를 옹호하고 출옥한 성도들에게 비판을 한 목사다.[21] 캐나다 장로교회의 다수가 캐나다 회중교회, 캐나다 감리교회와 연합교회를 형성했을 때 기존 캐나다 장로교회 선교부도 연합교회로 넘어갔다. 연합교회 합류를 거부하고 잔류한 캐나다 장로교회는 선교부가 넘어간 이후 한반도의 장로교회와 교류가 끊겼다. 그러나 현재는 당연히 독자적 선교부가 존재하며 통합 교단과 동역교단 관계이다.[22] 그러한 와중에도 미국 장로회(Presbyterian Church USA)는 여전히 대한예수교장로회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였기 때문에, 예장통합에서는 PCUSA를 '모교단', '선교사교단'으로 모시는 경향이 여전히 남았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의 소속 교단인 미국 북장로회를 중심으로 현재의 PCUSA가 설립된다. 미국에서 1960-70년대 사회복음화 운동 이후 PCUSA가 예장통합에 비해 매우 진보화된 이후에도 예장통합과 PCUSA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23] 구약성경의 정경성을 옹호하던 조선신학교장 송창근 목사가 기독교장로회의 분립 전 한국전쟁 시기에 납북되었다. 그 전에 한경직 역시 신설된 총회신학교로 떠난지 오래였기에 조선신학교의 절대적인 리더가 된 김재준은 성서를 다른 인문자료와 다를 바 없이 취급하는 고등비평학을 심화시켰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분립 이후 김재준은 기장 내 온건파와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송창근 목사가 조선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 구성하고 온건한 기조를 유지하던 교수 일부도 이탈하는 등의 파장이 있었다. 이미 통합측에 합류할 만한 온건파는 통합교단 초창기에 거의 합류했다. 불트만조차도 기독교 교리가 아니라고 비판한 민중신학을 창시한 안병무의 영향력이 자연스레 한신대학교 내에서 커지면서 신학적인 이질화는 더 심해진 상황이다. 민중신학의 내용이, 성서에 나오는 '무리(오클로스, ὄχλος)'를 민중으로 보고 극단적으로 재해석하여 다수 민중에 따르는 것이 구원의 요체인 회개로 보는 것임을 본다면..[24] 이때 교단 소속 신학교였던 대구신학교는 예장합동으로 넘어가 오늘날 대신대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예장통합 합류에 반대하였던 대구 칠성동교회 등 소수의 교회들이 지금까지도 임마누엘 예수교 교단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25] 제107회 결의로 서리집사에서 명칭 수정됨[26] 유아·아동 세례 포함.[27] 제108회기 기준[28] 108회기 기준[29] 사무총장 직속[30] 1985년 11월 13일 서울남노회와 자매결연으로 자립대상교회는 지금까지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2016년 5월 3일 평양남노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도움을 받고 있다.[31] 단 인천은 강화군을 포함하여 감리회와 성공회의 교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 물론 인천에는 인천을 대표하는 대형 장로교회인 주안장로교회가 있긴 하다. 주안과 부평에 예배당을 두고 있다.[32] 서해안 지역은 합동 교단의 교세가 더 강한 편이다. 다만 영광군만은 예외적으로 통합 교단이 압도적이다.[33] 안동, 영주, 예천, 영양, 봉화, 청송 등. 이 지역을 관할하는 영주노회와 경안노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경안노회는 통합 교단 내에서도 상당히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예천의 경우 통합 교단과 더불어 침례회(기침)의 교세 또한 강하다. 경북 북부 지역 내에서도 군위와 의성의 경우 예장합동의 영향이 강하다.[34] 특히 포항과 영덕의 경우 관내 교회 중 절반 이상이 통합 교단 소속이고 노회가 2개 있을 정도로 통합측의 교세가 압도적이며, 경주도 고신측 교회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관내 장로회 계열 교회 중 통합측의 비중이 가장 높다. 영천과 합하여 노회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경북 남부 지역 중에서도 포항, 경주, 영천이나 경북 북부지만 포항 생활권에 가까운 영덕은 통합 교단의 교세가 센 편이다. 영천의 경우 대구, 경산, 청도, 성주와 달리 통합 교단이 주를 이룬다. 고령 역시 경북 남부의 대구 생활권이면서도 통합 교단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단 과거 강원도 관할이었던 울진은 감리회와 침례회의 교세가 강하고 통합 교단의 교세는 매우 약한 편이다. 울릉에서는 기독교한국침례회 다음으로 큰 교단이 예장통합이다.[35] 특히 청주의 경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통합 교단이 양대 교단을 형성할 정도로 통합 교단의 교세가 강하다. 