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6:58

신장(조선)


申檣
1382년(우왕 8년) ~ 1433년(세종 15년)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조선 초기의 문신, 학자. 신숙주의 아버지. 는 제부(濟夫). 는 암헌(巖軒). 본관은 고령(高靈).

2. 생애

신장(申檣)은 1382년(우왕 8) 전라도 나주목(현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아버지 신포시(申包翅)와 어머니 경주 김씨 김충한(金冲漢)의 딸 사이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장의 아버지 신포시는 1383년(우왕 9) 문과 급제자로 이방원의 동기인데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에 은거했다가 남원으로 내려갔다. 세월이 흘러 조선 세종이 신포시에게 벼슬을 권했음에도 제자 양성에만 힘썼다. 신장은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아버지가 세종의 요청을 받아들여 관직에 진출하게 했다.

신장은 1402년(태종 2) 식년시 문과에 동진사 4위로 급제하고# 세종 때까지 조정에서 활약했다.

1420년(세종 2) 집현전(集賢殿)이 신설되자 직제학(直提學)에 선임되었다. 이듬해 집현전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되고 세자좌보덕(世子左輔德)을 겸하였다. 1427년(세종 9)에 집현전 제학(提學)으로 승진하여 세자부빈객(世子副賓客)을 겸하였으며 왕명으로 숭례문편액(崇禮門扁額)을 썼다.#

1431년(세종 13) 3월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세종이 선왕실록을 보고자 하니 맹사성, 윤회 등과 함께 불가함을 간하였다. 5월에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제수되었다.

학문과 문장에 모두 능해 집현전의 초기 중추로써 활약했으나 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술로 인한 병으로 죽었다. 그가 죽자 당대의 대신 허조는 "이 어진 이를 술이 앗아갔구나."라며 한탄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조선 초기의 유명한 정치가인 신숙주. 부전자전인지 신숙주도 아버지처럼 술을 대단히 좋아한 주당이었다.

3. 대중매체에서

유일하게 대왕 세종에서 등장해 배우 이달형이 연기하였는데,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이다.

학식과 문재에 있어서는 명국 한림학사와 대적할 정도로 조선 최고의 천재지만, 외교나 행정 관련 업무를 볼 때는 꼭 뭔가를 깜빡하고 빼먹는 희대의 핵폭탄급 덜렁이.

첫 등장부터가 세종이 즉위 이후 예조정랑(외교부 서기관급 직책)을 맡아서 나라를 대표하여 공식 외교문서를 작성해 놓고, 작성자 서명을 깜빡해서 상관[1]한테 폭풍갈굼을 먹는 장면. 그리고 이 광경을 본 박은과 조말생의 대화에서 하나 더 추가된 게 있었는데, 관련 기록을 본 박은도 놀랄 정도로 오늘날로 치면 수능을 치면서 만점짜리 답안지를 작성해놓고는 정작 자기 이름을 안 쓴 바람에 꼴찌급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그래도 하는 대사라는가 행동을 보면, 예조 최고의 천재답게 대단히 지성적[2]이었고, 세자빈객으로서 당시 세자였던 문종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71화에서 지병[3]으로 인해 자식들과 소식으 듣고 급하게 달려 온 세자가 보는 앞에서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4]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이후 궁궐로 돌아온 세자는 무리하게 석강을 하다가 어린 시절 그와 어울렸던 기억이 떠올라 울다가 건물을 뛰쳐 나오면서 다시 눈물을 지었다.


[1] 하필 그 상관이 임금은 물론 대명국 앞에서라도 쓴소리를 내벹고, 깐깐하기로는 당대 최고인 허조라서, 결국 돌아온 대답은 '사표 쓰라.'는 갈굼이다. 그런데, 이후 박은이 물러가고 조말생을 필두로 중신들이 파업을 벌일 때 조정에 복귀한 황희가 파업하는 관료들을 복귀시키겠답시고 그 첫 타자로 허조를 자극하기 외해 신장 이 인간을 대놓고 '명으로 가는 사신단의 대표'로 집어넣는 등 예조의 인사를 엉터리로 해 놓았고, 이를 신장에게 보고 들은 허조는 엄청 놀라 노발대발하면서 빈청에 난입할 정도...[2] 대마도 정벌 당시 한림학사 여진의 상사를 확인하려 온 명 사신 황엄과 해수 앞에서 자신과 정인지가 조선을 대표해 시 짓기를 했다.[3] 70화 즈음에 나주에서 올라올 때 세자와 같이 온 아들 신숙주가 소갈 등 지병을 거론하면서 의원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4]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 이중성공지'라 하여 '덕으로 하는 정치는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도 같다.'라는 『논어』<위정> 편의 첫 구절로, '위정'이라는 해당 장의 제목 자체가 이 첫 마디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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