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09:21:51

제임스 게일

파일:James Scarth Gale_1.jpg
출생 1863년 2월 19일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캐나다 온타리오 주 알마
사망 1937년 1월 31일 (향년 74세)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서머싯바스
국적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캐나다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1]
묘소 Bath Lansdown Cemetery
직업 선교사, 학자, 번역가
학력 토론토 대학교(졸업)
종교 개신교(장로회)
한국 이름 기일(奇一)
1. 개요2. 일생3.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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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 선교회와 감리교인들은 대부분은 '하나님(Hananim)' 이라는 순수한 조선 토착민들의 말을 사용하기 원합니다."
게일이 선교본부에 쓴 편지(1894.5.19.)
"조선에는 기독교의 'GOD'에 상응하는 위대하고 절대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게일이 기고한 글, 코리아 미션 필드(1912년 5월호)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기독교의 신(God)과 동의어가 되도록 만든 장본인.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이자 한영사전을 제작하고, 한국시 및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에 소개한 번역가 겸 한국학자.

2. 일생

1863년 2월 19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났다. 1886년 파리에서 여름을 보내며 프랑스어를 공부하였고, 프랑스에서 지내는 중에 영국도 가끔 방문하였다. 1888년 토론토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얻는다. 신학 공부를 위해 Knox 대학교에 입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YMCA를 통해 한국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떠난다.

1889년 황해도 해주와 경상도 부산을 중심으로 전도 여행을 다녔고, 1890년부터 서울의 예수교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참고로 이 학당은 훗날 교장이 된 게일의 발제에 의해 경신학교로 이름이 바뀐다. 1891년 초에 서상륜 등의 주선으로 존 로스 목사를 만났고, 동년 8월 31일에는, 토론토 YMCA 측의 자금 부족으로 인해 선교 지원이 중단되어,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로 선교 단체를 옮겼다. 1892년에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소속으로 성서 번역에 참여, 마태복음, 에베소서 등 신약성서 일부를 번역했고, 바로 다음 해에는 <천로역정>을 한국어로 번역해 발간했다. 1897년에 <한영사전>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에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1900년부터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회 간사를 역임하였으며, <춘향전>, <구운몽> 등을 영역하여 한국의 언어·풍습 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1903년에는 황성YMCA를 창립했는데, 이는 현재 한국YMCA연합회의 전신이 된다.

그는 연동교회의 1대 담임목사였다. 연동교회는 조선 말기인 1894년에 설립된 오래된 교회이다.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모삼열(본명 S. F. Moore)이 1894년 전도하여 몇 명의 신자를 얻었고, 그래함 리(한국명 이길함) 선교사와 서상륜이 연지동 136-17번지의 초가를 예배당으로 삼아 예배를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연동교회의 초기 신자들은 천민에 속한 갖바치들 즉, 가죽신을 만드는 노동자들이었다고 한다. 점차 신도가 증가하면서 이듬해에는 교육 기관인 연동소학교를 세워 여학생도 모집해 운영했다. 이 학교는 정신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바로 이 교회에 1900년에 제임스 게일이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왔고, 이후 본격적으로 교회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04년에 한국인의 교육을 장려하기 위하여 연동교회 신자들이었던 이원긍·유성준·김정식과 한국 교육 기관의 효시인 '교육협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1928년 목사직에서 은퇴한 후, 잠시 캐나다에 머물다가, 영국으로 건너갔다. 바쓰(Bath)에서 지내며, 트리니티장로교회 당회원, 성서공회, 선교회, 문학단체의 대표와 회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1937년 1월에 사망하였다.

3. 일화

황해도 해주를 방문했을 당시의 작은 일화. 해주 목사가 제임스 게일을 접대했는데 해주 목사는 처음 서양인을 만난데다 서양인과 조선인의 인식 차이가 너무 커서 상대를 어려워했다. 그러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게일이 자신처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제임스 게일을 비롯한 서양인도 조선인과 같은 인간임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고.만화 비슷한 일화로, 경상도 대구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가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게일을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낯설어했다. 그러나 마침 다음날이 새해첫날이어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하자, '부모가 있고 공경할 줄 안다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공감대가 생겨서 분위기가 누그러졌단다. 만화[2]


[1] 출생지는 캐나다이다. 1867년에 제정된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은 캐나다가 하나의 연방으로 자치를 시작한 법으로, 게일은 1867년 7월 1일 이전 캐나다 출생자이다. 게다가 캐나다의 독자적인 국적법은 게일 사후인 1947년에야 도입되었고 그 전까지 캐나다인은 영국 국적이었다. 그래서 본인의 명함에도 한자로 영국인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현재 출신 대학이나 출생지 고향이 캐나다임을 근거로 해외 몇몇 자료에서 캐나다인이라 표기 되는 것을 보아서는, 양쪽 국가에서 서로 자국민이라 인정하는 이중국적자로 보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정정할 자료가 있다면 수정 바란다.[2] 다만 이는 당시 병인양요, 신미양요(제너럴 셔먼호 사건),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으로 인해 조선에서 서양인을 보는 시각이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