보은은 충북 남부 3군 중 개신교 교세는 가장 약하지만, 관내 전체 개신교 교회 중 통합 교단이 압도적으로 많다.[36] 2016년 기준 통합 교단의 충청+강원권 전체 교인 수는 20만명 정도(충청권만으로는 약 17만명)로 각각 46만명의 호남권, 43만명의 영남권에 비해 인구수로 비교해도 적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출처 특히 충청남도 지역은 감리회, 구세군, 성결교회 등 타 교단에 소속된 개신교인들이 많아, 약 3만여명의 통합 교인에 비해 약 13만명(대전을 포함한 충남권 전체는 약 20만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감리회가 뚜렷한 강세를 보인다. 참고로 전국적인 교인 수는 통합 교단이 감리회보다 2배 이상이다.출처1출처2 다만 부여, 서천, 금산 등과 같이 충남권 내에서도 장로회가 감리회보다 우세한 지역이 존재하며, 충북은 충남과 달리 관내 개신교 인구 중 통합 교단 신자가 약 9만명으로 약 4만명에 불과한 감리회 신자의 2배를 넘어 오히려 장로회가 감리회보다 교세가 우위이다.[37] 대전의 경우 평양노회 등 이북지역 노회 소속 교회를 합친 교인수가 약 7만명, 교회수 262개로 충남권의 다른 지역과 달리 통합 교단이 감리회(교인수 약 7만명, 교회수 341개)나 성결교회(교인수 약 2만5천명, 교회수 138개)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교세가 강한 편이다.출처 이는 한국 선교 초기 대전 지역이 감리회와 장로회의 선교 구역 경계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충남권 최초의 장로교회(현 대전제일교회. 현재도 통합 교단 대전노회에 속해 있다.)가 대전에 세워진데다 해방 후 38선 이북 지역 장로회 신자들의 대거 유입과 한남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의 설립, 1949년 기독교연합봉사회 및 1952년 대전시기독교연합회 발족 당시 회원 교단으로 참여하는 등 대전에서 통합 교단의 활동이 활발한 영향도 있고, 타지역 출신 주민이 많고 특정 교파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대전 지역 개신교인들의 특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대전 5개 자치구 지역자활센터 중 대덕구, 유성구 등 2개 구의 지역자활센터, 서구 월평동과 정림동의 사회복지관을 통합 교단 대전노회 유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38] 장로교 교단 중 강원도에서는 그나마 통합 측 교회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한편, 강원도는 보수 교단인 예장합동과 예장고신 측 교회를 상당히 찾아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수도권과의 교류가 활발한 춘천과 원주는 강원도에서 이전부터 예장합동이 그나마 선전하는 편에 속하며, 2020년 기준으로 예장합동 교회는 영동 남부권(영월, 평창, 정선)이나 강릉, 속초 쪽에 그나마 약간씩 생기고 있다. 강원도의 예장통합은 예장합동 측 교회가 생겨났다 해도 기존의 예장통합에 다니고 있는 교회 신도 수가 예장합동보다 압도적으로 훨씬 많은 편에 속한다. 특히 동해, 삼척, 태백 등지의 장로교회는 지금도 예장통합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경기도에 속해 있지만 춘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서 북부 지방에 있는 가평군 또한 예장통합 교회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교세가 이 지역에서 가장 강한 편이다.[39] 다만, 2021년 기준으로 원주시의 경우 개운동에 있는 원주제일장로교회 오인근 목사 사태, 문막벧엘교회 사태, 태장감리교회 사태로 인하여 개교회가 늘어나기는커녕 감소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도 수도 계속해서 감소하여 불교로 이탈하고 있어 복음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고 원주시의 한 통합 측 장로교회 성도가 언급해 주었다.[40] 경남 동부 지역은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의 영향력이 강하다. 단 울산은 예장통합이 강하다.[41] 특히 정관 변경으로 경북노회의 감찰 권한을 무력화시키고 사실상 교파를 변경해버린 계명대학교의 사례는 전례가 없던 사례라서 종교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다른 개신교 교단들이나 타종교 교단들도 산하 미션스쿨 단속에 경각심을 높였을 정도이다. 이때 계명대가 사용했던 방식(이사 과반수의 찬성을 통한 학교법인 변경)을 훗날 안양대학교 김광태 17대 이사장이 벤치마킹하여 아예 다른 종교에게 안양대학교 매각을 시도하다가 종교계에 큰 파장을 몰고온다.