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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천군 龍川郡 / Ryongchŏn County | ||
국가 | 북한 | |
광복 당시 면적 | 570㎢ | |
현재 면적 | 270㎢ | |
광역시도 | 평안북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11면 | |
인구 | 135,634 명 | |
시간대 | UTC+9 | |
1. 개관
용천군은 평안북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곡창지대로서 산세가 아름다우며 물이 맑고, 예로부터 북방 방어의 요충이며 대륙 진출의 전초 지역이었다. 용천군은 압록강 하류에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광활한 황해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농수산 자원이 풍족하고 지형이 평야를 이루고 있어 천혜의 옥토로 생활 수준이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장충식[1] 전 단국대학교 이사장의 대하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에서
장충식[1] 전 단국대학교 이사장의 대하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에서
평안북도의 군이다. 군청 소재지는 용암포읍 용암동이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보고 있다.
룡천은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의 명칭이고 두음법칙을 적용 시에는 용천군이다.
압록강 하구지역이므로 평야가 많고, 해안은 갯벌이 발달되어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 일시적으로 용천부(龍川府)로 승격된 적도 있다.
6.25 전쟁 와중인 1950년 11월 1일 영국군 27여단이 군 남부에 위치한 외상면 정차동까지 진격해 유엔군이 가장 서쪽으로 진격한 지역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최서단 지역이기도 하다. 동경 124° 18' 31''에 위치해 있다.
2.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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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223F><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 용암포읍 용암동 | ||
상위 행정구역 | 평안북도 | ||
하위 행정구역 | 1읍 11면 | ||
면적 | 570.24km² | ||
인구 | 157,993명(1943년) | ||
인구밀도 | 570.24/㎢(1945년) | ||
명예 군수 | 장경운 (제22대) | ||
명예 읍면장 | 12석 | ||
홈페이지 | 이북5도위원회 용천군 소개 |
- 용암포읍(龍巖浦邑)
- 관할 동 : 용암(龍巖), 덕봉(德峰), 서호(西湖), 석성(石城), 소의(昭義), 소흥(昭興), 신전(新田), 신흥(新興)[2], 운흥(雲興), 중흥(中興), 진곶(辰串)
- 압록강 하구에 해당한다. 군청과 읍사무소가 용암동에 있었다. 구한말 용암포가 개항하고 용천부(龍川府)로 승격되면서 관아가 동상면(구읍)에서 이곳으로 옮겨오고, 이후 부내면(府內面), 용천면(龍川面)을 거쳐 1941년 용암포읍으로 승격되었다. 1903년부터 러일전쟁까지 한때 일시적으로 러시아 제국의 조차지가 되었다. 다사도선이 지나며 관내에 용암포역이 있다. 이외에도 룡암포역에서 서쪽으로 6.6km 지점의 선화동 바닷가까지 지선이 더 뻗어 있는데 용암포항의 인입선으로 추측된다.
- 매로리도 등 광복 당시 용암포읍 앞바다에 있던 작은 섬들에 대해서는 '신도면' 부분을 볼 것.
- 내중면(內中面)
- 동상면(東上面)
- 관할 동 : 동부(東部), 건룡(乾龍), 대평(臺坪), 동산(銅山), 봉곡(鳳谷), 사악(沙岳), 상북(上北), 서부(西部), 성동(城東), 쌍송(雙松), 양책(良策), 입석(立石), 태흥(泰興)
- 원래 읍동면(邑東面)이었다가 광복 직후 용암포읍의 면 강등과 함께 개칭됐다. 구한말 용암포 개항 전까지 전통적인 용천군의 중심지였으며, '구읍(舊邑)'이라 불렸다.
- 용천평야 지대치고는 고지대인 아후산(衙後山, 238m), 남산(南山, 241m)을 배경으로 동부동에 구읍이 발달하였다. 동부동에는 한반도에 두 개 밖에 없는 다라니석당[3]이 있었는데 현재는 묘향산 보현사 경내로 이전했다.
- 그 외에 태흥동과 내중면과의 경계지점에 군내 최고봉인 용골산(龍骨山, 476m)이 있으며, 용골산성이 있다.
- 백마선 철도가 면의 동쪽 끄트머리를 지나며 관내에 양책역이 있다.
- 동하면(東下面)
- 부라면(府羅面)
- 북중면(北中面)
- 관할 동 : 북현(北峴), 가성(加省), 동송(東松), 동양(東陽), 매장(梅長), 백암(白巖), 서룡(西龍), 수봉(秀峰), 쌍성(雙城), 용주(龍洲), 원봉(元峰), 원송(元松), 인고(仁古), 중성(中城), 진흥(眞興), 추정(楸亭), 하장(下長)
- 최고봉은 대산(大山, 59m)이며 그 외에는 대부분 용천평야 지대이다. 다사도선 철도가 면의 북서부를 지나며 관내에 북중역이 있다.
- 일제 때부터 트랙터·농기구 제조 공장과 항공기 부속품을 제작하는 '동양경금속회사'가 있었으며, 원송동에 용암포제련소가 있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지금도 북중역 동북쪽에 거대한 공장 단지가 보인다.
