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472c01><colcolor=#fff> 조선예수교장로회 朝鮮耶蘇敎長老會 | |
설립 | 1912년 9월 1일 |
일제강점기 조선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 |
해체 | 1943년[1] |
일제강점기 조선 | |
성향 | 개혁주의 |
체제 | 장로제[2] |
교인 수 | 전체 교인 16,909명 세례교인 68,506명 (전체 교인 대비 세례교인 비율 42.6%)(1918년 기준) |
주요 선교회 | 미국 북장로회[3] 호주 빅토리아 장로회[4] 미국 남장로회[5] 캐나다 장로교회[6] |
후신 | 대한민국 대부분의 장로회 교단들[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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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호주, 캐나다 등 해외 장로교단의 선교로 결성된 한국 최초의 장로회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대부분의 한국 장로회 교단의 시초가 된 교단으로, 1947년 4월 18일(제33회 총회), 해체되었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재건하고 총회명을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바꾸게 된다
2. 신자 수 증감
장로교회는 1905년까지 완만이 성장했다. 교인 37,407명, 세례교인은 11,061명으로 세례교인 비율은 30%였다. 1905~1910년 사이에 빠르게 성장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과 1907년 대부흥운동, 그리고 망국적 위기감(을사늑약, 정미조약)이 교회 성장의 주요인이 됐다. 1910~1911년은 소폭 성장했다. 이 시기 교회는 침체기를 맞았고 100만명구령운동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12~1914년 교세는 심각하게 감소했다. 105인 사건,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등의 여파였다. 반면 세례교인의 숫자는 서서히 증가했다. 외부적 환경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꾸준히 성도들을 훈련하고 있었다. 1914년 교인 수의 감소(121,108명)와 세례교인의 증가(60,047명)로 인해 세례교인 비율은 50%에 달했다. 1916~1918년 장로교회가 성장하는 시기에 노회 분립이 일어났다. 1918년 교세는 16,909명이고 세례교인은 68,506명으로 세례교인의 비율은 42.6%였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한국교회는 민족독립운동과 애국운동에 더 깊이 공헌할 수 있었다. 한국 장로교회는 1919년 3·1운동 직후에 박해를 받으면서 교인 수가 감소했다. 그러나 1921년부터는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출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홈페이지
출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홈페이지
3. 역대 지도부
3.1. 역대 독노회장
- 초대 - 사무엘 오스틴 모펫(마포삼열)
- 제2대 - 제임스 게일(기일)
- 제3대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원두우)
- 제4대 - 제임스 게일(기일)
- 제5대 -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이눌서)
3.2. 역대 총회장
[1] 일제의 종교단체법에 따른 교단 통폐합 정책에 따라 1942년 10월 16일 제31회 총회를 막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열리지 않았고, 이후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이 출범한다. 1945년 7월 19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이 출범하며 일제의 계획대로 타개신교 교단과 완전히 통합되었으나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단일 교단은 한달만에 다시 해체되었다.[2] 장로회의 교회 정치 체제. 세속 정치로 따지면 대의 민주제(간접 민주제)와 비슷하다. '장로=국회의원'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3] 주요 선교사로는 호러스 뉴턴 알렌,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원두우), 존 헤론이 있다.[4] 빅토리아 장로회의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가 1889년, 조선에 온지 몇달 만에 병사한 이후, 빅토리아 장로회 여전도회연합회가 큰 주축이 되어 선교 활동을 했다. 주요 선교사로는 이사벨라 멘지스, 마거릿 샌더먼 데이비스, 데이지 호킹 등이 있다.[5] 미국 유학 중 윤치호가 미국신학생 해외선교연맹대회에서 한국선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에 감명받은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이눌서) 등 7인이 파송되었다.[6] 주요 인물로는 본격적으로 캐나다 장로교회의 한국 선교가 시작되기 전 캐나다 YMCA의 지원으로 먼저 입국한 제임스 게일이 있다.[7] 다만 어느 교단이 적통 장자 교단인지에 대해서는 교단 간의 역사관 등 입장 차이가 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직접적 후신이 아닌 교단을 꼽을 때는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계열 정도를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