[42] 이는 예장통합 적통론에 따른 것으로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장로교 교단사를 살펴보았을 때 1901년 평양신학교의 적통을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한신대학교 중 누가 이어받는지에 대해서 다툼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1년 선교사에 의해 평양에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속칭 평양신학교 혹은 대한야소교장로회신학교)가 개교된다. 이 신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폐쇄되었고, 이에 따라 1939년 3월, 이 학교의 적통을 잇는 조선신학교가 서울에 개교한다. 여기까지는 기장 측과 예장 측 사이에 역사가 동일하다. 그러나 조선신학교가 오늘날 장신대로 이어지는지 한신대로 이어지는지가 문제의 요점이다. 광복 후 1940년대에 조선신학교에서 김재준 교수 등 일부 신학자들이 고등비평(바르트의 신정통주의)을 가르치는 것을 문제삼아 교단 내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본 문서의 교단 분열사에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교단내 보수파는 1953년 궁극적으로 김재준 교수의 파문을 이끌어내지만, 그 전에 보수파는 이미 조선신학교와 독립적인 보수신학교의 설립을 추진해왔고, 서울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라는 '정통' 신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는 1953년까지 양립하였다. 이후 김재준이 파문되면서 조선신학교가 아닌 장로회신학교가 교단신학교로 재지정되었고 이후 조선신학교는 한신대로 개명한다. 따라서 통합의 입장에서 보면 1953년 조선신학교가 자신들의 교단 신학교에서 지정해제됨에 따라 그곳은 껍데기만 남은 곳이 되었고 그게 나중에 한신이 되었건 어쨌건 안중에 없는 것이다. 한편 기장과 한신대학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조선신학교의 물리적인 학교 시설이나 교수 및 교직원들은 단절되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에, 특정 교단의 일방적인 파문과는 상관없이 1901년 평양신학교 역사는 조선신학교에서 이어지는 것이 옳다. 한신대 역사 항목 참조. 즉 기장의 입장에서는 예장이 평양신학교의 설립자인 선교사 마포삼열의 유해를 인질삼아 장신대가 적통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포삼열의 유해는 현재 광진구 장신대 교정에 묻혀있다.[43] 여기에 예장합동의 총신대학교와 예장고신의 고신대학교까지 끼어들면 복잡해진다. 세간의 인식상으로는 한신대는 1940년 개교한 조선신학교를 이어 받으며, 장신대와 총신대는 1901년 개교한 평양신학교와 1948년 재개교한 장로회신학교, 1951년 재개교한 총회신학교를 이어 받아 1960년 분리되었다고 인식한다. 정리하면 조선신학교-한신대, 평양신학교-중간 폐교-장로회신학교-총회신학교-장신대와 총신대로 정리 된다. 고신대의 경우 평양신학교의 정신, 전통을 이어 받는다는 표현을 사용할 뿐 1946년 개교한 학교로 인식되며 본인들도 그렇게 주장한다.[44] 연세대 이사회 정관 상 '기독교계 인사' 2인을 배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파송하는 임원을 이 4개교단에서 파견한다. 2008년 이전까지는 4개 연합교단에서 각1명 이사를 파견하였으나 정관이 개정되어 교단과 무관하게 합쳐서 2인으로 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의 교단규모를 고려하여 기감과 예장통합에서 주로 목사를 파송한다.[45] 미국의 PCUSA와 같이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의 장로회는 PCUSA가 장로회의 모교단으로 자처하며 이후 PCA가 나온 것을 이해하면 쉽다. 미국장로교가 모교단과 분리교단의 차이가 큰 반면, 한국의 정통 장로교에 해당하는 통합, 합동, 기장의 경우, 교단사 서술할 때 각자 자신의 교단이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타교단이 자신들로부터 분리해 나갔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회중교회로 남거나,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합류하여 장로교회로 갈라선 이후, 미국 장로교회도 여러번의 분열이 있었다. 뒤늦게 아르미니우스파로 변질된 컴벌랜드 장로회가 나간 이후 남장로회, 북장로회가 갈라졌다가 PCUSA로 통합된 것이다. 이미 북장로회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유행과 컴벌랜드 장로회와의 통합에 반발하여 나간 정통장로교회(OPC), 북장로회와 남장로회의 최종 통합인 PCUSA에서 합류를 거부한 남장로회 교회 중심 PCA인데, 그들이라고 PCUSA를 모교회라 보지는 않는다.