- 신도면(薪島面)
- 관할 동 : 동주(東洲), 남주(南洲)
- 우리나라 최서단 지역으로, 신도와 황금평 등의 압록강 하구 삼각주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안도는 우리나라 서쪽 끝 지역으로 등대가 있다.
- 북한 정권 치하에서 1950년대 간척사업으로 신도(薪島)를 중심으로 마안도 등 주변 섬, 그리고 신도 북쪽에 있던 매로리도(每路里島)·조룡도(潮龍島)·창암도(昌巖島) 등 조그만 섬들과 신주평(信周坪), 영문강(迎門崗) 등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는 섬의 형태로 드러나던 곳들을 모두 합쳐 비단섬을 만들었다. 현재 신도군 소재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의 서술에는 광복 당시 지형을 그대로 인용해 매로리도·조룡도·창암도 등의 도서가 용암포읍 소속인 것처럼 나오나, 이들 도서는 현재 간척으로 비단섬에 완전히 들어간 상태다. 1965년 8월 11일 대한민국 농림부에서 외교부에 회신한 트롤 및 기선저인망 어업 금지구역 관련 공한에 따르면 매로리도의 좌표는 '북위 39도 54분 00초, 동경 124도 15분 30초'로 구글 어스에서 찾아보면 비단섬로동자구 근방 평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양광면(楊光面)
- 관할 동 : 충렬(忠烈), 망양(望洋), 미륵(彌勒), 봉덕(鳳德), 산두(山斗), 선화(善和), 송정(松亭), 용계(龍溪), 용덕(龍德), 용유(龍遊), 충무(忠武), 학현(鶴峴), 현가(絃歌)
- 군의 동북쪽 끝에 위치한 면. 면 한가운데에 대유산(大遊山, 149m), 동덕산(東德山, 148m), 구연대봉(舊煙臺峰, 136m) 등의 낮은 산들이 이어진다.
- 백마선 철도가 면의 북동쪽 삼교천(三橋川) 자락을 따라가며 관내에 피현역, 용계리역이 있다. 피현역은 의주군 비현면이 아니라 이곳에 있다. 룡계리역에서 남신의주역 방향으로 동쪽으로 분기하여 선화동 방향으로 약 2.6km 방향으로 지선이 나 있는데 어떤 시설물에서 종착한다.
- 양서면(楊西面)
- 관할 동 : 용연(龍淵), 견일(見一), 동망(東望), 동상(東上), 동평(東坪), 북성(北城), 북평(北坪), 서망(西望), 신성(新城), 용봉(龍峰), 팽량(彭梁)
- 양하면(楊下面)
- 외상면(外上面)
- 관할 동 : 정차(停車), 남시(南市), 동발(東鉢), 동석(東石), 백하(栢下), 봉황(鳳凰), 서발(西鉢), 서석(西石), 송하(松下), 신룡(新龍), 안평(安平), 학무(鶴舞), 학소(鶴巢), 해현(海峴)
- 광복 당시에는 외상면의 면소재지를 남시(南市)라고 불렀다. 북한 행정구역상 염주군 소재지.
- 앞바다에는 선도, 와도 등의 섬이 있으나 북한의 간척지 조성으로 현재는 제방 안에 갇혀 육지화되었다.
- 외하면(外下面)
- 관할 동 : 율곡(栗谷), 고의(做義), 남기(南機), 남압(南鴨), 반궁(盤弓), 상호(上虎), 송흥(松興), 순천(順川), 쌍기(雙機), 인봉(仁峰), 중호(中虎), 청룡(靑龍), 하호(下虎)
- 두웅산(杜雄山, 84m) 등 일부 언덕을 빼고는 거의 전 지역이 용천평야 지대이다.
3. 룡천역 열차 폭발사고
관내에 위치한 경의선 룡천역에서 2004년 4월 11일 대규모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룡천역 열차 폭발사고 문서를 참조.4. 남북통일 후 전망
신도군과 더불어 남북통일만 된다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곳.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의주군이 신의주시에게 자리를 내줬듯 통일후에는 신의주시가 갖고 있는 국경도시기능을 용천이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미 중국의 경우 신의주 맞은편에 있는 단둥시도 압록강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항구기능을 상실해 용천군 용암포 맞은편 둥강시에 새로운 항구시설을 갖춘상황이다.5. 출신 인물
- 김산 - 독립운동가
- 김영재 - 독립운동가, 군인, 김홍일의 조카.
- 김홍일 -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가
- 송병조
- 안두희
- 장경근
- 장기려 - 의사
- 장도영
- 장상 - 이화여자대학교 제11대 총장.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될 뻔했으나 탈락했다.
- 장철부 - 독립운동가, 군인.
- 정기엽 -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유공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함석헌
[1] 장충식의 아버지이자 단국대학교를 설립한 장형의 고향이 용천군으로 장충식 본인은 중국 톈진 출신이다.[2] 한반도 본토 최서단. 위 지도에는 진곶동이 더 왼쪽에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 행정구역 범위로는 신흥동이 최서단 토지를 포함한다.[3] 다라니경을 새겨 기둥처럼 세운 돌구조물. 다른 하나는 해주시에 있다.[4] 바로 옆에 염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