[46] 개교회 수는 예장합동이 30% 가량 많으나, 교인 수는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이 매년 1~2위를 다퉈왔다. 2005년 예장개혁 3,425개 교회의 합동 복귀 & 흡수 이후 예장합동 교단이 교인 수에서도 앞서나가 1위를 차지했으나, 2014~16년 이래 예장통합 교단이 예장합동 교단보다 8~10만명 정도 더 많아 교인 수 1위를 차지했고 2017년에 잠깐 순위가 바뀌어 예장합동이 약 3만명 가량 더 많았으나 2017년 재차 예장통합이 3000명 이상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4:1 근래에는 예장통합이 다소 앞선 가운데 유동적이다. 그러나 예산이나 신자 비율, 목회자 비율, 신학대학원 입학생 비율로 비례해서 봐도 대한민국 장로회에서 제1의 교단, 즉 가장 최고인 것은 지극히 명약관화하고 당연한 사실이다.[47]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장로회 제2교단인 예장합동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예산 비율이 가장 많은 편이다. 전체 예산은 약 130억 정도이며, 교인 수 1위, 장로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생 및 신학대학원 학생 수도 총신대에 비해서 제법 많다. 참고로 예장합동의 경우에는 2020년 기준으로 예산이 약 110억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48] 미국 장로교(PCUSA)의 바르트주의적 신학 변화에 맞춰 198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과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을 작성하였다. 현재 통합 교단은 크게 칼뱅의 '이중예정론'을 따르는 제한속죄론에서 벗어나 바르트의 '초월론적 변증신학'을 따르는 통전적이며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신학자·교회들과 기존의 칼뱅주의 이중예정론에 충실한 신학자·교회들이 공존하고 있다.[49] 다만, 합동측도 연합을 촉구하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당연히 교회일치운동은 부정한다.[50] 지금도 총회 홈페이지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식적으로 등재할 만큼 중요시하고 있다. 아울러 새로운 신정통주의 신앙고백들이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자들을 통해 유입되었으나 어디까지나 기존 신앙고백과의 병립을 전제로 들어온 것이며, 통합측은 특정 신학이 아닌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포용, 존중하는 입장을 고수한다.[51] 물론 모든 신학자가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비평학에 부정적인 보수 성향 신학자들이 통합 교단에도 존재한다.[52] 이것 때문에 예장이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교회 일부는 WCC와 교회일치운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특히 광주 안디옥교회.[53] 그러나 근래 몇 년간 총회에서 동성애자 문제 관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행보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54] 교단 지도층 인사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교회일치운동에 관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55] 부산 WCC 총회 개최 문제라든지, 가톨릭과의 직제 일치 합의 문제 등에서 예장통합 내 일부 보수파들에 의한 잡음이 일어난 적 있다.[56] 다만, 예장통합의 경우 복음주의 교회라 해도 예장합동의 영미 복음주의보다 유럽(광의적) 복음주의와 신정통주의 성향을 띠고 있는 교회들이 상당수이며, 이들은 같은 복음주의 성향이라 해도 예장합동 교회들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리버럴하다. 물론 예장합동과 비슷한 수준의 영미 복음주의 성향을 가진 교회나 목사들도 있다.[57]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서 교단 산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도 이 사안을 두고 교수들과 학생들이 의견이 양쪽으로 갈렸다. 신학교인만큼 교단보다는 진보적이지만 기감이나 성공회와는 다르게 보수측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58] 아무래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교단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고, 장로회신학대학교도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59] 과거에는 예장통합 역시 예장합동처럼 강단 십자가를 교단헌법으로 금지하였으나, 1980년 정기 총회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강단 십자가 거치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변경하였다. 물론 강제적인 의무사항은 아니다. 지금도 부산 대지교회 등과 같이 통합 교단 소속이면서도 강단에 십자가를 거치하지 않는 교회들이 일부 존재한다.[60] 오르간이나 성직자의 예복에 관한 것은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도 동일하다.[61] 물론 어디까지나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달고 있는 교단 중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나 기독교대한감리회에 비하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며, 상술한 바와 같이 교단 내부적으로도 보수적인 목사나 교인들이 결코 적지 않다. 다만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경우, 중부연회 김찬호 감독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이 NCCK와 WCC 탈퇴안을 통과시켜 보수파가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교단 내부에서 김찬호 감독의 독단적 연회 운영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도 존재한다.#[62] 국내 장로회 계열 미션스쿨 중 기장 계열(서울 정의여자고등학교, 청주 세광고등학교, 수원 영생고등학교 등), 예장합동 계열(서울 영훈고등학교, 부산 이사벨고등학교, 대구 성광고등학교, 광주 숭일고등학교, 대전 동방고등학교 등) 장로회 계열 초교파 (부산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예장통합 계열 미션스쿨이다.[63] 1960~70년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지역에서 산업 노동자 운동을 주도했던 '영등포산업선교회'가 바로 통합 교단 소속이며, 지금도 서울 성문밖교회, 대전 빈들교회 등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맥을 이어가는 진보성향 교회들이 통합측에 여러 곳이 존재한다. 2019년 9월 통합측 총회장으로 선출된 부산 백양로교회 김태영 목사는 독도지킴이 활동으로 꽤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64] 한국 교회 신도 수 기준 5대 교회 중 유일한 예장 소속이다.[65] 신명기 18:10-16; 레위기 19:26, 31, 20:27; 사도행전 13:8-10[66] 당연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금지한 흑마술과 단지 눈속임으로 재미를 이끌어내는 현대의 마술은 다르다는 전제를 확실히 한다.[67] 그래서 마술사들은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신 계열의 교회나 감리회 등 아예 다른 교파에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의외로 보수 교단들이 마술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지 않았다.[68] 여담으로 이 대회에서 개최 교회인 통합 소속 광주무등교회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여 건너편의 합동 소속 사랑의섬김교회가 주차장을 빌려주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69] 박영우 목사 시무.[70] 다만 합동 탈퇴 이후의 교단들은 대부분 분열이 아니라 탈퇴 후 창설로 세워졌고 예장 통합과 교류가 활발한 경우가 많아 통합 계열 교단이 아닌 독자적인 교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하지만 다른 장로회 계파도 합신, 합동보수, 브니엘처럼 파생 교단들이 탈퇴 후 창설로 세워진 경우도 더러 있으며, 탈퇴 후 창설이라도 어쨌든 예장 통합 출신 목사들이 세웠기에 예장 통합에서 분가한 것은 마찬가지라 이들 교단의 창설 과정에서 통합에 대한 언급이 필수적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한다.[71]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었다.[72] 다만, 출범 당시부터 박조준 등 통합측 목사들뿐 아니라 합동측 목사인 김준곤 등도 함께 참여하였으며, 현재의 KAICAM은 통합측 뿐만 아니라 기장, 합동, 고신, 기감, 기성, 예성, 기침 등 다양한 교파와 교단 출신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73] 고신의 의미는 고려신학대학교를 교단 대학교로 하는 예장교단이라는 뜻[74] 물론 한때 WCC 반대를 내걸고 연합했던 예장 합동 역시 이 당시 김길창 등 수뇌부의 다수 인물들이 저항파 목회자들의 퇴출에 가담한데다 연합 후 신학교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고려신학교를 부산신학교에 흡수, 소멸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예장 고신이 갖는 원한과 증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75] 원래 예장 소속이었고, 캐나다 장로교회 영재형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믿었으며, 그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영재형 선교사가 캐나다 연합교회에 합류하지 않고, 연합교회의 고등비평학을 당연시하는 선교사들과 대립하며 한반도를 떠났기에 예장 소속이 아니라는 오해에서인지, 광복 후 예장에 가입했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한신학교도 엄연히 분열 전 예장총회의 야간 신학교였으며 당시 주간 신학교가 조선신학교였다.[76] 이때의 흔적으로 부산장신대학교가 대한신학교의 부산분교로 설립되었다.[77] 고신은 한국 장로교 중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고 여성 목사 안수 등이 불가하지만 통합은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하는 중도 교단으로 여성 목사 안수, 성서비평학 등을 허용한다.[78] 합동은 통합이 허용/지지하는 성서비평학, 교회 일치 운동, 여성 목사 안수, 종교세, 세습금지법을 모두 반대한다.[79] 기장 교단은 장로교 교단들 중 가장 진보적인 교단이고 통합은 기장 다음으로 진보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중도적인 입장이다. 물론 기장에도 '성풍회'라는 보수 세력이 결코 작지 않은 규모로 존재하기는 한다.[80] 통합 교단보다 소폭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총회도 WCC의 부산 총회 개최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WCC에 가입하지는 않았다.[81] 에큐메니칼 기구 및 해외 동역교회(2024년 현재)[82] 남부 인도의 개신교 연합교회. 교회 체제로는 주교제를 택하며 세계성공회공동체, 세계감리교협의회, WCRC, 세계 교회 협의회(WCC) 회원 교단이다.[83] 북부 인도의 개신교 연합교회. 교회 체제로는 주교제를 택하며 세계성공회공동체, 세계감리교협의회, WCRC, 세계 교회 협의회(WCC) 회원 교단이다.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 교회가 공존한다.[84] 세계개혁교류회, WCRC 회원 교단으로 웨일스 장로회에서 분리되었다.[85] 주교제 루터교회 교단이다.[86] 개혁주의(칼뱅주의) 개혁교회 교단이다.[87] WCRC 회원 교단이다.[88] 한국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WCRC 회원 교단이다.[89] 태국 최대의 개신교 교단으로 여겨지는 교단으로 모든 개신교 교파를 아우르는 에큐메니컬 교단으로 설립되었다. 교단 설립 이전 대부분의 교회는 미국 장로회(PCUSA) 선교부에서 설립한 장로교회였다. 소수의 미국 침례회, 영국 그리스도의 교회, 독일 루터교회에서 설립한 교회도 존재했다.[90] 회중제, 장로제, 감리교 요소가 혼합된 체제로 내부에 감리교, 복음주의, 개혁교회 교회가 있다.[91] 루터교회, 개혁교회 교단이다.[92] 영문명칭으로 보아 네덜란드 개신교회 내의 화란 개혁교회 총회파 출신 파벌과 교류하는 듯하다.[93] 2019년 까지 사용된 스위스 개신교회의 영문명칭으로 현 명칭은 Protestant Church in Switzerland.[94] 장로제, 회중제 체제의 개혁교회 교단이다.[95] 체코에서 가톨릭 다음으로 큰 기독교 교단으로서 체코슬로바키아 시기에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의 통합으로 형성된 교단이며 연합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후스파 교회가 공존한다. 체제는 장로제. 세계 교회 협의회(WCC), 루터교세계연맹, WCRC 회원 교단이다.[96] 프랑스 개혁교회, 프랑스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통합으로 형성된 교단이며 프랑스 최대의 개신교 교단. 세계 교회 협의회(WCC) 회원교단이다.[97] 장로제 개혁교회 교단. 헝가리에서 가톨릭에 이어 2번째로 큰 기독교 교단이다. 세계 교회 협의회(WCC), WCRC 회원 교단이다.[98] 출처에서는 약칭은 PCUSA로 바르지만 전체 교단명은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 해당 교단명은 예장합동 교단과 교류하는 PCA 교단이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